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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패밀리의 호캉스 스토리

수로보니게 여인 2022. 8. 6. 18:03

코로나 19에 이어 원숭이 두창이 만들어낸(?) 신조어 '호캉스',  

혹자는 '호텔에서 돈 낭비하면서 보내는 휴가'라고 규정짓는 휴가를  

우리 윤 패밀리, 그 중에서도 여성 패밀리들만 누린 2박 3일의 호캉스 스토리를 남겨보려 한다.  

 

왜냐하면 호캉스는 처음 갖는 특별한 의미의 휴가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돈 낭비가 된 휴가였을까?)

광화문과 시청 사이에 위치한 '뉴서울 호텔'

이곳이 우리 윤 패밀리의 여성들이 2박 3일 머물며 보낸 호텔이다.  

자고로 서울특별시, 그 중에서도 사대문 안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한 호텔에서 숙박하며 휴가를 보내다니,

간 큰 여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혹 있다면 이글을 다 읽고 댓글로 지적하기 바란다^^

프랑스 베이커리의 명가라 불리는 '곤트란 쉐리에'

호텔 로비에 위치해 있으며 숙박료에 조식으로 포함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 맛을 보지 못했다.  

내가 금식이라는 이름으로 아침 굶식을 하는 이유에서다.  

수련회를 앞두고 30일 아침 금식을 작정한 값 지불을 비록 휴가를 보내는 중에라도 하고자 하는 중심에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지금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로 인해 두 여인도 한 끼 금식을 덩달아 하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남겨두기로 한다.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윤 氏 家의 신 氏 여성
독립해 있는 이유로 하여 생일(23일)에 가족 만남을 갖지 못했다며 제 엄마가 호출해 함께하게 되었다.
예쁜 조카와의 조우

숙소에 짐을 풀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내려와 코로나가 막아 놓았던 조카와의 만남을 갖게 되어 기쁨이 배가된 시간이다.

유명하다는 베이커리는 특별한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자몽과 청포도 주스로 대신했다.

검색으로 찾은 OOO(이름 모름)
해물 스파케티에 스테이크, 피자까지
벽이 예쁘다며 울 동생 굳이 거기다 세워놓고
내가 짧은 건가 그녀가 긴 것인가?
퇴근길이 겹치면 가는 길 복잡할까 하여 조카는 보내고 말로만 듣던 청계천변을 찾았다.
서울 시민에 돌려준다던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을 담가보니 낮부터 몸을 파고들었던 도심 속의 무더위가 싹 날아가 버렸으니
가히 빌딩숲 사이의 휴양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
도시적 돌다리라 해야 할까?
박제 아님

박제가 아님을 증명하는 영상

어릴 적 개울가에 피어있던 버들 풀(?)이 정겨워 한 컷

그렇게 만난 하니(애칭)와의 시간을 잠간의 만남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청계천 복구 이후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도 한 번도 들러본 적 없던 천변을 호캉스를 기념으로 그 자취를 남기고 돌아왔다.

평화시장

1박을 하고 2일 째 언니와 동생은 남대문 시장을 간다고 나갔다.

간단한 쇼핑에 남대문 시장표 국수로 조식을 하고 돌아온 두 여인과 함께 다시 평화시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나갔다.

나름 30여년 가까이 동대문 시장을 넘나들며 한 두번 들러본 휘발된 향수가 그립기도 했고,

하 오랜 시간에 밀려 혹 세월의 강 저쪽으로 건너가 버리지는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한 이유에서다.

앙증맞은 아기 용품

시대의 변천과 함께 자리 잡은 ‘밀레오레’ ‘두타’ 등의 기세에도 평화시장의 건재함을 보는 마음이 묵직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느라 애달프기도 했을 이들의 시간들이 無上하게 다가왔다.

그저 한 낮 향수인지 상념의 조각인지 모를 손놀림으로 보는이들의 눈치를 밀어내며 몇 컷 남겨봤다.

온도가 40도는 족히 될 것 같았던 가판점이 텐트였던가?

자영업이나 소상공인들의 경제위기를 코로나19가 가져온 불황에 겹쳐 더할 수 없이 어려워진 시간을 잘 견뎌온 것처럼,

앞으로 또 다른 위기가 저들을 아니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나오며

핫도그를 올드한 이들 아니랄까봐 케첩을 묻혀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울언니 지친 몸 달래느라
숨고르기의 막간을 보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한국기독교의 뿌리 깊은 나무 '새문안 교회'
주님의 품

곡선은 주님의 품이자 엄마의 품을 상징하며 한국교회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열린 공간이다.

