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국어 바루기

잔반(殘飯)과 짬밥

수로보니게 여인 2010. 5. 8. 21:26

 

 

 

 

 

 잔반(殘飯)과 짬밥


  잔반(殘飯)이란 '먹고 남은 밥'이란 뜻의 일본(日本) 한자어(漢字語)에서 온 말인데, 순 우리말로는 '대궁' 또는 '대궁밥'이라고 합니다.


  '대궁'이나  '대궁밥'이란 '먹다가 남긴 밥' 또는 '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다시 차린 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먹다가 남은 밥상'이나 '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다시 차린 밥상''대궁상(床)'이라고 하지요.


  가난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골 농가(農家)에서 대궁밥을 먹는 어린이들이나 아낙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도 모내기철이나 바쁜 농사철에는 어른들과 일꾼들이 먼저 푸짐한 식사를 하고, 그 후에 비로소 아이들과 여인들이 논두렁 벝두렁에 앉아 '대궁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대궁밥'을 먹는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대궁상(床)'의 경우, '물림상(床)'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기도 하나, 이 '물림상'이란 말은 관혼상제(冠婚喪祭) 때 어른이나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밥상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대궁'이란 말이 이제는 강원도 오지(奧地)에서나 드믄드믄 사용되고 있고, 1920-30년대의 소설에서나 간혹 발견할 수 있을 뿐,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거의 '대궁'이란 말 대신 '잔반(殘飯)'이란 일본식 한자어(漢字語)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原因)은 일본군(日本軍) 출신들이 주류(主流)가 되어 창군(創軍)한 우리 나라 군대에서,

 

  기합(氣合), 점호(點呼), 병기(兵器) 수입(手入), 수하(誰何) 등(等)…….

 

의 예(例)처럼 일본 군대에서 사용하던 군대 용어(用語)나 군대 속어(俗語)를 한자어(漢字語) 글자는 그대로 둔 채 우리말로 발음하여 오래도록 사용하면서, 민간인 사회에까지 파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후(戰後) 50여년(餘年) 동안 웬만한 대한민국 남성들은 대부분 군복무(軍服務)를 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제대(除隊)하여 사회에 복귀(復歸)하면서 상당수의 이른바 '군댓말'이 우리 사회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잔반(殘飯)'의 경우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잔반'이라 발음하지 않고, 일본식 그대로 '짬빵'이라 하였으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음운변화를 일으켜 근래에는 완전한 우리말로 착각할 정도로 이 '짬빵''짬밥'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우스운 것은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잔반'의 어원(語源)이 일본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말로 대치(代置)할 만한 단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공식적(公式的)으로는 '잔반(殘飯)'으로 발음하여 사용하고 있고, 실제(實際) 비공식적 통용어(通用語)로는 '짬밥'이란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먹다 남긴 밥''대궁'이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입니다. 차라리 '남긴 밥'이나 '남은 밥' '남은 음식'이라고 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국민의 정부' 집권 이래 전국적으로 실시된 학교 급식(給食) 전면 실시를 하면서부터, 이제는 초중고교 학생들까지 '잔반'이란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급 학교의 식당(食堂)을 방문하면, 사방(四方)의 벽(壁)이나 게시판에 '잔반(殘飯)을 줄이자!'라는 표어(標語)나 '잔반 줄이기 우수 학급 표창'이란 포스터를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음식을 남기지 말자!' '음식 적게 남긴 학급 표창'이라고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아마 그 게시물을 작성한 선생님이 군대를 다녀오신 남자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원래 '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의 '잔반(殘飯)'이란 단어는 오늘날 군대(軍隊)에서 '짬빵'이란 일본어로 발음하거나 우리말화(化)된 '짬밥'이란 말로 발음할 경우, 그 의미가 단순히 '먹고 남은 음식'이 아닌, '군대에서 먹는 밥' 자체를 뜻하거나, 군복무 기간이 오래 된 정도, 즉 군대 경력(經歷)에 따른 관록과 권위를 대유(代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

 

  짬방(짬빵)이 지겹구나 : 군대에서 주는 밥이 이제는 먹기 싫다.  


  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짬빱(짬빵) 서열 최고참이다 ; 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군경력 1위다.


 '짬밥''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에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군댓밥'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례(事例)입니다.

 

 다시 말해 '잔반(殘飯)'으로 발음할 때는 원래 의미로 사용하면서, 일본식 발음에 가까운 '짬밥'으로 사용할 때는 '군댓밥'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전용(轉用)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잔반(殘飯)'은 일반 사회에서까지 사용하는 단순한 일본식 한자어(漢字語)에 지나지 않지만, '짬밥'은 오늘날도 군대 생활에 대한 권태(倦怠)의 의미를 내포(內包)한 군인(軍人)들만의 자조적(自嘲的)인 속어(俗語)로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림학사 | 답변 103 | 채택률 92.7%

활동분야 : 국사,사학 | 인문,사회과학
본인소개 : 전직(前職) 고등학교 연구부장 겸 국어 교사, 지방대학교 강사 역임...

 

잔반[殘飯]명사]
먹고 남은 밥. ‘남은 밥’, ‘음식 찌꺼기’로 순화. 먹고 남은 음식. ‘음식 찌꺼기’로 순화. 대궁.
 
 

김영준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