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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玄宗 小考/ 가이아의 세계와 생명의 황홀

수로보니게 여인 2008. 4. 18. 02:39


  

         鄭玄宗 小考                                                                                       

            가이아의 세계와 생명의 황홀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시간의 무한성과 유한한 인간

           Ⅲ. 가이아 명상

           Ⅳ. 나오는 말

           ※시인연보       참고문헌 

                                                      

Ⅰ. 들어가는 말

                                                      김린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1978) 전문


 필자가 고교시절 제일 먼저 접한 정현종의 짤막한 시이다. 그 당시 문학을 하는 친구들과 이 시에서 말하는 섬이 과연 무엇일까 열띤 논쟁을 벌였던 것이 기억난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정도로 이해했다. 그리고 같은 제목의 시를 썼던 것 같다. 그 후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생의/ 기미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로 시작되는 「고통의 축제」, ‘하늘의 별처럼 많은 별/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모래’ -시인을 위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그대는 별인가」,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인「交感」같은 시에 매료되기도 했다. 등단작인 「和音」,「獨舞」같은 작품은 뭔가 멋있으면서도 난해하게 생각되어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시집들을 읽으면서 그의 유니크한 어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도 느끼는 바이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이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감내하는 고통이 여간이 아닐진대 정현종의 시를 읽다보면 어쩌면 이렇게 ‘술술’시를 써 내려갈 수 있나 감탄 내지는 거의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드는 것이다. 시력이 40년 가까이 되는 오늘까지 생명을 잃지 않고, 아니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 빛나는 상상력과 탄력과 깊이는 그가 어째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가 등단한 1960년대의 한국시단은 미당 서정주에서 박재삼에 이르는 토착적 세계와 달관, 혹은 체념의 여성적 정서에 집착하는 부류와 깔끔한 외면적 정경으로 묘사된 내면세계를 탐구해 가는 김춘수, 그리고 현대적인 기틀을 갖고 거친 어조로 현실비판에 매진하여 많은 시인들로 하여금 콤플렉스를 느끼게 한 김수영 등이 큰 갈래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현종은 위의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열어 보이면서 김현, 김치수, 조동일, 김병익 같은 젊은 평론가, 김승옥, 이청준 등의 소설가, 그리고 황동규, 고은 같은 시인들의 주목과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제작비를 모아 정현종의 첫 시집 『사물의 꿈』(1972)을 출판해주기도 하였다.

 필자는 약 한 달 동안 철학적인 사유와 생동감 넘치는 발랄한 시어,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현대시사의 한 정점에 오른 정현종의 시집 8권과 시론집, 산문집을 읽으며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한 상념에 잠기며 11월을 맞았다. 그리고 불현듯 류시화의 시 「십일월, 다섯줄의 시」( 차가운 별/차갑고 멀어지는 별들/점점이 박힌 짐승의 눈들/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는 옛날의 애인/아, 나는 십일월에 생을 마치고 싶었다) 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시인이 새로운 달, 혹은 계절에 관한 - 많은 사람이 얼른 연상할 수 있는 - 뛰어난 작품을 하나쯤 갖고 있는 것도 복이라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지면 관계상 정현종의 시를 시기별로 나누지 않고 ‘시간’이라는 주제와 ‘생명’(혹은 생태, 환경)이라는 주제를 갖고 그의 시를 분류하고 나름대로의 느낌을 정리하고자 한다.


Ⅱ. 시간의 무한성과 유한한 인간

 세월은 이 도무지 늙지 않을 것 같은 시인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일까.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수많은 시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매번 새로운 작품마다 팽팽한 탄력과 신선함을 유지하며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상상력을 자랑하던 시인도 이제 耳順을 넘은 후 잔혹한 냉혈동물인 시간의 꼬리를 밟고야 말았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견딜 수 없네」(2001) 전문


시인에게 제1회 미당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모두 20행의 비교적 짧은 시에서 ‘견딜 수 없네’가 무려 7행이 반복된다. 동어반복은 그의 초기시부터의 한 특징이기도해서 그의 작품을 엇비슷하게 보이게 만드는 기법이다. 반복의 기법을 잘못 쓰면 음악성보다는 장난기 내지는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나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지루함보다는 어떤 음악성과 서늘한 감동을 느낀다. 이에 대해 평론가 김주연은 “뜨거움을 토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서늘한 것은, 짧게 결론지어 말한다면, 시적 자아가 강렬한 주관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기 스스로에 탐욕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을 대범하게 놓아버린다는 말이다”1)라고 해석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그나마 요즘엔 ‘느림의 철학’을 강조한 책들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오죽하면 패스트푸드에 반대하여 슬로우푸드 운동이 일어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위의 시와 대조적인 시가 있다.


