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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목차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27. 07:44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고전소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나  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라  마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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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차 카 타 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

채봉감별곡 고문

만산낙엽을 쓸쓸한 가을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고 공산명월은 적막한데 서릿바람에 놀란 기러기는 공중에 높이 떠 구슬피 울며 긴소리로 짝을 부르며 평양 을밀대 앞 이감사 집 후원 별당 위로 남쪽을 향해 날아가더라.

별당 건너방에 팔을 끼고 책상 머리에 앉아 있던 열여덟가량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지붕 위로 날아가며 우는 기러기를 소리를 듣고 고개 들어 남창을 바라보니 쓸쓸한 가을 바람과 함께 두둥실 높이 떠 있는 달님과도 같이 어떤 애수에 서린 양, 소저(小姐)는 몸을 일으켜 안방에서 들리지 않도록 소리 안나게 미닫이 문을 열더라. 그와 함께 창틈으로 스며들기만 하던 달빛이 서늘한 가을 바람과 함께 고운 소저의 얼굴을 뚜렷이 비춰주니 열여덟의 고운 아가씨는 두둥실 높이 뜬 달을 쳐다 보며

"휘이 …"

긴 한숨을 내 쉬며, 말하되,

"문닫은 창앞의 달이라더니 나는 가위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온 달을 창가에서 바라보누나"

하며 사방의 가을 경치를 살피더니,

"오늘이 적당한 때라 하겠노라"

하고 마음에 있는 말을 글로 적어볼까 하노라.

벼루를 내어 먹을 갈고 그 먹에 붓을 찍어 백농화지를 펼쳐 책상 위에 놓고는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붓대를 법도있게 잡고는 추풍감별곡을 짓더라.

이 고운 아가씨는 누구인가 하면 이 처녀는 평양부중에 사는 김진사의 딸로서 이름은 채봉이라 하더라.

(중략)

채봉이는 평양부중에 사는 김진사의 딸로서 태어나면서 영리하고 총명해서 나이 일곱 살에 한번 본 것은 무엇이고 잊지 않는 재주가 있었다.

김진사 내외는 채봉을 보배로 기르며 좋은 짝을 맞춰 주고자 사랑으로 두루 사위감을 구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채봉의 나이 어느덧 열 여섯이 되니, 추향을 데리고 동산으로 올라가 봄빛을 겼다.

그때 서편에서 사람의 기척이 있기로 깜작 놀란 두 처녀가 그 쪽을 쳐다 보았다. 그 얼굴은 백옥과 같고 풍채는 두목지 같은 십팔세 가량의 소년이 이 쪽을 쳐다 보고 있었다.

채봉은 그 소년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얼굴이 붉어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급한 걸음으로 초당으로 들어가 동산으로 나 있는 문을 닫는다.

소년이 터진 담으로 들어와서 땅바닥에 떨어 져있는 수건을 주워 들고 펼쳐보니 채봉이라는 주 글자가 수 놓아있다. 소년이 담 터진 곳으로 나와서 담 안의 동정을 살피는 데 조금 전 앞장서 들어가 문을 걸던 처녀가 나와서 땅바닥을 두루 살핀다.

"이상하다. 지금 떨어뜨린 수건이 어디로 갔담"

"내 손에 들어 온 수건인데 찾을 수 있나"

추향이 귓결에 말을 들었다.

"서방님 수건을 얻은 듯하니 내어 주시면 감사만만이겠습니다."

"수건은 누구의 것이냐"

"우리 댁 소저의 것입니다,"

"너희 댁 소저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느냐"

"채봉이라 합니다. 이제 수건을 주시지요"

"수건을 주기는 주겠다만 은 너 여기서 잠깐 기다려라. 내가 다녀올 데가 있다."

소년은 아랫집으로 들어가 수건에 절구를 써 가지고 나와 추향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나는 대동문에 사는 강필 성인데, 홀어머니 시하에서 지금껏 장가를 들지 못해 근심하는 사람이라고 소저께 말씀드려라. 이 수건을 보시면 반드시 답장이 있을 것이니 회답을 전해다오.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노라.

