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체가와 악장/ 한림별곡,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 경기하여체가(景幾何如體歌), 별곡체(別曲體), 별곡체가(別曲體歌) 등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후렴에 나오는 "경(景)긔엇더니잇고"라는 구절을 근거로 경기체가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원과 발생에 대해서는 다른 갈래보다 불확실하여, 향가, 고려속요, 민요, 중국의 사(詞)나 사륙문(四六文) 등 여러 이설이 있다. 그 이전의 시가 양식에서 경기체가의 모태를 여러 가지로 추정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타당성을 확인받을 만한 견해가 없으며 추론에 그치고 있다.
현존하는 작품은 모두 25편으로 그 가운데 고려시대의 것이 3편, 조선시대의 것이 22편으로 13세기 중기부터 19세기 말기까지 분포되어 있다. 조선 전기를 지나면서 현저하게 쇠퇴하여 16세기 중기 이후에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했다.
경기체가의 성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작자와 향유층은 고려 후기의 신흥 사대부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림별곡〉을 지은 여러 유학자들, 〈죽계별곡 竹溪別曲〉과 〈관동별곡〉을 지은 안축이 이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고려 후기에 역사의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부상한 계층으로서 한시 창작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욕구를 경기체가 형식을 이용하여 표출했다. 경기체가는 무신집권기 문인의 현실 도피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했지만, 고려 후기에 등장한 신흥 사대부의 세계관과 미의식의 한 반영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특징으로 주변 사물에 대한 관심, 득의양양하고 도도한 태도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림별곡」/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생들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경기체가.
8장. 〈고려사〉·〈악장가사〉 모두에 고종 때 한림의 제유(諸儒)가 지은 작품이라 한 것으로 보아 〈한림별곡〉 제1장에 나타나는 8명의 문인들이 지은 듯하다. 창작연대는 1215(고종 2)16년경으로 추측되는데 1215년 5월 궁에서 최충헌에 의해
희(鞦韆戱)가 열렸다고 한 것과 〈한림별곡〉의 마지막 장이
광경을 읊은 것을 맞추어 보면 그 시기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한림제유
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 |
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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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漢書 莊老子 韓柳文集 |
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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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卿書 飛白書 行書草書 |
3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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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酒 柏子酒 松酒醴酒 |
4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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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牧丹 白牧丹 丁紅牧丹 |
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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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陽琴 文卓笛 宗武中琴 |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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蓬萊山 方丈山 瀛洲三山 |
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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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唐唐 唐楸子 ?莢남긔 |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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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별곡> 이해하기
<한림별곡>은 고려 고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이 합작한 경기체가의 시초 작품으로 당시 무관들이 정권을 잡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난 문인들이 풍류적이며 향락적인 생활 감정을 현실도피적으로 읊은 노래이다.
기본 음률수가 3.3.4로서, 별곡체라는 독특한 음률과 구법(句法)을 가지는 경기체가의 효시가 되었다. 모두 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시부(詩賦),서적(書籍),명필(名筆),명주(名酒),화훼(花卉),음악(音樂),누각(樓閣),추천(韆)의 순서로 각각 1장씩을 읊어 당시 한림의 생활상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처음 3장까지만 문사들의 수양과 학문에 연관이 있고, 나머지 5장은 풍류라기보다 향락적인 내용으로 되었다. 또한 경기하여체가(景幾何如體歌), 곧 경기체가라는 호칭은 이 노래의 각 연의 끝이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로 되어 있음에서 유래한다.
한림별곡은 당시의 귀족 계급의 생활상이 눈이 부시도록 호화찬란하게 그려져 있다. 곧 시장ㅅ 경, 간발ㅅ 경, 휴수동유 ㅅ 경 등 여덟 폭 병풍의 풍속도와도 같이 눈 앞에 전개된다. 매 장마다, '아아, ......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하는 설의법 종지에 대하여는 '참으로 좋구나' 하는 대답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넘치는 흥과 향락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1장에서 제7장까지는 한자어의 나열로 당시의 명류를 열거하다가 제8장에 가서는 우리말을 중심으로 하는 표현으로 바뀌면서 그들의 정욕적이고 퇴폐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표현 면에서는 한문에 토를 단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자구의 구사가 매우 다듬어지고 조화되어 있다. 전문이 한문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한문이라는 냄새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우리말의 결에 맞게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내용에서의 문학성은 빈약하다 하더라도, 이 조급한 듯하면서도 유유적적한 음악적 운율미는 높이 살만하다.
