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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술술 / '깡디드'는 어떤 책인가?

수로보니게 여인 2009. 4. 12. 15:07

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9-2> 볼테르 '깡디드


고전 속에 논술의 해법이 있다. 논술의 기술보다는 근본적인 배경지식을 쌓는 게 우선이다. 국제신문은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와 함께 고전 강좌를 연재한다. 중·고생들이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며 논술시험에 나올 만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해답을 고민해 보는 자리다.

 

◆ 주요 의제

① '깡디드'는 사랑과 철학적 문제를 동시에 테마로 다루고 있다.

②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종교를 풍자한다.

③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18세기에 부패한 프랑스 왕정체제가 혁명이라는 방식으로 개혁돼야함을 주장한다.

 

◆ 생각해볼 문제

① 18세기에 생긴 철학콩트라는 문학 장르는 철학적 사유가 결핍된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② 우리 사회는 종교적 관용과 비관용에 대해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있는가

③ 18세기에 볼테르는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판단했고, 오늘날에는 그 행태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전쟁에 대한 의지보다 그에 대한 저항이 더 미약하다는 의미는 아닐까

 

 

◆ 핵심용어

 

▶반교권주의(l'anticlericalisme)

프랑스 언어사에서 오랫동안 '볼테르주의자'라는 말은 1850년경에 만들어진 용어 '교권반대론자'를 의미했고, 오늘날에도 몇몇 사전에는 그런 뜻으로 해설돼 있다. 이에 대한 인용과 상세한 설명들은 너무도 많다. 외설스런 수도원장, 두 세 번의 불경건한 기도, 게으른 수사들, 종교 권력 남용, 등등. 볼테르는 일생 동안 경멸과 분노와 역정이 담긴 말로 성직권력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의식에 대한 , 신앙과 종파에 대한 증오, 시민봉기, 종교전쟁, 인간의 퇴화 같은 신정정치의 끔찍한 결과를 지켜본 볼테르는 반교권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전쟁(la guerre)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통치하는 왕정에서 외교관직을 수행하고, 프러시아의 왕 프레데릭 2세의 궁정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역사 속 위인들의 행적과 17세기의 절대군주인 루이 14세의 통치에 관한 역사를 연구한 결과, 전쟁에 대해 볼테르는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많은 전쟁의 증인이기도 한 볼테르는 전쟁을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어 있고, 페스트와 기아를 항상 동반하는 불행으로 간주했다. 악의 만연과 독단의 상징인 모든 전쟁은 통치자의 그릇된 자만심에 근거를 둔 불합리한 것이다. 볼테르에게 정당한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는 사실이 최악이라고 주장한다.

 

1. '깡디드'는 어떤 책인가

 

그 성공과 유명세가 다른 작품들을 가릴 정도로 볼테르의 작품 중 가장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수능 바칼로레아에서 구술시험에 출제되는 '깡디드'를 읽어야 하므로, 볼테르 하면 철학콩트 '깡디드'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볼테르가 쓴 철학콩트들 중 가장 기발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감탄할 만한 정신과 재기 넘치는 비꼬기로 인해 그 만한 가치를 발하고 있다. 당시에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소송과 수색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비롯해 국내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이 유럽 전역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는데, 그 시대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3만 부가 발행됐다. 이전의 콩트 작품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행동적이고 투쟁적인 문체, 게다가 이야기 속의 방랑적 여정이 그때까지의 인간존재에 대한 시각의 전향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은 오랫동안 볼테르에게 축적된 것인데, 볼테르 자신이 겪었던 갖가지 경험과 그 당시 프랑스나 유럽사회가 처한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의 사료 편찬관이자 시종관, 아카데미회원, 외교관직 수행,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왕에 대한 실망과 결별,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 같은 경험, 유럽을 분열시키고 그 여파가 식민지에까지 미친 7년 전쟁, 리스본의 지진들 같은 처참한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다. 65세의 노작가 볼테르는 이러한 영감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겁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보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철학 콩트를 선택한다. 허구의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진지한 철학적 문제들이 결합된 이 장르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그 성격을 명확히 드러낸다. '깡디드'의 원제목은 '깡디드 혹은 낙천주의'이다. '깡디드'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전통적 연애소설 형식을 따른 것이고, '낙천주의'는 철학적 탐구이다. 18세기에 창조된 이 새로운 문학 형식은 볼테르에게는 허구와 계몽주의의 도덕철학을 잘 결합시켜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깡디드'는 작품 전체가 3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그 모험적인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젊고 순진한 깡디드는 툰데르 텐 트롱크라는 남작의 성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가정교사 빵글로스로부터 배운 "모든 것이 최선이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론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어느 날 남작은 깡디드가 딸 뀌네공드를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선 깜짝 놀라 깡디드를 성에서 내쫓아 버린다. 왜냐하면 깡디드는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참혹함에 내던져진 깡디드는 현실이 빵글로스의 가르침과 상반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그가 보기에는 도처에 전쟁과 자연재난이 창궐한다. 깡디드는 옛 스승을 다시 만나는데, 스승 자신이 겪은 온갖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론을 옹호한다. 그리고 깡디드는 화류계 여자가 된 뀌네공드도 다시 만난다. 이 연인들은 포르투갈 종교재판소의 잔혹함을 피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가는 배를 탄다. 뀌네공드를 탐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총독의 위협 때문에 깡디드는 하인 까깡보와 도주한다. 그는 신비의 왕국 엘도라도에서 머물게 되는데,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이상향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의 희망은 뀌네공드를 다시 만나 엘도라도에서 가져온 다이아몬드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된다. 수리남에서 노예제도의 실상에 강한 충격을 받고, 한 상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파리사람들의 악덕에 실망한 깡디드는 베니스에서 부자이건 왕족이건 인간은 불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나쁘게 되어 간다"라고 주장하는 철학자 마르탱과 뀌네공드를 찾기 위해 프로뽕띠드로 그를 인도하는 하인 까깡보만이 깡디드에게 위안이 된다. 깡디드는 뀌네공드가 추하고 성 잘 내는 여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작지에 정착해서 선과 악에 대해 추론하지 않고 뜰을 경작하면서 단순한 삶의 행복을 발견한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으로 보아 '깡디드'가 사랑과 철학적 문제를 동시에 테마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깡디드'가 출판되고 3년 후에 볼테르가 "파렴치를 분쇄 합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작품은 바로 파렴치에 대항하는 참여 작품으로 새로이 인식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깡디드'에서 풍자하는 파렴치는 어떤 것인가 