                       등에 지고 다니던 제 집을

                          벗어버린 달팽이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엎드려 그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서였습니다.

                                                  -「어떤 성서」(1999) 전문


 「어떤 성서」에서 시인은 달팽이에 대한 묘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달팽이가 오늘의 성서라고 말한다.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로 시적인 함의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어리석을 정도로 상식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없고 그것에 감동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시인은 어떤 면에서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오늘의 성서였습니다"라는 또 다른 구절이 붙음으로 인해 이 텍스트는 시로 변하게 된다. 방심하고 있던 독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와 달팽이 사이에 너무 큰 간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시인이 무작정 아무 것에나 감탄사를 남발하는 자연예찬자라는 생각으로는 스스로를 합리화 할 수 없게 된다. 왜 그것이 오늘의 성서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결코 시인에 대해 웃을 수 없는 입장임을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느림보 달팽이를 성서라고 한 시인의 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결과 독자들은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느린,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달팽이가 현대의 속도감과 대립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느린 태도가 바로 인위적 문명과 대립되는 성스러운 자연의 모습임을 직감하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달팽이는 태초의 세계를 매개시켜주는 성서가 된다. 평론가 이광호도 지적했듯이 정현종 시에서의 ‘시간성’의 문제는 단순히 속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처음’이라는 부사를 즐겨 사용해왔는데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라는 구절에서의 처음 역시 일차적으로는 발견 순간의 현재성, 현장성을 부각시키는 부사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상황을 조건으로 한 일상적, 세속적 시간을 넘어서는 시간이며, 근원적인 의미에서 ‘처음’의 시간이다.2) 

이 같은 ‘천천히’는 또 있다.

 

                              (전략)

                        나, 시간은 원래 자연입니다

                          내 생리를 너무 왜곡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천천히 꽃 피고 천천히

                          나무 자라고 오래오래 보석됩니다.

                          나를 <소비>하지만 마시고

                          내 느린 솜씨에 찬탄도 좀 보내 주세요. 

                                                     -「시간의 게으름」(2003)부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시인의 집요한 관심은 그의 초기시부터 거의 모든 시집에 관통한다.

 필자는 동부이촌동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실 창문 밖으로 푸른 한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매일 대하는 주거환경도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밖에도 시간의 무한성을 다룬 시로는 「청춘은 아름다워라」,「행복」, 「밑도 끝도 없이 시간은」, 「마음은 떡잎」, 「말없이 걸어가듯이」, 「시간은 두려움에 싸여있다」, 「때와 공간의 숨결이여」등이 있다.

  그의 가장 최근 시집인 『견딜 수 없네』(시와 시학사, 2003)에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안타까움과 우회적인 비판이 들어 있는 시들이 적잖이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이 나라 산천 가는 데마다/식당이요 카페요 레스토랑뿐’이라며 국토의 심각한 오염을 개탄하는「아귀들」, ‘돈과 군력과 기계들이 맞물려/미친 듯이 가속을 해온’ 물질문명을 비판한 시「시간의 게으름」, ‘국가든 정부든 정당이든 무슨 기관이든 개인이든/ 그 탐욕과 맹목은/사회 전체를 거지같은 난경에 처하게 한다’(「난경」), ‘권력은/(무슨 권력이든)/있을 때/행사하는 걸/삼가야 하는 것’(「권력」),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경청」, 나치의 만행을 그린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감상하고 나서 쓴「예술의 힘1」, 지배 행위에 대해 비판한「나쁜 운명」, ‘ 이 여러 가지 이름의 광신의 역사/ 이 밑빠진 탐욕의 싸움의 역사’를 자조적으로 쓴「수심가」, 명분없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촌철살인의 시「간단한 부탁」등이 그렇다. 시인의 현실인식이 깊이가 더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짤막한 시에서 우리는 한줄기 즐거운 희망의 빛을 본다.  

 

                         아침 햇빛이여

                          아직 밝지 않은 날들이 수없이 많고나

                          싱싱한 태초―새날이여.

                          내 속에 들어 있는 아이들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는 아이들을

                          여지없이 떠오르게 하는구나 오늘 아침

                          벙글거리며

                          젖 냄새를 풍기며.

