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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兩班傳)

수로보니게 여인 2009. 4. 30. 21:03

 

조선의 소설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양반전(兩班傳) 

 

양반이란, 사족(士族)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旌善郡)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監使)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의 장부를 열람하고 대노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게 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가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걸."

  그 마을에 사는 한 부자가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비천(卑賤)하지 않느냐. 말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엉금엉금 가서 정하배(庭下拜)를 하는데,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우리는 노상 이런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 이제 동네 양반이 가난해서 타먹은 환자를 갚지 못하고 시방 아주 난처한 판이니 그 형편이 도저히 양반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차 그의 양반을 사서 가져보겠다."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 보고 자기가 대신 환자를 갚아 주겠다고 청했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 그래서 부자는 즉시 곡식을 관가에 실어가서 양반의 환자를 갚았다.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했다. 군수가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또 환자를 갚게 된 사정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짧은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이라고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고,

  "귀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요?"

하고 말했다. 양반은 더욱 황공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아뢴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읍지요. 동리의 부자 사람이 양반이올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반을 모칭(冒稱)해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두지 않으면 송사(訟事)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약속을 해서 군민(郡民)으로 증인을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본관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그리고 군수는 관부(官府)로 돌아가서 고을 안에 사족(士族) 및 농공상(農工商)들을 모두 불러 관정(官庭)에 모았다.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서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섰다.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건륭(乾隆) 10년 9월  일

 위에 명문(明文)은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은 것으로 그 값은 천 석이다.

  오직 이 양반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가리켜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이것이 '양반'이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옛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늘 오경(五更)만 되면 일어나 황(黃)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동래박의(東萊博義)를 얼음 위에 박 밀듯 왼다.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입으로 설궁(說窮)을 하지 아니하되, 고치· 탄뇌(叩齒彈腦)를 하며 입안에서 침을 가늘게 내뿜어 연진(嚥津)을 한다. 소맷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먼지를 털어 물결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양치질해서 입내를 내지 말고,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끄은다. 그리고 고문진보(古文眞寶),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를 쓰며,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훌쩍 떠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화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성내서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노복(奴僕)들을 야단쳐 죽이지 말고, 마소를 꾸짖되 그 판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제사 지낼 때 중을 청해다 재(齋)를 드리지 말고,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 말할 때 이 사이로 침을 흘리지 말고, 소 잡는 일을 말고, 돈을 가지고 놀음을 말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품행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증서를 가지고 관(官)에 나와 변정할 것이다.

  성주(城主) 정선 군수(旌善郡守)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書)

  이에 통인(通引)이 탁탁 인(印)을 찍어 그 소리가 엄고(嚴鼓) 소리와 마주치매 북두성(北斗星)이 종으로, 삼성(參星)이 횡으로 찍혀졌다.

  부자는 호장(戶長)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머엉하니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라는 게 이것뿐입니까? 나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무어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 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는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나를 장차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연암집(然巖集)> 


요점 정리

 지은이 : 박지원(朴趾源) / 이우성· 임형택 옮김
갈래 : 한문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구성 : 단순 구성으로 정선군의 한 양반이 가난하여 환곡을 갚지 못하자, 감사와 아내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이를 알게 된 마을의 한 부자가 환곡을 갚고 양반을 샀다. 군수가 이러한 사정을 알고, 두 사람 사이의 매매 사실을 군민으로 증인으로 삼고 증서를 만들었다. 증서의 내용은 양반이라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와 권리들을 열거하고 있다.

발단 - 전개 - 결말의 3단 구성
문체 : 번역체, 산문체, 문어체
배경 : ① 시대적 - 18세기 ② 공간적 - 정선군 ③ 사상적 - 실학사상
주제 : 양반들의 공허한 관념·비생산성·특권 의식에 대한 비판, 양반의 무능력과 위선에 대한 풍자
특징 :
① 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 모습을 비판 풍자함.
② 당시의 시대상의 반영으로 평민 부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함.
③ 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근대 의식을 보여 줌.
④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이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남
⑤ 소재를 현실 생활에서 취하고 사실적인 태도로 묘사함.
⑥ '도둑놈' 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횡을 일삼는 양반을 풍자적으로 고발함.
등장인물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복잡하다.


