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인편에 전해 듣고 모두들 크게 놀라고 슬퍼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이 흐르려 했으니, 슬픈 심정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달려가 곡하려 해도, 가는 길이 너무도 멀기에 이렇게 제문을 보내어 멀리서 조문을 드리며 평생의 감회를 말하고자 합니다. 아! 우리 공께서는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다섯 살에 이름이 크게 알려졌으니, 삼각산(三角山) 운운한 절구 한 수를 짓자 노사(老師) 숙유(宿儒)들이 탄복하였고 온 세상이 놀라 떠들썩하였으며, 이에 사람들은 “중니(仲尼)가 다시 태어났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은 벼슬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머리를 깎고 불문(佛門)에 몸을 의탁하여, 공맹(孔孟)의 밝은 도에 통하는 한편 천축(天竺)의 현묘한 학설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무(空無)의 가르침에서 물아(物我)를 모두 잊고 일월(日月)과 같은 성인과 성정(性情)이 같은 경지에 올랐습니다. 이에 문하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과(因果)와 화복(禍福)의 설을 물었으나, 공은 이윽고 그 설이 허탄함을 싫어하고 술에 의탁하여 화광동진(和光同塵)하였습니다. 이에 모르는 사람들은 미쳤다고들 했지만, 그 내면에 온축된 참된 세계에 탄복하였으니, 많은 벼슬아치들이 공과 어깨를 나란히 벗하여 격식을 따지지 않고 흉허물 없이 지냈으나 공은 오연히 세상 사람들을 굽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동방의 인물은 공의 안중에 드는 이가 없었으니, 마치 구름이 걷힌 하늘처럼 아무도 인정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 명산대천들이 공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기암괴석과 빼어난 하천(河川)들이 공의 품평에 의해 그 이름이 더욱 알려지곤 했습니다. 만년에는 추강(秋江)과 서로 뜻이 맞아 지극한 이치를 유감없이 담론하였으며, 그리하여 함께 월호(月湖)에서 소요하였는데 헤어지고 만남이 언제나 약속한 듯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추강이 공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공은 그만 둘도 없는 지기(知己)를 잃고 말았습니다. 슬프다! 오늘 공이 시해(尸解)1)하심은 어찌 황천(黃泉)으로 추강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구천(九天)에서 두 분이 어울려 맘껏 시를 창수(唱酬)하고 너울너울 춤도 추면서, 필시 이 티끌세상을 굽어보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평소 저자 거리에서 공과 함께 술을 마시던 술꾼들이 다들 곡하며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아! 다시는 공과 만나지 못하다니, 길이 유명(幽明)을 달리하시고 말았습니다. 생각하면, 공의 말씀은 그저 심상하여 전혀 색은행괴(索隱行怪)2)를 하지 않았으니, 비록 내면의 온축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들 평소의 깊은 수양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공은 비록 세상에 숨어 살았어도 그 마음은 실로 오묘했나니, 공을 알기로는 우리만한 이가 없을 것입니다. 아아! 공이 이렇게 멀리 떠나신 것은 어쩌면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을 미워해서가 아닐는지요. 그러나 죽음이 오히려 삶보다 나으니, 만세(萬世)의 오랜 세월도 찰나에 불과합니다. 공이야 세상을 떠나고 세상에 머무는 데 조금인들 연연하겠습니까. 마치 남과 밤과 낮이 바뀌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인식하여 조용히 받아들이실 뿐입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공의 본모습을 뉘라서 보리요. 몽롱한 육안(肉眼)을 비웃을 뿐입니다. 환술(幻術)을 부려 기행(奇行)을 일삼는 것은 진실로 우리 공이 미워하던 바입니다. 공이 떠남이야 사사로운 정이 없겠지만 사람들이 슬퍼함은 사사로운 정이 있습니다. 애오라지 세상의 습속을 벗어나지 못하여, 다시금 멀리서 제문을 보내 길이 사모하는 마음을 올립니다. 공의 정신은 허공에 두루 찼으니, 지금 이 작은 정성을 응감(應感)하소서!
1) 시해(尸解) : 도가(道家)에서 수련이 깊은 사람이 육신을 남겨둔 채 진신(眞身)이 빠져 나가는 것으로, 여기서는 죽음을 미화한 말로 쓰였다. 2) 색은행괴(索隱行怪) : 《중용》에 나오는 말로 일반적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괴이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人傳公之蟬蛻, 各驚悼而惻惻. 幾酸淚之潸然, 豈其情之有極! 欲奔馳而一臨, 路江南其綿邈. 故緘辭而遠唁, 敍平生之幽懷. 嗟我公之生世, 造五歲而名恢. 詠三角之一絶, 使老儒而心灰. 擧世爲之譁駭, 云仲尼之復生. 公不樂夫爲賓, 倚西敎以爲形. 通鄒魯之昭道, 究五竺之玄說. 渾物我於無家, 齊性情於日月. 人依赴之益衆, 詰因果與禍福. 公又厭其誕妄, 托烏程而光塵. 不知者之謂狂, 然亦服其內眞. 軒冕靑紫之貴, 皆朋儔之與肩. 相爾汝於形外, 然腆鮮以傲然. 眼扶桑其盡空, 怳雲掃乎紺天. 彼名山與大川, 惟公迹之編著. 奇巖怪石勝水, 待公賞而增色. 晚秋江之相遇, 談至理之無隱. 共月湖而逍遙, 離合不遺其信. 杏雨先公而廢, 令伯牙而絶絃. 哀今日之尸解, 盍欲追乎玄泉? 想遊戲於九天, 恣唱酬而蹁躚. 必俯視乎塵寰, 亦撫掌而大噱. 素市飮之酒徒, 咸哀哭而痛切. 喟不再夫邂逅, 憫幽明之永隔. 念公言之尋常, 不怪行而隱索. 雖不講其內蘊, 誰不知夫素賾? 公雖隱而心妙, 知公者莫吾曹若. 嗚呼公之遠逝, 無乃惡夫人詐? 然如死之逾生, 縱萬世其尙乍. 公豈意於去住? 隨晝夜而從容. 恒不滅兮誰見? 笑肉眼之曚曨. 現幻術而立奇, 誠我公之惡斯. 公之去兮無私, 人之悲兮有私. 聊未免夫世習, 却遙薦其永思. 公之神兮徧虛空, 庶幾感微誠於此時. ]
- 홍유손(洪裕孫),〈김열경 시습에 대한 제문[祭金悅卿時習文]〉,《소총유고(篠叢遺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