 

 2. 종교에 대한 풍자볼테르는 반교권주의 입장에서 종교를 풍자한다. 작품 속에서 가톨릭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비판의 대상이다. 그 어떤 종교도 파렴치라는 오명을 면하지 못하지만 특히 볼테르가 표적으로 는 종교는 여러 측면으로 보아 가톨릭교회이다. 구체적으로 이 종교에 대해 무엇을 비난하는지 보자.

첫째, 가톨릭교회 체제에 대한 비난이다. 볼테르는 '시기, 불화, 분노'가 만연해 있는 여러 수도회를 비판하는데,(24장) 그 중 특히 예수회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볼테르는 이단을 추격하기 위해 예수회가 15세기에 고안한 종교 재판소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 재판소는 피고인들이 가진 변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감옥이나 화형대로 보내버린다. 볼테르 같은 분별 있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투쟁 덕분에 이 야만적인 제도는 19세기에 사라진다.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종교재판장들이 저지르는 가증스런 죄를 분개하며 묘사하고 있다.(6, 8장)

둘째, 볼테르는 개개의 종교인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사제와 수도자들을 깡디드의 돈과 다이아몬드를 훔친 도적으로(프란체스코회 수사 10장), 또한 그것을 노린 사기꾼(페리고르의 신부 22장)으로 그리고 그들이 맹세한 순결서약을 조금도 지키지 않는 변절자들로 내몬다. 그 예로 종교재판장은 뀌네공드를 정부로(8장) 고, 지로플레 수사는 노골적으로 매춘부를 둔다.(24장) 성직자간의 동성애 풍습도 은연중에 암시되어 있는데, 예수회의 원장인 크루스트 신부(실제로 볼테르가 원한을 품고 있는 신부)는 불가리아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가 살아난 뀌네공드의 오빠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그를  신부로 만든다.(15장)

 

셋째는 종교적 비관용이다. 종교는 볼테르가 몹시 혐오했던 광신의 주된 근원이다. 리스본에서 끔찍한 지진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형식을 거행하기로 한다. 그릇된 이성에 근거한 미신적 행위에 불과한 이 의식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정한 교회법을 어긴 사람들이 제물로 희생된다. 가톨릭교로 개종했으나 고기에 붙은 비계 살을 먹지 않는 유대교 관습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두 남자와 한 아이의 대모와 대부가 혼인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회법을 어기고 결혼한 두 가 죄인으로 지목되어 화형대에 오른다.(6장) 볼테르는 이유로 사람들의 삶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종교재판장들의 독단적인 권력을 공격한다.

