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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첫 모습, 고대가요/ 공무도하가, 황조가, 구지가

수로보니게 여인 2009. 2. 13. 00:18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노래의 첫 모습, 한문으로 기록된 고대가요


이야기보다는 노래가 먼저 생겼을 것이라 추측된다.

여가보다는 먹이(노동)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려면, 노동력이 저하될 것이지만, 노래를 하면서 노동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한데서 그러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 유감이지만,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바위그림, 폭 9m에 이르는 그 바위그림은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배를 타고 나가는 모습, 고래를 잡아 분배하는 모습, 춤추는 사람의 모습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시각적 조형예술이지만, 그 시대에는 그 내용이 노래며, 춤이며, 이야기의 구실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른바 ‘원시종합예술’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이 고래나 다른 짐승을 잡으러 나가면서, 또 잡고 나서 하늘에 감사드리고 즐거워하는 내용을 노래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가령 고래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은 지금말로 ‘뱃노래’라고 하는 것을 불렀을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것들로 보아 한 사람이 내용 있는 가사를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일정한 형식을 따라하는 형식이었을 것 같다. 이런 노동요가 노래문학의 시초를 이루는 것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그들은 잡은 고기에 대해 하늘에 감사드리는 노래도 불렀을 것 같다. 그 바위그림에서 춤추는 사람은 집단의 사제였을 수도 있고, 여기에는 춤과 함께 노래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늘에 감사드리는 노래는 뒤에 신석기 시대 농경문화에서 더 활발하게 불렀을 것 같다.

마한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인데, 한 해 농사의 처음과 끝에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상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처음은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끝에는 한 해 농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마한뿐 아니라 부여, 예, 고구려 등 한반도 전역에서 노래를 즐겼다는 고대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농경관계 노래들은 지금도 농촌에 남아 있는 농업 노동요의 첫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춤을 출 때 한꺼번에 일어나 땅을 밟고 높이 뛴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통해 벼가 잘 자란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음 을 보여준다. 모의적 행위를 통해 실제적 효과를 얻고자 하는 오랜 믿음이었음으로, 최초의 노래들은 집단적 노동과 주술적 행위의 결합물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무도하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백수광부의 처

公無渡河 (공무도하)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가신님을 어이할꼬.

정병욱 번역

그대 건너지 마오
그대 그예 건너네.
물에 빠져 죽으니
이제 그대 어이하리.

전광용 번역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여 그예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어지면,
장차 그대는 어찌하리오.

박성의 번역

'공무도하가'의 한역의 예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 해동역사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將奈公何   - 대동시선
公無渡河     公而渡河     公墮而死     將奈公何   - 청구시초
公無渡河     公終渡河     公淹而死     當奈公何   - 연암집

河(하) : 물
竟(경) : 마침내, 끝내
墮(타) : 휩쓸리다, 떨어지다
而(이) : 어조사 이. 여기서는 접속사로서 '그리하여'의 뜻
公(공) : 여기서는 남편, 곧 백수광부를 이르는 말. 그대, 당신, 임
無(무) : 여기서는 금지사(禁止辭)로서의 뜻. ∼하지 말라.
竟(경) : 마침내. 기어코. 드디어. 그예, 끝내
墮河(타하) : 물에 휩쓸리다. 여기서는 '물에 떨어지다'로 풀이하지 말 .것
而(이) : 順接(순접)의 접속사, 그리하여
當(당) : 마땅히, 이제          
奈∼何(내∼하) : ∼을/를 어찌하는가. ∼을/를 어찌할 것인가.
奈(내) : 어찌
何(하) : 어찌
奈公何(내공하) : (돌아가신) 임을 어찌할 것인가. (돌아가신) 임을 어찌할꼬.

요점
작자 : 백수광부의 아내(원작자는 백수 광부의 처이며, 곽리자고의 부인 여옥이 이를 노래로 정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가사명일 경우 '공무도하가'로, 곡조명일 경우 '공후인'으로 구분한다.)
연대 : 고조선(古朝鮮)
갈래 : 개인적 서정시(4언 사구체의 한역 시가)
어조 : 여성적 화자의 탄식과 원망과 애절한 울부짖음과 체념적인 어조
성격 : 직서법으로 직정적(直情的)이고, 절박한 호소의 절규적 표현, 비극적
별칭 : 곡명은 ‘공후인’
소재 : ‘강’ 또는 ‘물’
구성 : 4언 4구체
주제 : 임을 여읜 슬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함,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애도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함. 임과의 사별로 인한 슬픔
의의 :  ①‘황조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서정 가요.

