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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고수되기 9/ 살아 있는 묘사

수로보니게 여인 2007. 12. 1. 22:43

 

글쓰기 고수되기9/ 살아 있는 묘사


  묘사란 대상에 대하여 생김새나 색, 촉감, 소리, 냄새, 나아가 글쓴이의 감정 등에 대하여 글을 읽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듯이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대상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관찰한 내용을 기술하는 것은 상세한 설명이지 묘사가 아니다. 묘사란 글쓴이의 감정이 이입된 상태로 기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묘사를 잘 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글쓴이의 주된 느낌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묘사된 내용이 사진을 찍듯이 사실과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 묘사는 설명과 달리 인상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묘사의 목적은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의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물에 대한 글쓴이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에 있다. 묘사는 사물을 글쓴이의 주관과 개성이 든 상태로 기술하는 행위이다.


예시 1

남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죽점퍼 안에 회색 폴라티를 받쳐 입고 점퍼 바깥으로 폴라티와 같은 색상의 순모 머풀러를 둘렀다. 이발을 한 것일까. 머리기 유독 짧아 두 귀기 오롯이 눈에 띈다. 단정한 입매와 창백한 피부로 인해 남자는 언뜻 차가운 인상이다. 짙은 눈썹과 각이 없는 탓인지도. 그녀는 남자의 쌍꺼풀이 없이 가느스름한 오른쪽 눈 밑에 깨알만하게 돋아있는 점을 잠깐 주시했다. 눈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가만히 돋아있는 점 때문에 남자의 차가운 인상이 지워진다.

                                                                                                  -신경숙, <부석사>


윗글에서는 ‘차가움’이라는 주된 인상을 중심으로 남자의 생김새를 묘사해 나가고 있다. 구석구석의 세밀한 생김새를 차가움이라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주된 인상을 중심으로 하여 묘사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활용하면 글쓴이가 느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둘째, 직유나 은유 등 비유를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언어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느낌이나 감상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래서 주관적인 감상을 언어로 표현하자면 창조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비유법’이다. 예를 들어, 성계의 모양을 “가시들이 둥근 몸에 방사형으로 붙어있다.”라고 객관적 설명하는 것보다는  “사방을 향해 솟은 검은 바늘들이 찌를 듯 사람의 몸을 움츠리게 한다.” 라는 표현이 글쓴이의 성게에 대한 느낌을 한층 잘 전달한다. 이렇듯 은유나 직유는 객관적이고 틀에 박힌 언어를 주관적이고 생생한 표현의 도구로 만드는 창조의 행위이다. 다음을 보자.


예시 2

이지러졌으나 보름 가제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히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건너야 한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한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여서 피기 시작한 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윗글에서는 ‘달’이 ‘빛’을 “흔붓히 흘린다.”거나 ‘(메밀)꽃“이 “숨이 막힌다.” 고 무정물(정물)이 마치 감정을 느끼거나 행위를 하는 듯한 표현과, ‘길’이“산허리에 걸려있다.” 거나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라고 하고,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들을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 라고 하여, 직유와 은유를 섞어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의 덕분에 작가 이효석의 소설은 ‘시적(詩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의 주된 기술 방법은 서정이고 소설은 서사이다. 서사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 기술이고 서정은 주관적 감정을 중심으로 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석의 소설은 서정적인 묘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효과는 무엇보다 주관적 인상을 중심으로 하여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기술함으로써 얻은 것이다.


 

셋째, 생동감 있는 감각적 표현을 구사한다.

감각적 표현은 시각이나 촉각, 미각, 후각, 등 신체의 지각하는 느낌을 동원하여 기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시 3

나는 잠이 깬 채로 미동도 없이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이상하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엎드린 채로 눈꺼풀을 서서히 열었다. 망막에 맺힌 풍경이 한순간 의식의 틀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미처 초점이 맞추어지기 전에 파인더에 들어온 이미지처럼 처음엔 흐렸다가 차차 선명해졌다. 그리고 원근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먼 곳의 풍경부터 선명하게 들어왔다. 멀리서부터 서쪽 하늘에 노을이 번지는 게 보였고 마지막 햇살을 받은 도열한 사과나무들의 빛나는 우듬지가 차례로 보였고, 가지마다 푸른 풋사과들이 비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권지예, <누군가 베어 먹은 사과 한 알>,[폭소]


윗글에서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묘사가 돋보인다.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주인공의 감각적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동화되어 마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동화된다.

이렇듯 세밀하고 감각적인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글쓴이 혹은 글의 주인공과 동화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한 만큼 그 글은 독자에게 호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오충연 l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