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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마을/냉정함

수로보니게 여인 2010. 5. 17. 22:14

 

<<글짓는 마을>>



오늘 주제는 "냉정함" 입니다.

지난주에 미국 드라마 X파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여자 주인공 스컬리 요원은, 직관에 의존하는 멀더 요원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냉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전직 의사인 스컬리는 명료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객관적 증거를 찾고 그에 따른 결론만을 믿습니다.
반면 멀더는 직관과 감성에 의존하죠. 그걸 합리성이라고 합니다.

신적인 것, 신비한 것에 의존하지 않고, 사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합리성입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신비로움, 감성에 의존한 역사 서술을 냉정한 객관적 사실로 대체했지요.


동시대 인물이었던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며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키워드는 물이 아니라 근원이란 게 중요해요.
만물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그랬을 때 탈레스 이전 사람들은 다 신의 뜻이려니...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탈레스가 최초로 그 생각을 뒤집은 거예요.


우리가 글쓰기에서 다루는 문제, 특히 인간의 주요한 고민들은 대개 고대 그리스 시대에 거의 다 다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사상을 공부하는 건 바로 현대 사회를 충실히 읽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지요.


냉철한 판단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지난 주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할게요.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지은 <안티고네>의 한 대목입니다.
여기에는 국가의 법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여인 안티고네가 나옵니다.
국가의 통치자 크레온이 안티고네에게 경고하고 위협하자, 안티고네의 연인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몬이 아버지에게
냉철한 논리로 맞섭니다. 너 같은 풋내기가 날 가르치려드냐고 타박하자 아들 몬이 이렇게 답합니다.


몬 : 옳지 않은 것은 배우지 마십시오. 제가 아직 젊다면 나이가 아니라 행위를 보십시오.
크레온 : 나는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하나
몬 : 한 사람에 속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크레온 : 국가는 그 통치자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느냐
몬 : 사막에서는 멋있게 독재를 하실 수 있겠지요.
크레온 : 못난 녀석, 한 여인에게 굴복하다니.
몬 : 그러나 제가 비열에 굴복하는 것은 보지 못하실 겁니다.
크레온 : 아무튼 네 말은 모두 그 여인을 위한 것이다.
몬 :아버지와 저와 지하의 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크레온 : 계집년의 종인 주제에 나를 감언이설로 속이려 들지 말아라.
몬 :그저 말씀을 하시려고만 하지, 들으시려고는 하지 않는군요.


나이가 아니라 행위를 보라는 몬의 말이 인상적이죠


냉정함을 잃으면 우리는 공포에 떨거나, 흥분하거나 오바합니다.
냉정함을 잃으면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어떤 인물이 무리수를 발견했을 때, 학파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아주 어이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죠.
그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입니다.
냉정함을 유지했다면 오히려 새로운 학문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글쓰기에서 냉정함을 지켜야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뭔가 새로운 소식을 듣거나 알았을 때 대개 그것을 빨리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그렇지만 냉정한 사실 판단 없이 퍼뜨리면 분명 다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이른바 ‘카더라’ 기사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동아시아축구대회 중계를 하면서 대한민국이 홍콩에 4:0으로 이긴채 전반전을 마치자, 중계를 맡았던 방송사에서 “홍콩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중국도 이기자”는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지요.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정확히, 냉철하게 쓰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아름답고 근사하게 표현해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늘의 읽을 만한 문장

<씨네21>에 홍상수 감독 특집이 실렸는데, 예술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홍상수 감독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예술이라는 건 추상과 구상의 긴장관계, 그것들이 밀고 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만들어지는 지점의 경계선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 홍상수



- <씨네21> 752호


다음 주 테마는, 열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