<한림별곡> 정리
출전 : 악장가사, 고려사 악지, 악학궤범
연대 : 고려 고종 2년(1216)
성격 : 귀족적, 과시적, 풍류적, 향락적
형식 : 경기체가, 별곡체, 8장의 분절체
작자 : 한림제유 (한림의 여러 유학자들이 공동으로 지은 작품)
주제 : 향락적인 풍류생활
내용: 시부(시인), 서적, 명필, 명주, 화훼(花卉), 음악, 누각, 추천
의의 : 경기체가의 최고의 현존 작품, 우리나라 최초의 경기체가
각 장의 소재와 주제
1장 : 시부 - 문장가, 시인 등의 명문장을 찬양함
2장 : 서적 - 지식 수련과 독서에의 자긍을 찬양함
3장 : 명필 - 유행 서체와 필기구 등 명필을 찬양함
4장 : 명주 - 상층 계층의 주흥을 노래함
5장 : 화훼 - 화원(花園)의 서경을 노래함
6장 : 음악 - 흥겨운 주악의 의취를 노래함
7장 : 누각 - 후원의 서경을 노래함
8장 : 추천 - 추천희(그네타기)의 광경을 노래함
=> 그네
예로부터 그네뛰기는 많은 속신을 가진 행위이다. 그네뛰기는 여성의 놀이 중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으므로 개방과 자유를 상징한다. 5월 단오에 붉은 치마를 날리며 그네를 뛰는 여인들은 억압된 일상에서 해방됨을 상징하는데, 흔히 물찬 제비나 하늘의 선녀로 표현된다. 대하소설 속에서도 그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며 많은 사건이 내포되기도 한다.
관동별곡(關東別曲)
고려 말엽의 문인 안축의 경기체가
1330년(충숙왕 17) 작자가 관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읊은 노래이다. 모두 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장은 서사(序詞)로 순찰경(巡察景)을 노래하고, 제2장은 학성(鶴城), 제3장은 총석정, 제4장은 삼일포, 제5장은 영랑호, 제6장은 낙산사, 제7장은 임영(臨瀛), 제8장은 정선의 절경, 제9장은 결사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실재하는 자연을 주관적 흥취로 관념화하여 나열하고, 그 미감을 절도있게 표출함으로써 사대부 특유의 세계관을 작품으로 승화하였다. 작품의 정제되지 않은 형식은 경기체가 장르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1장 - 서사 (순찰하는 모습을 노래)
바다 겹겹 산 첩첩인 관동의 절경에서
푸른 휘장 붉은 장막에 둘러싸인 병마영주가
옥대 매고 일산 받고, 검은 창 붉은 깃발 앞세우며 모랫사장으로
아, 순찰하는 그 모습 어떠합니까
이 지방의 백성들 의를 기리는 풍속을 쫓네
아, 임금의 교화 중흥하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2장 - 학성의 모습
학성 동쪽(안변)의 원수대와 천도섬 국도섬
삼산 돌아, 십주 지나, 금자라가 이고 있는 삼신산
안개 거두고, 붉은 노을 사라져, 바람은 조용 물결은 잔잔한데
아, 높이 올라 바라보는 창해의 모습 그 어떠합니까
계수 돛대 화려한 배에 기녀들의 노래 소리
아, 경승지를 둘러보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3장 - 총석정의 모습
총석정, 금난굴의 기암괴석
전도암, 사선봉엔 푸른 이끼 낀 옛 비석
아야발, 바위돌이는 모양도 이상할사
아, 천하 어디에도 없는 절경이러라
옥비녀 꽂고 구슬 신발 신은 많은 나그네
아, 또다시 찾아오는 모습 어떠합니까
4장 - 삼일포의 모습
삼일포, 사선정의 전설 깃든 좋은 경치
미륵당, 안상저, 서른 여섯 봉우리
밤 깊고, 물결 잔잔, 소나무 끝 조각달
아, 고운 화랑들의 모습이 '나 여기 있소' 하오이다
화랑 술랑도가 바위에 새긴 여섯 글자는
아, 오랜 세월에도 오히려 분명합니다
5장 - 영랑호의 모습
선유담, 영랑호, 신청동 안으로
푸른 연잎 자라는 모래톱, 푸르게 빛나는 묏부리, 십 리에 서린 안개
바람향내는 향긋, 눈부시게 파란 유리 물결에