채봉이 추향에게서 수건을 받아들고 펼쳐보니,

수건이 가인 손에서 떨어지니
분수에 넘치는 기쁨이요
필시 뜻있는 사나이에게
하늘이 짝지어 주심이라
은근히 서로 사모하는
글을 주고받으니
붉은 실로 백년가약 맺은 듯이
신방(新房)으로 들리라

하고 그 끝에는 년 월 일, 만생 강필성이라 씌어 있다.

채봉은 배시시 웃고 몇 자 적어 추향에게 전했다.

전하나니 그대는 허망한
양대꿈(초나라 회왕이 무산 양대에서 무산 선녀와 만나 꿈에서 인연맺은 옛일) 꾸지 마시고
힘써 글을 익혀
앞날에 한림학사되소서

소년이 편지 읽기를 기다려 추향이 물었다.

"김첨사 댁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 외가댁이다. 그건 그렇거니와 내가 너에게 청할 말이 있으니 들어주겠느냐 상말에 싸움은 말리고 혼인은 붙인다는 말이 있으니 소저와 한번 대면케 해주면 그 은혜를 갚으리라."

추향이 필성에게로 가까이 가서 필성의 귀에 입을 대고 무엇이라 소근거리고는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뒤의 성불성은 상공이 하시기에 달려있으니 후회가 없도록 하십시오."

"오냐, 나도 믿고 간다."

무엇인가 이같이 약속을 단단히 하고 강필성은 김첨사 집으로 돌아가고 추향은 초당으로 들어 갔다.

어느날이다. 추향이가 채봉을 모시고 있는데 때는 춘월 망간이라 둥근 달이 낮같이 밝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 아가씨 달이 밝은데 뒷동산에 가서 달구경이나 할까"

이미 추향과의 약속이 있는 강필성은 담 터진 곳으로 들어와 추향이를 기다리다 추향과 채봉이 다함께 후원으로 들어오므로 몸을 숨겼고 동정을 살핀다. 추향은 필성이 숨어있는 곳을 살피다가 두세 번 헛기침을 한다. 필성이 신호를 받고 성큼 채봉의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자 추향이 채봉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이분은 일전에 글로써 화답하시던 강상공이십니다."

"그분이 무슨 일로 남의 후원에 들어오셨단 말이냐 빨리 나가시라고 해라."

"소생의 말은 이미 추향에게 들으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 지금 소생더러 나가라 하시니, 꽃 본 나비가 어찌 꽃을 그대로 지나가며 물 본 기러기 어부를 두려워하리까 소저는 소생과 고운 언약을 맺어 백년 해로함이 어떻겠습니까 소원이로서이다."

"..............."

"소저께서 말씀이 없으시면 소생은 이 가련한 신세를 세상에서 버리고자 합니다."

" 전날 군자께서 보내주신 싯구도 잊지 않고 있으며 추향에게 들은 말도 있으니 어찌 다른 말씀이 있겠습니까 군자는 댁으로 돌아가시고 매파를 보내어 통혼(通婚)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필성은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와 의논하고 매파를 김진사 집으로 보내어 통혼을 하였다.

이때 이부인은 홀로 앉아 혼사에 관하여 무슨 궁리를 하다가 매파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색을 했다.

"참한 신랑이 있기에 왔습니다."

"어떤 신랑인데"

"대동문 밖 강선천의 아드님인데 댁 소저의 배필감입니다."

"나도 일찍이 신랑이 훌륭하단 말은 들었지만 내가 한 번 친히 보고자 하니 어느날 내 집으로 데리고 오게."

필성이 중매장이 노파를 따라 소저의 집으로 가니 이부인은 필성의 사람됨을 유심히 살펴보며 기뻐했다.

"서울 가신 신부의 부친이 내려오신 후에 성례를 치를 터이니 그리 알게."

이때 김진사는 사위감도 구할 겸 벼슬길을 찾고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세력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마침 당시에 권문세가로서 가장 으뜸가는 허씨라는 사람 집에 드나드는 김양주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돈을 쓰면 벼슬에 오를 수 있다는 그의 꾐에 빠져 김진사는 그에게 어음표를 주었다.