          ②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 작품.      - 출전 : <해동역사권 22 악가 악무조>

 

고대는 우리 문학이 태동한 시기로 고대 가요는 대부분 제천 의식과 관련이 많이 있어. 우리 조상들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원시종합예술을 겼다고 볼 수가 있지. 그래서 고대시가의 대부분은 집단 가요이거나 노동요인데 인간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시가류의 작품을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당시의 작품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부 작품이 대부분 설화 속에 구전되어 내려 오다가 문자로 정착된 것이 많단다. 그리고 그 설화를 통해서 그 노래의 배경을 짐작하고 학자들이 나름대로의 논리로 해석을 하고 있단다. 지금 읽은 공무도하가도 집단 가요에서 개인 서정시가로 넘어가는 시기의 가요로 임을 여읜 슬픔을 노래한 작품인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물'이 주는 상징성들을 고려하면서 읽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인간에게 '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도 변하지 않는 본능적인 것의 하나로 보면 되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시적 화자가 남편을 뒤따르는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회적 이유가 있단다.

혹시 순장(殉葬)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지 순장은 '지배층에 속한 인물을 장사지낼 때 주변 사람들을 함께 묻는 것'으로 원시 시대에서는 순사(殉死)·순송(殉送)이라고도 하는데 자진해서 죽는 경우도 있었으나 강제로 묻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산 채로 묻는 일도 있었으나 죽여서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단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미덕으로 간주되었단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편을 따라 죽는 것도 하나의 미덕으로 알려진 세상이었단다. 물론 꼭 순장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아니단다. 정말로 사랑하는 임의 부재로 삶의 의미를 못 느끼고 그것을 상실감으로 표현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죽음을 택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어떤 작품이라도 그 작품을 읽을 때 관련된 배경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읽으면 작품의 감상의 깊이가 더 깊어질 수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자 그 당시 세상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참고로 발라드댄스설이라는 원시종합예술에 대해서 알아야 해. 
  

 

  황조가(유리왕 한시)[黃鳥歌]

유리왕 창작설을 받아들인다면 이 노래는 남아 있는 고대가요 가운데 최고(最古)의 순수 개인서정시가 된다. 고대인의 순박한 서정성을 담은 서정시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황조가(黃鳥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翩翩黃鳥  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상의
쌍쌍이 즐기는데,(암수 다정히 노니는데)

念我之獨 념아지독
외로운 이 내 몸은(외로워라, 이 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뉘와 함께 돌아가리)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요점
지은이 : 고구려 2대 유리왕
연대 : 유리왕 3년
갈래 : 4언 4구의 한역 시가, 개인적 서정시
성격 : 우의적, 애상적
표현 : 자연물을 빌려 우의[(寓意) : 다른 사물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함. 또는 그런 의미.]적으로 표현, 대조,

         의태, 설의[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을 의문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상대편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수사법]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외로운 심정을 노래, 한시의 전형적인 선경후정의 방식을 사용함[선경후정(先景後情) : 한시 창작의 한 방법으로 시

         의 앞부분에서 경치를, 뒷부분에서는 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구성방법으로 여기서 꾀꼬리가 정답게

         놀고 있는 모습(선경)과 나의 외로움(후정)을 표현하고 있는 방법을 선경후정의 방법으로 볼 수가 있다.]
제재 : 꾀꼬리
주제 : 짝을 잃은 슬픔(외로움), 임을 잃은 슬픔
출전 : <국사기>권 13, 고구려 본기
의의 : ① 현전하는 최고의 개인적 서정시 
         ②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로 작가는 유리왕이며, 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조'에 4언