 

양반이란, 사족(士族 : ①조선 시대 사농공상의 사민 가운데 사의 집안이나 그 자손. ②선비나 무인(武人)의 집안. )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旌善郡)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매양[언제나, 번번이]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렸다[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서 인사치레를 신경 쓰는 양반 계층의 허례허식에 대한 비판 의식이 깔려 있음].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각 고을의 사창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 주던 제도. 환곡(還穀)]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섬. 용량의 단위로 열 말, 또 중량의 단위로 백이십 근)에 이르렀다(양반의 지위에 걸맞지 않게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조선 후기 양반의 경제적 몰락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 설정이다. 또한, 무능한 양반을 묘사한 것이지만 천 석이란 엄청난 양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 이런 양반들에게만 집중되었다는 면을 고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강원도 감사(監使)가 군읍(郡邑)을 순시(巡視) : 돌아다니며 사정(四正)을 보살핌. 또는 그런 사람)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 : 각 고을의 사창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 주던 제도. 환곡(還穀))의 장부를 열람하고 대노(크게 노함)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 : 원문에는 '군흥(軍興)'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환곡을 의미하는 것으로  환곡은 원래 국가 비상시를 대비한 군량임)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게 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가 없었다.[속수무책(束手無策) :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함]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일을 하여 갈 방법과 도리.)를 차리지 못했다(글 읽는 것밖에 해 본 일이 없는 양반이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현실생활에 무능력한 양반의 단면을 보여 주는 대목)그 부인이 역정[성, 화]을 냈다.

  "당신은 평생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고을의 환곡을 갚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요(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무능력한 양반의 모습을 아내의 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는 박지원의 또 다른 작품인 '허생전' 의 '허생' 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쯧쯧 양반, 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걸."[양반의 무능과 비생산성, 남편의 무능을 질타]

  그 마을에 사는 한 부자가 가족들과 의논하기를,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나는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비천(卑賤)하지 않느냐(양반은 가는 데마다 상이요, 상놈은 가는 데마다 일이라. : 여기서 양반의 의미는 대접받는 존재이므로 편하게 지내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고, 고생스럽게 지내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괴롭다는 말임.사회적 지위는 낮아도 경제적 지위는 높은 당시의 신흥 상공인 계층의 모습을 반영한 인물 설정이다. 대구 대조적 표현). 말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굽신굽신 두려워해야 하고, 엉금엉금 가서 정하배(庭下拜 : 뜰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것)를 하는데, 코를 땅에 대고 무릎으로 기는 등 우리는 노상 이런 수모를 받는단 말이다[상민들이 양반으로부터 받는 수모이자 양반을 사게 된 동기임]. 이제 동네 양반이 가난해서 타먹은 환자[각 고을의 사창에서 봄에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되돌려 받던 제도, 환곡]을 갚지 못하고 시방 아주 난처한 판이니 그 형편이 도저히 양반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차 그의 양반을 사서 가져보겠다.(경제적인 여유를 지니게 된 부자들이 돈으로 양반 직을 사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 보고 자기가 대신 환자를 갚아 주겠다고 청했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했다[신분질서제도의 동요, 당시 사회에서는 경제력에 따라 신분이 달라짐, 당시 양반의 경제적인 압박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양반이 옥에 갇히기가 두려워 아무런 고민 없이 신분을 팔고 있음]. 그래서 부자는 즉시 곡식을 관가에 실어가서 양반의 환자를 갚았다.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했다. 군수가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또 환자를 갚게 된 사정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주로 병졸이나 하인이 쓰던 털로 검고 두껍게 만든 모자.)를 쓰고 짧은 잠방이(가랑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짧은 남자용 홑바지)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윗사람에 대한 자기의 겸칭]'이라고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부자에게 양반을 팔았기 때문에 원래 양반이 평민처럼 행동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양반다움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풍자적이다, 부자에게 양반의 신분을 팔고 나서 스스로 평민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벙거지' 와 '짧은 잠방이'는 평민의 신분을 나타내는 차림이다. 희화화 : 어떤 인물의 외모나 성격, 또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풍자하고 있다. 양반이란 신분에 의지한 허울일 뿐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고,

  "귀하[원래 양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요?"(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신임 군수들이 몸소 찾아가 인사를 드릴 정도로 덕망이 높은 사람이 갑자기 평민의 옷차림을 하고 길에 엎드려 있는 까닭을 의아해하고 당혹해하며 묻는 말이다.)