사흘째 되는 날 김양주는 칙지를 가지고 왔다.

"영감 출륙턱을 아니할 수 없으니 어디든지 가서 소리나 듣고 약주나 한 잔 합시다."

"그럽시다. 남문동 산흥이 집으로 갑시다."

방안에는 방이 툭 터지도록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기생은 아랫쪽에 앉아있었다.

김양주와 김진사가 엉덩이를 들이밀자 좌우에 앉았던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다가 하나 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빠"

산홍이 미닫이를 열고 밖을 내다보며 부르니 한 위인이 건넌방에서 나오더니 얼마만에 주안상을 차려가지고 왔다.

이 술이 술이 아니라
불로초로 빚었으니
이 술 한 잔 잡수시면
천만 년을 사시리다

신홍이 다시 잔을 들고 노래한다.

창 밖에 국화를 심어
국화 밑에 술 빚어 두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또한 돋아온다.
아이야 거문고 내어 청(淸)쳐라
벗님 대접하리라

김양주는 김진사를 쳐다보았다.

"종씨 어떠하오"

"여러 달 객회가 울적하더니 오늘에야 심신이 쾌락하외다."

"종씨 어찌되었든 허씨 댁만 잘 다니면 상육경이라도 할는지 모르니 꼭 나 하라는 대로만 하시오. 내일 허판서를 뵈오러 가십시다."

"종씨 하라는 대로 하지요"

떠나는 두 사람을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고 들어오며 산홍은 생각한다.

'김양주 말이 이상하다. 지금 허씨가 세도를 쓴다고 하더라도 상육경은 임금이 아니고서는 내지를 못하는 것인데 잘 다니기만 하면 상육경을 할는지도 모른다니 역적 모의를 하고 있는 것인가'

김양주의 말을 이상히 여긴 산홍이는 그 뒤 김양주의 하는 양을 유심히 살피었다.

김진사가 김양주를 따라 허판서 집으로 가서 허판서에게 큰 절을 하니 허판서는 김양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사람이 그저께 출륙한 사람인가"

"예, 그렇습니다."

"우선 시험아 조그마한 과천 현감을 해볼까 아닌게 아니라 과천이 좋기는 하지. 울며 들어가 웃고 나온다는 곳이니까."

김진사는 허판서의 말뜻을 몰라 잠자코 있는데 김양주가 가로채고 나섰다.

"가격은 얼마 예산하고 계십니까"

"만 냥은 있어야 될 걸세. 내 생각에는 택인하는 처지에 돈이야 관계가 없지만 다른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가장 청백한 체하는 김진사는 정말로만 알고 고맙게만 생각하였다.

"대감 혜택으로 출륙을 시켜 주시고 또 현감까지 맡기시니 황송합니다."

"별소리를 다 하는구먼. 오늘 별단에 시켜 줄 것이니 돈표를 써주고 가게."

허판서의 말이 떨어지자 김양주가 급히 벼룻집을 열고 먹을 갈려다가 연적에 물이 없는지라 양주는 몸을 일으켜 현령줄을 흔들었으니 가련하게도 오백여 리 밖에 있는 채봉이가 풍파를 겪을 일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현령줄 소리가 절렁 나가 안에서 십 육 세 가량의 미동 하나가 별당으로 나왔다.

"연적에 물이 없구나. 물을 넣어 가지고 오너라."

미동이 연적을 받아 가지고 별당 대석으로 내려가는데 그 아름답고 출중한 풍채는 김진사가 보던 바 처음이라, 문득 집에 있는 채봉이 생각이 나서,

"그 아이 신통하게도 우리 아기 같기도 하다. 언제나 저런 사위를 얻어 짝을 지어 줄고"

하는 김진사의 혼잣말을 허판서와 김양주가 똑똑이 들었다.

김양주가 먹을 갈아 놓고 김진사를 탁 쳤다.

"어서 어음을 써서 바치고 나갑시다."

