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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짓는 마을/칼럼 쓰는 방법

수로보니게 여인 2010. 11. 17. 00:29
<<글 짓는 마을>>


지난주에는 독자칼럼 쓰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간략히 복습해 볼까요.

편견에 치우친 용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아주 좋은 칼럼 소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용어 바로잡기 이외에 더 나은 사용자환경에 관해 관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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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칼럼 쓰는 방법에 관해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사용자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1983년 아무롤 프로덕츠라는 회사에서, 치약처럼 튜브를 차서 먹는 껌인 터블껌(Tubble Gum)이란 제품을 출시하는데요,
이건 사용자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나쁜 사례로 종종 소개됩니다.


영유아들이 이 껌에 빠지면서, 비슷하게 생긴 치약도 짜 먹고
접착제나 연고 같은 것도 다 짜 먹는 사고가 급증했어요.


어린이들이 쉽게 열지 못하도록 뚜껑의 인터페이스를
개선한 사례가 떠오르지요


하지만 어린이들이 당하는 사고는 막았는데,
손아귀 힘이 약한 노약자들이 정작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서,
이들이 쉽게 열면서도 어린이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또 개선하고 있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됐습니다.
그러면 인터넷과 관련한 사용자 환경 역시 칼럼의 좋은 소재가 되겠지요.


예를 들어, 공공 목적의 웹사이트를 만들 때,
시민들이 사용하는 운영체제나 브라우저의 종류와 관계없이
무난하게 이용 가능해야 하는데 공공 사이트의 대표격인
전자정부 사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써야 정상 이용할 수 있어요.
인터넷 뱅킹 같은 서비스도 특정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접근할 수 있어요.
그건 좋은 사용자 환경이 아니죠.

나쁜 환경을 나쁘지 않은 환경으로 바꾸고
그걸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를 보면
마치 글쓰기의 퇴고 과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늘 3단계로 나눕니다.

bad - not bad - better

첫 단계는 논리 오류나 동어반복, 무책임한 표현이 포함된 글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오류나 불필요한 표현이 제거된 상태입니다.
나쁘지 않다면 좋은 글이거든요.
다음으로 똑같은 표현이라도 더 낫게 표현한 글이 있습니다.
독자 눈높이에 맞춘 예나 비유를 들고, 좀 더 명확하게 출처를 표시하고,
생생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훈계보다 정황 자료를 우선시하는 글 말이죠.


특히나 지식이 늘어나고 연륜이 쌓일수록
자꾸만 독자를 가르치려는 경향도 늡니다.

인생의 딜레마 가운데 하나죠.


역사철학자 빌헬름 딜타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삶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능성들의 폭도 점점 넓어진다.
노년에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죠. 나이와 지혜는 정비례해야 타당한 건데,
실제는 다른 경우가 오히려 많습니다.


왜 자꾸 훈계로 치우치는 걸까요

자기들이 다 겪어봤더니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그거 하지 말라고 충고하죠.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이야기합니다.
'그쪽 길로 가지마 그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야'


그렇지만, 하지 말라고 만날 충고해야 그건 이른바 '꼰대'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길로 대개 갑니다.


그러면 인생 후배들을 향해 글을 쓸 때 어떤 방식을 취하면 좋을까요

판단 근거를 주면 됩니다. 남들이 다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가 보니 어른들 말대로 험난한 길이더라. 그 길을 40년 간 걷고 있다.


여기서 끊어야 합니다. 이 힘든 길, 넌 가지 마라.
너도 한 번 이 길을 걸어 봐라... 이야기하지 말고
그대로 판단을 독자에게 넘겨야 합니다.



풍부한 인생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읽는 젊은 독자는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열정이 있으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 멋있는 글이죠.


오늘도 함께 읽을 좋은 문장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 한 편 읽겠습니다. 김월수 시인의 <헌 의자>입니다.


주인이 이사를 가자
함께 밥을 먹던 의자는
우리 집 대문 앞으로 이사를 왔다
주인이 남의 보증을 섰다가
작은 지하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의자는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다른 차가 서지 못하도록
자리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대문 앞 의자는
닦고 또 닦아 스님의 바루 같이
반들반들한 네다리를 꼿꼿하게 서서
매무새 하나 흩트리지 않던 주인처럼 품위를 지킨다

그런데 ‘거주자 우선주차 이용’ 제도가 생기면서
의자는 할 일이 없어졌다
대문에 걸려있는 편지통 밑에서
우체부 짐이나 덜어주고
바람 쐬러 나온 이웃집 할머니와 같이
해가 질 때까지 길 모퉁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인이 와서 데려가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 김월수, “헌 의자” 전문.



헌 의자가 마치 살아있는 우리 주변 인물 같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몇 주에 걸쳐
자기 삶을 한두 페이지에 근사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관해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