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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시조의 첫모습, 사대부시조, 기녀시조, 평민시조

수로보니게 여인 2009. 2. 17. 22:48

 

시조

범주와 갈래

작품과 성격

음악적 성격 

 

시조[時調]: 고려 말부터 발달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시조의 형식과 발생을 살펴보면 고려 말 신흥 사대부의 성리학적 사상과 연관을 갖는다. 사대부의 시조는 성리학의 발전 과정과 맥을 같이 하다가 인진왜란을 고비로 성격이 달라진다. 중인층의 시조와 사설시조는 새로운 시대의 성향을 보여준다. 이들은 노래이므로 음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18세기 시조의 연행 현상에 대한 이해는 시조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이다. 

 

시조/ 時調의 첫모습

만전춘: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 속요. 

 

시조는 ‘時調’라고는 하지만 음악인 가곡(歌曲)이 원래의 모습이다. 따라서 시조가 아니라 ‘가곡창사(歌曲唱詞)’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미 관습이 오래되었고 의미 파악에 별 문제가 없으므로 시조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도록 한다.

시조의 기원에 대해서는 외래 기원설과 재래 기원설이 있다. 외래 기원설은 중국 한시의 변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지금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재래 기원설에는 민요 또는 무당의 노랫가락 원형설, 향가 기원설, 「정읍사」와 같은 六句體歌 기원설, 고려속요 기원설 등이 있다. 고려속요 기원설은 「만전춘」의 제2연과 제 5연이 시조의 형식과 닮았다는 데서 연유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만전춘 [만전춘별사]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 속요.

 

만전춘(滿殿春)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작가 : 미상
연대 : 고려 시대
갈래 : 고려 속요
성격 : 연가, 남녀상열지사, 향락적, 퇴폐적
형식 : 5연으로 이루어진 분연체로 결사를 포함하여 전 6연으로 보기도 함
구성 :

1연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정열

2연

임 생각에 밤을 지새우는 애처러움 - 전전반측

3연

사랑을 배신한 임에 대한 원망

4연

무절제한 사랑을 하는 임에 대한 풍자

5연

임에 대한 욕망과 상상

6연

임과의 이별 없는 영원한 만남을 염원

제재 : 남녀간의 사랑 또는 애정
주제 :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소망, 임과의 영원한 사랑 기원(임과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드러냄)
의의 : 2연과 5연이 시조 형태에 근접하고 있어, 시조의 기원을 찾는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다.
특징 : 남녀간의 애정을 가식 없이 진솔하고도 적나라 하게 표현했고, 비유와 상징, 반어와 역설, 감각적인 언어로 감정의 표현

            이 진솔하여 문학성이 높은 편이고, 민요와 시조, 경기체가 등 여러 형식의 영향이 나타남.(각 연은 형식상으로 불균형

            을 보이고 있고, 시어도 이질적이며 의미론적으로도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어서, 이 작품은 여러 이질적이고 독립적인

            당대의 유행 노래를 궁중의 속악 가사로 합성, 편사함으로써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궁중에서 잔치를 벌일 때 속악정재(俗樂呈才)에서 불렸던 악곡으로서, 님과 이별하지 않고 계속 사랑하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했다.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결사(結詞)도 독립된 장으로 보면 이 노래는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에서는 얼음 위에 댓잎자리를 깔아 님과 내가 얼어죽더라도 정 둔 오늘 밤이 더디새기를 빌었다. 민요의 성격이 짙다. 제2장에서는 님이 오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상투적인 한자어를 사용하여 자기의 처지를 창 밖에 있는 복숭아꽃에 비교했다. 제3장에서는 넋이라도 함께 하자고 맹세한 님을 원망하고, 제4장에서는 물오리에게 여흘은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오냐면서 남성의 여성편력을 나무라는 듯한 말을 했다. 제5장에서는 "옥산(玉山)을 벼어 누어 금수산(金繡山) 니블 안해 사향(麝香) 각시를 아나 누어" 있다고 했다. 각 장은 순차적으로 되어 있지 않으며 사랑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장까지는 여성이 서술자이다가 5장에서 남성으로 바뀐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만전춘'이라는 말은 노래곡조를 뜻하는 것으로, 만전춘 곡조의 노래말은 원래 따로 있었으며, 어디서 따오거나 지어낸 구절들을 모아 '만전춘별사'라는 새로운 노래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4토막씩 3형식이 보이므로 넓은 의미에서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궁중음악의 하나인 〈만전춘〉의 악보는 〈대악후보〉 권5, 〈경국대전〉 권3, 〈세종실록〉 악보 권146에 기보되어 있다. 고려의 향악곡으로 조선시대에도 연주되었다. 그러나 고려의 속악인 만전춘은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가사는 개작되었고, 선율의 일부를 변주하여 세종 때에는 순응(順應), 세조 때에는 혁정(赫整)이란 곡명으로 연주되었다. 고려 때부터 노래로 불리던 만전춘의 원래 가사는 〈악장가사〉에 전하며 개작된 만전춘의 가사는 〈세종실록〉 악보에 전한다. 음계는 5음 음계이고, 평조와 계면조가 있다. 확대·변주·유절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종지형은 궁(宮)에서 하(下)1·하2·하3·하4·하5로 끝나는 하행종지형(下行終止形)이다. 개작된 만전춘의 형식은 전강(前腔)·부엽(附葉)·소엽(小葉)·후강(後腔)·부엽·중엽(中葉)·부엽·중엽·중엽·부엽·부엽·소엽·대엽(大葉)·부엽·소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계는 임종(林鐘)·무역(無射)·황종(黃鐘)·태주(太蔟)·중려(仲呂)의 5음음계이다. 〈대악후보〉에 가사는 없지만 그 곡은 원곡에 해당하며 〈세종실록〉에는 〈만전춘〉이라는 이름으로 가사가 전하며 〈악장가사〉에는 〈만전춘별사〉라는 이름으로 가사가 전한다.  