"녜 쓰지요. 그런데 오천 냥은 지금 있고 오천 냥은 평양으로 기별을 해서 가져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려 가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천 냥 찾을 표는 나를 주고, 오천 냥 표는 어음만 써놓았다가 나중에 들여놓게나."

"황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우리 상노놈 보고 뭐라고 했나"

"하도 위인이 얌전하기에 칭찬을 하였습니다."

"사위를 았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소인에게 지금 십 육 세의 여식이 있는데 위인이 과히 용렬치는 아니하므로 합당한 짝을 지어주려고 사윗감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말을 들은 허판서는 불같은 욕심이 일어나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너털웃음을 한번 웃고 나서 말했다.

"나는 상노놈과 등물이 어떠한가"

"황송합니다."

"내가 자네 사위가 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작년에 별실되는 사람을 죽이고 가합한 사람이 없어 지금까지 그저 있으니 자네 딸을 날 줄 것 같으면 자네 딸도 호강을 시킬 것이고 또 자네도 작은 수령으로만 다니겠나 감사라든지 대신은 못할라구."

김진사는 허판서의 말을 듣고 흔연한 낯으로 말했다.

"미천한 여식을 더럽다 아니하시고 이같이 하엄하시니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마는 미거한 것이 감당을 할는지 그것을 몰라 염려가 됩니다."

"허허허, 별소리를 다 하네그려. 언제쯤 떠나겠나"

"내일 내려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튿날 김진사는 평양으로 내려간다.

이때 이씨부인은 채봉의 혼인을 필성과 확정해 놓고 김진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김진사는 딸의 혼인을 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혼인 정하였다는 말 듣고 왜 놀라세요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이야기야 차차 하지 않겠나요."

"아니오, 급하니 말부터 하오."

"대동문 밖에 사는 강선천의 아들과 정했다오."

"거지가 다 된 것하고, 흥. 내가 참 기막힌 사위를 정하고 내려왔으니 우리 서울로 올라갑시다."

"기막힌 사위라니 어떤 사위란 말이오"

"세도가 당당한 허판서요."

"허판서라면 정실일 리는 없고, 그럼 부실이란 말이오

"정실도 아니고 부실도 아닌 벌실이라오."

"나는 그렇게 못하겠소. 허판서 아니라 허의정이라도."

"왜 못하오 우선 허판서 주선으로 과천 현감을 할 테고, 이제 채봉이가 그리로 들어가 살면 그때엔 정경부인은 갈 데 없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소 두 말 말고 데리고 올라갑시다."

이때 채봉이는 아버지 앞에 나와 절을 했다.

"아가, 너 재상의 소실이 좋으냐 여염집 부인이 좋으냐 네 소원대로 말해 보아라."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뒤 되기는 원치 않습니다."

채봉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묵묵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박명한 채봉이, 이제부터 무한한 풍상을 겪으리로다."

이튿날부터 김진사는 전답과 집을 거간을 놓아서 팔아 준비를 마치고 추향이는 저의 집으로 돌려보내니 추향은 울면서 김진사네 세 식구를 배별(拜別)했다.

채봉은 아무 말 없이 추향을 눈짓으로 불러 뒷간으로 데리고가서 이른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가다가 중로에서 몸을 피할 터이니 어디든지 뒤를 좀 밟아오너라."

"어멈과 함께 따르겠습니다."

김진사는 하루바삐 서울로 가자고 그날로 길을 떠났다.

중화지경에 들어서서 만리교(萬里橋)에서 해가 저물었으므로 조용한 주막을 얻어 이씨부인과 채봉은 안으로 들어가고 김진사는 밖에서 쉬게 되었다.

밤이 경쯤 되면서 사면에서 으악 소리가 나며 화광이 하늘에 치솟거늘 자리에 누웠던 김진사 놀라서 나가 보니 사방에서 화적(火賊)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며 사람을 만나는 대로 죽였다. 일이 급합을 깨달은 김진사는 행장에 있는 돈 생각은 둘째요 부인과 채봉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쫓아갔다.