                                                   ―「아침 햇빛 2」(1999) 전문


Ⅲ. 가이아 명상

 가이아 이론은 1978년 영국의 과학자 J.러브록이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저서를 통해 주장함으로써 소개된 이론이다. 가이아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지구를 뜻한다.

러브록에 의하면,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로서,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즉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로 바라보면서 지구가 생물에 의해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현재 이 이론은 지구상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환경파괴문제 및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인류의 생존과 직면한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인은 「가이아 명상」 -시․인간․生命圈이라 이름 붙인 산문(『날아라 버스야』,백년글사랑,2003) 에서 “참된 시인이라면 타고나기를 다른 생물들과 인간 사이에 아무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고 말한다.

  정현종의 작품 중에서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 1989)와 1990년 이후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1992)와 여섯 번째 시집『세상의 나무들』(문학과 지성사,1995), 일곱 번째 시집『갈증이며 샘물인』(1999)에 실려 있는 환경, 생태, 생명사상시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엮어나갈까 한다.

   생태시란 환경오염의 실상을 고발하고 문명과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생태계 우선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시이다.

느슨한 범주 개념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생태시의 현황으로 볼 때 매우 일반적인 범주 개념일 것이며, 연구대상으로서 여러 시를 포함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다. 이런 범주 개념에 포섭되는 시들이 드러내는 지배적인 세계관은 인간중심의

개발보다는 생태계 우선의 세계관, 모든 생물들이 생명의 연대, 생명의 그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이다.

생태시에서 생명의 연대, 생명의 그물이라는 인식은 華嚴思想으로 구현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정현종의 시에서, 생명과 우주, 華嚴은 꽃의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긴밀히 조응한다. 생명과 우주를 통해 인간의 始原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정현종이 초기시부터 지켜온 우주와 천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생명체 각각을 하나의 소우주로 인식하는 생명의식이 우주와 만날 때, 꽃 한 송이가 온 우주를 채울 듯 피어난다는 華嚴의 세계로 수렴된다. 생명의식과 우주와 꽃은 시인이 느끼는 가장 커다란 위기인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져 황폐해지는 고독의 별 지구를 재건하는 일과도 관계있다. 그 일은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이며, 시를 통해 세상에 주장하는 세계관이다. 인간과 지구의 모든 생물은 우주의 질서를 따라 우주를 호흡하고 시인은 시의 진실을 따라 시를 숨 쉰다고 정현종은 시로써 말한다.


                숲에 가서 나무 가시에 긁혔다. 돌아와서 그걸 들여다본다.

                순간. 선연하게 신선하다. (숲 냄새, 초록 공기의 폭발, 깊은

                나무들, 싱글거리는 흙, 메아리와도 같은 하늘……) 우리가

                살다가, 어떻든, 무슨 생채기는 날 일이다. 팔이든 다리이든

                가슴이든 생채기가 난데로 열리는 서늘한 팽창 ……지평선의

                숨결, 둥글게 피어나는 땅, 초록 세계관, 생바람결……


                생채기는 말한다

                네 속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관습이여

                네 속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잔인의 굴레여

                피가 흐르고 있다 모든 다람쥐 쳇바퀴여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우리의 생채기이니

                그건 실로 우주적 풀무가 아니겠느냐

                                                           -「생채기」(1984)전문


   숲에서 난 생채기는 상처이기보다 자신의 육체가 열리는 문과 같다. 이 생채기를 통해서 시인은 숲과 나무와 공기와 흙과 바람과 교통할 수 있다. 생채기 내는 일이 육체를 통해 모든 생물을 보고 만나게 한다면, 시인에게는 시 쓰기, 시가 모든 사물을 보게 하고 만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것은 우주에 바람을 불어넣어 우주를 숨쉬게 하는 풀무질이라고 시인은 단언한다.

바람을 불어넣어 불 지피고 불이 살아있게 하는 풀무질은 우주를 숨쉬는 것과 같다. 풍구로 풀무질하듯 부풀렸다 내쉬고 부풀렸다 내쉬고 하는 것이 숨쉬는 호흡과 같고 그 입구는 우주를 향해 열려있으므로 시인은 시를 통해 우주와 숨쉬고 육체를 통해 우주와 교감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된다. 육체의 생채기로, 또 시의 언어로 숨쉬자는 것은 곧 육체와 정신 모두로 우주와 하나가 되는 합일성 혹은 전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된다.