             4구로 전하는 한역시이다. '공무도하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고의 서정시로 추정된다.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의 설화에 나오는 삽입 가요로, ' 구지가'가 주술적인 집단 무요(舞謠) 또는 노동요의 성격을 띤 시가임에 비하여 이 노래는 고대인의 이별을 소박하게 노래한 개인적 서정시이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주류를 이루었던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 또한 평이하여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느끼게 한다. 이 노래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사랑하던 임을 잃은 외로움과 슬픔'이다. 즉,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찍이 유리왕은 아버지를 이별하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 곁을 떠나 남방으로 방랑하게 되었고, 끝내는 왕비까지 잃게 되어 화희와 치희의 두 계비를 맞이하는 등 애초부터 정에 굶주리고 있었다. 이러한 그가 두 계비 간의 사랑 싸움으로 치희를 잃게 되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때마침 정다운 모습으로 펄펄 나는 한 쌍의 꾀꼬리는 두 계비의 시샘과 자신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그 비애감을 한 층 더하게 하였으니, 이 시의 모티브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허탈에 빠진 왕은 나무 그늘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때마침 나뭇가지에는 황금빛 꾀꼬리 한 쌍이 서로 부리를 맞대고 정답게 놀고 있었다. 무슨 사랑의 이야기나 나누는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왕은 그 순간 과거의 그 거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더욱 뼈저리는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의 짜임은 극히 단순하나 완벽한 대칭 구조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짝을 이루어 거이 노니는 꾀꼬리와 홀로 있는 사람, 하늘을 나는 가벼움과 외로운 심사의 무거움,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의 쓸쓸한 여운이 서로 대립하고 중첩되면서 그리움의 간절함과 깊이를 보여 준다. 개인의 감정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이입시킨 대조적 표현이 돋보인다. 짤막한 이 한 편의 노래에서 우리는 왕으로서 유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왕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그에게서 따뜻한 정감이 흐르는 훈훈함을 맛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은 현대적인 관점 다시 말해서 일부일처제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왕이 한 여자만이 아니라 다수를 거느렸던 때인지라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또한 보통 계급과는 다른 지도자였던 왕조차도 사랑 문제에서는 이렇게 심각한 가슴앓이를 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의 감정에는 신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또한 인간은 평등하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circle01_blue.gif 배경설화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설화 원문<三國史記 卷 第 十三, 김종근 역>

현대어역

三年 7월에 離宮(이궁)을 골천에 지었다. 十月(시월)에 왕비 송씨가 돌아갔으므로 왕은 다시 두 女子(여자)를 繼室(계실)로 얻었는데 하나는 禾姬(화희)로 골천 사람의 딸이고, 하나는 雉姬(치희)로 漢人(한인)의 딸이었는데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으므로 왕은 양곡의 동서에 二宮(이궁)을 짓고 각각 두었다. 뒷날 왕은 기산에 田獵(전렵)을 나가서 칠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는 서로 쟁투하여 화희는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漢家(한가)의 婢妾(비첩)으로 어찌 무례함이 심한가'하니 치희는 부끄러워하면서 원한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며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이 때 왕은 잠깐 나무 밑에서 쉬는데 꾀꼬리들이 모여들므로 이에 느끼어 노래하기를 '꾀꼬리는 오락가락 암놈 숫놈 기는데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같이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하며 탄식하였다. [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 유리왕] 
 

유리왕

 고구려 제2대 왕(재위 BC 19∼AD 18)으로 휘(諱) 유리(類利)·유류(儒留)·주류(朱留).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고도 한다. 동명왕의 맏아들. 어머니 예씨(禮氏). 비(妃)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 BC 19년(동명왕 19) 부여로부터 아버지 동명왕을 찾아 고구려에 입국, 태자로 책립되고 동명왕에 이어 즉위하였다. BC 17년 계비인 치희(雉姬)를 그리는 《황조가(黃鳥歌)》를 지었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3년 도읍을 홀본(忽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3년 부여(扶餘)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梁貊:小水貊)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高句麗縣:玄娠郡의 屬縣)을 빼앗았다. 두곡동원(豆谷東原)에 묻혔다.

 

'황조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1. 이병기 : 원시적 서사 문학 가운데서 축수 또는 기원의 요소적인 부분이 분화 독립하여 서정시로 형성되었는데, '황조가'도

                그 한 예이다.
2.임동권 ;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가창했을 따름이다.
3. 정병욱 : 이 노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제례 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

                 이다.
4. 이명선 : 유리왕의 치희에 대한 개인적인 미련에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종족간의 상쟁을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추장의 탄식

                으로 이해된다.

 

'황조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

 유리왕은 신화적 인물이다.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경위부터가 신화적인 요소가 매우 짙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과연 신화적인 요소를 띤 인물의 창작적인 시 제작을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문학사의 발전 과정으로 보아, 신화적인 존재의 인물은 서사시의 주인공이고, 서정적인 창작시는 그보다 늦다는 견해가 통설인 이상, '삼국사기'의 기록을 전적으로 믿는 데에는 얼마큼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사기의 기록을 떠나, 이 '황조가'를 한 편의 순수한 고대의 서정시로 보고서, 그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이 노래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남녀간의 애정을 읊은 노래임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다.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한다면, 남녀간의 애정 즉 연애 감정을 읊는 데에, 꾀꼬리라는 자연물을 빌려서 그 감정을 표현하였다는 뜻이 되겠다. (중략) 그러나 신화적인 인물의 창작적인 시 제작을 믿을 수 없다는 문학사의 일반적인 발전 법칙을 고려하여, 이 노래를 작자 불명의 서정적인 고대 가요로 친다면, 그 창작 동기도 '삼국사기'의 기록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노래는 치희를 잃은 유리왕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우리의 추론을 발전시킨다면, 어떠한 창작 동기를 상정할 수 있겠느냐는 설문이 제기되어야 한다.(중략)

