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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머리가 복잡했던 이유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5. 01:00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지난주 머리가 복잡했던 이유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아저씨들의 술자리가 아무리 심란한 시절이라 해도 소소한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정치 이야기는 부적절하다. 그래서 얼굴 이야기를 해보겠다.

링컨이 그랬다. 사람은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유가(儒家)에서도 가르쳤다. 인간의 내면은 반드시 그 눈빛과 낯빛과 몸가짐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곱게 늙으라는 이야기인데 참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와 고움은 거꾸로 간다. 삶의 곡절과 굴곡을 가진 어른의 얼굴은 그 자체가 유행가 가사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것이 어른의 얼굴이다.

지난주 사람들은 많이 울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눈물 흘리는 광경을 처음 보았다. 처음 본 것은 또 있다. 사람들은 생전 고인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산 자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일정의 거리에서 지켜보는 두려움의 현상이다. 그래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보고 또 보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유명 연예인이 죽었다 해도, 그의 추모 열기와 생전 드라마의 다시 보기 시청률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나는 이미 삶의 강을 건넌 사람의 얼굴을 그렇게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광경을 처음 봤다.

사람들이 마치 부모를 잃은 불효자 느낌을 갖는 듯하다고 분석가들은 설명했다. 나는 거꾸로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통함이 사람들 마음속에 있을지 모른다고. 제아무리 효자라 해도 돌아가신 부모의 생전 모습을 그렇게 미친 듯이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렇게 한다. 사람들이 혹여 고인에게 부채의식을 느꼈다면 아이를 물가에 내놓고도 잘 돌보지 못한 못난 부모의 심정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알았다. 고인의 얼굴에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여태껏 그렇게 맑은 영정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예순이 넘은 사내의 미소가 소년의 그것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맑음은 중독의 속성을 갖는다. 비단 부모의 마음, 자식의 마음이 아니라 해도 그의 얼굴은 중독성이 있었다.

비슷한 경우는 있었다. 김광석이라는 가수에게 중독의 얼굴을 봤었다. 그가 살아서 공연했던 모습,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와 같은 뮤직 비디오,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는 사진은 죽은 자에 대한 스산한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김광석은 세대를 넘어 동시대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사람의 얼굴에 중독성이 있다는 것, 그 중독은 궁극적으로 살아서의 품(品)과 격(格)의 총화일 수 있다는 것. 나는 한때 세상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품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쓸쓸히 웃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지난주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했다.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입력 : 2009.06.03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