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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사 [一字師]

수로보니게 여인 2009. 5. 21. 16:37

 

일자사 [一字師]


'한 글자를 바로잡아 고쳐준 스승'이라는 뜻으로, 시문(詩文)의 한 글자를 고쳐 더욱 생동감이 느껴지고 훌륭한 문장이 되도록 깨우쳐준 스승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 정곡(鄭谷)의 고사(故事) 등에서 유래되었다.

일자지사(一字之師)라고도 한다. 당나라말기에 제기(齊己)라는 시승(詩僧)이 〈조매(早梅:이르게 핀 매화)〉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정곡에게 보여주고 가르침을 구하였다. 그 시 가운데

"앞마을에 눈 깊이 쌓이더니 어젯밤 매화 몇 가지가 피었네.

(前村深雪裏, 昨夜數枝開)"

라는 구절이 있었다. 정곡은 이 구절에 대하여 '몇 가지(數枝)'는 '이르게 핀 매화'와 어울리지 않으니 '한 가지(一枝)'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정곡의 말대로 하니 "앞마을에 눈 깊이 쌓이더니 어젯밤 매화 한 가지가 피었네."라는 구절이 되어 과연 '이르게 핀 매화'의 정취가 한층 살아났다. 제기는 저도 모르게 정곡에게 절을 하였고, 당시 사람들이 정곡을 일자사라고 불렀다. 이 고사는 당시기사(唐詩紀事)》에 실려 있다.

또 송(宋)나라 태종(太宗)과 진종(眞宗) 양 대에 걸쳐 명신(名臣)으로 이름을 떨친 장괴애(張乖崖)가 어느 날 소초재(蕭楚才)를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소초재가 문득 책상 위를 보니 장괴애가 지은 시가 눈에 띄었는데, 그 가운데

" 홀로 태평무사함을 한탄하노니,

강남의 한가로움이 늙은 상서를 죽이누나.

(獨恨太平無一事, 江南閑殺老尙書)"

라는 구절이 있었다.

조정의 고관인 장괴애가 태평한 세월을 한탄한다는 것은 곧 반역의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초재는

'독한태평무일사(獨太平無一事)'의 '한(恨)' 자를 '행(幸)' 자로 고쳐 "홀로 태평무사함을 다행스러워한다"라는 뜻이 되게 하였다.

장괴애는 이를 알고 "그대는 나의 일자사일세"라고 하였다.

이 고사는 《초계어은총화전집(苕溪漁隱叢話前集)》과 《시화총구(詩話總龜)》 등에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고사에서 보듯이 일자사는 한 글자 한 글자의 음과 뜻이 독립된 한자의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반드시 한 글자만이 아니라 정곡을 찔러 결함을 깨우쳐주는 가르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알기 쉬운 논술강의⑨◆

모 시인이 대학에 다닐 때 일이다. 학교 신문사에서 주최한 교내 문예공모에서 장원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선된 기쁨도 잠시, 자기 시가 실린 학교 신문을 읽어가던 그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구절의 '담배갑'이란 단어가 '담벼락'으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다른 글도 아니고 시였으니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화가 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담벼락'이란 단어가 사용된 시가 원래 시 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서 밤을 지새우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모든 일은 심사를 담당했던 국문과 교수님이 오독(誤讀)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도 모 시인은 악필로 유명하다. 그가 쓴 글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는 것은 글씨체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그러니 제출한 원고를 통해 처음 그의 글씨를 접했을 심사위원이 제대로 읽어내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악필에서 비롯된 해프닝이긴 하지만 시인을 꿈꾸던 청년에게 그것만큼 훌륭한 가르침도 없었을 것이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 70년대였으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니 그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은 일화다. '컴퓨터와 씨름한다'는 표현이 글을 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고 보면 이 일화만으로도 훌륭한 논제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읽고 논제를 떠올려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논술 공부를 하는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논리적 글쓰기와 관련된 맥락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화 속에서 언급한 시 구절을 그대로 옮겨 보도록 하겠다.

나는 담배 갑을 구겨서 광장에 버렸다 / 나는 담벼락을 구겨서 광장에 버렸다

두 문장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일상적 표현인 첫 구절은 둘째 문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담벼락을 구긴다는 상상력도 그렇고 '담벼락/광장'의 대비도 그렇다. 두 문장의 차이를 여러분도 한번 음미해보기 바란다.

이처럼 한 단어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글 수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일자사(一字師)'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한 글자의 스승이란 의미다. 정민의 '한시미학산책'이란 책 에는 이 일자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러 편 소개되어 있는데, 문학적 글쓰기뿐만 아니라 논리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데에도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 참가했다가 요즘 대학생들은 영어단어보다 한글단어를 더 모르는 것 같다는 발표자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읽어보면 사용하는 단어 양이나 질 모두 염려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적절한 어휘 구사 능력이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단어 사용은 글의 설득력을 반감시킬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 채팅이나 휴대폰 문자에 익숙한 학생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한 듯하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 '담배 갑'이나 ' 담벼락' 모두 어려운 단어가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어휘양이 아니라 적절한 구사 능력이다. 그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여러분도 모 시인과 같은 경험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한 문장에 여러 단어를 써보는 일 말이다.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영성 열린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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