김진사는 앞에서도 마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와 이부인을 붙들었다.

"채봉이는 어디 갔소"

"나도 진사님과 채봉을 찾느라고 여기까지 오는 길인데 채봉이가 어디 갔단 말이오"

두 내외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불길만 쳐다보았다.

김진사 허판서를 찾아가 전후 사실을 다 이야기하니 허판서는 별안간 눈이 샐쭉해진다.

"허어, 이런 맹랑한 놈 보게. 제가 어쨌든 과천은 할 테니까 내려갈 때는 허락을 다 하고 지금은 다른 소리를 한다. 그럼 재물은 도둑이 가져갔거니와 딸이야 못 찾아 가지고 온단 말인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 대감 위력이나 빌어 찾아볼까 하고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이판서는 하인을 불러 김진사를 사구류(私拘留)를 시켜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사관집 주인에게 노자를 얻어가지고 다시 평양으로 내려갔다.

한편 채봉은 만리교에서 이씨부인이 잠든 틈을 타서 도망하여 추향과 추향 어미를 데리고 평양으로 도로 내려가 추향의 집에서 있으면서 부친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러나 채봉이는 만리교 동네에 화적이 들기 전 두 시간이나 앞서 도망한지라 김진사가 화적에게 그 지경이 된 것은 감감 모르고 있었다.

대저 평양이라는 곳은 원래부터 색향으로 유명한 곳이라 채봉의 인물과 서화가 뛰어나므로 이른바 기생어미들이 추향의 집으로 모여들어 구경을 한답시고 북적거리니 채봉은 번화로움이 싫어서 추향 어미를 보고 일렀다.

"나는 규중 여자의 몸이니 다음부터는 그런 생각을 버리라고 일러 주게."

한편 이씨부인은 열흘만에 평양에 당도했으나 이미 집없는 몸 어디로 가리오. 한숨을 내쉬며 애련당골로 들어서 추향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채봉은 급히 부인 앞으로 뛰어나와 그 손을 잡았다.

이씨부인은 만리교에서 도둑 만난 일과 서울로 올라갔다가 김진사가 옥에 갇힌 일을 말하고 물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돈 오천 냥을 해놓든지 너를 데려오든지 하라니 네가 아버지를 살리려거든 나와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

"그러면 돈을 해드리면 어떻습니까"

채봉이 추향 어미 불러 부탁했다.

"부끄러워 말이 잘 나오지 않네만 나를 좀 팔아 주게."

추향 모 봉선 어미 집으로 가서 채봉의 달을 하니 봉선 어미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그런데 돈은 얼마나 달라고 합니까"

"그런 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구료. 봉선이는 얼마에 팔았소 가량이 있겠지."

"칠천 냥에 데려갔다오."

"어쨌든 가서 이야기합시다그려."

이씨부인은 딸을 판 돈 육천 냥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서울로 올라와 허판서에게 오천 냥을 들여놓고 김진사를 내달라고 하였다.

허판서는 오천 냥을 받고 과천 현감을 파직시키고 또 생트집을 잡아 무단히 양반을 속였으니 딸마저 데려오지 않으면 내놓지 않겠다고 하니 이씨부인은 남의 집 방을 얻어 바느질 품을 팔아서 김진사의 옥중 뒷바라지를 했다.

한편 채봉은 이름을 송이로 고치고 기생이 되었으나 송이를 찾는 사람을 다 만나지 않고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으니 그 조건을 이행하는 사람이면 만나거니와 몸까지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이란 강필성에게 보낸 답시인, '전하나니 그대는 허망한 양대 꿈 버리고 힘써 글을 익혀 앞날에 한림학사 되소서을 써서 방문 위에 붙이고, 이 시는 어떤 편지의 답시인데 어떤 편지 시문(詩文)의 답시인가를 알아내라는 것이다. 즉 이 답시를 쓰게 한 첫 번 편지 시문을 알아내라는 조건이었다. 강필성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이런 글뜻을 알아낼 것인가.