   정현종은, 생명에 대한 외경과 외부세계 他者에 대한 감정적 일체감과 함께 생태계의 위기를 직감하는 시인으로서의 예지와 자연 친화의 순수함을 보여준다.


                          어릴 때 참 많이도 본

                          나팔꽃

                          아침을 열고

                          이슬을 낳은 꽃

                          아침하늘의 메아리

                          이슬 맺힌 꽃

                          이슬에 비췬 꽃 만다라

                          無限反映의 꽃 만다라

                          피, 붉은 이슬

                          의 메아리, 그

                          메아리 속에 생명 만다라

                          눈동자

                          에 맺히는 이슬

                          그 이슬 속의 삶 만다라

                                                   -「생명 만다라」(1989)전문


아침과 이슬을 시행 첫머리에 배치하여 원(圓)의 시각적 효과까지 얻고 있는 이 시에는 무수한 원이 존재한다. 불가의 둥근 수행 그림 만다라3), 꽃, 이슬, 하늘, 눈동자, 눈동자 속의 이슬 등 시각적인 원과 만다라, 만다라 울리는 청각적인 원까지 그야말로 온통 만다라의 둥근 세상이다. 거기에 꽃, 이슬, 하늘, 눈동자가 서로 비추고 비취어서 無限反映하며 꽃 피어나는 세계는 華嚴의 세계이다. 나팔꽃이 아침을 열고 이슬을 낳고 그 이슬 꽃에 달리고 눈동자에 비추이고 하는, 그 눈동자에 맺히는 이슬, 그 안에 들어있는 삶, 이 계속되는 생명의 연쇄는 화엄의 표상이었던 무한 반영과 무한확대로 일어난다. 시인은 모든 생물에 대한 자연 친화에서 우주적 전체로의 친화에 이르고 있으며 화엄세계를 보여주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고발주의, 계몽주의 시로서의 생태시를 넘어선 세계관 제시의 시를 보여주고 있다.                         

   생명의 황홀, 다시 말해 가이아의 세계를 주제로 한 시는 무수히 많다. 「초록기쁨」,「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잎 하나로」, 「생명 만다라」, 「풀을 들여다보는 일이여」, 「신바람」, 「숲에서」, 「나무의 사계」, 「태양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시골 국민학교」, 「이 열쇠로」, 「흙냄새」, 「생명의 아지랑이」, 「밤 시골버스」, 「자」, 「새로 낳은 달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나무껍질을 기리는 노래」,「바보 만복이」, 「좋은 풍경」,「석탄이 되겠습니다」, 「깊은 흙」「꽃 深淵」, 「물방울-말」, 「이 바람결」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1989) 전문

                  

Ⅳ. 나오는 말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가장 적절하지 못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이미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시는 우리에게 오며,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시 속에서 살고 또 시는 우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공기나 햇빛 또는 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지만 나무는 그것들 속에서 그것들에 의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詩의 자기동일성」, 『생명의 황홀』p.157)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시인이 매우 즐겨 읽고 스스로 번역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금방 떠오를 것이다. 요즘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 (‘느낌표’)에서 선전한 바 있는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가 바로 네루다의 「詩」라는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은 젊은 시절 번역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는데 이때 경도됐던 서양시인들이 파블로 네루다, 로르카, 옥타비오 빠스 등이다. 감수성의 서구편향성 내지 현학적 취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정현종 시인은 존재와 무에 대한 탐구, 자유사상이나, 평등, 평화의 사상 등 언급할 부분이 무궁무진한 편이나 다음 기회에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에로티시즘적인 것( 「꽃피는 애인들을 위한 노래」,「交感」이나 「헐벗은 나무의 에로티시즘」, 「담에 뚫린 구멍을 보면」,「외설」,「한 꽃송이」,「꽃 深淵」,「좋은 풍경」등 이 주제만으로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다!)이나 괄호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즐겨 사용한다든지 끝을 ‘~(이)여!’로 끝내는 등 특징적 혹은 개성적인 것이 많다. 이 역시 아쉽지만 다른 글을 통해 고찰할 것이다.

