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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자르기

수로보니게 여인 2011. 2. 7. 20:04

 

<<글 짓는 마을>>



오늘의 주제 - 작품 구상하기



지난 주에는 작품 구상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두 가지,
즉 주제 좁히기와 쪼개기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사소한 경험을 글감으로 확장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배웠습니다.

 



시를 지을 때 시상이란 게 있죠. 그런데 꼭 거창한 경험에서
시상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박철 시인의 '영진 설비 돈 갖다 주기'라는 시가 있어요.
그런데 이 시의 창작 동기이자 소재이자 내용이 바로 그거예요.
영진 설비에 돈 갖다 주는 거요.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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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작품 구상과 글감 찾기에 관한 이야기 계속 하겠습니다.
오늘 해 볼 구상 연습은 공간 자르기입니다.



공간 자르기는 사진 교재에 자주 나오는 말이에요.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풍경 중 일부만 프레임에 담잖아요.
어디를 얼만큼 프레임에 담을지 결정하는 건 개인마다 다르죠.
글쓰기에서도 이런 방법을 적용해 보는 거죠.

 

거리를 지나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거나
머릿속으로 만든 프레임으로 자기가 보는 풍경을 잘라보세요.


지난 시간에 배운 걸 적용해 보면, 공간을 자를 때 파노라마처럼
길게 자르는 것보다는 클로즈업처럼 좁고 작게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사라질 정도로 작게 잘라선 안 되겠지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명절에 화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경은 남편의 고향집, 시댁이고 화투를 치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입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아내, 아내의 올케.
이 다섯 사람의 모습을 모두 프레임에 담아도 되지만
시어머니, 남편, 아내 이 세 사람만 프레임 안에 담는 것도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죠.


범위는 좁고 뚜렷한 게 좋은데, 무작정 좁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뚜렷한 이야기가 담기는 게 중요한 거지요.


전철을 탑니다. 맞은편에 사람들이 보이죠. 프레임을 잘라 보세요.
신문을 쫙 펼친 쩍벌남 아저씨를 담을까

그 오른쪽 옆에서 눈을 흘기는 아가씨도 프레임 안에 담을까
왼쪽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줌마도 담을까
버스를 타면 창밖 풍경 중 일부를 잘라보는 연습을 해 보세요.
맨홀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개업 행사에서 춤을 추고 있는 두 아가씨와 막대 풍선...


사진을 잘 찍는 방법과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무척 비슷하죠.

제게 글쓰기 교재를 해 달라는 분들이 많은데요,
때로 저는 사진 교재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사진기자 곽윤섭 씨가 지은 <<이제는 테마다>>,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같은 책을 보면 사진찍기란 말 대신
글쓰기를 넣어보면 무척 훌륭한 글쓰기 교재가 되거든요.


몇 구절만 소개할게요.

세 개의 꼭짓점에 해당하는 물체가 있으면
그 꼭짓점 사이에 실제 선이 없어도 사람들은 각형으로 인지합니다.
면이나 도형을 프레임 속으로 옮길 때는
그 자체에 빠져들면 깊이가 얕아집니다.
즉, 사진을 들여다 볼 때 거기에 각형이나 사각형이
직접 그려져 있는 것을 본다면 상상력이 단절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어떤 도형으로부터 유추되는 형상에 관한
추상적 메시지입니다. 《이제는 테마다》, p. 31.


각형 하니까.... 아까 이야기했던 화투 장면이 떠오르죠
세 사람의 팽팽한 긴장감...
세 사람 사이에 실제 선은 없지만 사람들은 각형으로 인지하죠.


다른 구절도 소개할게요.


선과 면 찾기는 사진 공부에 아주 유익합니다.
면을 찾는다는 것은 드디어 그림을 그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입니다.

무의미하게 흩어져 있는 라만상에 사진가 아무개 씨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흩어진 조각조각이 질서정연한 사진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제는 테마다》, p. 23.


따뜻한 것과 시원한 것을 한 프레임에 담으면 하나는 더 따뜻해 보이고 나머지 하나는 더 시원하게 보입니다.  같은 책, p. 43.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것을 정반대로 뒤집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음향기사 김남용 씨의 이야기입니다.

여수의 한 작은 섬에 소리를 녹음하러 간 적이 있다.
시내와도 먼 곳이었기에 도시의 소음들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밤이 되고 바람이 잦아들자 파도소리조차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그 고요한 정적의 경험은 여태껏 내가 들었던
어떤 소리들보다도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씨네21>, 788호, p. 18.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남겼죠. “침묵은 언어 활동의 한 계기다.
입을 다문다는 것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따라서 여전히 말하는 것이다.”
김남용 씨가 느낀 것과 같은 걸 이야기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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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함께 읽을 좋은 문장


공간을 자르는 것이 사진이고, 자른 공간을 나누는 것이 구성이다.


곽윤섭 기자의 책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진이 들어갈 자리에 글을 넣어도 무방하죠.


다음 시간에는
방금 인용한 글처럼 공간을 잘라 냈으니 자른 공간을 나누는 방법,
즉 구성에 관해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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