젊은 오입장이들은 그 글을 알아내려고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열 사람이 또 백사람에게 물어보게 되어, 오입장이나 아니나를 막론하고 이 싯구를 중이 나무아미타불을 외듯 외게끔 되었다.

한편 강필성은 김진사가 서울서 내려오면 혼인을 하겠거니 여기고 기다리다가 김진사가 내려와서 집안이 모두 서울로 이사해 버렸다는 소문을 듣고 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중 하루는 어떤 친구가 와서 평양바닥 오입장이가 외고 다니는 싯구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연구해 보라고 권하였다.

강필성은 이것은 채봉이가 내게 보낸 글인데 세상에 이 글귀가 돌아 다닌다니 희한한 일이다. 이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터이니 내 한 번 시험해 보리라 생각하고 그 후 송이란 기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필성이 들어가다 방문 위를 보니 필적이 채봉의 것이라 더욱 이상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은 잠시 무색한 얼굴로 앉았다가 송이가 먼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글 사유를 푸신다니 말씀해 보십시오."

한다. 옆에 기생 어미가 있으므로 사실을 밝히지 못한 것이었다.

필성이 글귀를 맞히니 송이는 눈물을 머금으며,

"맞히셨습니다."

하고 기생 어미를 보고 말했다.

"어머니 제가 할 말도 있고 또 오늘은 강서방님을 모실 것이니 장국이나 장만해 주시오."

송이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가 기생 어미가 들여놓은 장국 한그릇을 내려놓고 말했다.

"첩은 오늘 기생의 몸이 되었으나 조금도 절개를 잃지는 않았으니 더럽다 마시고 장국을 잡순 후 오늘 가약을 맺도록 하소서. 첩이 오늘 이같이 된 내력은 이따가 밤중에 말씀드리리다."

"전일에는 규수라 함부로 말을 못했지만 오늘은 송이로 대접할밖에 없네."

강필성이 신분을 따라 대접하려고 하니 송이는 분한 생각이 치밀며 뜨거운 눈물이 치마 앞자락에 뚝뚝 떨어졌다. 강필성이 위로하였다.

"여보게, 자네 몸이 오늘은 기생이 되었지만 나는 전날 맹세한 마음을 변치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게."

"첩은 부모로 인하여 몸이 기생으로 팔렸습니다."

"내 집 형세가 빈한해서 자네 몸을 빼낼 수가 없네그려."

"그것은 염려 마십시오. 첩이 형편 보아 처신하겠습니다."

채봉이 그 동안의 내력을 이야기한 뒤 밤이 깊어 금침 속으로 들어가니 원앙이 푸른 물에 깃들임과도 같았다.

이때 평양감사 한 사람이 내려오는데 명망이 조야에 진동하였다. 하루는 송이의 서화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감사가 송이를 부르더니 송이의 필적을 보고 놀랐다.

"글씨 보고 너를 보니 과연 명예가 널리 펴짐은 당연하도다. 네 위인 보니 기생 될 아이는 아닌데 무슨 내력으로 오늘 기생의 몸이 되었느냐"

송이는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대답했다.

"생은 본래 의주 태생으로 평양 와서 살다가 부모의 빚을 벗노라 스스로 몸을 팔았습니다."

"허허 효녀로다. 그러면 내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공무가 들어오면 친히 못 보고 집안 사람더러 대신 보라고 하는데 역시 믿을 수가 없으니 네가 내 앞에서 전후 일을 살펴 보고 하겠느냐"

송이는 감사 덕을 기생을 면하게 된 것은 다시 없는 기쁘고 다행히 생각되었으나 주야로 잊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소식과 강필성을 만나지 못함이다.

그러나 강필성이 송이를 만나기 위하여 이방이 되고자 이리저리 운동을 해서 감사를 뵈니, 이 감사가 보고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였다.

송이 하루는 필성이 오린 글씨를 보고 이상해서 감사에게 물었다.

"요사이 공사 들어온 것을 보면 전자의 글씨와 다른데 이방이 갈렸습니까."

