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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강독/ 막스 프리쉬의 「호모 파버」

수로보니게 여인 2008. 4. 23. 16:47

 

 


  세계문학강독                                                                                                    

 

         막스 프리쉬의 「호모 파버」                                              

                                                     김 린 주

1.작가소개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와 더불어 전후 독일 문단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막스 프리쉬는 1911년 5월 15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레알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취리히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1932년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프리랜서 기자로서 여러 신문에 짧은 글들을 기고한다. 기자신분으로 1933년 프라하,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이스탄불, 아테네, 로마 등지를 여행하며,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의 처녀작인 소설 『위르크 라인하르트- 운명적인 여름여행』을 발표했다. 1936년부터 학업을 재개하지만 이번에는 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여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선택하며, 아울러 틈틈이 습작을 계속한다. 1937년 소설 『정적에서 나온 답』을 발표한 후  돌연 글 쓰는 일에 회의를 느껴 그동안 쓴 글들을 몽땅 불태워 버린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맹세하고 건축가의 길을 택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리쉬는 1939년에서 1945년까지 포병으로서 간헐적으로 국경 수비대에서 복무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조국 스위스도 침공 당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2년 전 스스로에게 다짐한 절필의 맹세를 파기하고 다시금 펜을 잡는다. 이때의 체험이 스위스 특유의 전쟁 일기 형식인 『배낭 일기』(1940) 속에 그려진다. 1941년 건축사 디프롬을 취득한 그는 이듬해 취리히 옥외 수영장 건설 설계 현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개인 건축 사무소를 차렸다. 같은 해에 대부호의 딸인 콘스탄체 폰 마이어부르크와 결혼하지만 이 결혼은 1959년 세 자녀를 두고 나서 이혼으로 끝난다. 프리쉬는 건축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데, 1943년에 발표된 소설 『나를 불태우는 것을 난 사랑한다, 또는 어려운 사람들』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어서 1945년에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자전적 소설 『빈 또는 북경 여행』이 발표된다. 이 시기에 프리쉬는 독일의 망명가이자 취리히 극장의 연출가인 크르트 히르시펠트와 교우 관계를 맺게 되며, 그의 자극에 고무되어 일련의 희곡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산물이 희곡 『싼타 크르츠』 이다. 1946년 3월 7일 취리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945년 초에 집필되어 같은 해 3월 29일 취리히 샤우슈필하우스 극장에서 초연된 프리쉬의 희곡 『이제 그들은 또다시 노래 부른다』는 <진혼곡의 試演>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고 있듯이 전쟁의 무의미함을 폭로한 작품이다. 

   1946년 이후 프리쉬는 스위스 주변 국가들인 바르샤바, 파리, 마르셰유, 이태리,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는데,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방문의 산물이 희곡 『만리장성』이다. 

 1947년 프리쉬의 문학 인생에 중요한 두 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데 그 하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만남이다. 당시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브레히트는 프리쉬의 창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또 다른 하나의 만남은 프랑크푸르트의 젊은 독일 출판업자 페터 주어캄프와의 만남으로써 그는 프리쉬의 후견인이자 격려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후 브레히트, 헤세의 작품들과 함께 프리쉬의 모든 작품들이 주어캄프 출판사와의 전속 계약에 의해 출판된다. 1950년 발표된 일기집 『일기 1946-1949』은 프리쉬의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일기는 단순한 일상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객관화한 체험, 풍요로운 사고, 그리고 중립적 참여 의식을 가지고 전후(戰後) 유럽의 외적, 내적 현상을 기록한다. 그의 일기 초고들은 훗날 그의 희곡이나 소설의 소재가 된다.

   1951년 2월 10일 취리히 극장에서  희곡 『외더란트 백작』이 초연되었고 같은 해 프리쉬는 드라마 부분 록펠러 장학금으로 첫 번째 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다수의 민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고, 아울러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 취리히로 귀향한 프리쉬는 뉴욕 체류 중에 집필한 희곡 『돈주앙 또는 기하학에 대한 사랑』을 1953년 5월 5일 취리히 극장 무대에 올린다. 프리쉬는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극작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그를 세상에 소개한 것이 드라마라면, 그의 필명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설이다. 특히 그의 3부작이랄 수 있는 『슈틸러』(1954), 『호모 파버』(1957), 그리고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 하자』(1964)가 그것이다. 그는 1955년에 건축 사무실을 폐업하고 창작 작업에만 몰두한다. 1958년 3월 9일 취리히 극장에서 희곡 『비더만과 방화범들』이 초연된다.

