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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마을/거짓말

수로보니게 여인 2010. 7. 6. 00:35

 

<<글짓는 마을>>

 

 

오늘 다룰 주제는 '거짓말'입니다.

저는 악의 없는 사소한 거짓말이 글을 망가뜨리는 실마리 라고 생각해요.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묻더군요.

“담배 하나 빌립시다. 담배가 똑 떨어졌네.”

그래서 담배 하나를 건네며 불은 있냐고 물었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답하더군요.

“불도 없네. 담배 끊은 지가 오래돼서.”

뭐가 진실일까요??

담배가 똑 떨어진 거랑 담배 끊은 지가 오래 된거랑,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군요.

악의 없이 무심코 뱉은 말이지만, 이 무심코 뱉는 말 속에 글쓰기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무심코 뱉는 말 중에 ‘솔직히 말해’,
‘사실’ 같은 것도 좋지 않은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표현입니다.
솔직히 말해, 사실 같은 표현을 쓰는 순간 지금까지 썼던 표현이 뻥으로 돌변합니다.
‘진심으로’ 같은 표현도 좋지 않지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거짓으로 감사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다큐멘터리나 기사문, 서한문 같은 논픽션 장르 말고
소설이나 희곡 같은 픽션 장르는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것,
즉 거짓이잖아요.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이런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작가 발자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설이라는 거대한 거짓은 세부의 진실에 의해서 성립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철저한 진실, 사실에 근거를 둔 허위 세계라는 거죠.

작가 안정효 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거짓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작가는
99가지 진실을 미리 말해야 한다.”

거짓을 말하지만 진실성이 담겨있기에 독자는 진실로 받아들이는 거죠.

자연주의, 사실주의 문학 작품이 그걸 잘 표현하죠.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한두 페이지만 읽어봐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실적 표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제가 빠뜨리지 않는 건 홍상수 감독의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뭔가 꾸며서 전달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추하면 추한 대로 너절하면 너절한 모습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죠.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촬영 직전에야 대본을 준다고 하죠.
그만큼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고
자연스러운 장면을 찍기 위해 그런 겁니다.

영화평론가 필립 로페이트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이렇게 평했어요.

“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상처를 주는 진실’이다.”

관객의 가슴을 콕콕 후벼팔 정도로 사실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영화에 관한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역시 허구입니다.
그런데 관객이 이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부적인 사실 묘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온 앤디는 탈옥하려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감방 흙벽면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파냅니다.
그리고 뚫린 벽을 여배우 포스터로 가려 놓습니다.
그런데 이 여배우 포스터가 처음엔 리타 헤이워즈였다가
시간이 지나며 마를린 먼로로 바뀌고, 또 레이첼 웰치로 바뀝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포스터의 변화로 넌지시 보여주는 건데요.

저는 요즘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지은
<<생각노트>>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내 영화에서 사용하는 총 발사음은 모두 실제로 녹음한 소리다.
바닥에 구르는 탄피 소리까지 진짜다.
우리 집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총의 발사음을 모아놓은
방대한 컬렉션이 있다. 음향 담당이 미국에 가서 엄청나게
고생하여 따온 것이다. 이런 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지만,
희한하게도 관객은 무의식중에 그 차이를 느끼는 것 같다.”


고급 관객, 충실한 독자는 그 섬세한 차이를 느낄 겁니다.

사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고,
진실이 담긴 한 마디 허위를 말하려면 충분한 사실 정보를 펼쳐 보여주어야 하는 것,

오늘 강의의 주제였습니다.

==========


오늘의 좋은 문장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자리에서는 흥분과 축복이 공존한다.
그때 보이는 모습을 묘사해 보자. 산모의 얼굴,
거듭되는 진통 끝에 드디어 아기가 세상 속으로 나오는 순간
폭발하는 에너지, 젖은 아내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아내와 똑같이 호흡을 맞추는 남편.
당신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독자는 이미 그것을 이해하고 느끼고 있다."

정서를 바로 드러내지 말고 구체적 장면으로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은 글쓰기의 오래된 금언입니다.

다음 시간 주제는,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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