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샘' 유전자
입력 : 2013.11.09 07:57
서른을 갓 넘겼을 때만 해도 주말마다 축구공을 찼다. 30대 문인들이 만든 '소나기' 축구단에서 뛰었다. 책상 앞에 앉아 궁싯거리던 시인·소설가·평론가들이 "골을 소나기처럼 넣자"고 외치며 창단한 팀이다. 흰색 윗도리에 검은색 하의로 유니폼도 맞췄다. '소나기'와 거의 매주 맞붙은 축구단은 30대 영화평론가들이 만든 '가고파'였다. 연습을 마치고 음료수를 사러 가던 수퍼마켓 간판에서 팀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소나기' 선수들은 "동료를 차범근으로 여기지 말자"고 다짐했다. 섣불리 공을 동료 앞쪽으로 길게 차 달리기를 시켜서 진을 빼지 말자는 얘기였다. 경기 초반엔 나름 짧은 패스를 주고받았다. 후반전엔 혀를 빼물고 차는 '똥볼'이 난무했다. '소나기' 선수들은 시나브로 마흔줄에 접어들었다. 축구단은 21세기를 코앞에 두곤 어영부영 해체돼 젊음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얼마 전 미국 의학자들이 '청춘의 샘(Fountain of youth)'을 유전자 조작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동물 성장에 관련된 유전자 Lin28a를 활성화하는 실험을 쥐에 적용했다. Lin28a가 활발해진 쥐는 보통 쥐보다 털이 빨리 자랐고 상처도 금세 아물었다. 연구진은 "Lin28a가 어른에게 어린아이 때 재생 능력을 되돌려주는 복합 회복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톡스 시술은 20년 전만 해도 몇몇 연예인이나 하는 줄 알았다. 앞으론 '청춘의 샘' 유전자 조작이 예삿일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젊은 몸을 오래 유지하는 세상이 되면 진짜 어른의 기준은 성숙한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요즘 여든 가까워 신간을 내는 문인이 여럿 있다. 기억력이 생생히 살아 있고 언어 감각이 낡지 않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회춘 유전자'를 기다리기보다 당장 깊어 가는 가을에 책을 읽자. 거기서 흘러나오는 '청춘의 샘물'에 뇌를 적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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