   1960년부터 1965년까지 프리쉬는 로마에서 체류하며, 1958년부터 시작된 여류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과의 동거 생활은 1962년까지 지속된다. 1962년에는 훗날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되는 마리안네 욀러스를 알게 된다.

 1961년 11월 2일 취리히 극장에서 희곡 『안도라』가 초연되었고 1964년에 발표된 소설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 하자』는 프리쉬가 그때까지 쓴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묘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서 문학적 전통을 거부한 독특한 서술기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1968년 12월 프리쉬는 마리안네 욀러스와 베르쪼나에서 두 번째 결혼하며, 이 결혼 생활은 1979년 끝난다. 그 이후 미국 출신의 젊은 여성 앨리스 록-커레이가 프리쉬의 여생의 반려자가 된다. 그녀와의 만남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롱아일랜드 북단의 조그만 해변가 몬타우크에서 보냈던 주말의 추억이 1975년 발표된 소설 『몬타우크섬의 연인들』의 내용이다.  1978년에 출판된 희곡 『세 폭짜리 성화상』은 희곡 『傳記』 이후 10년이라는 긴 침묵 후에 발표된 막스 프리쉬의 마지막 희곡 작품이다.

   1979년에 발표된 소설 『인간이 충적기에 등장하다』는 평론가들로부터 작가의 만년의 체험들이 육화된 전형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어서 1982년에 소설 『블라우바르트』, 1989년에 에세이집 『군대가 없는 스위스』가 발간된다. 프리쉬는 1991년 4월 4일 취리히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자아의 발견, 선입견의 극복, 소외로부터의 탈출 등 많은 문제를 제시하였다. 허구적 화자가 등장하는 그의 1인칭 소설들은 인간의 죄나 자아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농축된 문장들, 명료하고, 날카로운 표현들, 그리고 균형 잡힌 문체를 통해 풍부한 지적 환상과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한 작가이다.

   프리쉬는 취리히시가 제정한 콘라드 페르디난드 마이어상(1938)을 비롯하여, 에밀벨티 재단의 드라마상(1944), 게오르그 뷔히너 문학상, 취리히시의 문학상(1958), 예루살렘시의 문학상,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실러 기념상(1965), 스위스 실러 재단의 실러 대상(1974), 독일 출판협회의 평화상(1976), 미국 신도시 문학상(1986)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마르브르크 대학교(1962)와 뉴욕시립대학교(1982)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작가연보 

    1911: 5월 5일 취리히에서 출생.

    1924: 취리히 주립 레알김나지움 입학.

    1930: 고교 졸업.

    1931: 취리히 대학교에서 독문학 전공. 신문에 처음으로 기고문이 실림.

    1932: 부친 사망. 학업 중단. 자유 신문기고가.

    1933: 첫 해외여행: 프라하, 부다페스트, 벨그라드, 이스탄불, 아테네, 로마.

    1934: 소설 『위르크 라인하르트』 발간.

    1936-40: 취리히 공대에서 건축학 전공.

    1937: 단편 소설집 『정적에서 나온 답』 발간.

    1938: 취리히시의 콘라드 페르디난드 마이어상 수상.

    1939: 포병으로 군복무.

    1940: 전쟁 일기 형식의 『배낭 일기』 발간.

    1941: 건축사 디프롬 취득. 취직.

    1942: 취리히의 레치그라벤 수영장 건설 현상 공모에 당선(1949년 개장).

             개인 건축 사무실 개업. 콘스탄체 폰 마이어부르크와 결혼(1959년 이혼).

    1943: 소설 『나를 불태우는 것을 난 사랑한다, 또는 어려운 사람들』 발간.

    1944: 에밀벨티 재단의 드라마 상 수상.

    1945: 자전적 소설 『빈 또는 북경 여행』 발간. 희곡 『이제 그들은 또다시 노래 부른다』초연.

