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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늙은 고래를 위한 협주곡/ 김 린 주

수로보니게 여인 2008. 4. 25. 23:53

 

      바다와 늙은 고래를 위한 협주곡          

                                     

      김 린 주

                                                                     

      제 1 악장  끌로드 드뷔시 傳

       

                 만년의 그는 고국을 등지고 아름다운 한국의 남도 부산에서 고래

                    잡이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주로 자갈치 시장에 앉아

                    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낡은 작살을 손질하며 지냈는데 그가 기다리

                    던 수염 난 늙은 고래는 좀처럼 나타나 주지 않았다. 나는 시장에

                    들를 때마다 불치의 병을 앓으며 시장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를

                    보고는 까닭 모를 슬픔에 잠기곤 했다. 해서 나는 없는 돈을 모아

                    그에게 언젠가는 크고 튼튼한 새 작살을 선물하리라 마음먹었다. 비

                    가 억수로 퍼부어 대던 날 밤, 나는 그를 시장 모퉁이 선술집에 데

                    려가 자리를 같이 했는데 카바이드 불빛을 바라보며 잠자코 있던 그

                    가 느닷없이 혼자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바다는 바다는

                    눈물 많은 바다는

                    누구를 부둥켜안으려

                    어깨동무하며 달려오는가.


                    그날 밤 이후, 나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어디선가

                    에 죽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때면 가슴 끝이 저며와 견딜 수 없었

                    다. 마침내 나는 심한 열병을 앓으며 자리에 눕고 말았다.              


      제 2 악장  장마전선  

       

                    포구에 바람이 불고 
                    언제나 정물로 정박해 있던 배들이 떠난다. 
                    뱃고동 소리, 누군가 떠나는 소리. 
                    그것은 너무 난해한 음악이다. 
                    드뷔시보다도 인상파보다도 어려운 얘기다.

                    바람이 파도를 때리고

                    파도는 그러한 난해한 음악들을, 난해한 언어들을

                    단숨에 수장시켜 버린다.

                    새벽, 해변을 걷다보면

                    간밤에 내가 버린 음계들과

                    구겨져 버린 오선지 따위들이

                    여전히 불완전 화음인 채 발길에 걸린다.

                    겨우 두 옥타브 정도밖에 수용 못하는 바다와

                    항시 낮은음자리표로 걸려 있는

                    우리들의 슬픈 초상만큼이나

                    나의 음역은 폭 넓지 못하다.

                    거대한 먹구름이 바다를 뒤덮을 때,

                    수 없이 사라진 音과 絃의 넋을 위하여

                    비애와 설움으로 드리는 진혼제.

                    그러나 권태는 끝이 났다.

                    보라, 파도가 치고 해일이 몰려오지 않는가.

                    닻을 올려라.

                    고대하던 우리들의 항해가 시작됐도다.

                    가자,

                    고래가, 수염난 늙은 고래가 우릴 기다리는

                    저 미지의 섬으로.


                

      제 3 악장  고래를 위하여

       

                    우리가 그 밤늦게 장생포 앞바다에 도착했을 때, 갑판 위에서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 나는 한 걸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한데 그는 아는 체도 않고 뱃머리의 포수석에 가 앉았다.

      그리고는 나의 시선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그대, 가난한 이여.

                    더 이상 그런 淫蕩한 눈으로 바다를 보지 마오.


       

                    바로 그때, 고래를 발견했다는 경보가 요란스레 울려 퍼지고 선원들은

                    서둘러 제 자리에 들어섰다.

      달빛도 없이 맑은 바다, 태풍의 전조.

      잔한 해면에 물결이 일고, 물살을 가로지르며 서서히 나타난 웅장한 참고래.

      그의 등엔 그러나 수 세기 전부터 인간이 쏘았던 무수한 작살들이 부러진 채 꽂혀 있었다.

      포수들이 일제히 정조준 하는 순간, 바다는 미친듯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낯익은 작살이 쥐어지고 눈 깜짝할 새에 그가 고래의 등 위로 뛰어내리자,

      휘몰아치는 태풍 속으로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달아나라, 고래여, 늙은 고래여.

                    검붉은 피를 쏟으며 힘차게 달아나라.

                    그리하여 다시 수 세기 후, 인간의 자손들에게 바다와 너의 역사를 들려주라.

                    너희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었노라고.

                    새벽에 내가 만난 고래는 난파선의 커다란 파편처럼

                    검은 바위 뒤에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잠자코 그의 수염을 쓰다듬어 주며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과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침해가 뜨기 전에 수염난 늙은 고래는

                    병약한 그를 등에 태우고

                    수평선 너머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역사 위의 역사 쪽으로 말없이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