"갈려서 강필성이란 아이가 하게 되었단다. 그 글씨 잘 쓰지"

이 말을 들은 송이는 크게 기뻐하며 어떻게 한번 만나 보든지 서신왕래라도 할까 하고 그 기회를 얻고자 하였으나 좀처럼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하루는 추구월 보름께라 월색은 명랑해서 남창에 비치었고 공중에서 떼기러기는 짝을 찾아 날아가고 동산 송림 사이에서는 두견이 슬피 우니 무심한 사람도 마음이 상하는데 독수공방 송이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송이는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추풍감별의 넉 자를 써놓고는 붓대를 쉴새없이 움직여 갔다.

(중략)

어젯밤 바람소리 금성이 완연하다.
고침단금 홀로 누워 상사몽 훌쩍 깨어
죽창을 반개하고 맥맥히 앉았으니
만리장공에 하운이 흩어지고
천년강산에 찬 기운 새로워라
심사도 창연한데 물색으로 유감하다
정수에 부는 바람 이한을 아뢰는 듯
추국에 맺힌 이슬 별루를 머금은 듯
잔류남교 봄바람에 춘앵은 이귀하고
소월동령 달밝은데 추원이 슬피 운다.
임 여의고 썩은 간장 하마터면 끊이리라.
춘에 기던 일 예런가 꿈이런가
세우사창요적에
백년 살자 굳은 언약
단봉이 높고 높고 파수가 깊고 깊어
무너진 줄 몰랐으니 끊어질 줄 알았으랴
양신에 다마함은 예로부터 있건마는
지이인하는 조물의 탓이로다
홀연히 부는 바람 화총을 요동하니
웅봉(雄蜂)자접(雌蝶)어이하여 애연히 흩단 말가

(중략)

그리고 나서 상사에 피곤해서 잠깐 조는 사이에 꿈을 꾸었다. 몸이 나비가 되어 두 날개를 치고 바람을 따라 중천에 떠나가며 사면을 살펴보니, 꿈에도 잊지 못하던 강필성이 빈방에 홀로 앉아 전날의 답시를 내놓고 한 번 읊어 보고 두 번 읊어 보고 한다.

송이는 달려들어 마주 붙들고 울어 버린다.

이감사가 듣고 깜짝 놀라 방에서 나와 보니, 송이가 남창을 열고 책상머리에 엎드렸는데 책상 뒤에서 무엇인가 써서 펼쳐 놓았으므로 이상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그 글을 들여다 보았다.

"허어,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감사는 송이를 흔들어 깨웠다.

"송이야, 내가 너를 친딸같이 귀엽게 여기고 있으니 무슨 사정이 있거든 내게 말을 해라. 그러면 내가 주선해 주마."

이리하여 송이의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이감사는 송이의 손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하는 것이었다.

"울지 마라. 내 어찌 네 소원을 풀어 주지 못하겠느냐 이제 알고 보니 강필성도 그 때문에 이방으로 들어왔구나. 내일 강필성을 불러오도록 하마. 그는 그렇거니와 네가 만일 허씨와 결친했더라면 너의 집이 멸문을 당할 뻔했다."

"여쭙기 황송하오나 허씨댁이 어찌되었습니까"

"역적 모의를 하다가 죽음을 당했는데 그 집 문객들은 귀양을 가게되고 친척은 화를 입었다."

"그러면 제 아비는 화를 면하겠습니까"

"내 아비야 관계 있느냐 일찍 자거라. 내일 아비 소식도 알아주마."

이튿날 강필성이 감사의 부름을 받고 별당으로 들어가니 이감사는 방으로 불러 들여 앉히고는 송이를 불렀다.

"너희 둘을 앉혀놓고 보니 천생배필이다. 송이 부모를 내려오게 한 후 내가 중매가 되어 혼인을 시킬 테니 그리 알아라. 그러나 불가불 서로 그리던 정화는 잠시라도 아니할 수 없을 테니 건넌방으로 건너들 가거라."

허판서는 김진사를 옥에 가두고 옥귀신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마음을 먹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고 그 문인은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당하였다.