    1946: 폐허가 된 독일 첫 방문. 희곡 『싼타 크르츠』, 『만리장성』 초연.

    1946-49: 바르샤바, 파리, 마르셰유, 이태리, 스페인 여행.

    1947: 『마리온 일기』 발간.

    1948: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첫 만남.

    1949: 희곡 『전쟁이 끝났을 때』 초연.

    1950: 『일기 1946-1949』 발간. 스위스 실러 재단의 명예훈장 수상.

    1951: 희곡 『외더란트 백작』 초연.

    1951-52: 록펠러 재단의 드라마 부분 후원 장학금으로 첫 미합중국 여행. 멕시코 방문.

    1953: 취리히로 귀향. 희곡 『돈 주앙 또는 기하학에 대한 사랑』 초연.

    1954: 소설 『슈틸러』 발간.

    1955: 건축 사무실 폐업. 브라운슈바이크시의 빌헬름 라아베 문학상 수상. 스위스 실러 재단의 실러 문학상 수상.

             헤쎈 방송국의 실로이쓰너 슐러 문학상 수상.

    1956: 베른시의 드라마 부분 벨티-상 수상.

    1957: 소설 『호머 파버』 발간. 찰스 베이런 문학상 수상.

    1958: 희곡 『비더만과 방화범들』, 『필립 호츠의 위대한 분노』 초연. 게오르그 뷔히너  문학상 수상.

             취리히시의 문학상 수상.

    1961: 희곡 『안도라』 초연.

    1961-65: 로마에 거주.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만남. 1965년 이후 스위스 테신에 거주.

    1962: 마르부르크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취득.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예술대상 수상.

    1964: 소설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 하자』 발간. 포드 재단의 연구 장학금 수혜.

    1965: 예루살렘시의 문학상 수상.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실러 기념상 수상.

    1966: 첫 소련연방국 여행. 폴란드 여행.

    1968: 『傳記: 연극』 초연. 마리안네 욀러스와 결혼(1979년 이혼). 두 번째 소련연방국 여행.

             연설문과 에세이집 『파트너로서의 대중』 발간.

    1969: 서간집 『희곡론. 발터 횔러러와의 서신 교환』 발간. 일본에 체류.

    1970: 미국에 체류.

    1971: 소설 『교재용 빌헬름 텔』 발간. 겨울에 뉴욕 체류.

    1972: 『일기 1966-1971』 발간. 겨울에 뉴욕 체류.

    1974: 소설 『근무 수첩』 발간. 스위스 실러 재단의 실러 대상 수상. 겨울에 베를린 체류.

    1975: 소설 『몬타우크』 발간. 헬무트 슈미트 서독 수상이 이끄는 대표단과 함께 중국 여행.

    1976: 『연대기순 작품 전집』 발간. 독일 출판협회의 평화상 수상.

    1978: 희곡 『세 폭짜리 성화상』 발간.

    1979: 소설 『인간이 충적기에 등장하다』 발간.

    1981: 뉴욕 거주.

    1982: 소설 『블라우바르트』 발간. 뉴욕시립대학교의 명예 박사.

    1986: 미국 신도시 문학상 수상. 『연대기순 작품 전집』 발간. 취리히 및 베르쪼나 거주.

    1989: 에세이집 『군대가 없는 스위스』 발간.

    1991: 4월 4일 취리히에서 사망.


2. 작품 줄거리

1933년에서 1935년 사이 취리히 공과 대학 조교 시절 발터 파버는 취리히대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하는 뮌헨 태생의 반(半)유대인 처녀 한나 란츠베르크를 사랑하게 된다. 한나에게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태로운 정치 상황 때문에 파버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한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같은 시기, 매력적인 직장을 제안 받게 되자 파버는 바그다드 지사로 부임하기로 결심한다. 파버의 냉담한 태도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또한 파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한나는 끝내 그와의 결혼을 거절한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약속한다. 1936년, 파버는 한나와 헤어진다. 파버는 낙태 문제에 관한 도움을 받으라며 한나에게 자신의 친구이자 의학도인 요아힘 헨케를 소개한다. 그 후 한나는 요아힘과 결혼하며, 약속과 달리 파버의 딸을 출산한다.