 이 '황조가'라는 노래도 거절당한 남자의 애절한 구애곡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사랑을 호소했다가 패배의 고배를 마시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외로운 총각의 심정, 그것이 바로 '황조가'의 내용에 넘쳐 흐른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의 보는 바로는, 이 노래를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위서동이전'이 전하는 바 많은 제례 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회에 불려진 사랑의 노래의 한 토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가도 사실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제작 연대도 확정할 수 없는 고대의 서정적인 가요의 한 토막이 후에 한문으로 번역되어, 고구려 유리왕의 설화 속에 끼여들었다는 정도로 생각해 두는 편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처 : 정병욱 저 '한국고전시가론') 

 

구지가

구지가[龜旨歌, 구지봉영신가, 구하가, 영신군가]작자·연대 미상의 고대 가요.

 

이 노래는 가락국 건국 신화 속에 들어 있는 삽입 가요로서,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구지봉의 흙을 파서 모으고 춤추는 과정에 불려졌다는 점에서, 고대 시가의 제의적, 집단적, 주술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노래의 핵심인 '거북'이 신령스런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때, 거북의 머리는 생명을, 머리를 내어놓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것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알로부터 수로왕이 탄생하는 것과 일치한다.

- 거북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위협하는 행위에서 고대인의 소박한 상징과 주술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노래는 한역(漢譯)되어 전하지만, 당시에는 가락국의 건국 신화의 일부로 존재했다가 민간에 구비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성덕왕 때 수로(水路) 부인이 바다의 용에게 잡혀갔을 때 백성들이 집단으로 불렀다는「해가」에서 이러한 전승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겠다


▶시어 풀이

* 제1구 '거북'- 신적 존재(신군)로 기원의 대상. 구하(龜何)- 거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용과 함께 신령스런 존재

                 로 주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 밑에 자세히 설명.  何(하): 이두식 음차(音借) 표기.  

* 제2구 :  수로(首露)와 관계 깊은 시행. '머리'- 소망의 객체인 '생명의 근원', '군주,왕,수령'등을 상징.

* 제3구 : '若'이라는 가정과 '不'이라는 부정을 통해 이후에 강한 제재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제4구표현- 주술적 위협으로 갈구(渴求)의 의미를 강조.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요점

* 연대: 신라 유리왕 19년(A.D 42)

* 형식: 4언 4구체 한역시가

* 작자: 구간 등 가락국의 대신들과 200-300명의 백성들?

* 구성: 1,2행(요구) + 3,4행(위협)

* 성격: 주술요, 집단요, 의식요, 삽입 가요

* 주제: 새로운 생명(신령스런 임금)의 강림을 기원함

* 표현: 주술적, 명령어법, 직설적

* 의의: 

 - 현전 최고(最古)의 집단 무요(舞謠). 유리왕의 <황조가>(기원전 17년)보다 문헌 기록상 후대에 속하지만 문학의 일반적 발전

    단계로 볼 때에는 문학사의 앞머리에 놓인다.

 - 주술성을 지닌 현전 최고의 노동요(勞動謠)

* 별칭: 영군가(迎君歌), 영신군가(迎神君歌), 구지봉 영신가, 가락국가

* 해석

 - 잡귀를 쫓는 주문이다.

 - 영신제의 절차 중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이다.

 -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것이다.

 - 거북점을 칠 때 부른 노래이다.


* 관련: 구지가의 아류작에 해가(海歌)가 있음


 해가(海歌)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가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병풍같은 바위 벽이 있어 바다에 맞닿았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 옆 사람들에게 "저 꽃을 꺾어다 바칠 자 그 누구뇨?" 하니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사람이 발 붙일 곳이 못 됩니다." 하고 사양하였다. 그 곁에 늙은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노래를 지어 바쳤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용이 홀연히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공이 기절하여 땅을 쳐보았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있다가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는데 지금 바다 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당장 이 경내의 백성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쳤다. 공은 부인에게 바다 속의 사정을 물었다. 부인은 "칠보 궁전에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있고 깨끗하여 세상의 익히거나 삶은 음식이 아니더라."하였다. 옷에도 향기가 배어 세상에서 맡는 향기가 아니었다. 수로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 여럿이 부른 해가의 가사는 이러하다.


