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10일 이틀을 무박으로 하는 태백산 등산이, 북악 33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신망애나 보육원 봉사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동기들과 산행 한지가 꽤 오래되었던 터에
태백산행이라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나, 무조건 OK 하고 따라나섰다.
소풍 날 받아 놓은 어린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몇일을 기다려 드디어 9일 6시쯤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몇 번씩 바꾸어 타며 청량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20분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몇몇
동기들을 기다려 9명이 모두 도착, 왁자지껄 우리는 9시 54분 행 기차에 올랐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옆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가야하는 걸 모르는 우리가 아니건만
설레는 마음이 충일해져 있는, 이미 열 댓 살 소녀가 되어버린 우리는, 교양도 우아도 이미 상실, 4시간이 넘는 시간을 조잘조잘 이어지는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태백역에 도착했다.
** 이야기에 도취해 미리 내릴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역을 지나쳐 이미 태백역을 출발한 기차를
세워 내리는,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올 법한 웃지 못 할 일을 만들어가며~^^
**이 일 또한 우리에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역관 아저씨의 '일장 훈시' 을 들으며 태백역을 빠져나온 우리는 역 앞에 기다려 있는 택시를 타고
산 밑 유일사 매표소에 이르러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숨고르기 할 시간도 없이 산행을 시작했다.
10일 새벽 2시 30분쯤 되었을까?
밤이 깊을 대로 깊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 예전에 산을 꽤 다녀보긴 했으나 밤 산행을 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朱木',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나 이 朱木을 만나기 위해
밤새운 기차에 몸을 실고 안개 짙은 새벽 산을 오르고 오른 것이다.
나 아직 경험해 보지않은 세상을 더듬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그렇게 오르고 올랐을 때,
안개 속에 오롯히 솟아있는 '朱木' 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나무가 푸른 잎을 키워가며 제 몸을 가리고 있는데도,
무슨 까닭인지 朱木은 잎 하나 틔우지 않은 꼿꼿한 가지만 하늘을 떠 받히고,
새벽바람을 마주한 채 고고한 '미라'의 모습으로 서 있다.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아, 가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일행에게 폐가 되기 싫어" 란 말로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친구를,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꼭 함께 가기를 바래" 란 말로 함께하게 됐다.
고지에 올라 일출 보는것이 하나의 계획이었던 일행은, 일출하는 햇님 맞이를 위해 부지런히 오르고,
다리가 아프고 숨이 가뿐 순이랑 나는, 이슬도 만져보고 후레쉬 불빛 속에 널부러져 누워 있는 꽃잎을
비춰보기도 하며 깨어나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발맞추어 서서히 동터오는 산맥을 깊숙히 들어갔다.
안개 자욱한 태백산을 희뿌옇게 비춰주는 새벽녘, 살짝 이슬비까지 내린 고지에 올랐을 때
인간의 작은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안개보다 더 짙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힘' 이 내 안에 깊숙히 스며들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까지 오른 순이!
산을 오르며 들려주었던 많은 걱정은 기우로 날려버리고, 새벽 산맥을 촉촉히 적셔주는 이슬이 그녀의 마른 숨 대신, 맑은 웃음을 얼굴 하나 가득 담아 주었다.
"장하다 순이, 사랑한다 순이, 다음에도 꼭 함께 하자 순이~!!
"여기가 장군봉 정상인가?" 잘 모르겠지만 우린 계획된 코스를 빠짐없이 올랐다.
늦어진 순이랑 나를 기다려준 친구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한 컷~~!
'천제단', 한배검 이란 碑가 세워져 있다. 우리 민족의 무속 신앙의 뿌리를 새삼 느끼며…
우리보다 먼저 오른 이들! 우리가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등반 시작을 했는데
그러면 이 여인들은 몇 시에 올랐을까? 다른 일행이 없는 걸로 보아 여자 둘이서, 무슨
간절한 소망이 있기에 두려움을 뚫고 깊은 밤 태백산맥을 더듬어 올라 제단 앞에 엎드렸을까?
이 글을 쓰며 그녀들이 제단앞에 내려놓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천제단 밖에서 무사히 정상까지 등반 할 수 있었음을 인하여 벅찬 감동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정애씨와 미옥씨의 야유(?)를 받으며, 컨츄리의 원조 혜정이의 뜻에 따라 우리만의 촬영을...
"새벽을 가르는 꼬꼬들이여 뭐든지 쑴풍쑴풍 생산하는 꼬꼬들이 되기를~~"
안개 짙은 새벽 태백산맥을 흐르는 정상에 우뚝 선 '太白山을 알리는 碑, 땀과 새벽이슬에
젖은 몸을 정상을 지나는 바람이 얼마나 훑어 대는지 바들바들 떨면서도 한 컷.
"팔 공주를 무사히 정상까지 오를 수 있도록 가이드해준 규철씨…
그대가 있어 우리는 이 날도 행복 했다오!"
** 영월에 유배되어 머물던 '조선 6대 임금 단종' 이 승하해 곤룡포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건너와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머물게 된 영혼을 주민들이 의논해 산신령으로 모시는 '성황당' 이란다.
새 날이 밝아오는 단종비각 뒤에서 등 하나 가득 지고 올라간 먹거리를 내려놓으니
어떤 조찬 보다도 훌륭한 아침상이 마련 되었다. 완순씨의 이름모를 나물, 규철씨 집의 명물 백김치,
등등등 거기다가 송아지 다리만한(?) 칠면조 앞 뒷다리...... 아휴!!! 배 ?져요
** 있잖아요 지금 말이지만, 밥이고 뭐고 진짜로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에구구......^^
피나무, 두더지, 들메나무, 물박달 나무, 박새 등 이런 것들이 태백산에 산다네요.
나도 태백산 자락에서 살고 싶었으나 오염되었다고 안 붙여 준대요.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오고 있답니다.
사실은 넘 졸려서 걸음도 못걷고 비틀비틀, 맨 뒤에 쳐져서 얼굴을 싸 안고 내려오는 중이랍니다 ㅜㅜ
이 친구는 아직은 쌩쌩 하네요.
그녀 특유의 폼을 잡고 졸려서 눈도 못뜨는 나를 향해 사진 찍으라고 하는 걸 보면......^^
우리 친구 순이는 올라갈 때와는 달리 씽씽 내달려 내려가고 있네요.
제가 다 내려가기 전에 한 컷 찍으려고 '헤이' 하고 불러 세웠죠. 그리고 돌아보는 그녀들을 찰깍~^^
'우리 민족의 시조' 라 일컫는 단군상, 태백산에서 내려오는 길목 언덕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 곳까지 이르렀을 때, 무박으로 했던 첫 날 산행 9일은 조용히 10일에게 날(日)을 넘겨주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10일의 해는 안개 걷힌 산맥을 넘어 하루의 힘찬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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