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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수로보니게 여인 2014. 3. 11. 19:0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 

 

그 어느 누구도 저 혼자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

폭풍이 불어와 해변을 쓸어 가면, 씻긴 만큼

곶[岬]은 줄어들고 결국 대륙도 줄어듦이라.

그대 친구와 그대 자신의 농토가 줄어드는 것.

누구든지 죽으면 내가 상처를 입는 것이니

나 또한 인류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광규를 위하여’

 

‘맞아요’

‘운동은 어머니를 위한 것도,

또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광규 씨 자신을 위하여 하는 거에요’

 

‘하나아’

‘누구를 위하여’

‘광규를 위하여’

‘두우울’

‘누구를 위하여’

‘광규를 위하여’

어눌하여 알아듣기 어렵지만

이 질문은 안할 듯 다시 이어진다.

 

이는 신경 전달이 되지 않아 굳어진 한 쪽 팔을

다른 쪽 팔로 들어 올리는 운동을 시작한 55세 소년 광규씨와 주고 받는 질문이고 대답이다.

 

아니,

그가 지루해하며 귀찮아하는 걸 응원하기 위하여 지어낸

‘헤밍웨이의 명작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인용해

누구를 위하여 운동을 해야 하나요? 란 질문에서 시작된 언어의 유희이다.

즐겁게, 장난스레 운동을 하면 천근같은 무게로 다가오던 팔의 무게가 좀 덜어질까하는,

나름 그를 배려하기 위한 나의 마음 조각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읊조린다.

‘이렇게 하면 동시에 두 가지 운동을 할 수 있잖아요’

‘광규 씨는 팔을

나는 다리를’

 

그런 마음 위에 혹 그가 유치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몇 번 하다가 중간에 추임새처럼 다시 끌어들여

‘누구를 위하여?’

그러면 그가

‘광규를 위하여’라며 받아친다.

 

긴장과 장단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나름의 지략이다.

 

 

나의 마음의 어떠함을 아는지

억지이긴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따라주는 마음이 고맙고 또 고맙다.

 

한 번에 스무 번을 넘기기 어려웠는데

마흔

예순 번 까지 하는 걸 놓칠 리 없는 나는

‘것 보세요,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한 번에 좋아질 수는 없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라며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채근을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그의 팔 들어올리기의 상관관계

 

헤밍웨이가 의도한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외침이라 생각했는데……

 

“종은 누구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 아닌,

불의에 항거하고 신념을 향해서 돌진하는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입니다.”라는

영화 평을 남긴 어떤 이의 말처럼

팔운동은 누구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닌

‘그대 광규 씨를 위해서

힘들지만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전해주고 싶은 밤이 깊어간다.

 

‘그 건 또한 어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라고 읊조렸던 말의 의미가

그의 생각 안에서 파랗게 자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2014. 03. 11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명대사

“코는 어디에 둬야 하죠?”를 패러디해 본다.

 

 

마음은 어디에 둬야 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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