 

 

 3. 정치에 대한 풍자볼테르는 정치적인 것에 항상 관심을 보인다. 그는 식견 있는 군주가 사려 깊은 철학자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통치에 반영하는 플라톤적 이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은 권력의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그의 정중한 제자였던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왕은 권좌에 오르자 학식은 깊지만 난폭한 군주로 바뀌는데, 볼테르는 왕의 군국주의에 실망한다. 마찬가지로 전쟁만을 정치적 중대사로 는 프랑스 왕정에 환멸을 느낀다. "나는 대개 공적인 일에 개입된 사람들은 이따금 비참하게 죽고, 마땅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터키 노인을 통해 볼테르는 정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30장) 작가가 '깡디드'에서 표출하는 이러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작가 볼테르는 귀족가문의 로앙 기사에게 부당하게 매질을 당하고,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고, 영국으로 추방당한 1726년부터 줄곧 귀족을 풍자한다. 페르네와 투르농의 땅을 매입해서 영주와 백작이 되었지만, 볼테르는 봉건제도의 악제인 계급 간 구별에 기반을 둔 사회계급을 맹렬히 부정한다. 귀족이 아닌 깡디드는 귀족가문의 뀌네공드와 결혼할 만한 자격을 갖추었더라도 세습적 사회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사회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불가능한 일이다. 깡디드가 여동생과 결혼할 생각을 한다는 자체를 뻔뻔스럽고 파렴치하다고 여기는 뀌네공드의 오빠를 볼테르는 시종일관 오만한 캐릭터로 설정했다.(1, 15, 29장)두 번째로,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으며 궁정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볼테르는 프랑스왕정이 일으키는 전투들을 지켜본다. 어쩔 수없이 왕의 승전을 시로 찬양하기도 했지만, 볼테르는 군국주의를 비난한다. 17세기에 프랑스 절대군주인 루이14세가 유럽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전쟁을 일 았고, 볼테르의 시대에도 선왕의 통치이념이 왕정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깡디드'에서 전쟁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즉 프랑스와 프러시아 사이의 전쟁(3, 4장), 모로코 내전(11장), 러시아와 터키 간의 전쟁(12장), 예수회와 스페인간의 전쟁(14, 15장), 스페인 배와 네덜란드 해적들 간의 해전(20장). 특히 프랑스와 영국간의 7년 전쟁은 세상을 방화와 유혈의 도가니로 만들었다.(23장)

볼테르에게 있어 전쟁의 주된 책임자는 왕들이다. 그들은 인류와 경제적인 추락은 고려하지 않고 분쟁으로 그들의 욕구만을 충족시킨다. '깡디드'는 전쟁에 의한 학살, 강간, 약탈을 가장 상세하고 신랄하게 묘사하는 콩트이다. 깡디드는 "총에 맞은 남자들이 목이 잘려 죽어가는 아내들을 보고 있고, 아이들은 엄마의 피가 흐르는 젖을 물고"(3장) 있는 혹독한 고통을 본다. 뀌네공드와 노파도 전쟁 때 강간을 당한다.(4, 8, 11장) 이러한 만행을 서슴지 않는 군인들은 흉악범들이고 살인자들에 불과한데, 영웅으로 통하는 그들의 잘못된 위세를 볼테르는 '영웅적 학살'이라고 비꼰다.(3장) 참고로 18세기에는 군대가 외국인 용병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타락한 군인들과 지각없는 군주들의 공모로 인해 초래됐다는 것 또한 암시하고 있다.

한 때, 자신의 탁월함과 성공을 위해 볼테르는 왕의 아첨꾼 노릇을 하기도 했고, 귀족들의 도움도 필요했었지만, 이 계급들에게 실망하게 되는 계기는 작가가 궁정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깡디드'에서 볼테르는 자신이 여전히 왕정주의자임을 드러낸다. 몇몇 장면에서 이를 엿볼 수 있는데, 먼저 깡디드가 친절한 오레용족(파라과이 북부 잉카제국에 존재했던 인디언 부족. 귀걸이 때문에 변형된 큰 귀를 가졌기 때문에 오레용족이라 부름. 16장) 사이에서 사는 것보다는 무감각한 귀족이지만 예의바른 뽀꼬뀌랑떼 영주와 함께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길 때이다.(25장)  

그리고 또 다른 예로, 볼테르가 낙천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깡디드를 불행해지도록 예정해 놓았지만, 황금과 보석으로 가득 찬 엘도라도(스페인 모험가들과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찾아다닌 금과 보석으로 가득 찬 상상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17, 18장) 모든 사람들이 "선하고 행복한" 이곳에 법원, 의회, 성직자는 없다. 왕이 시민과 종교의 평화를 유지시키고, 진정한 정의를 내세우며, 현명한 법을 제정한다. 이렇게 엘도라도를 내세워 볼테르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식견 있는 왕과 귀족이 핵심을 이루는 전제주의 형태이다. 이는 결국 볼테르가 18세기에 부패한 프랑스왕정체제가 혁명이라는 방식으로 시급히 개혁돼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강제징집으로 불가리아 병사가 된 깡디드가 시체와 병자들을 뛰어넘으면서 불가리아 군대에서 달아난다.

 

 
김영리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kyl7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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