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임금에게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어라
[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 김홍도 '게와 갈대'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게 두 마리가 갈대 이삭 하나를 놓고 각축을 벌인다. 게와 갈대는 흔히 함께 그려지는 짝이다. 비교적 단순한 조합이다.
무슨 뜻일까?
▲ 비단에 담채. 23.1×27.5㎝, 간송미술관 소장
먼저 갈대의 의미를 읽어보자. 갈대는 한자로 로(蘆)다. 게가 갈대를 물어 전하면 '전로(傳蘆)'인데, '전려(傳�)'란 말에서 나왔다. 로(蘆)와 려(�)는 우리말 음으로는 달라도 중국음은 모두 '루'다. 전려는 예전 과거시험을 볼 때 합격자를 발표하던 의식이다. '려'는 전고(傳告), 즉 전하여 알린다는 뜻. 궁궐의 전시(殿試)에서 황제께서 납시어 합격자를 발표한다. 황제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각문(閣門)에서 이를 이어받아 외쳐, 섬돌 아래까지 전한다.
그러면 호위 군사가 일제히 큰 소리로 그 이름을 외친다. 한 사람씩 호명될 때마다 각문 밖에선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생각만 해도 근사한 장면이 아닌가. 이후로 전려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되었다. 갈대의 의미는 그렇다 치고 왜 하필 갈대를 무는 것이 게였을까? 게는 한자로 해(蟹)다.
예전 과거 시험은 각 지역의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만 중앙으로 올라가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발해(發解)다. 해(解)와 해(蟹)의 음이 같다. 발해에 뽑힌 사람[게]이 다시 전시에서 전려(갈대), 즉 급제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게다가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되어있어 그 자체로 갑제(甲第)의 뜻도 있다.
이제 화제를 풀 차례다. 여백에 경쾌한 필치로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는 글귀를 썼다. 횡행개사(橫行介士)는 게의 별명이다. 게는 옆으로 걷는다. 말 그대로 횡행(橫行)한다. 개사(介士)는 강개한 선비란 뜻이지만 집게까지 든 갑옷 입은 무사이기도 하다. 횡행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거리낌 없다는 말이다. 게 그림의 화제에 횡행사해(橫行四海)라 쓴 것도 많은데 천하를 마음껏 주름잡으란 뜻이다.
그러니까 화제의 의미는 임금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 된다.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의 '영해(�蟹)' 시의 한 구절이다. 원시는 이렇다. "푸른 바다 못 봤어도 진작 이름 알았나니, 뼈 있으되 도리어 살 위로 생겨났네. 생각 없이 번개 우레 겁먹는다 하지 마소.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오(未遊滄海早知名, 有骨還從肉上生. 莫道無心畏雷電, 海龍王處也橫行)." 모든 동물은 살 속에 뼈가 있다. 게는 뼈 속에 살이 있다. 걸핏하면 구멍 속으로 쏙쏙 숨는다고 겁쟁이라 얕보지 마라. 바다 용왕 앞에서도 삐딱하게 옆으로 걷는 강골이라는 말씀이다.
▲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갈대 이삭을 문 게로 과거 급제를 축원했다. 두 마리를 굳이 그린 것은 소과 대과에 연달아 합격하란 속뜻이 있다.
합격에서 그치지 않고 화제로 급제한 후에 천하를 주름잡는 큰 인물이 되어 임금 앞에서도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라는 주문까지 담았다. 게의 두 가지 상징을 절묘하게 겹쳐놓은 것이다.
입력 : 2008.06.06 14:33 / 수정 : 2008.06.0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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