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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의 즐거움

수로보니게 여인 2012. 8. 2. 10:37

- 백 아흔 번째 이야기
2012년 8월 2일 (목)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거움
글을 읽는 것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으니
조예의 천심이 모두 스스로 깨닫기에 달려 있다.

讀書如游山, 深淺皆自得.
독서여유산 심천개자득

- 이색 (李穡 : 13281396)
<독서(讀書)>
《목은시고(牧隱詩藁)》권7


목은 이색이 <독서>라는 제목으로 쓴 시의 첫 구절이다.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이 낮은 단계에서 점차 고원한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나, 그 책의 깊은 내용을 터득하는 것이 독서하는 자의 역량 여하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이, 산을 유람하는 행위를 연상시킨 모양이다. 이 말은 본래 남송 시대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산과 물에서 노니는 것이 도의 단서[道幾]를 촉발시키고 심지를 열어준다는 말과 함께, 산수를 살펴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으니 식견과 취미의 고하에 달려 있다.[觀山水亦如讀書,隨其見趣之高下.]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한 말로 보인다.

고인들은 추상적 행위인 독서와 구체적 활동인 유산(遊山)을 상호 비교하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곤 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도 이 시의 구절을 차용해서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 시의 내용은 퍽 교훈적으로 되어 있는데, 공력을 천근한데서부터 들여야 하며 깊은 경지에 나아가는 것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으니 절정(絶頂)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내용이다. 퇴계의 이 시는 주세붕(周世鵬)의 <유산(遊山)>이라는 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듯한데, 후대 퇴계학파의 문인들이 퇴계의 이 말을 널리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명학파에 속하는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 중에 박여량(朴汝樑 : 15541611)이라는 분도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이전에 자기가 유람한 곳인데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성찰하면서 이 말을 인용한 걸 보면 당시 선비들 사이에 독서와 유산을 결부하여 이해한 것은 썩 보편적인 일로 보인다. 물론 후대로 내려갈수록 유산에서 인격 수양의 의미는 퇴색되고 놀이 문화로 변모해 간 듯하다.

《논어》 <위정(爲政)>에 보면 “옛날 익혔던 것을 복습하여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터득하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라는 말이 있다. 요즘 보통 온고지신이라고 하면 연암 박지원이 말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이해하여,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자는 문맥에 주로 활용되고 있는데, 논어에서 말한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전에도 물론 ‘옛날 배운 것은 그것대로 잊지 않고 또 새로운 지식을 알아간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려 한 분들도 있었지만, 대개 문집에 쓰인 사례를 보면, 공부를 계속해서 깊은 자득의 경지로 나아간다고 할 때 이 말을 주로 쓴다. 논어 서설에서 정이천(程伊川)이 ‘나는 1718세부터 논어를 읽어 그 때도 문의(文義)를 알고는 있었지만, 오래 읽어 나갈수록 의미가 심장함을 느낀다.’라고 하였는데, 이런 것이 바로 온고지신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움직이며 춤을 추고 껑충껑충 뛰거나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사람이 판연하게 달라지는 그런 것이 온고지신을 잘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의 사고와 감정은 아무래도 체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어릴 때 제아무리 총명해도 읽은 책을 외울 수는 있겠지만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 많다. 사람들 중에는 독서는 학창 시절에나 하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세상에 대해 자신도 알만큼은 안다고 자만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고인들의 말에 비추어 보면 퍽 안타까운 일이다. 위에 제시한 목은의 시에 주석이 될 만한 내용으로 청나라의 문필가 장조(張潮)가 쓴 글을 소개해 본다. 귀에 쏙 들어올 만큼 신선하다.

소년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인생 경험의 얕고 깊음에 따라 느끼는 것도 얕고 깊게 되는 것이다.
[少年讀書, 如隙中窺月, 中年讀書, 如庭中望月, 老年讀書, 如臺上玩月, 皆以閱歷之淺深, 爲所得之淺深耳.]

여기서 열력(閱歷)이라 한 것은 직접적 경험뿐만 아니라 독서나 견문 등 그 사람의 총체적 인생 경험을 말한다. 소년 시절에는 경험의 폭이 작아 문자에 얽매이고 또 사물의 일면만을 보다가, 중년이 되어 경험이 쌓이면 사물의 실체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는 안목이 생긴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고 사고가 축적된 노년에 이르면 사물의 이면이나 본질, 영향 관계 등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고도 그 깨달은 깊이가 참으로 측량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꼭 나이를 두고 한 말이겠는가 역시 산을 올라 보고 느끼는 감상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독서를 통해 얻는 깨달음도 결국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글쓴이 : 김종태(金鍾泰) / hanaboneyo@hanmail.net
한국고전번역원 문집번역실 선임연구원
주요 약력
- 고종ㆍ인조ㆍ영조 시대 승정원일기의 번역, 교열, 평가, 자문 등 역서
- 《승정원일기》고종대, 인조대 다수
- 《청성잡기(공저)》,《허백당집(근간)》등 현 국민일보 <고전의 샘>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