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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깡디드`/ 낙천주의와 악의 문제

수로보니게 여인 2009. 4. 12. 21:20

www.KOOKJE.co.kr                                                                             2008년 11월 05일


 

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9-3> 볼테르 `깡디드`


고전 속에 논술의 해법이 있다. 논술의 기술보다는 근본적인 배경지식을 쌓는 게 우선이다. 국제신문은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와 함께 고전 강좌를 연재한다. 중·고생들이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며 논술시험에 나올 만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해답을 고민해 보는 자리다.

 

◆ 주요 의제

① '깡디드'에서 악에 관한 문제는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다.

② 볼테르는 "모든 것이 최선이다"라는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 철학이 우스꽝스럽고 위험스런 환상일 뿐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③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신의 정의는 알 수 없는 영역이고, 신에 대해 인간이 어설프게 추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일깨운다.


◆ 생각해볼 문제

① 현대인들에게 볼테르의 시대에는 없었던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는 악은 어떤 것일까?

②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은 빵글로스 같이 하나의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심취해서 그것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③ 선과 악의 문제가 질서를 이루고 있지 않은 모순적인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


◆ 핵심용어

▶낙천주의(l'Optimisme)

낙천주의라는 말은 1737년 프랑스 예수회에서 발행한 '트레부 신문'에서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1646~1716)의 '변신론'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1759년 '깡디드'로 인해 이 용어는 더 널리 보급되고 1762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사전에 삽입된다. 라틴어로 optimus는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한다. 낙천주의란 모든 것이 선이고,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할 수 있었던 최고의 세상이고, 가능한 최선은 존재하고 있는 것과 일어날 모든 것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체계에 부쳐진 이름이다.

라이프니츠의 '변신론'에 의하면, 창조행위는 완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만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은 가능한 최선의 세상을 창조했다.(예정조화설) 즉 전체적으로 완벽한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변화하는 몇몇 요소나 부분들은 불완전하다. 이러한 불완전은 신이 구상한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 치러져야 되는 대가일 뿐이다. 선의 승리는 악에 의해 드러나고, 모든 악은 선에 도달하기 위해 원인과 결과라는 혹독한 연결 속에 있다. 최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최선을 위한 것이다.

▶충족이유(la raison suffisante)

원인이나 결정적인 이유(왜 이것이 존재하고 왜 이것은 이렇게 되는지를 귀납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데 사용되는)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라이프니츠의 법칙. (라이프니츠 '변신론')

 

▶신의 섭리(la providence)

그리스도교에서 모든 피조물,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포함해서 세계의 발전을 신에 의한 설계의 실현이라고 보는 것으로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의 기조를 이룬다.


1. 낙천주의와 악의 문제


종교와 정치에 대한 풍자에 이어 볼테르는 형이상학을 풍자한다. '깡디드'는 18세기에 유럽에서 학문적으로 유행하고 있던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 철학을 반박하는 작품이다. 1740년대에 가장 절친한 사이인 샤틀레 부인과 미래의 프러시아의 왕이 될 프레데릭의 영향으로 볼테르는 낙천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다. 친구들이 심취한 영역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볼테르는 연인인 샤틀레 부인과 시레 성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고, 타국의 왕자로부터 작가로서 존경받는 영예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론에 공감을 표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0년 뒤 볼테르는 '깡디드'라는 무기로 낙천주의 철학에 독설을 퍼붓는다. 이러한 태도의 전환이 어떤 연유에서 기인하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오랜 연인이자 자신의 지적 성숙에 영향을 끼쳤던 샤틀레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1749년)으로 볼테르가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는다. 얼마 후 볼테르는 프레데릭 2세로부터 시종직이라는 직무를 받아들이고 프러시아로 떠난다.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인 볼테르를 프레데릭 2세는 왕자 때부터 '나의 스승'이라 칭하면서 호감을 표시했고, 수차례 서한을 교환하면서 두 사람은 존경과 우정 어린 관계를 맺고 있었다. 볼테르는 왕과 함께 철학과 권력의 동맹이라는 플라톤적 이상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그 꿈은 좌절된다. 평화주의자로 자처했던 프레데릭 2세는 등극하자마자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만들고 전쟁을 일삼는다.
프레데릭의 비윤리적 성격과 군국정치에 환멸을 느낀 볼테르는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비관론자가 된다.(1750~53년)

