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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

수로보니게 여인 2008. 2. 12. 17:13

                                                                                                                                      

                          

 

시창작론 제 1강

 

제 1장 시란 무엇인가


시에 대한 장르적 이해는 시 창작 이전에 숙지해야 할 더욱 중요한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시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인 주요한의 <불놀이>를 통해 시에 대한 장르적 이해를 확실히 하고자 한다.


         불놀이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 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 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 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 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이 시는 1919년 《창조(創造)》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우리의 전통시가가 가지고 있던 정형율과 전적으로 다르게, 완전히 자유로운 산문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상의 새로움은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자유시의 출발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받았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정형성을 큰 특징으로 하던 ‘시’가, 근대 이후 이 시와 같은 형식상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시’의 정형성이 급격히 사라지지면서,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을 실험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산문과도 외관상의 차이를 찾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형식적으로도 산문과 구별하기 어렵게 된 현대시를 놓고 볼 때, ‘시란 무엇인가’란 시의 시다움에 관한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전통적으로 ‘시’라는 장르가 있었지만, 사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라는 용어는 ‘poetry’의 번역어와 같다. 동양에서 ‘시(詩)’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글의 한 종류로 지칭한 것으로, 이때의 ‘시’는 서구의 ‘poetry’와는 다른 개념이다.

근대 이전 동양에서의 ‘詩’, 그리고 서양에서의 ‘poem’ 이나 ‘poetry’라는 명칭은, 용어 사용에 있어서 혼란스러웠거나 넓게는 ‘문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설, 드라마와 등가를 이루는 개념으로서의  ‘협의의 시’와는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는 어원적으로는 문학일반을 의미하였으나, 현대로 오면서 문학의 하위양식인 ‘시’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따라서 문학의 3대양식이라고 하는 시, 소설, 드라마 중 구체적 양식으로서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시’라는 용어에는, 문학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문학양식의 하나로서 구체적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는 전통적인 시의 다양한 하위 장르들 중에서 ‘서정시’가 시양식의 대표적인 장르가 되었다.

 한편, ‘시’라는 말에 더욱 혼란이 가중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서정시’라는 용어의 사용에도 책임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용어, 시와 서정시는, 명확한 구분 없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poetry)’와 ‘서정시(lyric)’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고대 동양과 서양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가 넓은 개념으로 ‘문학’과 같은 뜻을 지칭할 경우, 서정시는 ‘시’의 하위 장르가 된다. 앞에서 논의되었던 것처럼 이 경우 넓은 의미로 ‘시’란 ‘문학’을 가리키는 말이며, ‘서정시’는 문학의 하위 장르의 하나로 서사시, 극시와 더불어 고대 문학을 구성했던 3대 장르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때 ‘시’ 와 ‘서정시’는 등가 개념이 아니라, 유개념과 종개념의 관계에 놓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창작론 제 2강

 

제 2장 어떤 태도로 쓸 것인가

 


시를 창작할 때에는, 시적 발상(發想)을 첫 단계로, 시작과정에 들어가게 되므로 ‘발상’은 시 쓰기의 구체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붓을 들기만 하면 생각이 술술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백과 같은 전설적 인물은 술 한말에 시한수를 절로 썼다고도 하지만 이것은 과장되거나 미화된 측면이 있다.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서 바치는 노력은 크게, 시적 발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작품 창작 이전에 시인이 일상생활에서 부단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생의 많은 체험을 쌓아야 한다. 개성은 고독에서 길러지고 인생은 체험에서 성숙한다는 말도 있듯이, 체험이야 말로 인생의 내용을 살찌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여기서 체험이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소화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유익하다.

  둘째, 시인은 많은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지적이 물론 시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시인의 경우는 다른 어떤 인간보다도 독서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시를 읽다가 *표와 함께 각주처리가 된 시어를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대개 그런 경우는 낯선 지명이나 어려운 전문용어, 때로는 시인 개인적인 체험 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경우 시를 읽으면서 새로운 것에 대해 알게 되거나 참신한 각성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각 종교의 경전 신화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고전’이라 부르는 저서들도 시를 쓰고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일례로 윤동주의 시 「간」은 우리나라 설화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모른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만약에 어떤 고정 관념이나 획일적인 사고에 추수하고, 기존의 가치관이나 시류에 영합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독창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시는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육사의 <교목>이다.

 

교목(喬木)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어진 못해라.


 이 작품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신념을, 곧고 높은 교목으로 시각화하여 독자에게, 의지의 이미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육사의 시가 높이 평가받는 것은 그의 시적 성취가 높고, 이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제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 그러한 시적 성취를, 뒷받침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육사가 친일이나 훼절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기 위해선, 고문과 옥고라는 시련을 견디어내는 험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제에 저항의지가 손상되지 않았던 것은 시인의 정신이 항상 맑게 깨어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넷째, 시인은 항상 사색에 몰두해야 한다. 시는 근본적으로 사색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시인은 깊은 사색의 경지를 넘어서서, 드디어는 몽상의 단계로까지 진입해야 하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은 모든 일에 깊은 사색과 몽상을 기꺼이 즐겨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

다섯째, 시인은 항상 이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의 사물에 대해서 날카로운 관찰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시인은 과학자와 유사한 부분을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의 관찰은 과학자의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과학자의 관찰이 항상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것인데 반하여 시인의 관찰은 대부분의 경우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물에 대한 비범한 관찰을 보여주는 시 한편을 보자.


피아노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작품은 피아노 연주를 하는 여자의 손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자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찰의 성격은 과학자의 관찰처럼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보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였을 때, 시인은 피아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와 감각들을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상에 대한 진진한 관찰에서 사색이나 몽상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시 창작이란 발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언어 표현에서 끝나는 직접적인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지 않고서는 파종이 불가능한 것처럼, 체험과 독서와 관찰과 사색과 성찰이라는 이 간접적이고도 기초적인 시적 수련의 과정 없이 시는 결코 씌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