새문안 교회의 태동

새문안교회가 조직된 것은 1887년 9월 27일(화요일)밤, 정동에 있던 한 한옥에 14명의 한국인과 언더우드목사, 로스목사가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날 밤 참석자 중 3인의 한국인에게 세례가 베풀어졌으며 2명의 장로가 선출되었다. 새문안교회는 이렇게 해서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주일예배는 언더우드목사 사저의 사랑채에서 정기적으로 있었다.(새문안 교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기독교 서점으로는 독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의 변천과 무게도 누르지 못할 기독역사와 함께 '생명의 말씀사'도 주님오실 때까지 悠久하기를 바라며, 오빠 선물로 이어령 교수님의 책 두 권을 구매해 택배로 부탁하고 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장소와 역사,

살던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저장하고 있어 아이들 교육의 시작점이며 서울시민은 물론 세계인이 함께 그 기억을 나눈다는

도시역사박물관, 그 보배로운 곳을 그냥 지나치며 들러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저 마당가에 널어두고 덕수궁을 향했다.

울 동생 취향이 다른 두 언니 성향 맞추느라 고생이 많다. 에구

능소화의 슬픈 사연을 아시나요?

한 여름의 주변은 온통 초록바다이다.

그 가운데 오롯한 능소화의 주홍 빛, 시멘트 담보다는 돌담이 더 어울리는 능소화

개신교 교단 중의 한 종파
1858년 감리교 목사 윌리엄부스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단다.

그래서인지 연말이면 어김없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하여 기독교교단이라기보다

사회복지단체의 이미지가 더 어필되며(내 생각),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근현대사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 생명의 숭고함이여

싹 : 바람이 날 여기로 데려왔는데 여기서 살아도 돼?

바위 : 안 돼. 이곳은 너무 위험하고 척박해.


싹 : 어쩌지 벌써 뿌리를 내렸는걸. (따하에서 발췌)

이색적 돌담

1999년 서울시에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의 이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한 쪽은 사각, 반대편은 타원형의 양 돌담길이 이색적이다.

덕수궁 후문
그보다 조선왕조의 비극이 쓸쓸하다는 걸음으로 한 발만

조선역사의 비운이 스며있는 덕수궁의 중명전을 지나
도심 속에 공중전화부스가 새삼하여 한 컷(그런데 방역부스란다)
정동극장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다 언니가 힘들듯하여 되돌아 내려왔다.
'차 없는 거리'라는 글귀를 봤는데 과연
둘러봐도 없네

느린 내 걸음을 앞서 걷던 언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서 기다리고, 차 말고 울 동생은 어데로 갔나?

회? 고기? 저녁 메뉴를 생각하다 다락이라는 이름이 주는 정감에 끌려 올라갔다.
값은 착했고 맛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값 만큼이었다.

덕수궁의 정문이었다는 대한문(가만 있자, 덕수궁 후문을 지나서 온 거리가... 헐)

그보다 내게는 몇 해 전 퀴어축제 반대 집회모임을 뙤약볕 밑에서 감행했던 기억이 더 선명한 현판

긴 역사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피어나는 수국은 탐스럽기만 하다.
근심 걱정은 수박씨 뱉어내듯 툭, 툭,

퀴어축제의 메인 전광판 무대가 설치되었던, 무수한 인파가 몰려다니던 광장이 기억때문인지 문구와는 달리 처연하다.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 광화문을 '광화문 빛모락(樂)'으로 탈바꿈하여 8월 6일에 개장한다는 이미지 광고와 문구이다.

개장하면 다시 가봐야지 생각하며 그 앞(세종대왕 동상)에까지 갔다가 아쉬움을 안고 돌아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8월 6일을 걸쳐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교보문구
'사람과 책'의 相關關係
둘 중 한쪽이 변화하면 다른 한쪽도 변화하는 관계, '문구가 참 좋다'라던 생각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채널 A방송사 사옥

숙소에서 나오면 바로 있는 채널 A와 동아일보가 한 매체임을 처음 알았다.

‘오픈 스튜디오’라는 문구가 반가웠고 편성표를 따져보며 3일 째 아침 혹시나 해서 나왔다 헛걸음한 기억이 지금도 아쉽다.