게다가 그 당시 유럽에서 서로 연관성은 없지만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몇 초 만에 3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지진(1755년)이라는 자연재앙이다. 이 현상 앞에서 망연자실한 볼테르는 '리스본 재난에 관한 시 혹은 "모든 것이 선이다"라는 이론에 대한 고찰'을 짓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바로 1년 후 유럽을 분열시키고 그 여파가 식민지에 까지 뻗친 7년 전쟁(1756년)이다. 이 두 사건은 식견 있는 사람들이 가진 진보에 대한 믿음을 뒤엎었고, 볼테르는 이를 통해 드러난 악의 실체와 그것이 인간에게 초래한 다양한 고통과 불행을 주목한다.
낙천주의와 상반되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 즉 개인적 절망과 유럽 사회가 겪는 혼란에 대해 참여 작가인 볼테르가 방관자로 있을 수는 없다. 예전에 낙천주의 이론에 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했던 그는 이제 시대정신에 민감한 지성인으로서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성을 통감한다.
동시대의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한 자신의 견해를 반영하는 '깡디드'로 볼테르는 체계적인 정신보다 비판적인 정신을 더 지향하는 계몽주의 철학자로 거듭난다.

 
  삽화 아래에 쓰인 "바로 이 대가로 당신들은 유럽에서 설탕을 먹고 있지요"는 백인주인에 의해 한 쪽 팔과 다리를 잘린 흑인 노예가 한 말이다.

그러면 '깡디드'를 내세워 볼테르가 낙천주의를 어떻게 비판하는지 살펴보자. 

백인 주인이 한 쪽 팔과 다리를 잘라버린 흑인 노예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낙천주의 철학에 회의를 표시하는 깡디드에게 하인 까깡보가 "낙천주의는 무엇입니까?"(19장)라고 묻는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문제인 악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악의 문제는 '깡디드'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다. 그러면 '깡디드'에서 볼테르가 보여주는 악은 어떤 것들인가?

첫째, 자연발생적인 육체적인 악이다. 추위와 굶주림(2장) 매독 같은 전염병(4장) 지진과 폭풍우(5, 6장) 같은 자연재해로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둘째, 도덕적인 악은 인간 자체에서 기인하는 전쟁, 탐욕, 질투이다. 깡디드는 비관주의 철학자 마르탱에게 이와 관련된 모든 악을 나열 한다. "인간이 늘 거짓말쟁이고, 교활하고, 배신하고, 배은망덕하고, 불한당이고, 나약하고, 변덕스럽고, 비겁하고, 시기하고, 탐욕스럽고, 술주정뱅이이고, 욕심 많고, 야심적이고, 유혈을 좋아하고, 남을 중상모략하고, 방탕하고, 위선적인 광신자들이고, 어리석기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21장)

마지막으로 철학적인 악은 인간을 불안으로 인한 격동과 권태로 인한 혼수상태(30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한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사느냐 죽느냐 혹은 자살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2. 낙천주의를 공격

이렇게 악을 구분 지었다면 이제 볼테르에게 있어 문제는 이러한 악이 왜 존재하느냐이다. 스승 빵글로스가 설명한 "모든 것이 최선이다"라는 가르침에 열렬한 신봉자였던 깡디드가 때로는 악의 희생자가 되고, 때로는 악행을 목격하면서 낙천주의 이론의 비현실성을 깨닫는다. 악의 존재에 대해 빵글로스의 주장은 이 세상이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기 위해 "모든 것(악)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개인의 불행은 전체적인 선을 이루기 때문에 개인의 불행이 많아질수록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이다.(4장)

깡디드가 받아들이기에는 악이 선으로 변형된다는 황당한 추론인데, 악의 존재에 대한 해명은 그렇더라도 그 악으로 인해 인간이 겪는 고통은 어떻게 설명될까? 이에 대해 깡디드는 스승을 다그친다. "그렇다면 빵글로스 선생님께서 교수형을 당하시고, 의사의 칼에 배가 갈리고, 그러고도 모자라 사정없이 몰매를 맞으시고 또 갤리선에서 노예의 몸으로 노 젓는 일을 당하셨으면서도 여전히 모든 것은 최선의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고집하시렵니까?" 라는 질문에 빵글로스는 "그건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견해네. 결국 나는 철학자니까. 라이프니츠가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그의 예정조화설(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여러 가능성 중에서 최선의 세계를 선택했다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했던 말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지"(28장)라고 말한다.

볼테르는 빵글로스를 고집스럽고 광적인 라이프니츠주의자로 만들면서 낙천주의가 우스꽝스럽고 위험스런 환상일 뿐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빵글로스는 전혀 설득력 없는 인위적인 추론으로 정당화할 뿐이다. 깡디드가 했던 경험이 이 세상에 편재되어 있는 악과 그 보편성을 증명하기 때문에 낙천주의는 추론의 오류에 의해서만 입증된다는 것을 볼테르는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면 빵글로스로 대표되는
낙천주의 철학에 대해 볼테르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비난하는지 살펴보자.

