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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마을/ 아버지

수로보니게 여인 2010. 9. 13. 16:59

 

<<글짓는 마을>

오늘의 주제-아버지

지난 시간에는 가족이라는 테마로 공부했습니다.
글쓰기 공부를 할수록 삶과 글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매번 깨닫게 됩니다.

제게 글쓰기 수업을 받았던 어떤 분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글쓰기가 하는 일이 그거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고,
이왕이면 더 낫게 기록하고, 더 낫게 기록하려고 하다 보니까
삶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 http://twitter.com/prayandwork

보통 자기가 살아온 것을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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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는 아버지입니다.

지난 주에 소개했던 나희덕 시인의 시중에
아버지를 언급한 구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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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안에 둔 채 잠겨진 방은
어떤 의미로든 우울하다
일자리를 놓쳐버린 아버지처럼
잠겨진 방문은 열려고 흔들어댈수록
더욱 고집스러워진다
사춘기의 빗나간 아우처럼
아버지, 하고 불러보지만 돌아앉으시고
아우야, 어깨를 다독거려주지만 손을 뿌리친다

- 나희덕, ‘열쇠’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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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한 가장의 무거운 어깨가 눈에 선하죠?

아버지를 다룬 작품 박목월의 '가정' 이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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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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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프지만 행복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반디게시판에 한 청취자께서
이런 글을 올려주신 적 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가져다 준 쭈글쭈글한 빵이 기억난다.'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전달하려면
쭈글쭈글한 빵처럼 아주 구체적인 대상으로 표현해야 효과적입니다.

예전에 아버지를 테마로 한 TV광고의
광고문구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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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걸었다
그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 그가 내 아기를 처음 안는다
그의 눈이 눈물을 보이고
그의 입술이 자장가를 부른다
나는 과연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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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테마로 한 글뿐 아니라
감동을 주는 글에는 어떤 보편적인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보편적 메시지 중 하나는 아마도 '배려' 일 겁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는 태도에서 나오는 마음이죠.

이양연의 한시 '백로' 를 소개합니다.
원래 한문인데 한글로 번역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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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이 빛깔이 풀빛과 뒤섞여 있어
백로가 이를 모르고 냇가에 내려앉네
혹 놀라서 날아갈까 염려되어
일어날까 생각하다가 그냥 웅크리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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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어서면 백로가 놀랄까봐 계속 웅크리고 있다는
구절이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네요.

인터넷 공간에도 이런 배려심이 오고가면 좋을텐데
오프라인과 달리 인터넷 글쓰기는 조금 차갑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익명성을 악용하기가 쉽기 때문에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그게 두드러지는 것인데, 그건 인터넷만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모르는 대상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보통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품어요.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죠.

첫째, 무시하거나 기피한다.
둘째,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여 자신이 입을지도 모르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한다.
셋째, 본질을 파악한다.

첫째 경우가 가장 흔한 것 같습니다.
세 번째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법이군요.

왕따 현상이 왜 발생하나요.
상대방을 파악하는 행위를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보기 때문이죠.
인터넷 마녀사냥 같은 끔찍한 폭력도 잘 살펴보면
결국 인터넷 사용자들의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합니다.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쁜 게 알면서도 그냥 묵인함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 말이죠.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플라톤이 설명한 ‘동굴의 우상’ 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동굴 벽에 묶여 평생을 살아온 수인들은 동굴 한쪽에 비치는 그림자를 자기들의 진짜 모습으로 착각한다. 어느 날 수인들 가운데 한 명이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태어나 처음 본 태양빛에 잠시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는 빛에 이내 적응하게 되고 그의 눈앞엔 아름답고 밝은 새 세상이 펼쳐진다. 그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중 한 명을 데리고 나오는데 그 역시 태양빛을 보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해코지하는 줄로만 알고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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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문장

이언 스튜어트, <<자연의 패턴>>의 한 구절을 소개하죠.

"인간 정신과 문화는 숱한 패턴들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이용하는 정형화된 사고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우리는 그것을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해설) 여기 수학이 들어갈 자리에 글쓰기를 넣어 보십시오.
글쓰기도 삶의 다양성 속에서 보편적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이용하는 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