 

시조                     카·타·파·하 시조 이해  현대 시조


 

한 손에 막대 잡고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우탁
연대 : 고려말
종류 : 평시조, 단형 시조
표현 : 의인법, 대구법, 과장법, 대조법
성격 : 탄로가, 직서적
제재 : 늙음
 주제 : 탄로(늙음을 한탄함), 늙음에 대한 한탄

 내용 연구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 추상적인 늙음을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길로 전환시켜 표현하였다. 세월의 흐름을 가시와 막대기로 막아 보겠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늙음에 대한 깊은 탄식이 배어 있다.
막대 : 막다히> 막다이>막대
늙난 : 늙은 '난'은 현재관사형
가싀 : 가시
치려터니 : 치려고 했더니
졔 : 저가
몬져 : 먼저 (단모음화)
즈럼길 : 지름길(전설모음화)
오더라 : 오는구나. 오(동사 어간)+ 더(회상시제선어말어미)+ 라(감탄형어미)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 백발이 나의 속셈을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의인법을 사용하였고,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고, 세월에 거역하려는 인간의 한계를 익살스럽게 표현하였다.  

「嘆老歌」라고 하는, 늙음을 한탄한 시조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시조의 미덕은 감상에 빠지거나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더 큰 조화, 더 큰 자연에 대한 순응이다. 이들 시조는 어떤 道나 형이상학적 전제도 깔지 않고, 깨우친 자의 교훈성도 유도하지 않는다. 늙음과 죽음은 극복의 문제도 아니고 형이상학적 초월로 넘어서야 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상함으로 빠져들지도 않고 있다. 또한 삶에 대한 집요한 집착도 보이지 않는다. 집착이 비속함을 낳는 것이라면 이 시조는 비속함에서 비껴있다. 즉, 초월도 아니고 비속도 아닌 그 중용의 길에 이 시조가 놓여있는 것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얗게 핀 배꽃에 달빛은 은은히 비추고 은하수는 (돌아서) 자정을 알리는 때에
가지 끝에 맺힌 봄의 정서를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가 알고서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다감한 나는 그것이 병인 듯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조년

 연대 : 고려 충숙왕 때

 형식 : 평시조, 단시조
성격 : 다정가, 서정적, 애상적

 구성 :

초장 : 밝은 달 아래 배꽃이 피어 있는 밤의 정경

중장 : 소쩍새 울음소리 들리는 봄날 밤의 분위기

종장 : 봄밤의 애상과 잠 못 이루는 심정
표현 : 상징법, 의인법,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활용

 제재 : 봄의 자연물(배꽃, 달, 은하수, 소쩍새)
주제 : 봄밤의 정한, 봄밤의 애상적 정서

내용 연구

 이화 : 배꽃, '청초, 결백, 애상, 냉담'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고대시가에 자주 등장
월백하고 : 달이 밝고, 배꽃과 흰 달은 순결과 애상의 느낌을 짙게 하고, 더욱이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을, 백색 이미지(이화, 월백, 은한)
은한이 : 은하수가
삼경 : 한밤중, 하루를 12등급 한 첫 번째 시간이며, 하룻밤을 5등급 한 세 번째 시간이다.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일지춘심 : 한 나뭇가지에 어려 있는 봄날의 애상적인 정서로 봄의 정경을 기막히게 표현한 구절이다.
자규야 : 소쩍새야, 소쩍새야말로, 청각적 심상

 다정도 병인 양 하여 : 실제 육체적인 질병을 의미하기보다는 시적 화자의 애상적인 정한을 더욱 심도 있게 표현하는 효과

이해와 감상

 숨 막히는 서정이 흐르고 있으며, 봄날의 한밤중을 배경으로 하여 밝은 달 아래 눈물을 머금은 듯한 배꽃, 어디선가 들리는 두견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상적인 정서를 느끼게 하여 주는 작품이다. 봄밤의 정서가 이화. 월백, 은한 등의 백색 이미지와 자규가 지니는 처절, 애원, 고독의 이미지에 연결되어 더욱 애상적인 정한을 나타내 주면서 모든 시상이 '춘심'에 집약되고 있다. '다정가'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는 고려 시조 가운데 표현 기법이 정서면에서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창에 넘치는 달빛을 보며 어찌 감상에 젖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한편으로는  지은이가 정치를 비판하다가 고향으로 밀려나서, 충혜왕(忠惠王)의 잘못을 걱정한 심정을 하소연한 것으로도 이해되는 작품이다.

 

이 시조는 포개짐의 미학으로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배꽃의 흰빛 위에 흰 달빛이 포개진다. 은하수는 깊은 밤임을 나타내는데, 다시 깊은 밤임을 드러내는 삼경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정함은 병이 될 정도로 깊어졌으니 그 병은 다정함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서 생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을 못 이룬다는 사연이 자규와 화자 두 겹으로 포개진다. 세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에서 네 번이나 시어의 이미지가 중첩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포개짐의 서정은 자연과 화자를 하나로 합치시키는 데 성공적인 구실을 한다. 그러나 그 합일은 전체적으로 나와 이화, 은한, 자규와의 정서의 합일이기는 하지만 물아일체, 物心一如 같은 말로 정리되는 영원의 진리를 추구하려는 것과는 질이 다른 것이다. 이 합일은 순간적, 현실적 느낌의 포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시를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면, 당시의 잘못된 정치와 임금을 안타까워하는 작자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백설이 잦아진 골짜기에 구름이 험하게 일고 있구나.
(나를) 반겨 줄 매화는 어느 곳에 피어 있는가?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을 몰라 하노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색
연대 : 고려 말
종류 : 평시조
표현 : 비유적, 풍자적
성격 : 우의적
제재 : 매화(우국지사), 고려의 쇠잔
 
주제 : 우국충정(憂國衷情)과 고려 멸망의 한탄

내용 연구

 백설 : 흰 눈, 이 시에서는 고려 유신을 비유
골에 : 골짜기에
자자진 : 잦아진, 녹아 없어진, 거친 기운이 잠잠해지거나 가라앉다.
구루미 : 구름이, '구름'은 '무상', '허황' 등의 속성. 여기에서는 조선의 신흥 세력
머흐레라 : 험하구나
반가온 : 반가운
매화 : '지조, 충성, 정렬'등의 속성. 여기서는 우국지사 또는 청절을 비유
석양 : 해질 무렵. 기울어진 고려의 국운 비유
셔 이셔 : 서서 또는 서 있어
하노라 : 한다. '생각한다'의 뜻

이해와 감상

 고려의 유신(遺臣)으로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우의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석양(夕陽)에 홀로 서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하는 탄식 소리는 그래도 어디선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매화(憂國之士)와 연결되고 있고, '백설 → 고려 유신, 구름 → 신흥 세력인 이성계 일파, 매화 →우국지사, 석양 →기울어져 가는 고려'  등을 상징하고 있으며, 우국의 정이 간접적으로 나타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시조는 흔히 작자 이색이 처한 실제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고려 말 부패하고 무능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정도전, 이성계의 주장과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최영과 함께 고려조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명분사이에서 고민하였다. 그는 이성계처럼 친명파였고 자신의 문화에서 권근, 변계량, 김종직 등 선초 성리학의 주루를 이루는 인물을 배출한 사람이어Y으면서도 결국은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거부하였다. 이 시조는 이러한 두 가지 가치를 놓고 갈등하던 상황을 잘 그린 것이다.