하고 말했다. 양반은 더욱 황공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아뢴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양반의 신분 변화를 알 수 있음]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습지요. 동리의 부자 사람이 양반이올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반을 모칭(冒稱 : 성명을 거짓으로 꾸며 댐.)해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인색(吝嗇 :체면 없이 재물만 아끼어 꽤 더러움)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양반]의 어려움을 도와주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신분이 높고 낮은 것을 말하며 계급 사회에서는 특권이 많은 높은 신분을 사모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지혜롭다고 했다. 양반의 특권 의식을 비꼬는 풍자적 표현임).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송사(訟事 :백성들끼리의 분쟁을 관청에 호소하여 그 판결을 구하는 일.)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약속을 해서 군민(郡民)으로 증인을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믿음성 있게) 하되 본관[군수]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신분제 사회의 동요와 지배 질서를 유지해야 할 관료들의  타락성을 보여주는 말로 군수가 직접 양반 신분을 사고파는 일에 증인이 되고 증서를 남기겠다고 한 것은 당시 이런 양반 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임]

  그리고 군수는 관부(官府  : 관가)로 돌아가서 고을 안에 사족(士族) 및 농공상(農工商)들을 모두 불러 관정(官庭 : 관가의 뜰)에 모았다. 부자는 향소(鄕所 : 유향소, 고려, 조선 시대에 지방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관 )의 오른쪽에 서고, 양반은 공형(公兄 : 삼공형, 조선 시대에 각 고을의 구실아치, 호장, 이방, 수형리를 이른다)의 아래에 섰다.[부자와 양반의 뒤바뀐 처지를 보여줌]

 

그리고 증서를 만들었다.

 건륭(乾隆 :1745년(영조 21년). 건륭은 청나라 고종의 연호) 10년 9월  일

 위에 명문[明文 :증서(證書), 글로 명백히 기록된 문구]은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은 것으로 그 값은 천 석이다.

  오직 이 양반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가리켜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 : 벼슬의 품계에 붙이는 칭호)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이것이 '양반'이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양반 권위의 상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옛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늘 오경(五更)만 되면 일어나 황(黃)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 눈은 가만히 코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동래박의[東萊博義 : 송(宋)나라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대한 사평(史評)]를 얼음 위에 박 밀듯 왼다[둥그런 박이 빙판 위에서 잘 나가듯이 멈춤 없이 유창하게]. 주림을 참고 추위를 견뎌 입으로 설궁(說窮 : 살림의 구차한 형편을 남에게 말함 )을 하지 아니하되, 고치·탄뇌(叩齒彈腦 : 도가의 양생법으로 이를 여러 번 마주치는 것을 고치,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을 탄뇌라고 한다)를 하며 입안에서 침을 가늘게 내뿜어 연진(嚥津 : 도가의 양생법 중 하나 )을 한다. 소맷자락으로 모자를 쓸어서 먼지를 털어 물결 무늬가 생겨나게 하고, 세수할 때 주먹을 비비지 말고, 양치질해서 입내를 내지 말고, 소리를 길게 뽑아서 여종을 부르며, 걸음을 느릿느릿 옮겨 신발을 땅에 끄은다. 그리고 고문진보(古文眞寶 : 송나라 말기에 황견이 주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시문을 모아 엮은 책), 당시품휘(唐詩品彙 : 중국 명나라의 고병이 편찬한 당시 선집)를 깨알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를 쓰며, 손에 돈을 만지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훌쩍 떠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화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성내서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노복(奴僕)들을 야단쳐 죽이지 말고, 마소를 꾸짖되 그 판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제사 지낼 때 중을 청해다 재(齋)를 드리지 말고[양반의 미혹한 모습과 서민들의 미신적인 형태에 대해 비판하는 것임], 추워도 화로에 불을 쬐지 말고, 말할 때 이 사이로 침을 흘리지 말고, 소 잡는 일을 말고, 돈을 가지고 놀음을 말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품행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증서를 가지고 관(官)에 나와 변정[옳고 그름을 가리어 바로잡음]할 것이다(양반이 규범을 어길 경우 잘잘못을 가려 양반의 신분을 뺏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지만, 작자와 대변자인 '군수'가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는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양반의 편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므로, 까다로운 법도와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양반의 위선적인 모습이 자세히 열거되어 있다. 이는 다음 양반 매매 증서에 나오는 내용과 대조를 이루면서 양반이 지켜야 할 도리를 통해서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는 이면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성주(城主) 정선 군수(旌善郡守) 화압[花押 : 수결(手決). 사인(sign)].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書)