김진사는 비록 허판서의 주선으로 과천 현감이 되었으나 돈으로 한 것이고 또 딸을 달라는 것을 주지 않아 옥중에서 고생한 것으로 보아 허판서와 한 통속이 아닐 것인데다가 이감사가 변명서를 조정에 올렸으므로 조정에서도 의심치 않고 무죄 방면하였다.

김진사 내외는 평양으로 내려오자 그 길로 이감사 집으로 갔다.

김진사 내외는 본 이감사는 옛 친지를 대하듯 반갑게 맞아 주며 별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송이를 만나보게 해주었다.

"대감, 대감의 하해 같은 은혜 갚을 길이 없소이다."

내외의 인사를 받고 이감사는 껄걸 웃었다.

"사소한 것을 은혜라고 할 거 있소 무엇보다도 송이의 혼인을 하루바삐 해야겠소."

길일을 택해 이감사 집에서 혼인을 하게 하니, 김진사 내외의 고마워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웃과 이웃 고을에서까지도 소문을 듣고 감사를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하였다.

김진사 내외는 사위 강필성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김진사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얘 필성아, 너 보기가 실로 면구스럽다만 전사는 다 가운이요 노부의 망년이니 마음에 조금도 어떻게 여기지 말아라."

필성은 처음 생각을 하면 원망스럽고 미운 생각도 들었으나 자리를 다시 하고 말하였다.

"이는 다 저의 불리함에 연유하여 된 일이니 어찌 황송치 않겠습니까"

옆에서 이씨부인도 한 마디 한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 내외의 허물을 말함이라 더욱 면구스럽네."

이러고는 한층 더 사위를 사랑하였으니 강필성 내외의 기뻐함이야 어찌 다 여기에 기록할 수 있으랴.

그 후 이감사는 필성의 위인을 사랑해서 나라에 천거하여 당하관을 시켜 주었다.

요점 정리

연대 : 미상(순조(純祖)∼철종(哲宗) 연간의 작품으로 짐작)
작자 : 미상
형식 : 애정 소설, 염정 소설.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이라고도 함
성격 : 사실적, 비판적, 진취적
주제 :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고, 진취적인 한 여성이 부모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 권세에 굴하지 않는 순결하고 진실한 사랑
특징 : 이 작품은 '채봉'이라는 한 여성이 출세욕에 눈이 먼 부모 때문에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으로 특히 속물적인 부모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그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을 비교적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형상화한 이 작품은 다른 고전 소설과는 달리 주인공 채봉이 주체적 의지에 따라 행동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여성관에 근접하고 있다. 또한 돈을 주고 벼슬을 사는 풍조를 통해서 조선 후기 타락한 사회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사건의 상당 부분을 우연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고전 소설과 관성에서 탈피했고, 현실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개와 함께 사실에 가까운 표현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 : 내용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진사의 딸 채봉(彩鳳)과 선천부사(宣川府使)의 아들 강필성(姜弼成)은 약혼한 사이였는데, 벼슬에 눈이 어두운 김진사가 딸 채봉을 허판서의 첩으로 주려고 하여 그녀는 평양 기생이 되는 등 두 가 갖은 고난을 겪은 끝에 마침내 숙원을 이룬다는 줄거리이다.
의의 : 조선시대 소설에서는 드물게 보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무엇보다도 우연성과 비현실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고전 소설의 말미에 놓이는 작품으로 내용 중에 채봉이 지어 부르는 가사체(歌辭體)의 '추풍감별곡'이 있으며, 동명(同名)의 서도창(西道唱)이 따로 있다. 1962년 '현대문학(現代文學)' 11월호에 김기동(金起東)이 이 소설을 교주(校註) 발표한 바 있다.

내용 연구

당랑규선(螳螂窺蟬) : 눈앞의 이익에만 정신이 팔려 뒤에 닥친 위험을 깨닫지 못함을 이르는 말. 사마귀가 매미를 덮치려고 엿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참새가 자신을 엿보고 있음을 몰랐다는 데서 유래한다. 유사어로 당랑박선·당랑재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