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국어 바루기

과제 내랬더니 ‘쓰느라 ㅎㄷㄷ 햇다’ 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2013. 3. 25. 13:11

30대女, 페이스북에 'ㅎㄷㄷ' 올렸다가

유석재‧허윤희 기자

입력 : 2013.03.25 03:03

[컬처 줌인] 인터넷서 시작된 '문자 단순화'초등부터 대학 답안지까지
①'ㅆ' 'ㄸ'이 사라진다 - 시간 없고 귀찮아 'ㅅ' 'ㄷ'
②모음이 탈락한다 - 죄송→ㅈㅅ, 감사→ㄱㅅ
③복모음이 사라진다 - 안돼→안대, 뭐가→머가

"저녁 때 퇴근하고 한잔 햇지" "안대" "머가?" "갠춘한데"…. 회사원 송미진(37)씨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햇지'는 '했지', '안대'는 '안돼', '머가'는 '뭐가','갠춘한데'는 '괜찮은데'라고 써야 맞는 것은 알지만 습관이 되어버렸다. 송씨는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팀장에게 제출할 보고서에까지 그렇게 쓰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기자

송씨에게 이런 버릇이 생긴 건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글을 빨리 쓰려다 보니 쌍자음을 위해 시프트(shift) 키를 누르거나 복모음을 위해 모음 자판을 두 번 치는 것이 귀찮아진 것이다. 휴대폰 사용자도 'ㅆ'을 써야 할 경우, 'ㅅ'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휴대폰 자판이 천지인일 경우, 쌍시옷을 쓰려면 ㅅ→ㅎ→ㅆ 식으로 써야 하기 때문. 모음을 아예 생략하고 자음으로만 된 단어를 쓰기도 한다. '오케이' 대신 'ㅇㅋ'으로 쓰는 식이다. 자음(쌍자음 포함)과 모음으로 글자를 이룬다는 훈민정음 창제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대로 퍼지는 '문자 단순화'

카카오톡을 자주 쓰는 주부 김정화(33)씨도 '그래' 대신 'ㄱㄹ'만 쓴다. 빨리 답변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자가 계속 오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다. 김씨는 "처음엔 아이들이나 쓰는 문자 같았지만, 자꾸 쓰다 보니 편한 데다 왠지 젊어지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문자 단순화' 현상은 과거 '외계어'처럼 청소년층에서만 나타나던 현상을 넘어서 전 세대로 확산하고 있다. 일정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아지면서, 문자가 '서로 뜻만 통하면 되는' 수준으로 생략이 이뤄지는 것이다. 회사원 김정수(42)씨는 "주로 성인들이 찾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ㅎㄷㄷ(후덜덜·무섭거나 힘들어서 떠는 모습)' 'ㄷㅊ(닥쳐)'가 이상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공적 언어' 영역까지 침투

이런 '시중의 언어'는 이제 공적 언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전국 초·중·고 학생들이 종이 위에 쓴 글에서 어절(語節) 11만7955개를 수집·분석하는 '청소년 언어 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를 했다. 최다 빈도 은어(隱語)에는 자음을 생략한 단어가 상위 10위 안에 8개나 들어 있다. 'ㅃ2(빠이·헤어질 때 인사)'가 1위, 'ㅅㄱ(수고하세요)'이 3위, 'ㅅㅂ(×발)'이 4위였으며, 'ㅂㅇ(바이·헤어질 때 인사·5위)' 'ㅆㅂ(×발·6위)' 'ㅂㅅ(병신·7위)' 'ㅈㅅ(죄송·8위)' 'ㄴㄴ(No No·안돼·10위)' 순이었다. 통신언어가 아닌 글말언어에서조차 문자 단순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기말고사 답안지나 보고서에도 모음을 생략하거나 이모티콘(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문자)이 들어간 언어를 쓰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샘(선생님), 이거 쓰느라 ㅎㄷㄷ(후덜덜)했어여 ㅈㅅ(죄송), ㅅㄱ(수고)'라는 식이다. 이 교수는 "그 보고서에 'ㄷㅊ(닥쳐)'라고 써서 돌려줬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곧 학위논문에까지 나타나리라 보는 사람도 있다.

"소통을 가로막게 될 수도"

'은어'는 대개 세대 간 소통을 가로막지만, 최근 현상은 '계층 간 소통'을 막는다는 분석도 있다. 조규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문자 단순화 현상은 기존처럼 세대 간 구분이 아니라 'SNS 세력권'과 '비세력권' 사이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나이에 따라 이런 언어의 이해도가 갈리는 게 아니라, 트위터 같은 SNS 사용 여부가 이해도의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고(思考)와 소통에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차명호 평택대 피어선심리상담원장은 "많은 의미를 문자에 축약하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도 정상적인 사고 패턴이 아니라 축약된 형태로 전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것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겨 관계가 단절되기 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