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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목욕 가는 날」을 배달하며
정지아는 인물의 삼각구도를 잘 활용하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도 그렇지만 「봄날 오후, 과부 셋」이라든가 「혜화동 로타리」같은 소설은 인물 셋이 나와서 말발을 세우고 인생을 견주고 잇기도 합니다. 현대소설은 둘 사이에 하나 뛰어들어 파탄 내기를 즐겨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정지아 소설에서는 딴판입니다. 서로 다른 삶들이 조화롭게 만나는 진경이 펼쳐지지요. '이것이 인생이다'는 감상이 절로 솟죠. 그리고 대중목욕탕에서 때 미는 세 여자의 수다가 맛깔나서 이 소설을 더 아끼게 됩니다. 러시아 소설에서 화자들이 보드카 한 잔 놓고 쉴 새 없이 떠드는데, 어떤 화자는 몇 페이지에 걸쳐 침을 튀기잖아요. 인물에게 그렇게 말을 맘껏 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문화적 토양이 참 부러웠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우리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는 공중목욕탕이 있잖아요. 저도 언젠가는 탕에 앉은 사내들이 대여섯 쪽에 걸쳐 성생활 걱정, 정치 걱정, 우주 걱정까지 맘껏 지껄여대는 소설을 써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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