   약 20년 후. 이제는 50대 장년이 된 파버는 유네스코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유능한 기술자로서 개발도상국가 원조 프로그램을 수행하느라 많은 곳을 여행한다. 어느 날 비행기 여행 중 파버는 옆 좌석에 앉게 된 승객이 자신의 옛 친구 요아힘 헨케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와 함께 친구를 만나볼 양으로 친구가 일하는 식물 농장이 있는 과테말라의 원시림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파버는 방금 전 자살한 요아힘의 시체와 상면하게 된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인해 파버는 사업 상담차 방문해야 할 유럽 여행기에 비행기 대신 배편을 택한다. 파리로 가는 유람선 안에서 파버는 스물 한 살의 엘리자베트라는 처녀를 사귀게 된다. 그녀는 예일대학교에서 1년 간 공부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파버는 그녀를 ‘자베트’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자베트와의 대화를 통해 파버는 그간 자신이 찾아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며, 죽었으리라 여겼던 한나가 현재 아테네에 있는 한 고고학 연구소에서 기록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녀가 자베트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자베트가 자신의 친딸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녀는 ‘파이퍼’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파버는 자베트에게 청혼한다.

   파버는 고향집으로 귀향하는 자베트를 따라 이탈리아를 거쳐 그리스로 여행하며, 드디어 마지막 날 그리스의 아크로코린트에서 그녀와 사랑의 밤을 지샌다. 그곳이 들판이었기 때문에 자베트는 독사에게 물린다. 그녀의 비명소리에 파버가 달려가지만 그녀는 뒤로 물러서다 언덕 뒤로 떨어져 머리를 다쳐 실신한다. 자베트를 두 팔에 안고 맨발로 달려간 아테네 병원에서 파버는 자신의 옛 애인이자 자베트의 어머니인 한나를 만난다. 며칠 후 자베트는 숨을 거둔다. 몇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으며 살았던 한나는 딸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친다. 파버는 모든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 세계를 미친 듯 질주하는 자신의 여정을 기록으로 증명하고자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단 몇 주 사이에 파리, 뉴옥,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전전하던 파버는 끝내 회사를 그만둔다. 다시 한 번 그리스로 돌아간 파버는 자신이 위암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수술을 눈앞에 두고 내용이 끊긴다. 파버는 운명하기 직전 - 자신이 아테네 병원에서 받게 될 수술이 불치병인 위암이라는 진단이 나오리란 걸 그는 예감하고 있다 - 자신은 물론이요, 자신의 딸과 그 딸아이의 어머니의 인생을 망쳐놓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호모 파버 ‘Homo Faber’란 어원상 ‘기계 인간’이라는 말로서, 작품의 주인공 발터 파버가 그의 애인 한나에게서 지어 받은 별명이다. 이 별명이 암시하듯이 발터 파버는 기술자로서 기계 문명에 경도된 나머지 자아와의 동일성을 상실한 소외된 현대인의 화신이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의 세계관은 자연과학과 이성(理性)으로 확고하게 굳어 있다. 인간의 삶마저도 그에게는 계산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관계 속에서 모든 사건을 관찰한다. 인간적 행동 양식이나 반사 작용도 그는 오로지 물질적으로 평가하며, 영적인 삶이나 사랑마저도 그에게는 분자 운동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파버와 한나와의 연인 관계가 결정적인 순간에 단절되는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1946년 이래로 파버는 미국 맨해튼에 주거지를 둔 채 유네스코에서 근무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기술 원조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되건만 그런 여행이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세계조차도 그의 눈에는 계산․측정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불시착한 멕시코의 타마울리파스 황야 저 너머로 둥실 떠오른 달마저도 그에게는 한낱 우리 지구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계산해 낼 수 있는 질량이자 중력의 사항으로 치부된다. 미적 안목에 관한 한 그는 야만인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작품들이나 멕시코의 유적지들도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파버는 놀라움이나 공포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며,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일행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자가용에 오른다. 문을 닫고, 자동차 키를 꽂고, 라디오를 켜고, 시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기어를 넣고,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순간이야말로 그가 알고 있는 숱한 행복한 순간들 중의 하나이다. 그에게는 인간이 부담스럽다. 그에게 있어 감정이란 강철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피로 현상에 불과한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파버는 한나와 결별한 후 50세의 나이가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감정이나 애정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일속에 파묻혀 사는 것을 진정한 남자들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그로서는 독신 생활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버가 여자를 전적으로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여자와 접촉을 갖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생리학적 욕구 해결이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는 여자에게서 곧 싫증을 느낀다. 터빈은 계산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은 그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끌지 못하며, 그에게 존재 가치가 없다. 이토록 파버는 감정, 사랑, 종교,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아니면 학문적으로 접근하며 경시한다. 그는 합리주의자이자, 현세주의적인 현대인이다. 그는 운명이나 섭리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과학도이며, 수학의 법칙 속에서만 인생을 설명하며, 인생의 신비함을 거부하는 지성 만능주의자이다. 파버에게는 천사, 악령, 유령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란 저울질할 수 없으며, 운명적인 우연들로 인해서 논리적 법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임에도 이런 사실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계산할 수 없는 것은 모두가 다 무의미하다. 결과적으로 파버에게 있어서 파멸의 첫 번째 단계가 곧 자신의 친딸인 자베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그는 자신이 병들고, 나이 먹고, 죽음에 직면한 시점에 비로소 자베트를 만난다. 자베트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상호 교감의 세계, 감정의 세계, 환희의 세계를. 이제 비로소 그는 간헐적으로 기술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사이의 고전적 평형감각을 체험한다.