이 방원의 「何如歌」, 「丹心歌」등도 고려 말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대부시조


사육신 (조선 역사)[死六臣]

조선시대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6명의 신하.


성삼문(成三問:1418~56)·하위지(河緯地:1387~1456)·이개(李塏:1417~56)·유성원(柳誠源:?~1456)·박팽년(朴彭年:1417~56)·유응부(兪應孚:?~1456) 등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제4대 국왕인 세종은 정도전의 재상 중심의 정치운영론과 태종의 왕권강화론을 절충하면서 유교적 이상 국가를 수립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세종은 왕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학문연구기관으로 집현전을 설치·운영하고, 국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정치론은 강력한 군주에 의한 정치운영론이 아니고 유학의 소양을 갖춘 사대부가 정치운영의 중심이 되는 정치론이었다. 그러므로 세종이 국왕과 신하의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운영을 지향했지만 현실은 자연히 신하가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특히 세종 말년에 국왕이 병환으로 정치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지자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은 종래 유학연구나 국왕의 정책보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의 정치 정책에 깊이 간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집현전의 성격은 점차 언론·학문 기관에서 정치기관으로 변화해갔다.   

사대부시조

조선 전기의 작품인 사육신의 시조를 간단히 본다. 사육시의 시조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라고 한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그 상황이 그대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개와 성삼문의 시조를 들어보자.

 

방안에 혓는 촉불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방 안에 켜 있는 촛불은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속이 타 들어가는 줄을 모르는가?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
(슬퍼 눈물만 흘릴 뿐) 속이 타는 줄을 모르는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이개
연대 : 세조
제재 : 촉불(촛불)
성격 : 상징적, 감상적, 여성적, 은유적
표현 : 의인법, 감정이입법
주제 : 연군의 정, 또는 이별의 고통
출전 : 청구영언 외

내용 연구

방 안에 켜 있는 촛불은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 단종과의 이별
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속이 타 들어가는 줄을 모르는가? - 별한(別恨)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슬퍼 눈물만 흘릴 뿐) 속이 타는 줄을 모르는구나. - 속이 타는 듯한 한

 혓는 : 켜 있는, ㅎ혀다>혀다>켜다
눌과 :누구와(단종을 말함)
것츠로 : 겉으로
디고 : 지고
속타는 줄 : (단종고의 이별의 슬픔으로) 속이 타는 줄을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 (슬퍼 눈물만 흘릴 뿐) 속이 타는 줄을 모르는구나. : 종장은 촛불이나 지은이나 속이 타들어간다는 점에서 같다는 의미로 단종과의 이별을 내색하지는 않지만 그 안타까움으로 인해 속으로만 태우고 있을 뿐으로 지은이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로 감정이입에 해당한다.
뎌 : 저
갓하야 : 같아서(갓트여  : 같아서)

 여기서 감정이입은 대상(곧, 자연계)과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자신의 감정을 저도 모르게 다시 그 대상과 인간에게 옮겨 놓고 마치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느끼는 것을 감정이입이라 한다. 예를 들어, 흐르는 시냇물은 늘 소리를 내어 흘러가지만, 감정을 느끼는 주체가 슬플 때에는 냇물 소리가 슬프게 느껴져 처량한 소리를 낸다고 하고, 주체가 기쁠 때는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흘러 간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천만 리(千萬里) 머 먼 길에 고흔 님 여희압고

내 마음 둘 듸 업셔 냇가에 안쟛시니

져 물도 내 안과 갓틔여 우러 밤길 예놋다. - 왕방연

 

공산에 우는 접동, 너난 어이 우짖난다

너도 날과 같이 무음 이별하였나냐

아모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 박효관

 

풀 이슬은 맺혀 있고 저녁 구름이 지나갈 때

대 수풀 우거진 푸른 곳에 새소리가 더욱 서럽다 - 허난설헌, 규원가 -

이해와 감상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된 이개의 작품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 세조로 인해 단종을 영월로 유배보내고 나서, 단종과 이별을 하고 나서 남몰래 애태우는 심정을 촛불에 감정이입을 하여 촛불을 의인화하고 그 초가 타는 형상을 이별의 슬픔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초중종장은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단종과의 이별의 아픔을 형상화한 수준 높은 작품이다.

심화 자료

이개 (李塏)

 1417(태종 17)∼1456(세조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청보(淸甫)·사고(士高), 호는 백옥헌(白玉軒). 제6대왕 단종을 위해 사절(死節)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색(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중추원사 종선(種善)이고, 아버지는 계주(季疇)이며, 어머니는 진명례(陳明禮)의 딸이다.  


이런 들 어떠하며 陶山十二曲도산십이곡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1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버리고는 살수 없는 마음을 고쳐 무엇하랴?(자연에 살고 싶은 마음)

 

(제2곡)

 안개와 놀을 집으로 삼고 풍월을 친구로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지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사람의 허물이나 없었으면.

 

(제3곡)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풍습이 줄어 없어지고 사람의 성품이 악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거짓이다.

 인간의 성품은 본디부터 어질다고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착한 성품으로 순수한 풍습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많은 슬기로운 사람(영재)을 속여서 말할 수 있을까?

 

(제4곡)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듣기 좋아

 흰눈이 산에 가득하니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제5곡)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떼를 지어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거든

 어찌하여 희고 깨끗한 말은 나로부터 멀리에 마음을 두는고.