대선을 전후해 政勢를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짬을 내가며 열심히 시청하던 영상을 요즘은 잘 안 보게 된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食傷해졌기 때문이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언론을 기대한다.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

한산: 용의 출현 상영중

Hansan: Rising Dragon, 2021
개봉2022.07.27 장르 액션/드라마 국가 한국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 평점8.5 누적관객4,760,139명 박스오피스1위

◀ 박해일의 카리스마

이틀 째 29일 저녁에는 막 개봉(27일)하여 따끈따끈한 ‘한산(용의 출현)’을 관람했다.

1592년 여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펼쳐진 지상최고의 해전, 조선의 운명이 한산 앞바다에 숨 가쁘게 빠져 들어가려던 절체절명 순간, 전쟁에 지침 없던, 그러나 오직 백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만 가득했던 이순신의 이면(고뇌와 번민)을 430년 전 그 전장 속에 함께 있는 듯, 호흡이 멎기도 몰아쉬기도 하고 때로는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관람했다.

 
이 사연이 비하인드라 하는 이유는
 
평화시장으로부터 종로를 거쳐 덕수궁을 돌아 시청 광장을 가로질러 숙소에 들어왔을 때는 영화관람 시간이 촉박했다.

마지막 2박 째인데, 이 밤이 지나면 오직 나라를 위해 생을 바친 ‘이순신’의 행적을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해본다는 건 쉽지 않을 일이기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니는 쉬어야겠다고 하고 누워버린다. 8시 20분 상영은 20분간의 여유밖에 없고, 마지막 상영을 관람하자니 쉬다보면 못 갈 것 같아 내친김에 서둘러 나섰다. 걸음이 정말 느린 나의 발목이 급한 마음 속도를 따라주지 못해 몇 번씩 이쪽으로 저쪽으로 꺾여가면서(덕분에 후일 발목이 며칠 아팠음) 영화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아뿔싸 울 동생 마스크를 안 쓰고 나왔더라는...

마스크를 구입할 곳도 시간도 없는 우리는 되돌아올 수는 더욱 없어 그냥 입장하기로 했으나 날마다 전해오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에 민폐를 간과할 수는 더욱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울 동생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 팸플릿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입을 막고 관람했다는 웃지 못할, 아니 목 터지게 웃어도 좋을 모습으로 영화를 관람했다는 추억을 남겨준 시간이었다.

 

상상해보라!

전장속의 주인공이 가득한, 그 치열했던 영화의 팸플릿의 색감이 어떤지를, 그것으로 입 아니 얼굴의 반을 가리고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을(나도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은 볼 새가 없었지만), 두 시간도 더 지났을 때 그 입 가리개는 그녀의 얼굴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코와 입 주위에 그대로 압축되어버린 팸플릿은 마치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볼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때,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와도 좋을 모습으로 서울 시내 한 복판을 가로질러 숙소까지 와야만 했던 그날의 기억은, 삶의 행간마다에서 우리 패밀리의 특유한 기질과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줄 것이기에 우리가족의 또 다른 재산 목록으로 저장한다.  

세계에서 유일했던 그리고 유일할 마스크

그런 경황중이어서 나는 팝콘과 음료를 주문하려다 말고,

‘영화를 못보고 돌아와야 하나?’

하며 아쉬워하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팝콘을 보면서 그렇게 한가롭게 불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아쉽지만 비하인드의 추억으로만 적바림해둔다.

 

끝으로 서두에 거론한 ‘호캉스는 돈 낭비’라는 혹자의 말에 딴지를 걸어보겠다.

 

호캉스의 계획은 지난 7월 12일 언니와 함께 신정동 동생의 집을 방문(몇 년 만의 만남)했을 때 나눈 마음이 동기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가족의 잦은 만남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굳이 코로나 시즌을 이유로 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 듦으로 인한 건강이, 만남 특히 여행의 여유를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나누게 된 것에 연유한다.

하여 시쳇말로 ’소확행(小確幸)‘을 지체하지 말고 누리자는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서울에서의 호캉스로 기획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확인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이 마음을 나누는데 드는 비용을 굳이 값으로 계산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우리만의 철학을.

해서 할 수 있는 대로, 또 금전적 여유가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이 행복을 나누자는 마음을.

이런 이유라면 호캉스의 비용을 낭비라고 하는 이들을 반박할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낭비가 되지 않은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건,

서울의 역사공간을 자박자박 밟으며 우리 가족의 역사로 남을 일정을 채웠기 때문이다.

공감이 되는 이는 휴가의 계절이 아직 남아있을 때 도전하여 가족이 주는 에너지 가득 채울 수 있기를

윤 패밀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