 龜乎龜乎出首露(귀호귀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략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았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헌)     네 만약 거스르고 내놓지 않는다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너를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심화 학습


● 駕洛國(가락국)의 건국 신화에 삽입되어 있는 呪術的(주술적)인 노래로 이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 잡귀를 쫒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박지홍>

 2) 迎神祭(영신제)의 절차 중 중심이 되는 희생무용(犧牲舞踊)(제천 의식에서 신에게 희생물을 바칠 때 추는 춤으로 의식절차(儀 式 節次) 중 하나가 된다)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김열규>

 3)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性慾)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정병욱>

 4)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 <중국의 임명덕>

  그러나 배경 설화나 해가(海歌)와의 연관 등으로 볼 때, 원시인들의 집단적 소망을 이루기 위한 주술적 집단 가요로 보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이다.


●거북[龜] / 머리[首] : 이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

1) 신령스러운 존재로 呪術(주술)의 대상. 곧 神과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견해

2) 우두머리, 곧 王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3) 남근(男根)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명의 근원' 또는 '성욕'의 표상으로 보는 견해.(이 견해에 의하면 '불에 구워 먹는다'는 것은 성교 행위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행위가 된다.)

4) 제사에 사용하는 희생물[제물]로 보는 견해.

5) '거북'은 단순히 신에게 소원을 전달해 주는 매개자에 불과하며 '머리를 내는 것'은 소원의 내용이라고 하는 견해.

6) '머리'는 '수로왕(首露王)'의 '수(首)'를 뜻하는 것이며, '거북'은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것으로 수로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구지가와 황조가

- 구지가는 집단가요임에 반해 황조가는 개인적 서정시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구지가는 집단가요(민요)이면서 오랜 세월 동안 민간에 전승되었고 황조가는 중국의 시경(詩經) 작품 중 하나에서 운을 빌려 그대로 지은 복사제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구지가가 질박한 형식을 띠고 있고 황조가는 세련되게 정제된 형식을 지닌 것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지가의 성격


 이 노래에서 '거북'을 내세운 것은 무슨 뜻인지 학자에 따라 그 설(說)이 분분하다. 대체로는 신과 같은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다. (거북 = 검 = 신) 따라서, 이 노래는 그대로 영신군가(迎神君歌)로서의 주술요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흙을 파면서 불렀다는 점을 주목해 본다면 그것은 노동의 괴로움을 덜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것이므로 노동요의 성격도 지닌다. 또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희생무용(犧牲舞踊)에서 불린 노래라는 견해,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 즉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거북의 머리를 수로(首露)·우두머리·남근(男根)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구워 먹겠다'는 구절은 우두머리 선정을 위한 거북점의 점괘를 얻기 위해 거북을 굽겠다는 뜻 혹은 강렬한 욕망이 깃든 여성 성기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언어의 주술성


 구지가는 임금 맞는 제의에서 부른 노래이다. 구간과 중서 2-3백명이 함께 불렀다는 점에서 주술의 효력을 한 개인의 주술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행하는 주술의 힘에 의존하는 '집단적 주술'이다.


구지가의 구조- '호칭 + 명령 + 가정 + 위협'의 주술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명령과 위협으로 형성되는 구지가의 주술 구조는 당시 폭넓게 사용된 형식으로 보이며,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이 즉위 2년에 비류국과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흰 사슴을 잡아 거꾸로 매달고 홍수를 내려서 비류국의 항복을 받고자 행한 기우 주술(祈雨呪術)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가정) 하늘이 만약 비를 내려서 비류 왕도를 표몰시키지 않으면

  (위협) 내 진실로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니

            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싶거든

  (명령) 너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이규보,동명왕편


 주몽이 홍수로서 비류국을 항복 받고자 사슴에게 비를 내리도록 명령하고 위협했던 주술의 내용과 구지가에서 대신들이 새 왕국을 세우고자 거북에게 왕을 보내도록 명령하고 위협하는 주술의 내용은 그 구조가 같다. 바다용이 앗아간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한 주술 목적에서 부른 <해가> 역시 이 주술 구조를 적용하여 실현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