첫째, 그의 독단론이다. 그의 사고는 비타협적이고 융통성이 없는데, 그가 겪은 성병과 자연재앙 같은 개인적인 불행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을 귀납적으로 정당화한다. 지진으로 깨어진 돌조각에 몸을 다치고 길바닥에 넘어져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는 깡디드에게 빵글로스는 "이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이야. 만약 리스본에 화산이 있다면 다른 곳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사물이 지금 있는 곳에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지. 왜냐하면 모든 것이 선이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5장) 형식에 지나지 않는 빵글로스의 설명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고, 일련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그의 무의미한 말이다. 이름이 '모든 혀'를 뜻하는 빵글로스는 말의 화신인데, 그는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하고, 말 자체에 도취되어 있다. "모든 일들은 가능한 최선의 세상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지. 자네가 뀌네공드와의 사랑으로 인해 그 아름다운 성에서 남작의 발에 차여 내쫓기지 않았더라면, 종교재판에 처해지지 않았더라면, (…) 자네는 이곳에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지"(30장)라는 말은 합당하지 않은 인과관계로 세상사를 해석하려드는 것이다.

셋째, 그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 "그건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견해네. 결국 나는 철학자니까. 라이프니츠가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내가 했던 말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지"(28장)라고 말하는 완고한 빵글로스는 이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듯하고 가증스러워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의 무효성이다. 빵글로스는 말만하지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는 부상당한 깡디드를 도와주지도 않고 무절제한 연설가처럼 리스본 지진에 관해서 아메리카 대륙의 리마에서 리스본까지 지하에 유황길이 있다고 추론한다.(4장)

결국
볼테르는 기계적이고, 주제에 벗어나 늘 반복적인 대답을 하는 빵글로스의 인격을 통해 악의 문제를 진지하고 경건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희화화하면서 비이성적인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3. 낙천주의와 신

깡디드가 제기했던 악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빵글로스가 한 대답에 비추어
볼테르는 낙천주의 철학이 신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깡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빵글로스는 충족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있고,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있고, 돌은 성을 지으라고 있고, 돼지는 사람이 먹으라고 있고, 가장 훌륭한 남작은 가장 훌륭한 성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빵글로스의 주장은 툰데르 텐 트롱크 남작(뀌네공드의 아버지)의 안락함을 위해 신이 모든 것을 끼어 맞추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각 사건들을 무조건 신의 의도와 연결 짓는 빵글로스의 태도에 볼테르는 분노하면서 그의 섭리주의를 부정한다.

최선의 세계에서 얼마만큼의 악은 선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이고, 악 없는 세상은 최선의 세상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낙천주의자들은 악이 신의 섭리를 위한 도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늘 명확성에 열중하는 이성적인 철학자 볼테르는 신이 악의 책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의 선함과 악의 존재라는 형이상학적 역설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하면서, 볼테르는 육체적·도덕적·철학적 악과 세계의 창조자이며 지고의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을 오히려 화해시키는 입장에 선다.

착한 자크는 배가 난파되어 바다에 빠져 죽고, 자크를 죽게 만든 못된 선원은 살아남아 악행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신은 침묵하고 있다. 깡디드에게 사기를 친 선장의 경우, 신은 그의 배를 난파시키고 그를 바다에 빠져 죽게 한다.(5장) 죽었던 뀌네공드의 오빠가 살아나서 예수회 신부가 되고,(15장) 뀌네공드를 차지했던 유대인과 종교재판소 판사를 죽인 깡디드가 파라과이로 무사히 도주한 것은 신의 섭리이다.(9장)

이렇게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세상에 대해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상과 벌로 개입하는 신을 보여준다. 결국
볼테르는 신의 정의는 알 수 없는 영역임을 주장하면서, 세상만물의 창조자인 신이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낙천주의자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는다. 볼테르는 신이 위대하고, 전지전능할수록 인간은 작고 나약하기 때문에 신에 대해 어설프게 추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일깨운다.

깡디드가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사면초가에 처하자 빵글로스의 철학대로 모든 일을 신에게 맡긴다. 하인 까깡보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룻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도중 그 나룻배가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일을 당한다. 순진하게 자신들을 신의 섭리에 맡긴 무기력한 주인공들은 거부 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노예가 됐을 뿐이다.(17장)


볼테르는 악에 대한 신의 개입이라는 논제를 통해 인간의 미약한 지력으로 형이상학이라는 틀 속에서 신을 헛되이 추론하는 것은 그만두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우주에 내던져진 인간으로서 보다 실질적인 새로운 가치의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호소한다. 볼테르는 수동적이고, 온순하고, 자신이 가진 편견의 희생자이고, 빵글로스의 교육으로 인해 독단적인 비전에 갇혀있던 깡디드를 개인의 가치 체계를 마음속에 품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쟁취하는 철학자로 변신시켜 "모든 것이 선이다"에 맞설 새로운 가치를 우리에게 제시할 것이다.

김영리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kyl7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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