 

(제6곡)

 봄바람이 부니 산에 꽃이 만발하고 가을 밤에는 달빛이 대에 가득하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하물며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며 구름이 그늘을 짓고 태양이 빛나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제7곡)

 천운대를 돌아 들어간 곳에 있는 완락재는 깨끗한 곳이니,

 거기에서 많은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이 무궁하구나.

 이런 가운데 이따금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제8곡)

 우레 소리가 산을 깨뜨릴 듯이 심하게 울어도 귀머거리는 못 듣네.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올라도 눈 먼 사람은 보지 못하네.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야 하리.

 

(제9곡)

 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 분들을 보지 못하네.

 하지만 그 분들이 행하던 길은 지금도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이렇듯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따르지 않고 어쩌겠는가?

 

(제10곡)

 그 당시 학문 수양에 힘쓰던 길을 몇 해씩이나 버려두고

 벼슬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는 딴 마음을 먹지 않으리.

 

(제11곡)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제12곡)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행하니 학문의 길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는 줄을 모르겠다.

 

요점 정리

 작자 : 이황
연대 : 명종20년
종류 : 연시조
성격 : 교훈적, 관조적, 회고적, 예찬적
표현 : 반복법, 설의법, 대구법, 연쇄법 등
명칭 : 도산십이곡
구성
: 총12수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눔

   전반부

    言志

      언지로 자신이 세운 도산 서원 주변의 경관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읊음 

1연 : 아름다운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노래              

2연 :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의 모습을 노래   
3연 :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 세상의 많은 영재들에게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         

4연 : 벼슬자리를 떠나 자연을 벗하며 살아 도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

5연 : 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6연 :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노래

  후반부

    言學

          언학으로 학문 수양에 임하는 심경을 노래 

1연 :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노래

2연 : 인간으로서 진리 터득의 중요성을 노래

3연 :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人倫之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

        며 살아야 한다고 노래

4연 : 젊을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벼슬을 지낸 자신을 후회 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 수양에 힘쓰리라는 다짐에 노래

5연 : 청산과 유수라는 자연의 영원 불변성을 소재로 하여, 그러한 자연을 닮아 변치 않는 지조 인

        품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교훈적인 의미를 노래

6연 : 영원한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

 주제 :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싶은 소망과 학문의 길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
의의 : 한자어가 많아 생경한 감을 주지만, 강호가도의 대표적인 작품이고, 성리학의 대가가 시조를 즐겨 지었다는 것은 시조의 출

            발과 발전이 유가에 의해 이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기 : 작자는 창작 동기가 '우리나라의 시가는 음란하여 말할 것이 못된다.

            문인들이 즐겨 부르는 '한림별곡' 역시 방탕하고 상스럽다. 근래에는 이별의  '육가'가 돌아다니나 좋지 못하여 안타깝다.

            나는 음률을 잘 모르나 여가가 있으면 시를 짓는데 백성들이 부르게 하기 위하여 도산곡을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자의 '무이점사'를 본 떠 지었다고도 한다.

특징 : 학문에 대한 의지와 생경한 한자어가 많이 들어감

기타 : 아류작으로 광해군 때 장경세의 '강호연군가'12수가 있다.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연시조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으로, 춘하추동 계절별로 한 수씩 모두 4수로 이루어졌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흥취와 함께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작품이다. 모두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전 육곡의 ‘언지(言志)’와 후 육곡의 ‘언학(言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즐거움과 함께 후학(後學)들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이황의 「陶山-十二曲」은 우리시조문학사에서 한 정점을 이루는 소중한 작품이다.

1565년 작으로, 문헌기록으로 시조가 정착된 최초의 확실한 작품으로 인정되어서, 시조가 16세기에 발생한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한 근거가 되었다. 우리 사상계의 태두로 평가받는 명망 있는 인물이 12수의 연시조를 지었다는 사실은 국문문학인 시조의 위상을 크게 높이기도 하였다. 또한 「陶山十二曲만」을 통해서는 외래문학인 한시가 아니라 국문으로 된 노래이어야 우리 민족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사실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형식에 있어서 시조의 외적인 규범을 완벽하게 구사해 내고 있고, 내용면에서도 시조의 품위를 확보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점이 여러 연구자에 의해 거듭 지적되었다. 이후에 이 노래를 본 딴 「…십이가」가 여러 편 출현했다는 점은 이 노래가 오랫동안 상찬되었음을 말해준다.

 


 훈민가(정철 연시조)  [訓民歌, 경민가]브리태니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 : 1536~93)이 지은 연시조.

 

〈경민가 警民歌〉·〈권민가 勸民歌〉라고도 한다. 강원도 관찰사로 일했던 1580년(선조 13) 정월부터 다음해 3월 사이에 백성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었다. 훈민은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온 것으로, 송순·주세붕에 의해 지어진 바 있는 훈민시조가 정철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정철의 〈훈민가〉는 내세우는 덕목은 전과 같았으나 정감 있고 순탄한 말로 인정과 세태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이 노래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따라 생활할 것을 권했으나, 민요의 사설과 같은 표현방법을 써서 지나치게 의도에 매여 있지 않는 느낌이다. 원래 18수를 지었는데 지금은 16수가 〈송강가사 松江歌辭〉에 실려 전한다. 1656년(효종 7) 이후원(李厚源)이 〈경민편언해 警民編言解〉를 간행할 때 이 작품을 부록으로 실음으로써 널리 유포되었다. 

 

훈민가 - 아바님 날 나흐시고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버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나를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었다면 이 몸이 태어나 살 수 있었을까.[설의법]

 하늘같이 끝이 없는 큰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 부의모자(父義母慈).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권장

 

 어머니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 부생모육을 직역한 말로 대구법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 다 갚으오리 : 직유법,
돌아가신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
風樹之嘆(풍수지탄)으로 효도를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에는 이미 부모님은 죽고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모습조차 같은 것인가?

 같은 젖을 먹고 자라났으니 딴 마음을 먹지 마라.

 

-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제 간의 우애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금과 백성의 사이가 하늘과 땅이로되

 내 서러운 것을 다 알려고 하시거늘[신하를 생각하는 임금]

 우린들 살진 미나리[평민들이 먹는 음식]를 혼자 엇지 먹으리.

 

- 군신(君臣)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어버이 살아 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일랑 다하여라.

 돌아가신 후면 아무리 애태우고 뉘우친들 어찌하리?

 평생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 섬기는 일뿐이가 하노라.