아, 배 띄우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순채국과 농어회, 은실처럼 가늘고 눈같이 희게 써네
아, 양락(羊酪)이 맛지단들 이보다 더하리오
6장 - 낙산사의 모습
설악 동쪽, 낙산 서쪽, 양양의 풍경
강선정, 상운정, 남북으로 마주 섰고
자색 봉황 타고, 붉은 난새 탄, 아름다운 신선같은 사람들이
아, 다투어 주현을 켜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풍류로운 술꾼들, 습욱의 지관(池館)같은 좋은 경치 속에서
아, 사철 놀아보세 그려
7장 - 임영의 모습
삼한의 예의, 천고의 풍류 간직한 옛고을 강릉에는
경포대, 한송정에 달 밝고 바람 맑은데
해당화 길, 연꽃 핀 못에서 때 좋은 시절에
아, 노닐며 감상하는 모습 어떠합니까
누대에 불 밝히고 새벽이 지난 뒤에
아, 해돋이 모습 그 어떠합니까
8장 -정선의 절경
오십천, 죽서루, 서촌 팔경
취운루, 월송정, 십 리의 푸른 솔
옥저 불고, 가야금 타며, 청아한 노래 부르고 우아한 춤 추며
아, 정다운 손님을 맞고 보내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망사정 위에서 창파 만리 보노라면
아, 갈매기도 반가워라
9장 - 결사
강은 십 리, 절벽은 천 층, 거울같이 맑은 물을 에워쌌네
풍암, 수혈 지나 비봉산에 올라서
좋은 술 기울이고 용빙봉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여름바람 쐬며
아, 더위를 피하는 이 모습 어떠합니까
중국의 주씨와 진씨가 더불어 무릉의 풍물 대대로 전하듯
아, 좋은 풍속을 자손 대대로 전하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 <관동별곡> 정리
* 작자 : 안축(安軸:1287∼1348)
* 연대 : 고려 충숙왕
* 성격 : 의욕적
* 종류 : 경기체가
* 구성 : 전체 8장
* 제재 : 관동팔경 (안변,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삼척, 정선의 고을들)
* 주제 : 관동팔경의 절경 찬양
* 출전 : 근재집
● <관동별곡> 이해하기
이 관동별곡(關東別曲)은 강원도를 순시하면서 관동 지방의 아름다운 절경을 읊은 것으로 모두 9장(九章)으로 되어 있으며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0년이 앞서 있다.
서민들의 고려속요와는 달리 귀족계급에 유행하던 가사체이며, 한문과 이두문을 혼용하여 지었고, 끝 구절에는 경기하여 (景畿何如)로 되어 있어 경기체가라 하며, 일명 하여가라 하기도 한다.
소백산 계곡인 순흥 지방을 읊은 <죽계별곡> 5장과 더불어 가사문학의 효시로 손꼽히고 있다.
<죽계별곡>은 전체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계는 지금의 경상북도 풍기에 있는 시내 이름이며, 풍기의 옛 지명인 순흥은 안축의 관향(貫鄕)인 동시에 고향이다.
1장은 죽계의 지역적 위치와 경관을, 2장은 누·대·정자 위에서 유흥하는 모습을, 3장은 향교에서 공자(孔子)를 따르는 무리들이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현(絃)을 뜯는 모습을, 4장은 천리 밖에서 그리워하는 모습을, 5장은 성대(聖代)를 중흥하여 태평을 길이 즐기는 모습을 각각 노래함으로써, 고려 신흥 사대부의 의욕에 넘치는 생활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형식은 2∼4장에서 비교적 정돈된 3·3·4, 3·3·4, 4·4·4조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5장은 앞부분 전체가 4·4·4조로 일관되고, 1장은 4·3·4조의 파격(破格)을 보이며, 4, 5장의 일부에서는 '경기하여'가 탈락되기도 한다. 동시에 이두의 사용이 빈번하다. 정돈된 형식과 정돈되지 않은 형식의 뒤섞임에서 <죽계별곡>은 경기체가 장르의 형성 과정을 보여 준다. 고려 신흥 사대부의 의욕에 넘치는 생활 감정의 표현은 <한림별곡>과 궤를 같이 한다.
