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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 기자의 '우리시대 작가 열전'] "잠은 또 다른 삶" 사고의 틀 깨는

수로보니게 여인 2009. 8. 13. 19:41

 

[박해현 기자의 '우리시대 작가 열전'] "잠은 또 다른 삶" 사고의 틀 깨는 역발상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8.10 03:05

시인 정끝별
서정시서 현실비판까지 저마다의 음색 드러내

 

시인은 노동과 수면(睡眠)의 구별이 없는 존재다. 어느 프랑스 시인은 잠자리에 들 때 침실 문 앞에 '지금 작업 중'이라는 팻말을 붙였다고 한다. 꿈속에서 시인들은 시의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하지만 시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잠은 자야 한다. 누구나 잠을 통해 일상의 틀을 벗어난 또 다른 삶을 산다.

정끝별(45) 시인은 2008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크나큰 잠〉을 통해 잠 또한 삶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삶이 크나큰 잠의 한 부분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하품도 없이 썰물 지듯/ 깜빡깜빡 빠져나가는 오늘'이지만, '내겐 늘 한 밤이 있으니/ 한 밤에는 저리 푹신한 늘 오늘이 있으니'라며 밤이 제공하는 잠의 세계를 예찬했다. 낮에 깨어 있을 때 우리는 '오늘'을 잃지만 잠에서 깨어날 때 '오늘'을 되찾지 않는가, 라고 이 시는 재기 발랄하게 물음으로써 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역발상을 보여줬다.

정끝별 시인은 "운동이나 취미활동이 전무하고 먹는 것도 부실한 저로서는 최고의 보양책이 잠"이라며 "최소한 하루 6~7시간씩은 잔다"고 밝혔다. 그는 시 〈크나큰 잠〉의 창작의도를 마치 자동기술 하듯 술술 늘어놓았다.

"잠을 잘 때마다 '깜빡' 또 다른 생을 살러 떠나는구나 생각하곤 해요. 잠이 있어서 '지금-여기'가 아닌 '저기-너머'를 짐작해 볼 수 있어요. 그것이 죽음이든 무의식이든, 4차원이든 외계든 말이에요.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에요!"

시가 찾아올 때의 느낌에 대해 정끝별 시인은“번쩍하기도 하고 홧홧하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싸하기도 하고 뻑뻑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끝별 시인의 연구실을 에워싼 책꽂이는 당연히 현대문학 이론서와 평론집으로 채워져 있다. 그중 한 부분을 가리켜 83학번(이화여대 국문과)인 그는 "추억의 앨범 같은 곳"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민족·민중·제3세계 등의 제목을 단 1980년대의 이념서적들이 거의 너덜너덜한 상태로 차지하고 있다.

386세대는 민중시에서 해체시까지 다양한 시적 경향이 분출했던 '시의 시대'에 습작했던 세대이다. '정끝별의 시는 정갈한 서정시나 내밀한 성찰의 시, 예리한 현실비판의 시들이 저마다의 음색을 드러낸다.'(평론가 이혜원) 하지만 1985년 등단 이후 정끝별의 시는 4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너무 다양한 갈래로 흩어졌기 때문에 독창적 목소리를 집약해서 들려주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시인은 "'내 안에 너무 많은 나'와 '타인 안에 너무 많은 타인'에 관심이 많아요"라며 "내가 누구인지, 나와 타인은 어떤 관계인지,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라며 다음성(多音聲)의 추구를 아직 끝내지 않을 눈치다.

2000년대 시단에서 정끝별의 시는 자유분방하고 재치와 기지가 넘치는 언어유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최근 시집 《와락》에 실린 시 〈와락〉은 보기 드물게 부사어를 제목으로 삼았는데 정작 시 안에는 '와락'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빨려 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 등 '락'이란 음절을 공통으로 지닌 언어 유희가 이어지는데, 다 읽고 나면 묘하게 '와락' 안기거나 안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와락의 순간들이 있어 밋밋하게 되풀이되는 이 삶을 우리는 푸르락 붉으락 살아내는 것이죠. 사랑이든, 이별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러나 사실은, 좀더 본질적으로는, 시를 염두에 둔 시이기도 해요. 시야말로 '와락' 오는 거거든요."

시인에게 순우리말 이름의 유래에 대해 물었다. "언니오빠들은 별 성(星)자를 돌림으로 한 한자이름이고 저만 한글이에요. '끝별'은 제게 시이기도 해요. 있기는 있는데 실제로는 없는 거잖아요! '별'은 있는데 '끝'은 없잖아요. 지금-여기에 있기는 있는데 실은 저기-너머에 있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