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절대로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로,
얼마만에 엄마 아빠가 계신 집을 찾았는지 계산도 안나온다.
전화도 자주 드리지 않는 나쁜 딸, 도대체 성립 되지 않을 "바쁘다" 는 이유 아닌 이유로......
늘 엄마 아빠의 가슴 언저리에 "납덩이 하나를 안겨 드린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생각 만으로도 내 마음이 서늘해지는 울 엄마 아빠를 이번 설에야 찾아뵈었다.
이번에도 어찌할까 하다가, 말씀은 그렇게 안 하시지만, 너무도 기다리실 것 같은 마음에
설 전날 경민씨 가게 알아보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어둑해진 길을 달려 엄마품에 안겼었다.
벌써 8년전 일이다.
막내 동생이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버린 것이, 우리중 누구에게도 단 한마디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울엄마 그때 부터 생명없는 삶을 지내오심을 잘안다.
머리카락은 하루아침에 피어버린 살구꽃처럼 돼버리고, 세월이 남긴 흔적이 아직은 깊지 않던 얼굴에
거실 한 쪽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분수대의 물흘러 내림을 닮은 주름이 하루에 몇개씩 줄을 긋기 시작했다.
생명이 서서히 빠져 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생체 리듬을 바라보는 것 또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우리를 끔찍히 생각 하신다는 것을 엄마도 미쳐 몰랐다는 울 아빠,
세상에 어떤 아빠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만,
먼저 하늘 나라로 가버린 막내의 대한 사랑은, 노년에 얻은 자식 이었기에
그 사랑의 깊이와 색깔은 더 했으리라는 생각을, 세월이 갈 수록 더 많이 깨닫게 된다.
그 깊은 속내를 마음에 감추고 살아야 하는 마음도 버거우실텐데, 엄마의 그 소멸 되어가는 생명을
무심히 바라 보아야만 하는 마음은, 아마 "큰 바위 하나를 마음에 담고 사시는 듯한 삶일 것이리라."
차마 얼굴을 대함이 민망스럽고 안쓰러워 드릴 말씀조차 없게 만드시는 울 아빠.
우리 막내 누워 있는 병원 한쪽 구석에, 울고 불고 하는 우리들을 다 무너진 영혼 없는 눈동자로
바라 보시면서도, 끝내 한 마디 말씀도 하지 못하셨던 울 아빠,
그 때의 아빠 마음을 지금처럼 깊이 헤아려 보기는 처음인 듯 하다.
엄마의 마음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마음이었다면,
아빠의 마음은, 온 몸의 혼이 다 흘러 내리는 것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무얼 어떻게 조차도 할 수 없는'
아니, 어찌 감히 세상에 있는 말로 그 때 두분의 심정을 이 작은 지면에 옮길 수 있을 것이랴!
하나밖에 없는 내 여동생, 참 대견한데 아직 나의 그런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서른 셋,적지않은 나이에 눈에 콩깍지 씌워, 제 신랑이 귀공자 스타일이라며 시집을 가더니,
홀 시아버지 모시며, 제 신랑 나빠진 건강과 큰 딸애의 어릴적 다리 수술 등
우리 친정 식구들과는 달리, 유난히 병치레가 심한 제 식구들 건강 잘 다스려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가 내 동생이긴 하지만 참 예쁘다.
목사인 제 남편 내조 잘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터인데, 가끔 전화로 제 고단한 일상을 풀어놓긴 하지만,
제 삶의 빛깔을 저만의 방식으로 물들여 감을 보며, 그런애의 언니임이 자랑스럽기도......
맨 위에 있는 사진, 아빠보다도 더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울 동생이 콩깍지 씌워 귀공자 같다던 제부이다.
시집을 늦게 가더니 삼 남매를 쭈루룩, 연년생으로 딸을 둘 낳고, 막내로 아들을 얻어
세상에 저만 아들 낳은 것 처럼 재인이를 예뻐해서, 우리 식구 들에게 미움 아닌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똑똑해서 공부도 잘할 뿐만 아니라, 모두 예쁘고 착해서 훗날 이웃을 사랑하는 애들이 될 것을
의심하게 하지 않는 애들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들은
'설' 이 주일인 까닭에 이번 설은 못 오겠다는 전화가 있었다는 얘기를 엄마로 부터 전해 듣고
어쩌면 가지않을 뻔 했던 나의 설 나들이를, 쓸쓸해 하실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는 한 숨에 달려가게 해서,
나에게 이와같은 아름다운 가족으로의 사랑애에, 행복의 겨운 노래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애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새삼스러운 다짐을 해본다. 늘 마음으로만 해오던 생각,
"내 곁에 머무를 시간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는 엄마 아빠를 자주 찾아 뵈리라" 던 생각을 실천하고,
이웃이나 형제들에게도,마음에 있는 말들을 아끼지 말고, 시간속에 넣어두지도 말며,
표현 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리라는 명료한 색깔있는 다짐을......
그리고 다음날 필리핀으로 선교를 나가있는 목사 동생을 찾았다.
자주 찾아 위로와 격려를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격려의 기도문을 남기는 방문을 했다.
물론 그것이, 인터넷으로 하는 방문이긴 하였지만......
이 글을 쓰다가 난, 이제는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전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끝내, 아빠의 대한 표현 불가능한 마음에 한 바탕 눈물을 쏟아야 했다. "건강하시라" 는 말씀과 함께.
'—…³οο ı ĿØЦЁ УØЧ > ´˝˚³οο ı Łονё 旅程'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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