1장- 죽계의 지역적 위치와 경관
죽령 남쪽, 안동 북쪽, 소백산 앞의
천 년의 흥망 속에도 풍류가 한결같은 순흥성 안에
다른 곳 아닌 취화봉에 임금의 태를 묻었네
아, 이 고을을 중흥시킨 모습 그 어떠합니까
청렴한 정사를 베풀어 두 나라(고려와 원나라)의 관직을 맡았네
아, 소백산 높고 죽계수 맑은 풍경 그 어떠합니까
2장- 누·대·정자 위에서 유흥하는 모습
숙수사의 누각, 복전사의 누대, 승림사의 정자
초암동, 욱금계, 취원루 위에서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어, 붉고 하얀 꽃 피는, 비 내리는 산 속을
아, 흥이 나서 노니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풍류로운 술꾼들 떼를 지어서
아, 손잡고 노니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3장- 향을교에서 공자를 따르는 무리들이 봄에는 경서를 외고 여름에는 현을 뜯는 모습
눈부신 봉황이 나는 듯, 옥룡이 서리어 있는 듯, 푸른 산 소나무 숲
지필봉(영귀산), 연묵지를 모두 갖춘 향교
육경에 마음 담고, 천고를 궁구하는 공자의 제자들
아, 봄에 읊고 여름에 가락 타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매년 3월 긴 공부 시작할 때
아, 떠들썩하게 새 벗 맞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4장- 천리 밖에서 그리워하는 모습
초산효, 소운영이 한창인 계절
꽃은 난만하게 그대 위해 피었고, 버드나무 골짜기에 우거졌는데
홀로 난간에 기대어 님 오시기 기다리면, 갓 나온 꾀꼬리 노래 부르고
아, 한 떨기 꽃 그림자 드리워졌네
아름다운 꽃들 조금씩 붉어질 때면
아, 천리 밖의 님 생각 어찌하면 좋으리오
5장- 성대를 중흥하여 태평을 길이 즐기는 모습
붉은 살구꽃 어지러이 날리고, 향긋한 풀 우거질 땐 술잔을 기울이고
녹음 무성하고, 화려한 누각 고요하면 거문고 위로 부는 여름의 훈풍
노란 국화 빨간 단풍이 온 산을 수놓은 듯하고, 기러기 날아간 뒤에
아, 눈빛 달빛 어우러지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좋은 세상에 길이 태평을 누리면서
아, 사철을 놀아봅시다
● <죽계별곡> 정리
* 작자 : 안축(安軸:1287∼1348)
* 연대 : 고려 충숙왕
* 성격 : 의욕적
* 종류 : 경기체가
* 구성 : 전체 5장
* 주제 : 죽계의 자연 경관과 신흥 사대부들의 의욕적인 생활 감정
* 출전 : 근재집
경기체가와 악장/ 한림별곡, 봉황음
악장[樂章]브리태니커 : 궁중에서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인 제향(祭享)이나 연향(宴享)이 열릴 때 쓰였던 노래 가사.
본래 고려와 조선의 궁중음악에서 불려진 노래 가사를 포괄하나, 한국문학에서는 조선 왕조 초기의 특정한 시가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볼 때 악장은 노래로 부른 시이므로 음악이면서 문학이다.
악장은 고려속요·경기체가·시경·초사체 등의 양식이 두루 나타나는 작품의 다양성으로 인해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악장은 조선 초기 건국창업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통치질서를 확립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왕업을 기리는 송도(頌禱)·송축(頌祝)의 성격을 공통적으로 지닌다는 점에서 범주화가 가능하다. 고려 조정에서도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역대 제왕을 칭송하는 악장을 갖추었다. 그런데 조선 왕조가 창건되면서 예악의 정비를 통해 통치이념을 확립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건국초의 분위기는 악장을 제정하는 데 특히 기여했다.
山河千里國에 佳氣 鬱葱葱샷다 金殿九重에 明日月시니 群臣千載예 會雲龍이 샷다
천리산하 이 나라에 아름다운 기운이 울창하시었다. 금빛 궁전 구중 문 안에 일월같이 덕을 밝히시니 뭇 신하 구름처럼 모여 용 같은 임금님 천년을 모시었다.
熙熙庶俗 春臺上이어늘 濟濟群生 壽城中이 샷다 濟濟群生 壽城中이 샷다
밝고 밝은 서민의 풍속은 춘대 위에 있거늘 많고 많은 백성의 다스림은 성 안을 지킴에 있구나.
高厚無私샤 美貺臻시니 祝堯皆是 太平人이 샷다 祝堯皆是 太平人이 샷다
높고 두터우며 사사로움이 없으며 아름다운 요임금을 송축하는 사람들에 있으니 태평성대 사람들이로다.
熾而昌시니 禮樂光華ㅣ 邁漢唐이 샷다 金枝秀出 千年聖시니 緜瓞增隆 萬歲基 샷다
치열하고 창성하시니 예악의 빛남이 한나라와 당나라보다 더 하구나. 임금의 자손이 빼어나셔서 천년토록 거룩하시니 면면할 외넝쿨 더욱 융성하여 의 터전이로다.