  이에 통인(通引 : 관아의 심부름꾼 )이 탁탁 인(印)을 찍어 그 소리가 엄고(嚴鼓 : 시간을 알리는 북) 소리와 마주치매 북두성(北斗星)이 종으로, 삼성(參星)이 횡으로 찍혀졌다. [도장 소리가 엄고 소리, 즉 임금 행차 시 북소리와 같이 위엄이 있고, 도장이 마치 밤하늘의 별 모양인양 벌려 있음을 묘사하였다. 이는 양반 신분을 산 부자에게 위압감을 주는 동시에 관의 횡포를 암시한 표현이다]

  부자는 호장(戶長)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머엉하니[실망하는 마음이 담긴 표정/ 실망감]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라는 게 이것뿐입니까?[연극 대본으로 바꾸어 쓸 때, 아연실색하여, 어리둥절하여, 어안이 벙벙하여,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나는 양반이 신선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무어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양반 신분을 사서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는 양반과 부자가 동시에 풍자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양반계층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줌]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 : 문과  과거의 합격증 )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 자루인 것이다(문과에 급제하기만 하면 저절로 재물이 생기게 된다는 내용으로. 권력을 남용하여 재물을 긁어모으는 양반의 비도덕적 모습을 풍자).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 : 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조상의 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 : 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리는 것)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벼슬아치의 행차 때 햇빛을 가리는 일산을 씌워 주니 얼굴이 볕에 타지 않아 희어지고, 하인들이 떠받들어 모시니 기분이 흡족하게 되고. 문벌의 덕을 입어 과거도 거치지 않고 큰 벼슬을 갖게 되면 호강하게 되고, 권력을 남용하여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양반의 모습을 풍자한 내용이다.),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힘을 믿고 강제로 행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양반 신분의 비도덕적 행위를 고발하는 문장으로 양반의 이중적 속성을 스스로 폭로하도록 하고 있음]

부자는 증서[양반 매매 증서에 담긴 작자의 의도는 첫 번째 매매 증서는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나열함으로써 형식에 얽매인 양반들의 모습을 희화화했고, 두 번째 매매 증서는 양반이 개인적 이득을 위해 사사로이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폭로하고 풍자함]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생각하던 바와 아주 달라 허망하군 / 양반의 실상을 파악한 상민 부자의 현실 인식). 나를 장차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양반을 사서 신분 상승을 이루려던 부자가 양반들의 작폐를 듣고 양반되기를 포기하는 부분이다.  양반을 '도둑놈'이라 표현하는 대목에서 부패한 양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批判)과 풍자(諷刺)가 절정에 이른다. 재력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루려던 부자가 스스로 양반되기를 포기하는 장면이다. '도둑놈' 이라는 표현을 통해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풍자 정신이 돋보인다)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부자 자신이 추구했던 존귀라는 가치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깨달음.)[양반의 전횡에 대한 비판, 지배 계층의 무능함 폭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양반층에 대한 폭로, 양반의 무위도식하는 생활에 대한 비난]

작품개관 :

 '양반전'은 조선 후기 소설사의 흐름을 보여 주는 지표가 되는 작품으로 이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상이 어떻게 문학에 반영되었으며, 작가의 비판 정신이 문학을 통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었는지 살필 수 있다. 이 작품은 (연암집)의 방경각외전에 실린 7편의 전(傳)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데, 특히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인간상(무능하기 짝이 없는 양반, 부패한 관료, 무지한 천민 등)을 해학적이고 풍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몰락하는 양반과 부상하는 평민을 등장시켜 삶의 발랄함을 부각시키려는 해학적인 이 작품은 무능한 양반과 부자가 된 평민 사이에서 이루어진 양반 매매사건을 소재로 해서, 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는 전형적인 양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교묘하고 익살스런 표현은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며, 그러한 표현이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의 사상 :

  조선 후기 실학의 전반적인 이념은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집약된다. 이 중에서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은 이용후생 이념에 집중되어 있다. 연암의 실학적 이념은 '허생전'과 '양반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작품에 두루 반영되어있다. 이러한 여러 작품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연암이 일상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등의 도움도 주지 못하는 성리학적 수신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양반들이 지키는 규범 중에는 실생활에 불필요한 것이 많다는 점과, 양반들이 누리는 권세가 서민들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그 규범과 권세를 부당하다고 파악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시대상 :

 조선 후기는 임진, 병자 양란의 후유증으로 조선 전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동요하기 시작했으며, 상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발달 등으로 평민 부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한편 당시의 지배 관료층은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공허한 명분에 얽매여 있었으며, 관료 사회의 부패 또한 극심하였다. '양반전'은 이와 같은 조선 후기 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지도방법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읽도록 지도한다.