 

- 자효(子孝)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한 몸 둘로 나누어 부부로 생겨나게 하시사

 있을 동안 함께 늙고 죽으면 함께 간다.

 어디서 망령의 것[바르지 못한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눈 흘기려 하느냐?

 

- 부부유은(夫婦有恩)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여자가 가는 길을 남자가 멀찌감치 돌아가듯이,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피해서 돌아가듯이,[초장과 중장은 대구를 통해 남녀유별을 강조]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면 이름을 묻지 마시오.

 

- 남녀유별(男女有別). 남녀 간의 예의 범절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네 아들 효경 읽더니 얼마쯤 배웠느냐?

 내 아들 소학은 모래면 마칠 것이로다.

 어느 때 이 두 글을 배워 어질 것을 볼 것인가.

 

- 자제유학(子弟有學). 자식들의 학문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꾸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를 못하다면,

 짐승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워서 밥을 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향려유례(鄕閭有禮). 옳은 일의 권장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어른이) 기거할 때 만일 팔목을 쥐시는 일이 있거든 두 손으로 바치리다.

 나갈 곳이 계시다면 막대 들고 좇으리라.

 마을에서 어른들을 모신 주연(酒宴)이 다 끝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 장유유서(長幼有序)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남으로 생긴 중에 벗같이 신의가 있으랴.

 내 그른 일을 다 말하려 하는구나.

 이 몸이 벗이 아니면 사람됨됨이가 그렇게 쉬울까?

 

- 붕우유신(朋友有信)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어와 저 조카야, 먹을 것이 없으면 어찌하겠는가.

 어와 저 아저씨야, 입을 것이 없으면 어찌하겠는가.

 어려운 일 다 말하려무나. 도와 주고자 하노라.

 

- 빈궁우환(貧窮憂患). 어려울 때의 상부상조(相扶相助)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네 집 喪事(상사)들은 어떻게 차리는가?

 네 딸 서방은 언제나 마지하게 되는가?

 내게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돌보고자 하노라.

 

- 혼인사상 인리상조(婚姻死喪 隣里相助). 애경사(哀慶事)에 대한 상부상조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 메고 들로 가자꾸나.

 내 논의 김을 다 매거든 네 논도 매어 주마.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도 먹여 보자꾸나.

 

- 무타농상(無惰農桑). 상부상조(相扶相助)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빼앗지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빌지 마라.

 한 번만 때가 묻은(죄를 짓는다는 말) 후면 다시 그 죄를 씻기 어려우리.

 

- 무작도적(無作盜賊). 죄를 짓지 말 것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노름이나 장기를 하지 마라. 고소문(告訴文) 쓰지 마라.

 집안이 탕진하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남의 원수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가 법을 세우시는데 죄 있는 줄을 모르느냐.

 

- 무학도박(無學賭博) . 무호쟁송(無好爭訟) . 행자양로(行者讓路). 법을 지키고 죄를 짓지 말 것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노인장이여, 그 짐을 풀어 내게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이라 한들 무거울까.

 늙는 것도 서럽다 하는데 짐까지 지시겠는가.

 

-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 경로 사상의 강조 

요점 정리

 지은이 : 정철
연대 : 선조 13년(1580년)
갈래 : 평시조, 연시조(전 16수), 훈민가(訓民歌). 교민가(敎民歌)

 율격 : 3(4)·4조. 4음보
형식 : 전16수의 연시조로 직유법, 설의법, 청유 어법(請誘語法 사용
성격 : 계몽적, 교훈적
제재 : 올바른 삶
주제 : 옳은 일의 권장, 유교의 윤리 권장
표현 : 일상적인 언어 사용, 정감이 넘치는 어조와 백성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항목들로 제재를 구성함.

 의의 : 정철이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을 교화하고 계몽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계몽적·교훈적 노래지만 문학적 기교가 세련

            되어 있어 작가의 문학적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연시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각 수는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다.

 구성 : 16수 

주제

1

부생모육의 은혜에 대한 보답

2

형제간의 반목을 금하고, 우애 있게 지내기를 권함

3

임금과 백성의 관계와 부모님의 배려

4

부모님에 대한 효도 권유

5

부부는 일심동체이자 상호간의 존경의 대상

6

남녀관계가 문란해짐을 경계

7

자녀들에게 학문 권장

8

올바른 행동 권유

9

어른 공경하는 태도

10

올바른 벗의 관계

11

상부상조의 정신

12

애경사에 서로 도울 것

13

농사일에 상부상조의 정신

14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 것

15

도박과 송사를 금함

16

노인에 대한 공경의 마음

 

 

산촌에 눈이 오니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산골 마을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구나.

사림문을 열지 마라. 이렇게 묻혀 사는 나를 찾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다만 밤중에 나타난 한 조각 밝은 달이 내 벗인가 하노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신흠

 갈래 : 평시조, 단형 시조

 주제 : 은사(隱士)의 한정(閑情)

 구성 :

초장

산촌에 눈이 내림

중장

한적한 은거 생활

종장

자연을 벗삼는 풍류

 해제 : 인목 대비 폐위 사건에 연루되어 춘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작품으로, 정치적 함의를 지닌 것으로도 해석한다. 사립문조차

            열지 않고 한 조각달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은사의 고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내용 연구

산골 마을에 눈이 오니 돌길[세속과의 연결통로로서의 역할]이 묻혔구나.

사립문[세속과의 연결통로로서의 역할]을 열지 마라[화자가 '세상과의 단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 이렇게 묻혀 사는 나[은일지사]를 찾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설의법]

다만 밤중에 나타난 한 조각 밝은 달이 내 벗인가 하노라.

이해와 감상

 산촌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은사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돌길도 흰 눈에 묻혀 버린 산촌, 눈이 쌓였으니 찾는 이도 없을 터이고 사방은 적막하기 짝이 없다. 다만 한 조각 밝은 달을 기다려 그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길까 한다는 내용으로, '일편명월'은 지은이 자신의 고독을 덜어주는 대상이 되는 동시에 어떤 시기를 기다리는 은사의 심정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즉 '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다리는 지은이의 긍정적 자세가 이입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사대부시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은 이세보(1832~1895)이다. 이세보는 왕족으로 철종과 6촌간인데 안돈김씨 세도정권의 미움을 사서 1860년부터 3년간 전라도 신지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는데, 그의 시조는 모두 458수에 이른다. 경향도 다양해서 기행시조, 애정시조, 월령체시조, 유배시조, 도덕시조, 계고시조, 부정부패시조, 중국역대인물 회고시조, 말놀이시조 등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시조문학상 특이한 현실참여에 대한 시조를 두 수 들어본다.

