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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동 기술법과 시창작

수로보니게 여인 2007. 6. 28. 21:59
자동 기술법과 시 창작

자동기술법이란
문장 기술 법의 하나로
인간의 의식 상태가 가장 자유스러운 상태로의 이행의 행위를
언어적 본능으로 추적해가는 일련의 자유연상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자유연상의 조건은 자유라는 개념이며
그것은 내적 감각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외적 표현에 의한 국가 이념이나 사회구조의 사상에 위반하지 않는 한
사회나 집단의 간섭을 받지 아니 한다.

그러나 시는 언어에 의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언어든 문자든 밖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시로써 성립될 수가 없다.
따라서 자동기술법이란 시나 소설 등 문예 창작의 하나의 기법이기 때문에
그 시인이 소속된 사회의 도덕이나 관습에 저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반시나 저항시 또는 해체시라는 명칭을
후세인은 달아주고 있으나 시인이 시 창작의 순간에는
자신의 도덕관이나 사회관에 의해서 시라는 형태 속으로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각과 이념을 들이밀기 때문에 시인의 시관에 얽힌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인은 경험이라는 인간의 기억장치를
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관념에 의해서 정화해 내야한다.

그 정화의 과정 속에 연마되는 것이 시인의 시적 관념인데
시인이나 작가나 문인이나 예인의 사물에 대한 개별적 직관은 각자의 자유연상에 의하여 유발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장이 자유의 관념에 의하여 패러다이스를 지향해 갈 때
우리는 삶의 여유를 즉 만족감을 자족하면서
자신의 일이나 사유에 대한 자신을 얻으며
어떤 유기적 개체를 구성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유기적 개체는 언제나 아무리 큰 낯설어지는 과정이나
모호성을 유발하여 어떤 개념을 형성해 간다 할지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상대적 일반화의 관계를 지녀야 하며
인과 관계의 계선적이며 적층적 구조 속에 들지 않으면
시적 효과를 크게 기대 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곧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시선적 구조 속에서
분리 되거나 종합되는 과정이나 너무도 우연적인 필연성이 결여된
엉뚱한 것이어서는 유기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사상 누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라는 사물에서 '땅'이라는 사물로 자유 연상이 되어졌다고 가정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유기적 문장 구조를 만들 수가 있다

1.'나무가 땅을 마구 먹어 치운다'
2.'땅이 나무를 마구 먹어 댄다'
3.'나무가 땅을 자른다.'
4.'땅이 나무를 분해 한다'
5.'나무 속으로 땅이 스며 든다.'
6.'땅 속으로 나무 들이 숨는다.'
7.'나무에게 땅이 말을 한다.'
8.'나무들이 땅에게 이야기 한다.'
9.'땅 속으로 나무들이 꺼진다'
10.'나무 몸통 속으로 땅이 기어 든다'

위의 문장 구조가 어떤 유기적 느낌을 유발 할려면, 어떤 이는 그 인과적 요소조차도
필요하지 않다고 그대로 가버리는 자유의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는 대단한 치열성과 십수년간의 시적 숙련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동일성 있는 문장의 치열한 반복성이 필요 하기에
그 인과적 구조의 요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1과 2는 배가 고픈 듯이, 화가 난 듯이 정도의 요소를 주장 할 수 있지만
3 은 그 요소가 얼른 생각이 안난다.
그러나 만일 '번개 칼을 들고서'라고 해 볼까요 그리고 그 인과 관계를
거시적 방법으로 땅을 오염물로 잠식해 들어가는 그 순간을 정화해 가는 관념으로
주장한다면 어떨지요
4, 사막화 현상
5. 뜨거운 염천
6. 전쟁터
7. 어서 커서 그늘을 만들어 드리우라고
8. 어머니의 은혜를 노래 하면서
9. 사라지는 기억들
10. 사랑이 시작 되는 날

필자는 그 유기적 관계를 구성하기 위하여 필연적 인과의 요소를 제시해 보았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은 동감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고개를 갸우둥하게 하거나
전혀 동의 할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요인의 파생은 다분히 '시적 모호성'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시의 효용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논리에서 본다면
표현의 욕구를 제어 해야 할 어떤 방어기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물에 대한 '직관'인 것이다.


염천 빌딩의 정원

청석 김 석 현



나무가 땅을 마구 먹어 치운다.
땅이 나무를 마구 먹어 댄다'
나무가 땅을 자른다.
땅이 나무를 분해 한다.
나무 속으로 땅이 스며 든다.
땅 속으로 나무 들이 숨는다.
나무에게 땅이 말을 한다.
나무들이 땅에게 이야기 한다.
땅 속으로 나무들이 꺼진다.
나무 몸통 속으로 땅이 기어 든다.

장소는 빌딩의 정원이다.



소나기라도 기다리며
청석 김 석 현

나무가
땅을 마구 먹어 치운다.
배가 고픈 듯이
화가 난 듯이
땅이 나무를 마구 먹어 댄다'

나무가 번개 칼을 들고서 땅을 자른다.

땅이 나무를 분해 한다.
사막화 되어가는
문명의 공간 빌딩의 정원
뜨거운 염천 아래 나무 속으로 땅이 스며 든다.
땅 속으로 나무 들이 숨는다.
전쟁터가 되어 가는 빌딩의 정원

어서 어서 자라서 키 커서
그늘을 드리우라고
나무에게 땅이 말을 한다.
어머니의 은혜를 노래 하면서
자라서 부모님 은혜 꼬옥 깊겠다고
나무들이 땅에게 이야기 한다.

사라지는 기억 속에
땅 속으로 고향의 나무들이 꺼진다.
나무 몸똥 속으로 땅이 기어 든다.
그리고 사랑이 기억 속에 스며 들면서 .......
염천 아래 분수처럼 소나기가 쏟아진다.



사랑을 존재 이유로

청석 김 석 현

큰 땅을 같이 돌아 다녔어도
파도처럼 밀려 오는 누구의 거부를 수용했어도
언제나 우리는
나는 그대의 나무가 될 수 없고
그대는 나의 땅이 될 수 없기에

세상은 늘 늪이고 우리는 그 늪 속의
나무가 그리운
땅이 그리운
사랑이란 다리가 그리운 존재이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서로의 욕망으로
서로가 서로를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정해진 시간을 가진
닳아 없어지는 사랑이란 그리움을 가진 존재,

문명이란 수렁에서
나는 그대의 사랑의 나무를 키우기 위하여
끝도 없이 수렁에 스며드는
황토가 되리니
그대여 우리 서로 그리움이란 사랑이의 다리를 놓아 가자

그리하여
사랑의 성을 지어서
먼 후일 회한 없는
우리들의 사랑의 그림자를 거기 숨기자





출처 : 자동 기술법과 시창작
글쓴이 : 프른돌 원글보기
메모 :

**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인은 경험이라는 인간의 기억 장치를, 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관념에 의해서 정화해 내야 한다. 

 

그 정화의 과정속에 연마되는 것이 시인의 시적 관점인데, 시인, 작가, 문인, 예인 등의

사물에 대한 개별적 직관은 각자의 자유연상에 의해 유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