 

양반의 두 개의 얼굴

 

<양반전>은 대개의 고소설이 그렇듯이 전(傳)을 표방했지만 전혀 전의 형식이 아니다. 전은 본래 역사책에서 인물의 일대기를 기록하던 문학 갈래를 말한다. 따라서 '-전'을 표방한다면 <홍길동전>처럼 그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 놓는 것이 기본인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양반전>의 주인공인 정선 양반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으니, 한 개인의 삶을 조망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그리려는 것인가

건륭 10년(서기 1745년) 9월 0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았으니 그 값이 곡식으로 천 석이나 된다. 원래 양반이란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글만 읽는 것은 선비요,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라 하고, 덕이 있는 자는 군자라고 한다. 무반은 서쪽에 서고 문반은 동쪽에 선다. 그래서 이것을 양반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너는 맘대로 골라서 하면 된다.


매매 문서의 첫 대목인데, '특정한 양반인 한 인물'에 주목하지 않고 양반 일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양반은 다시 여러 이름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이름이 여럿이라는 것은 곧 역할이 여럿이라는 뜻이다. 선비는 책을 읽는 사람이고, 대부는 정치하는 사람이며, 군자는 덕이 있는 사람이고,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아우른 개념이라고 했다. 양반에게 붙여진 이런 다양한 이름들은 결국 양반이면 꼭 해야하는 역할인데, 문제는 '아무것이나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한 데서부터 발생한다. 만일 그리하여,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선비를, 덕이 없는 사람이 군자를 취하게 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이것은 정명(正名)에 어긋나는 것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첩경이 된다. 박지원은 짧은 소설 한 편으로 그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나선 것이다.
절대로 비루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옛사람을 본받아 그 뜻을 숭상할 것이다. 새벽 오경(새벽 3-5시)이면 항상 일어나 촛불을 돋우고 앉아서 눈으로는 코끝을 내려다보고 무릎을 꿇어 발꿈치는 궁둥이를 받친다. <동래박의-송나라의 여조겸이 지은 책으로 역사에 대한 논평이 담겨 있음>를 마치 얼음 위에 박을 굴리듯이 술술 외야 한다. 배가 고픈 것을 참고 추운 것을 견디어 내며 입으로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마주 부딪치면서 뒤통수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작은 기침에 입맛을 다신다. 소맷자락으로 관을 쓸어서 쓰는데, 먼지 터는 소맷자락이 마치 물결이 이는 듯하다. 손을 씻을 때 주먹을 쥐고 문지르지 않고 양치질을 해서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천한 신분의 부자가 귀한 신분의 양반이 되기 위해 '꼭 해야할 일'을 열거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두고 양반의 허식이라는 둥, 지저분한 행태라는 둥 말들이 많지만, 잘 따지고 보면 대체로 공부하고 덕을 쌓는 일임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어려운 책도 술술 읽으며 행실을 조신하게 한다는데 누가 시비할 것인가. 결국 이 대목은 앞서 살핀 양반의 여러 이름 중 두 가지, 즉 선비와 군자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열거되자 부자는 매우 곤혹스러워 이렇게 항변한다.
"양반이란 겨우 이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던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별로 신통한 맛이 없군요. 더 좀 좋은 일이 있도록 고쳐 주십시오."


그래서 두 번째 문서가 등장한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조상의 음덕으로 얻은 벼슬)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 과거에 의하지 않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림 )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감사나 수령들이 부임할 때 받던 우산 모양의 의장)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서 기생이 귀고리로 단장하고, 뜰에는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능히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디리붓고 머리끄뎅이를 회회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가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보다시피 양반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려운 학문을 열심히 하여도 별다른 보상이 없다고 했던 앞 문서에 비한다면, 이 부분은 참으로 유혹적이다.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벼슬을 하고 큰돈을 벌 수 있으며, 설령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시골에 틀어박혀서 일반 백성들을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다니 이 대목은 바로 양반의 여러 이름 중 대부처럼 벼슬을 통해 특권을 얻은 자에 해당되는 부분인데, 앞의 문서와 히 상반된 내용임을 기억하자. 앞의 문서에 나타난 양반이 열심히 공부하고 행실을 닦아도 가난하게 사는 딱한 양반이었다면, 이 문서에 나타난 양반은 공부도 대충하고 행실은 개차반이면서도 제 이익만은 꼬박꼬박 챙기는 도둑놈 양반인 셈이다.