 

이세보 (조선 문신)[李世輔]

1832(순조 32) 전북 전주~1895(고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시조작가.

고시조를 창작한 조선 후기의 마지막 대가 중 한 사람으로,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시조를 지었으며 경향도 다양하다. 본관은 전주. 자는 좌보(左甫). 능원대군(綾原大君)의 7대손이다. 아버지 단화(端和)와 어머니 해평윤씨 사이의 4형제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1851년(철종 2) 풍계군(豊溪君) 당(唐)의 후사(後嗣)가 되어 이름을 호(晧)로 바꾸었고, 철종으로부터 경평군(慶平君)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1857년 동지사로 청(淸)나라에 다녀왔고, 김좌근과 김문근을 비난한 탓으로 안동김씨 가의 미움을 받아 작호를 빼앗겼으며, 1860년 신지도에 유배되어 3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고종이 즉위한 해 풀려나서 지종정경·한성판윤·공조판서·판의금부사의 벼슬을 했고, 1895년(고종 32) 민비학살사건을 듣고 통곡하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근래에 개인 시조집 〈풍아 風雅〉·〈시가 詩歌〉 등이 발견되어 남긴 작품이 458수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말을 다듬지 않고 쉽게 썼으므로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형식을 제대로 갖춘 경우에 맨 마지막 구절을 생략한 것으로 보아 시조창을 전제로 창작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를 풍류로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사대부의 시조가 관념적인 수사에서 벗어나 현실인식에 대해서도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관리들의 부정을 신랄하게 비판한 시조와 애정을 주제로 한 시조가 많고, 그밖에 도덕·기행·회고 등을 읊은 작품이 있다. 형식에서도 월령체의 시조를 새롭게 지었다. 시조 창작의 주체가 사대부에서 평민으로 옮겨진 조선 후기에 사대부로서 현실의 다양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는 점이 시조사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기녀시조, 평민시조

 

기녀시조시인브리태니커

조선시대 기녀(妓女) 출신의 시조작가들.

기녀를 둔 목적이 경기(京妓)나 지방기(地方妓)를 막론하고 공사(公私)의 연향(宴享)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들은 춤·노래·악기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했고, 장악원(掌樂院)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두어 이들을 가르쳤다. 기녀의 활동형태는 대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궁중이나 관청의 연향에 동원되는 경우, 둘째, 민간의 연회에 초청되어 가무(歌舞)를 제공하는 경우, 셋째, 기방(妓房)을 차리고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로 술과 가무를 파는 경우이다. 조선 후기로 올수록 2번째와 3번째의 활동형태가 주목된다. 영조 때의 가객(歌客)으로 유명했던 이세춘(李世春)의 집단이 가무에 능한 기녀와 함께 민간의 초청에 의해 영업을 했던 것이 그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시조는 주로 연회에서 불렸던 성악(聲樂)의 가사로 창작되었던 것이었으므로, 그 연희의 주역이었던 기녀가 시조의 창작에 깊이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최동원(崔東元)의 연구에 따르면 기녀작가의 이름이 전하는 경우는 황진이(黃眞伊)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기명(妓名)을 쓰고 있다. 이들 모두를 통틀어 〈역대시조전서 歷代時調全書〉에 실린 기녀작가의 수는 28명, 작품의 수는 56수인데, 신빙성이 희박한 것을 제외하면 25명에 44수가 된다. 기녀의 작품은 일반 작가들에 비해 전승이 불완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로 첫째, 이들의 작품이 연회석상에서 불려 작품의 내용보다는 음악의 창사(唱詞)로서의 구실이 더 중요했고 유흥이 끝나면 부른 사람의 이름을 굳이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경향이 짙었다는 점, 둘째, 출신이 천한 이들이었으므로 당시의 시조집 편찬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라는 점, 셋째, 기녀 자신들 역시 자기 작품에 대한 전승의식이 희박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 고시조 중에서 성(性)을 주제로 한 작품이나 여성화자(女性話者)의 작품은 상당수가 기녀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녀시조로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성종(成宗) 때의 소춘풍(笑春風)이 지은 "당우(唐虞)를 어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 오늘 본 듯"으로 시작되는 작품이나, 이 작품은 상투적 문구를 늘어놓았을 뿐 형식도 안정되어 있지 않다. 기녀시조로 가장 우수한 작품은 조선 중기에 와서 황진이·매창(梅窓)·홍랑(紅娘) 등에 의해 창작되었다. 황진이의 작품으로 확실한 것은 6수인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로 시작되는 작품이 절창으로 손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애정과 이별을 주제로 하되 참신한 시상(詩想)과 표현으로 당시 매너리즘에 빠진 사대부시조를 자극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송이(宋伊)·매화(梅花)·명옥(明玉)·천금(千錦) 등의 기녀시조시인이 등장했으나, 작가가 남성으로 표기되는 등 특정한 작가의 작품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개의 내용은 역시 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애정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다.

 

시조                     카·타·파·하 시조 이해  현대 시조

 

어져 내일이야

 

희망의 문학

 

아아, 내가 한 일이야, 그리워할 줄을 몰랐던가

있으라고 했더라면 가겠는가마는 제가 굳이

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도 모르겠구나. 

아! 내가 한 일이 후회스럽구나. (막상 보내 놓고) 이렇게도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 미처 몰랐더냐?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으라고 말렸더라면)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굳이 떠나시려 했겠느냐마는 (내가) 굳이

보내 놓고는 이제 와서 새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요점 정리

 작자 : 황진이(黃眞伊)

 갈래 : 평시조, 단시조

 성격 : 감상적. 애상적. 여성적 편향. 연정가. 이별가

 표현 : 도치법. 영탄법

 제재 : 보내고 그리워하는 정

 주제 :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이별의 정한

 출천 : <진본 청구영언(珍本靑丘永言)>

내용 연구

 어져 : 감탄사로 그리움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환기시킴 / 화자는 임을 보내고 그리는 자신에 대해 한탄하는 심정을 읊고 있다. '어져'는 임을 보낸 자신을 한탄하고,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는 심경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감탄사라고 할 수 있다.

