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막말'만은 말아야 하는데…
입력 : 2013.10.16 03:10
언론인 시절 모진 '말 화살' 쏘다가 '말 붕대'로 싸매는 목회자 되어보니
말로 상처받지 않은 사람 드물어
SNS와 TV에 넘쳐나는 거친 언사들, 막말은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기도
칭찬과 격려의 말 찾는 법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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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민 목사·前 언론인
목회의 길을 가면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도 말하는 버릇이다. 쉽게 얘기하고 던지듯 말하는 것이 익숙한 탓에 자칫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뜨는 사람들도 말 화살로 정조준해서 쏘아 떨어뜨려야 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도 말 붕대로 싸매서 회복하도록 도와야 하는 삶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견한 것은 어느 누구건 말로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와 배우자, 친구와 직장 동료들로부터 받은 말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덧나고 악화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중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에 놀란다. 정작 말한 사람은 말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들은 사람은 일생 그 후유증에 시달린다.
어디서나 가장 아픈 상처는 막말이다. 어려서 들은 욕설과 모욕은 거의 회복 불능이다. 말이 새긴 상처는 문신이나 수술 자국보다 깊다. 성형수술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일생을 통해 곪아간다. 그토록 심각한 일인데도 거친 언사와 욕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에서까지 사석에서조차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오간다. 재판정과 설교단에서도 그런 표현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렵다. 누가 가장 먼저 배우고 누가 가장 많이 닮을까. 다음 세대다. 누구보다 어린 세대다.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정보와 표현들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는 세대들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SNS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메시지에도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왜 이렇게 말하나. 왜 이토록 심하게 말하나. 왜 꼭 막말인가.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미국의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설교학 시간에 받은 지침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3분, 8분, 13분, 시간을 늘려가면서 메시지를 학생들 앞에서 전해야 하는 훈련을 받았다. 첫 테스트가 끝나면 같은 반 학생이 모두 돌아가면서 서로서로 격려의 말을 나눈다. 원칙은 3대 1이다. 무슨 얘기를 들었건 세 가지 칭찬으로 시작해야 한다. 칭찬과 격려 끝에 단 한 가지 조언을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이런 이런 점을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 같다는 겸손한 충고다. 원고 없이 말해야 하는 외국인으로서는 몹시 부담스럽고 또 잦은 실수를 피할 길이 없어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20여명 학생이 예외 없이 퍼붓는 칭찬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칭찬의 이유도 너무나 갖가지여서 때로는 스스로 돌아보면서 실소할 때가 많았다.
이 훈련의 유익은 생각보다 크다. 먼저 사람을 대할 때 좋은 점부터 찾는 버릇이다. 어떤 점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독특한 점인가,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자란다. 칭찬과 격려의 말을 찾는 것도 값진 훈련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거짓이나 아첨이 아니다. 말 속에 담긴 인격 전체를 단시간에 이해하고 진심 어린 평가를 표현하는 것이 힘들어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니 언론인으로서 살았던 25년 동안 가차없이 비판하고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의 진심을 파악하고 이면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취재 요령이자 언론인의 능력이라고 믿었다. 입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평소의 말은 언제나 냉소적이었다. 그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고 거칠고 메마른 말이 내 안에 가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내 안에도 같은 상처가 났고 함께 피를 흘렸다. 알고 보니 막말은 그 사람보다 나를 해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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