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윤용인 어록

쇼핑남녀(男女)의 '동상이몽'

수로보니게 여인 2009. 4. 24. 23:08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쇼핑남녀(男女)의 '동상이몽'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w.nomad21.com 입력 : 2009.04.22 06:22

 

 봄이 왔으니 당신이랑 아이 옷도 좀 사고 자기도 통 입을 것이 없으니 백화점이나 가자며 해맑게 웃는 '님' 앞에서 방구석에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황송해 따라나선 것이 블랙 선데이의 시작이었다.

 

 늘씬하게 잘 빠진 백화점 주차 언니의 손동작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님의 머릿속은 온통 쇼핑목록으로 분주하면서 둘 사이의 동상이몽은 개시됐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여전히 부부간 에너지 충전지수가 수평선이었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신기의 축지법과 박태환의 물속 유영기술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나가는 님의 뒤꽁무니에서 여자의 쇼핑에 겁 없이 동참한 당신은 문득 자신의 선택에 회의감이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음이라.

 

 님께서 아이들 옷을 꼼꼼히 살피며 가격대비 품질과 재단 상태와 실용성을 검사하는 동안 봄 점퍼 하나를 후딱 사가지고 온 당신은 쇼핑 끝. 그러나 님은 아직 몸도 풀지 못했음이라.

 

 당신이 뒷짐 지고, 짝다리 하고, 동공 풀린 채 하품하고 있는 사이 독립군의 신중함으로 아이들 옷을 결정한 님이 향한 곳은 아아 꿈속에서도 가위눌리게 하던 숙녀복 코너. 검정·회색·흰색으로 춘하추동을 마감하시는 수녀님들처럼 저 이름을 '수녀복' 코너로 바꾸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자니 님께서 물으신다.

 

 "여보, 이 옷이 예뻐, 저 옷이 예뻐" 당신은 경험에 의해 이 질문이 가혹한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한 함정임을 잘 알고 있다. "아무거나"는 무심함을 드러내는 최악의 답변. "이 옷"이라고 하면 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눈썰미 없음.

 

  "저 옷"이라고 하면 여자 마음 모르는 바보. 결국 숙녀복 전 코너를 돌아다닌 후 님께서는 애 키우느라 팔뚝만 굵어졌다는 한탄과 함께 애꿎은 남편 월급을 은근히 원망하면서 예민한 저기압 전선을 형성하신다.

 

 식사라도 하고 가자는 당신의 꾐에 님이 고분고분 7층 식당가를 향한다. 기쁘다, 쇼핑 끝나셨네 아아 그러나 무엇을 봤는지 갑자기 방향을 트는 님께서는 '염가세일'이라고 쓰여 있는 가판대로 향한다. 고지까지 가는 길에 님은 열번 멈추시고, 다섯번 물건을 집으시며, 딱 한번 지갑을 여신다. 이때, 당신은 폭발한다. 밥 좀 먹자고 이 '웬수'야

 

 사냥감을 발견했다 하면 오로지 그놈만 쫓아 기어코 목표물에 창을 꽂았던 사내의 유전된 수렵방식은 밖에서 잡아온 사냥감을 요리조리 살피며 가족의 안전한 먹이로 완성하던 님들의 유전자와 늘 이렇게 부딪친다.

 

 남자에게 쇼핑은 사지선다형 객관식 답안 중 가장 빠르게 정답 하나를 집어내는 시간이고, 여자에게 쇼핑은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하여 가장 이상적인 주관식 답을 써 내려가는 시간이다. 그래도 식당 갈 때는 식당만 가자. 우리 선조 할머니도 일단 할아버지 배는 채워준 다음에 끌고 다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