그러나 자아와의 동일성을 상실한 채 소외된 삶을 살아온 그로서는 실존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여전히 마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닷새 동안에 걸친 여객선 항해 도중 자베트의 환심을 사고자 파버가 그녀에게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 속에는 기계 문명에 경도된 현대인의 소외의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계에게는 체험의 기능이 없으며, 공포나 희망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될 뿐이다. 결과에 대한 소망도 없다. 기계는 개연성의 논리에 따라 작업할 뿐이다. 그러므로 로보트의 인식력은 인간보다 더 정확하며, 인간보다 미래를 더 잘 진단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로보트는 미래를 계산함에 있어 투기를 한다거나,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해답에 의거 결론을 도출하며 (피드 백), 실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보트에게는 예감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까 ―

Vor allem aber: die Maschine erlebt nichts, sie hat keine Angst und keine Hoffnung, die nur stören, keine Wünsche in bezug auf das Er-gebnis, sie arbeitet nach der reinen Logik der Wahrscheinlichkeit, dar-um behaupte ich: Der Roboter erkennt genauer als der Mensch, er weiß mehr von der Zukunft als wir, denn er errechnet sie, er spe-kuliert nicht und träumt nicht, sondern wird von seinen eigenen Erlebnissen gesteuert (feed back) und kann sich nicht irren; der Ro-boter braucht keine Ahnungen_ (pp.55)

자베트가 그를 보고 웃기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그의 기술 예찬은 계속된다.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자이고, 엔지니어다. 이 말에 이의가 있는 자는 다리조차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자연의 산물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면 그는 비로소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며, 그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낙태 수술도 반대할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맹장염에 걸려 죽어도 된다. 운명이니까! 전등도, 엔진도, 핵-에너지도, 계산기도, 마취도 필요 없다 ― 그러니 정글로 들어가라!

Wir leben technisch, der Mensch als Beherrscher der Natur, der Mensch als Ingenieur, und wer dagegen redet, der soll auch keine Brücke be-nutzen, die nicht die Natur gebaut hat. Dann müßte man schon kon-sequent sein und jeden Eingriff ablehnen, das heißt: sterben an jeder Blinddarmentzündung. Weil Schicksal! Dann auch keine Glühbirne, kei-nen Motor, keine Atom-Energie, keine Rechenmaschine, keine Narkose ― dann los in den Dschungel! (pp.79)

파버의 관점에 의하면 기술자이자 엔지니어인 인간은 자연을 수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건을 자신의 의지 밑에 둘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과학 기술에 경도된 파버의 실용주의적 인생관, 세계관이 그의 임신 중절 예찬론 속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계산적이며 이성적 인간인 파버에게 있어서 그런 인생관이나 사고방식은 지극히 당연하다. 기술은 인간과 자연에 봉사하는 것이지, 그 반대여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파버는 깨닫지 못한다. 모든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자부심이 필연적으로 그를 혼란 속으로 인도한다. 자신의 현실 감각이 눈멀지 않았다는 그의 확신이 그를 어둠과 죽음 속으로 인도하며, 그의 오만이 근친상간을 불러온다.