   “모든 창조행위가 그렇겠습니다만, 시를 쓰는 일은 어렵고 괴로운 일입니다 (…) 시는 모순과 갈등이 부딪쳐서 화해하는 현장이며 이것과 저것, 있는 것과 있어야하는 것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부딪치면 아프고 화해하면 기쁩니다. 시인의 고통은 <이상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詩의 자기동일성」, 『생명의 황홀』p.164)

앞에서 필자는 정현종의 시가 쉽게 ‘술술’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시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저래 시 한 줄 쓰기 힘든 보통 사람들은 그 <이상한 기쁨>이라도 자주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슬픔 多謝!(정현종 風으로) 


※시인연보

1939년(1세) 너그러우면서도 고지식한 아버지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품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출생.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자 마자 영세를 받게 됨. 3살 때 그의 삶과 문학의 고향과 같은 곳인 경기도 고양군 화전(花田)으로 이사, 자연의 온갖 살아 있는 것들과 접촉하며 오감으로 그것들의 생명력의 충일함을 느낄 수 있었던 체험을 함. 이 시기의 온갖 체험이 작가의 후기 자연친화적 작품이 나오게 되는 바탕이 됨.

1946년(7세) 덕은초등 입학. 6․25동란 중(초등학교 5학년) 어느 달 밝은 여름밤, 형과 국군장병들과 함께 뼈와 해골을 들고 축제를 벌이는 기이한 체험을 함. 죽음의 공포를 춤과 더불어, 혹은 자연 속의 사물에 대한 친화력으로 극복해내고 있는 이 체험은 그의 첫 번째 시집이 나아가는 방향이나 발레를 통하여 육체에 대해 부정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삶의 노정과 너무도 흡사한 상징적 사건이 됨.

1953년(14세) 기독교재단인 대광중학 입학. 다시 서울로 이사. 다양한 독서체험. 종교적인 갈등(육체가 지닌 감각과 욕망 그리고 그것을 부정해야 하는 종교적 계율 사이에서)을 춤(발레)과 고전음악으로 극복.      

1959년(20세) 연세대학교 철학과 입학. 실존주의 철학에 심취. 2학년 때 4․19를 맞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를 즐겨 읽음. 틈틈이 교지에 시와 수필 등의 작품을 발표. 그것이 박두진교수의 눈에 띄어 64년 5월에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게 됨.

1965년(26세) 졸업 후 신태양사에 입사. 역시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독무」,「화음(和音)」, 「여름과 겨울의 노래」 등이 추천되어 등단. 김현과의 교유

1970년(31세)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입사 1년 후 사직. 번역활동. 3년 뒤 서울신문 재입사 후 유신 반대 서명 건으로 취조를 당한 후 사직

1972년(33세) 김병익, 김주연, 김현, 이청준, 황동규 등의 문우와 선배 고은이 제작비를 모아 첫 시집『사물의 꿈』출간.

1978년(39세) 두 번째 시집인 『나는 별아저씨』출간. 대상을 단순 직재하게 말하려고 하는 시어의 변화가 보임(최하림) . 이 시집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79년(40세) 크리슈나므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번역 출간. 한국에 명상과 초월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틀 마련.

1984년(45세) 세 번째 시집『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출간.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마음의 고통을 자연의 생명현상이 보여주는 “초록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 과정이 드러나 있음.

1987년(48세) 네 번째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출간. ‘진리는 단순하다’라는 인도 여행 후의 깨달음을 통해서 단순하고 명증한 시적 언술과 자연의 생명력과 그에 대한 황홀감을 내용으로 하는 시를 발표

1990년(51세) 「사랑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외 6편으로 제3회 연암문학상 수상

1992년(53세) 다섯 번째 시집 『한 꽃송이』출간. 환경,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집약해놓은 전범으로 평가. 이 시집으로 제4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5년(56세) 여섯 번째 시집 『세상의 나무들』출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6년(57세) 시집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9년(60세) 일곱 번째 시집 『갈증이며 샘물인』출간.

2000년(61세)  시「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수상.

2003년(64세) 여덟 번째 시집 『견딜 수 없네』출간.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


※참고문헌

시   집 : 정현종,『고통의 축제』,민음사, 1974.

          ───,『나는 별아저씨』,문학과지성사,197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 지성사, 1984.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 1989.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 1992.

          ───,『세상의 나무들』,문학과 지성사, 1995.

          ───,『갈증이며 샘물인』,문학과지성사, 1999.

          ───,『견딜 수 없네』,시와 시학사, 2003.

          2001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앙일보사, 2001.

 시론집  : 정현종,『숨과 꿈』,문학과 지성사,1982.

          ───,『생명의 황홀』,세계사,1989.

작가연구 : 『작가세계』 1990년 가을호, 세계사,1990.

  번역서 : 『프로스트 시선』, 민음사, 1973

         『예이츠 시선』, 민음사, 1974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정우, 1979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민음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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