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하는 1910년 나라를 잃자 아들과 함께 고향인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갔다. 일제는 그에게 훈장과 퇴직 은사금 3000원을 내렸지만 그는 분노하며 돌려보냈다. 일제가 후작 작위까지 줬지만 그는 "눈이 멀어 받지 못한다"고 거절했다. 일제가 그를 붙잡아다 눈에 송충이를 집어넣었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고 자손들이 전한다.
▶백두산 정계비는 1931년 7월 28~29일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백두산 조사활동을 하던 일본인들이 정상에 올라갈 때 본 비석이 내려올 때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간도파출소에 근무했던 일본 국제법학자 시노다 지사쿠는 목격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간도는 조선 땅'이라는 책에 적었다. 시노다는 일본이 국경수비대를 시켜 만주 침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정계비를 없앴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9월 4일은 일제가 만주 철도부설권을 받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에 넘긴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꼭 100년째 되는 날이다. 국제법상 한 나라가 어느 땅을 100년 동안 실효적으로 지배하면 영유권이 인정된다.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가 청과 맺은 간도협약이 원천 무효라고 해도 중국이 100년을 지배하는 9월 4일 이후는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소용없게 된다.
▶재미교포 재야사학자 폴 김이 작년 4월과 지난 6월 우리 정부에 "국제사법재판소에 100년 시효를 중단시키는 소송을 내 중국의 간도 영구소유를 막아야 한다"는 탄원서를 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국가와 유엔 단체만 소송을 낼 수 있는데 정부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통일이나 북핵 등 여러 변수가 얽혀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까지 자기 역사라고 억지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배경엔 간도문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도를 역사 속 땅으로만 안이하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민족의 피땀이 서린 간도를 이대로 영원히 중국에 주고 말 겁니까." 폴 김의 절규가 가슴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