邦家累慶이 超前古시니 天地同和ㅣ 卽此時 샷다 邦家累慶이 超前古시니 天地同和ㅣ 卽此時 샷다
국가의 쌓인 경사가 예전보다 더 하시어 천지가 화평한 것이 바로 이 때로다.
豫遊淸曉애 玉輿來시니 人頌南山야 薦壽杯 샷다 人頌南山야 薦壽杯 샷다
配于京시니 十二瓊樓ㅣ 帶五城이 샷다
맑은 새벽에 놀려할 때 옥 수례가 오시니 사람들이 남산을 기리는 잔을 들었구나. 京師에 짝하시니 십이경루가 오성의 띠를 둘렀도다.
道與乾坤合 恩隨 雨露新이 샷다 千箱登黍稌 庶彙 荷陶鈞이 샷다
도와 함께 하늘과 땅은 부합하고 은혜는 비와 이슬을 따라 새롭구나. 온갖 창고에 온갖 곡식(기장과 벼)이 가득 쌓였고 만백성은 고르게 덕을 입으셨다.
帝錫元符샤 揚瑞命시니 滄溟重潤고 月重輪이 샷다 滄溟重潤고 月重輪이 샷다
임금이 원부를 내리시어 상서로운 목숨을 일으키시니 바다가 거듭 윤택하시고 달 수례가 거듭하도다.
風流楊柳에 舞輕盈니 自是豊年에 有笑聲이 샷다 自是豊年에 有笑聲이 샷다
바람에 버들 흐르듯 춤은 가볍고 단아하니 이제 풍년으로 웃음소리 있으리다.
克配天시니 聖子神孫이 億萬年이쇼셔
하늘의 뜻에 맞추시니 성스런 자손이 억만년 이어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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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운문)
고대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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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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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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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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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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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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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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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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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체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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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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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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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산문)
고대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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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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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전 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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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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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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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소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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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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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소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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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면 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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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사평 훈민정음 창제 그 이후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 대한 단상 기록문학에서의 한문학의 등장, 이두와 같은 차자표기 문학의 시작에 이어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리 문학사에서는 제3의 물결이다. 우리글로 된 문학이 이후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지만 정부에서 훈민정음 창제 직후 펴년 두 편의 서사시는 문학사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용비어천가는 국가적인 이념을 널리 펴기 위해 저술되었다면,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자신이 아내를 잃은 후 아들 수양대군에게 석가의 일대기를 엮은 한문작품 <석보상절>을 짓게 한 후, 이를 기초로 직접 지은 곡이라는 점에서 보다 내밀한 작품이다. <월인천강지곡>을 읽어본 한 승려는 특히, 자연스러운 대화와 치밀한 묘사를 갖추어 산문을 통한 서사적 표현의 좋은 전례를 마련한 것, 그리고 한문 경전에서 받아들인 불교용어를 그대로 내놓지 않고 작은 글씨로 주를 달아 되도록 쉬운 우리말로 풀어놓은 것은 문학사적으로도 소중한 시도이다. - 역사신문 제3권 5호에서 인용
훈민정음 반포 1년 전에 완성된 <용비어천가>의 저술과 주해 작업에 참여한 정인지, 권제, 안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등은 대부분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한 사람들이다.
<용비어천가>는 건국의 시조들을 찬양하고 조선 왕조의 창건을 합리화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이전 왕조들의 건국신화와 무엇이 다르냐는 항간의 의문에 대해 정인지는 "훈민정음을 표기 수단으로 택한 덕분에 잡다하게 변형될 수 있는 설화를 배제하고 엄격하게 다듬은 서사시를 지어 보급할 수 있지 않느냐?" 웃은 뒤,
"<용비어천가>의 곡 이름이 '여민락(與民樂)'인만큼 임금의 감화가 백성에게까지 미쳐 함께 노래부르며 즐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한다.
세종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제목은 부처가 백억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千) 강에 비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석가가 실제로 보여준 언생이 만리 밖, 천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 당장 보고 듣는 것처럼 나타내는 것이 이 노래를 지은 취지"라고 말했다. 세종의 이러한 의도는 바로 훈민정음이라는 표기 수단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불경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고 <석보상절>에서 산문으로 설명할 때는 예사롭게 보이던 사건도, 우리글로 된 노래로 간추리자 말하지 않은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큰 감명을 받았다." 고 소감을 밝혔다.
사실 훈민정음 자체는 '위의 뜻을 아래로 펴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다. 세종이 관심을 가진 것도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언해를 통한 백성의 교화이지 우리글로 된 문학의 발전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종 자신이 짓고 관여한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서 벌써 한글 문학만이 풍길 수 있는 향기가 우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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