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물을 뿌려주듯 시든 꽃 같던 일상을 싱싱하게 만들어주는 에세이
먼저 수필 하면 두 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왕후의 밥, 걸인의 찬](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과 [인연](피천득)입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은 가난한 신혼부부 이야기 아닙니까.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남편은 실직상태였죠. 어느 날 쌀이 떨어져 아내가 배를 굶고 출근했고,
점심때 잠시 집에 들러보니 남편이 상을 차려놨습니다.
밥 한공기와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쪽지 하나.
바로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였죠.
그런데 만약 쪽지를 안 썼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감동이 덜했을 겁니다.
게다가 글로 씀으로써 그 사연 자체가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학창시절 교과서에 있었던 이야기니, 몇 십 년 된 겁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은 요즘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얼마나 실직자가 많습니까.
[인연]도 마찬가지죠. 사실 배경이 해방 전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됩니다.
끝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그게 바로 수필의 힘입니다.
수필은 시와 소설과 달리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제가 쓴 수필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인 지 맞춰보세요.
["자기야" "어머나" 한 남자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여자의 등을 쳤다.
여자는 뒤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혹시 그 여자가 한때 좋아했던 분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와이프를 마중하러 고속버스 터미널에 갔습니다.
와이프에겐 마중 나간다는 말을 안했습니다. 놀라게 해줄려고요.
버스 하차장에서 기다리는데 와이프가 차에서 내리더군요. 저는 몰래 뒤에 다가갔습니다.
드디어 놀라게 해줄 찰나, 갑자기 옆에서 웬 남자가 나타나서 선수를 쳐버린 겁니다.
그 남자도 여자를 놀래게 해준 겁니다. 우연의 일치였죠.
와이프가 그 소리에 뒤돌아봤고, 저를 알아봤습니다.
“거기서 뭐해요” 하는데, 한 마디로 김이 샜습니다.
제가 이 이야길 기억하는 것은 글로 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요. 우리는 그것을 금세 잊어버리고 삽니다.
즉,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글로 쓰면 생명을 얻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뇌에 각인됩니다.
쉽게 말해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를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수필의 소재는 무한합니다. 책 속 이야기나 남한테 들은 이야기도 대상이 됩니다.
혹시 수필 중에 [도마뱀의 사랑]이란 것 아세요. 일본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공사를 하던 중 벽을 뜯었더니 도마뱀이 나왔답니다. 일본 벽은 나무로 되어서 뚫려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도마뱀이 꼬리가 긴 못에 박혀 움직이지 못했답니다.
생각해보니, 못을 박은 건 집을 처음 지을 때인 10년 전이었답니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못이 박힌 채 있었다는 이야긴데요.
집주인은 대체 캄캄한 데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어떻게 10년을 버텼을까 의아해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도마뱀이 나타났답니다.
그 도마뱀이 10년 동안 먹이를 가져다 준 셈이죠. 정말 지극한 사랑 아닙니까.
이 이야긴 <한국의 명수필>이란 책에 나오는데요.
들은 이야기도 글로 잘 표현하면 명수필 반열에 올라갑니다.
여러분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써 버릇해보시기 바랍니다.
수필은 어떻게 써야할까요. 수필쓰기는 요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요리를 하려면 물 좋은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재료가 좋으면 양념을 하지 않아도 좋은 요리가 됩니다. 소재가 참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념해야할 것은 소재 자체보다 소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글을 많이 써본 이들은 직감적으로 글감을 압니다. 반면 둔한 이들이 있습니다.
글감은 어떻게 찾을까요. 일전에 말씀드렸는데요.
글감의 종류엔 [화제 정보 감동 논란]이 있다고 했죠.
수필의 코드는 화제 혹은 감동입니다.
따라서 가슴이 찡할 때, 배꼽을 잡을 때, 슬픔에 겨울 때,
‘이것이 좋은 글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잔잔한 마음에 파동이 일면 글의 소재인 것이죠.
글감을 잘 고르고 못 고르느냐에 따라 글쓰기 실력이 좌우됩니다.
전반부에서 피천득 선생의 [인연] 마지막 대목을 말씀드렸는데.
인연 대신 글감이란 단어를 넣으면 딱 맞습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글감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글감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글감을 살려낸다]
다음은 본격적인 요리 차례입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쓰라.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에, 서두를 어떻게 가져가야 읽는 이들이 호기심을 가질까 하고 고민해봅니다.
이를테면 도마뱀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거죠.
[못이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이 벽장에서 10년 동안 살았다면
얼마 전에 난 놀라운 이야길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요.
마지막엔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까 생각해봅니다.
[도마뱀은 인간도 감히 하기 힘든 사랑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요.
끝으로 수필쓰기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삶의 지혜와 통찰,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또 타인과 소통하고 이해하도록 합니다.
바쁜 삶의 여유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행복을 만듭니다.
즉 수필을 쓰는 것은 행복의 씨을 뿌리는 일입니다.
[부엌에 딸린 큰 나무로 된 광문을 열면 어둑하면서도 나무 틈새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대각선으로 누웠고 가끔 희뿌연 거미줄이 빛에 반사된 채 두려움에 떨게도 했지만
그 광은 언제나 시원했다.]
[부엌에 딸린 광은 늘 어둑했다. 나무 틈새로 한 줄기 빛이 비췄다.
희뿌연 먼지 속의 거미줄. 두렵기도 했지만, 광은 언제나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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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좋아하는 노랫말 적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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