르 아브르 항구에 도착 후 파버는 자베트와 헤어져 혼자 파리로 향하며, 그곳에서 개최된 회의 참석 후 여가 시간을 얻어 루브르 박물관에 들렀다가 자베트와 재회한다. 파버는 1주일 휴가를 얻어 빌린 차를 몰고 고향집으로 귀향하는 자베트를 따라 아비뇽, 피사, 플로렌스를 거쳐 로마로 간다. 비아 아피아 도로 근처 묘지 언덕 위에서 파버는 자베트가 자신의 옛 애인 한나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파버는 숙명이나 운명과 같이 계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모두 다 자신의 삶에서 제외시키기를 원한다. 자신의 친딸과의 만남은 파버에게 있어 개연성이 전혀 없다. 그의 확률적 계산으로는 그런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는 자베트가 자신의 아이인지, 친구 요아힘의 아이인지 마음속으로 계산한다. 구체적 날짜들을 (아이를 가졌다는 한나의 얘기, 그가 바그다드로 출발한 날짜 등) 추출해 보고서, 그 계산이 맞는 걸 확인하고는 내심 안도한다. 파버는 자베트가 한나의 아이일 뿐, 자신의 아이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이러한 자기기만은 그의 마지막 희망 사항에 머문다.

이제 파버는 자베트와 함께 이태리를 거쳐 그리스로 여행하며, 드디어 마지막 날 그리스의 아크로코린트에서 그녀와 사랑의 밤을 지샌다. 그곳 들판에서 자베트가 독사에게 물리는 사고로 인해 후송된 아테네 병원에서 파버는 한나와 재회한다. 아테네 병원에서 만난 한나로부터 그가 확인하게 된 사실은 - 이미 그 자신도 예감했던, 그러나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던 - 자베트가 그들 둘 사이에서 탄생한 딸이라는 것이다. 1936년, 한나는 그 아이를 낙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자베트가 누워 있는 침상 곁에서 이제 비로소 파버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인간의 죄나 숙명적인 액운을 모면할 수 없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죄를 우연으로 돌리며 자신을 변호하면서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해명하려 든다.

파버는 자신의 위장 장애를 과도한 흡연 때문일 거라며 위안을 받는다. 파버는 뱀에게 물려 죽는 사망률이 3내지 10퍼센트 정도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처럼 지나친 이성적 세계관이 그의 시각을 너무도 단축시킨 나머지 세상의 깊이나 그것의 고유한 특징이 말살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상의 심연은 느껴지지 않는다. 위험은 부정되고, 세상의 불안은 제거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인생이란 통계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일 때는 더욱 그렇다. 자베트에게도, 한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파버에게도 인생은 단 하나뿐인 것이다.

며칠 후 자베트는 숨을 거둔다. 자베트의 사인(死因)은 뱀한테 물린 독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혈청 주사로 성공적으로 치유되었다. 그녀의 사인은 그녀가 조그만 둔덕 너머로 굴러 떨어질 때 생긴 두개반(頭蓋盤) 골절에 의한 뇌진탕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미처 그걸 진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뇌동맥 손상, 또는 뇌혈관 파열로서 외과 수술만 제때에 받았더라도 쉽게 치유될 수 있었다. 고도로 발달된 첨단 의학 기술에도 불구하고 자베트의 또 다른 치명적인 상처가 사전에 진단되지 못하였다는 구성 또한 기술 문명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자베트가 세상을 떠난 후 파버는 모든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일에 몰입하려고 애를 쓴다. 단 몇 주 사이에 파리, 뉴욕,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전전하던 파버는 끝내 회사를 그만둔다. 파버는 다시 한 번 그리스로 돌아가 자신도 죽을병인 위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발터 파버는 자신이 진실하게 살아보지 못했으며, 진실하지 못하였음을 깨닫는다. 그로 하여금 이런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대의 격식에 맞는 비극이 필요하다. 그는 가면을 벗는다. 그의 보고는 이제 한낱 종이 꾸러미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그것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그것은 옳지 않으니까. 자신의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이 착각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파버의 끔찍한 비극이다. 인생은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니까. 우상으로서의 자연을 부정하던 파버는 신으로서의 자연을 몸서리칠 정도로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감상 및 평가