앞 문서의 양반은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면서 먹을 것도 못 챙기는가 하면, 뒷문서의 양반은 의무는 게을리하면서 특권을 독점한다. 이 소설에서는 간단한 문서 두 장으로 그런 양반의 두 얼굴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혹시 그 두 얼굴 중에 어느 쪽이 진짜 양반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느 쪽도 양반의 진면목은 아니다. 박지원이 생각하는 양반은 열심히 수행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는 사람인데, 이제 시대가 변하여 그런 아름다운 조화는 물거품처럼 되고 말았다. 한편에서는 촌구석에 틀어박혀 열심히 공부하지만 아무 벼슬도 못하고 생계에 허덕이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학문이니 덕행이니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면서도 제 실속은 다 챙기는 파렴치한 사람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양반전>에서는 그런 두 양반상을 다소 과장하여 보여 주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말 그런지 궁금하다면, 등장인물별로 살펴보자.


정선 고을의 양반은 얼마나 덕망이 있었던지, 군수가 부임해 올 때마다 그에게 인사를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생계 대책도 세우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아내로부터 '한 푼어치도 못되는 양반'이라며 핀잔만 받았을까. 공간 배경으로 강원도 정선을 설정한 것부터가 출세와는 담을 쌓은 양반을 설정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이다.
이와 달리 새로 부임한 군수는 같은 양반이면서도 영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같은 신분의 양반을 보호하기 위하여 교묘한 문서 두 장으로 천한 부자의 재산만 축내게 하고는 일을 마무리 짓고 있다. 군수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낮은 신분의 인물을 골탕 먹인 예라 하겠다.
이렇게 보면, 바로 정선 양반과 정선 군수가 문서에 등장하는 두 얼굴의 양반을 대변하는 예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또 어떤 인물인가 양반의 온갖 추악한 행태가 열거되자 그는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라며 달아나 버렸다. 끝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없다며 도망가 버린 점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요즘 말로 하면 휴머니스트라 하겠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두 양반의 합작에 의해 재산만 털리고 마는 어리석은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은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처지에 놓인 몰락 양반과,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제 잇속만 챙기는 부도덕한 양반, 도둑놈은 되기 싫다며 달아나는 착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함께 보여주면서 당시 현실을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이강엽, 고교 독서평설(통권 106호). 지학사 )

'양반전'의 비판 대상 
 

'양반전'은 '자서(自序)'에서 밝혔듯이 양반이 지조를 잃고 명절(名節)을 닦지 않으면서 가문을 상품처럼 팔았던 세태를 보고 창안한 작품이다. 연암이 여기서 비판의 대상으로 았던 존재는 우선 정선 양반처럼 무기력하고 무능하면서 심지어 신분을 상품화하고 있는 양반과 현달을 했다거나 실세를 했거나 간에 작위나 신분을 이용하여 무단을 자행하는 양반들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군수가 이 매매 사건을 무효화시켰다 해서 그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양반이라고 보는 견해는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관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선입견의 작용일 뿐 작품 속에서 굳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정덕(正德)을 닦은 선비라야 받을 존귀를 부로써 얻겠다고 하는 천부의 속물주의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연암은 조선 후기 서민들의 인간적 자각으로 나타났던 신분 상승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문제의 초점은 현실 양반들의 타락해 버린 세태와 신분 상승의 분위기 속에서 천부가 자신의 부로써 존귀와 양반이 되겠다고 하는 속물 주의적 의식이다. 연암이 '양반전'에서 관심을 보인 것은 양반다운 양반의 부재와 진정한 의미의 양반, 즉 정덕, 이용 후생의 실학 정신에 바탕을 둔 양반의 상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연암은 계급 타파, 봉건 체제의 와해, 양반의 형식주의 타파 등의 사상을 '양반전'을 통해서 형상화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연암은 자신이 추구했던 양반의 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현실의 양반 군상을 풍자했고, 신분 질서가 와해되는 조선 후기 시대의 배경을 등에 업고 부로써 양반의 존귀를 구하겠다는 천부의 무지를 해학적으로 드러냈다. (출처 : 김태균, 양반전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