 모로더냐 : 몰랐더냐, 몰랐던가

 

희망의 문학

 

있으라고 말했더라면 임이 '나'를 떠나갔겠는가 하는 후회의 마음이 나타남.

 보내고 그리는 - 나도 몰라 하노라 : 자존심과 경솔함으로 임을 보내 놓고 그리워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다.(심리적 갈등이 우리말의 절묘한 구사를 통해 섬세하고 곡진하게 표현되었다.)

이해와 감상

  자존심과 연정의 사이에서 겪는 오묘한 심리적 갈등이 우리말로 절묘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임을 떠나보낸 후의 회한(悔恨)을 진솔하게 나타내고 있는데, 애틋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정결하게 표현하였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약한 서정적 자아의 마음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황진이의 시조는 기녀(妓女)들의 시조가 애정을 노래함으로써 시조의 영역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표현 기교까지 고도로 세련되었음을 말해 준다. 초장의 '어져'라는 감탄사는 소박한 탄성이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그리움에 대한 인식이 내포된 것이고, '저 구태여' 같은 경우도 의미의 함축성을 극대화한 좋은 예이다. 이 외에도 '동짓달 기나긴 밤을~'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치환시키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심화 자료

  황진이(黃眞伊)

 생몰 연대 미상으로 조선 중종 대 개성의 기생, 시조시인.

 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일컫는다.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이다.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다.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다. 황진사의 서녀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개성의 관기가 되었다.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영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다.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여 나갔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야담이 전한다. 기생이 된 후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화장을 안 하고 머리만 빗을 따름이었으나 광채가 나 다른 기생들을 압도했다. 송공대부인(宋公大夫人) 회갑연에 참석해 노래를 불러 모든 이의 칭송을 들었고 다른 기생들과 송공 소실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으며, 외국 사신들로부터 천하절색이라는 감탄을 받았다.

 성격이 활달해 남자와 같았으며, 협객의 풍을 지녀 남성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들을 굴복시켰다. 30년간 벽만 바라보고 수도에 정진하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찾아가 미색으로 시험해 결국 굴복시키고 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정의 돈만 아는 사람들이 천금을 가지고 유혹해도 돌아보지 않았으나, 서경덕이 처사(處士)로 학문이 높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시험했으나 그의 높은 인격에 탄복하여 평생 서경덕을 사모했다. 거문고와 술·안주를 가지고 자주 화담정사를 방문해 담론하며 스승으로 섬겼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보기를 원했으나 황진이는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지 않아 친구 이달에게 의논했다. 이달은 "진이의 집을 지나 누(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한 곡을 타면 진이가 곁에 와 앉을 것이다. 그때 본 체 만 체하고 일어나 말을 타고 가면 진이가 따라올 것이나 다리를 지나도록 돌아보지 말라"하고 일렀다. 벽계수는 그의 말대로 한 곡을 타고 다리로 향했다. 황진이가 이때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시조를 읊었다. 이것을 들은 벽계수는 다리목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다 말에서 떨어졌다. 황진이는 웃으며 "명사가 아니라 풍류랑(風流郞)이다"라고 하며 돌아 가버렸다고 한다.

 소세양이 황진이의 소문을 듣고 "나는 30일만 같이 살면 능히 헤어질 수 있으며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황진이와 만나 30일을 살고 이별하는 날 황진이가 작별의 한시 〈송별소양곡 送別蘇陽谷〉을 지어주자 감동하여 애초의 장담을 꺾고 다시 머물렀다고 한다. 명창 이사종과는 그의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모두 6년을 같이 살고 헤어졌다. 풍류묵객들과 명산 대첩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해 재상의 아들인 이생과 금강산을 유람할 때는 절에서 걸식하거나 몸을 팔아 식량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죽을 때 곡을 하지 말고 고악(鼓樂)으로 전송해 달라, 산에 묻지 말고 큰 길에 묻어 달라, 관도 쓰지 말고 동문 밖에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게 하라는 등의 유언을 했다는 야담도 전한다. 임제가 평안도사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 황진이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면서 지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가 전한다. 그녀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로 시작하는 시조를 포함해 모두 8수가량의 시조를 남겼고 〈별김경원 別金慶元〉· 〈영반월 詠半月〉·〈송별소양곡〉·〈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박연 朴淵〉·〈송도 松都〉 등의 한시를 남겼다. 〈식소록 識小錄〉·〈어우야담〉·〈송도기이 松都紀異〉·〈금계필담 錦溪筆談〉·〈동국시화휘성 東國詩話彙成〉·〈중경지 中京誌〉·〈조야휘언 朝野彙言〉 등의 문헌에 황진이에 관한 일화가 실려 전한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여류 시조의 문학사적 의의

 여류 시조는 그 작자가 대부분 기녀들이었다. 비록 천민에 속하는 계급이었지만, 그들의 교양은 선비들에 견주어 어느 면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들의 시조는 여성만이 지닌 섬세한 감정으로 진실하면서도 절실하게 사랑을 노래한 까닭에 더욱 감동적이다. 특히 재도지기(載道之器)의 역할을 했던 사대부들의 시조와는 달리 여성 특유의 우아한 정서를 전달하고 있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 작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시조에 얽힌 일화가 많이 전하고 있어 그들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기녀 시조는 상실의 상황에서 노래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시조 담당층인 사대부 시조와 비교된다. 말하자면 황진이의 시적 정서와 사대부의 시적 정서는 판이하다는 것이다. 한편 기녀 시조는 이별이 제재라는 점에서 고려 가요와 상통하는데 고려 가요가 이별의 순간을 노래한다면 기녀 시조는 이미 벌어진 이별의 상황을 노래한다. 시적 화자의 의식면에 있어서도 고려 가요가 님과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고 있다면 기녀 시조는 수평적 관계로 보고 있다. 또, 발화의 차이에서도 고려 가요는 이별의 순간에 발화하는 것으로 직접적이고 절박한 발화가 이루어지는 반면, 기녀 시조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므로 자아를 성찰하고 더불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간접적으로 발화한다. 요약해 말하자면 기녀 시조는 이별 상황, 언술 방식, 태도, 갈등의 해결 등은 고려 가요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그것을 변용시킨 셈이라 할 수 있다. 