   이 작품은  귄터그라스의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의 폴커 쉴뢴도르프가 1990년에 샘 셰퍼드, 줄리 델피 주연의 <사랑과 슬픔의 여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 당시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는데 관객은 나를 포함해 6명이 전부였던 게 기억난다. 원작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린 해외 로케이션과 주인공 호모파버를 연기한 샘 셰퍼드의 인상이 소설 속의 인물과 너무 흡사해서 역시 명감독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비디오를 구입하여 요즘도 이따금씩 감상하곤 한다. 이 소설은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매우 복잡한 몽타주 기법으로 쓰여졌는데 제1부는 1957년 6월 21~7월 8일까지 카라카스에서 써 내려간 보고형식으로 실제 사건은 1957년 4월 1일 라 과르디아 공항 출발 시점으로부터 1957년 6월 4일 자베트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1933년부터 1936년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사들이(한나와 요하임 이야기) 간간히 커트백이라는 회상의 기법을 통해 기술되었다.  제2부는 1957년 7월 19일~7월 25일까지 아테네 병원에서 써 내려간 일기와 자베트 사망 후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보고 형식으로 자네트 죽음 후 세계 각지를 방황하며 전전하는 장면과 1부의 내용이 겹쳐진다. 아테네에서 한나의 마중을 받으며 위암 환자로 병원에 입원, 수술 받기 직전까지의 일들이 기술됨. 다시 단계별로 작품을 구성해보면  1단계는 파버의 취리히 공대 시절부터 자베트의 사망까지 2단계는 1957년 6월 8일~7월 18일까지 뉴욕, 카라카스, 쿠바, 뒤셀도르프, 취리히, 로마 등지를 거쳐 아테네로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 3단계는 1957년 7월 19일~25일까지 아테네 병원 입원 중에 써 내려간 기록이다. 1단계가 제1부(첫 번째 정거장), 그리고 2단계+3단계가 작품의 제2부(두 번째 정거장)를 이루고 있다.

   호모파버는 주인공 발터 파버가 여행이라는 방랑상태에서 주위의 상황과 인간을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기록이다. 프리쉬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에서 고정된 상황은 허위이며 신념 고정관념 운명 따위는 진실의 적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모든 것은 살아있고 떠돌고 있는 상태에서 포착되어야 하며 인간 인식의 타성에서 완결된 초상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즐겨 쓰는 형식을 완결되니 않는 세계상을 표현하기 위한 일기체의 스케치로 이러한 형식으로 씌여진 작품은 그의 지성이 현대 휴머니즘의 극점에 달한 것을 시사해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인 "호모파버"는 이 제목 안에서 벌써 한 유형의 관계를 지배하는 특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호모파버는 원래 라틴어인데 "대장장이로서의 인간" 즉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기술적인 인간” 또는 "공작인' 이라는 뜻이다. 이것과 대립되는 단어는 호모사피엔스 즉 예지의 인간이다. 예지의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특히 이성을 통해서 사고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호모파버는 이론적 사색적인 인간이 아니라, 실용적이며 기술적이 것에 종사하는 인간이다. 프리쉬는 이 호모파버를 통해서 20세기의 기술문명에 의해 탄생된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호모파버 자신의 세계관계 자체와 프리쉬가 자주 언급하는 템포라는 말속에 초개인적인 현대문명의 문체가 깃들어 있다. 인류의 문명은 우리의 한계, 우리의 템포 우리의 척도를 벗어나 무한히 달리고 있다. 이리하여 현대비극 즉 인간 상실이 시작된다.

                     

    에궁~, 울 선생님의 스무 살 시절의 모습…^^ 

               

                                    울 선생님 현재 모습~, 몇  년전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엄서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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