  기류 작품

 조선 시대 기생들이 쓴 작품으로 시문, 서화에 뛰어 나고 절색(絶色)을 구비한 기문(妓門)의 여인을 기류라 했는데, 대표적인 기류로는 황진이·이매창·문향·매화·홍랑·소백주·구지·명옥·다복·소춘풍·송대춘·송이·강강월·천금 등 15명이며, 그들의 시조 작품 22수가 전해진다.

 

창(窓) 밖이 어른어른커늘 

 

창(窓) 밖이 어른어른ㅎ거늘 님만 너겨 펄떡 뛰어 뚝 나서 보니,

님은 아니 오고 으스름 달빛에 녈 구름 날 속였고나.

마초아 밤일세망정 행여 낮이런들 남 우일 뻔하여라.

 

창밖이 어른어른하거늘 님으로 여기고 펄떡 뛰어 뚝 나가서 보니

기다리는 님은 아니 오고 으스름 달빛에 지나가는 구름이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낮이었다면 남들이 웃을 뻔하였구나.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사설시조

 성격 : 연정가, 해학적, 풍자적, 독백적

 제재 : 임그리는 밤, 달빛, 구름

 특징 : 형식면에서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중간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주제 : 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임에 대한 연모의 정

 출전 : 화원악보 

내용 연구

창 밖이 어른어른하거늘 님으로 여기고 펄떡 뛰어 뚝 나가서 보니 - 임을 마중 나감

기다리는 님은 아니 오고 으스름 달빛에 지나가는 구름이 나를 속였구나 - 구름에게 속음

마침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낮이었다면 남들이 웃을 뻔하였구나. - 웃음거리가 될 뻔 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고 또한, 님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에서 빚어진 착각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노래이다.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를 보고 임이 오는 줄 착각했다는 화자의 진솔한 고백에서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 나온다. 또한 자연 현상에서 임의 환영(幻影)을 보고 '펄떡', 일어나 '뚝' 나가는 과장된 행동을 통해 사랑에 빠진 화자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의 마음은 달빛에 어른거리는 구름 그림자에도 속을 정도로 절박하지만, 정작 화자의 어조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희화화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화 자료

화원악보(花源樂譜)

 조선 말기(1885?)에 편찬된 편자 미상의 시조가집(時調歌集). 1책(총 97장). 필사본. 가집의 본문은 이중의 서체(書體)로 필사되어 있다. 시조 한 수(首)를 수록할 때 가곡창(歌曲唱) 형식인 5장으로 분장하여 띄어 쓰고 있다.

모두 651수의 시조를 곡조별로 수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277수는 작자 명을 노래 끝에 밝혀놓았다. 651수 중 최종 2수는 책장(冊張), 지질(紙質), 필체가 다르게 보충 기록되어 있다.

편찬 경위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문의 말미에 ‘歲削蒙作袂四之月 旣生魄後五丁酉 龜隱手記于桃源僑居焉(세전몽작악사지월 기생백후오정유 구은수기우도원교거언 : 을유년 4월 16일이 지난 후 다섯 번째 정유날 구은이 도원교거에서 손수 쓰다. ※削蒙은 古甲子에서 십간의 乙, 作袂은 십이지의 酉)’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구은(龜隱)이라는 호를 가진 이에 의해 1885년(乙酉)에 엮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권두에 여러 사람의 서문과 가론(歌論)이 10여 면에 걸쳐 전재되어 있다. ≪청구영언≫에 실린 김득신(金得臣)의 서문을 비롯해, 송나라 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 能改齋亶錄≫에서 전재한 ‘가곡원류 논곡지음(歌曲源流論曲之音)’이 수록되었다.

≪해동가요≫ 이후의 가집들에서 흔히 확인되는 ‘각조체격 가지풍도형용(各調體格 歌之風度形容 : 악조별 격식과 노래의 풍도를 형용한 설명)’ 및 ‘매화점장단 장고장단(梅花點長短 長鼓長短 : 가곡의 고저장단에 대해 점을 표하여 나타낸 음악적 부호)’ 등에 대한 음악적 설명도 기재되어 있다.

이 악보는 수록된 시조의 작품배열이 ≪가곡원류≫계 가집(특히 河合本 가곡원류)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또 박효관·안민영이 편찬한 ≪가곡원류≫의 서문과 그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곡원류≫ 편찬 이후 그 일본(一本)을 토대로 편자가 얼마간의 첨삭을 가하여 편집한 ≪가곡원류≫ 계통의 가집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김득신의 서문과 ‘부창가지법(夫唱歌之法)’은 가람본 ≪청구영언≫과 이 책에만 실려 있어, 순전히 ≪가곡원류≫ 계통의 가집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따라서 가집의 성격에 대한 보다 정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이 가집이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서문에 나타나는 시가관(詩歌觀)이다. 찬자는 〈화원악보서 花源樂譜序〉에서 “노래〔歌〕라는 것은 나뭇가지〔柯〕이다. 노래에 말이 있는 것은 나무에 가지가 있는 것과 같다. ……노래가 끝내 없어질 수 없음은 나무에 가지가 없어질 수 없음과 같이 분명하다.”고 하여 노래의 영속성을 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노래〔歌〕는 본디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즐거워 노래하기도 하고 근심스러워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괴로워서 노래하기도 하고 느낀 바 있어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노래를 자연스런 성정(性情)의 발로로 보는 표현론적 시가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가관은 노래가 풍교(風敎)의 도구가 된다는 기존의 관념론적 시가관을 벗어난 것으로서, 노래가 인간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표현매체임을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고금의 노래를 모아 분류 수집하여 뺄 것은 빼고, 아주 음란한 것은 버린 다음 간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고 한 곳에서는 편자의 일정한 성정적 편집 기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가집은 ≪청구영언≫·≪해동가요≫·≪가곡원류≫ 등 이른바 3대 시조가집의 편찬 이후, 실용적 목적에서 여러 무명 가객에 의해 활발한 가집 편찬이 이루어졌던 시기의 가집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가집들이 편찬되던 시기상 최종 지점에 놓이는 가집이라 생각된다. 이능우가(李能雨家)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時調의 文獻的 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朝鮮後期 時調集의 編纂과 國文詩歌의 動向(金學成, 東洋學 23輯,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199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