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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때 생각나는 이야기들

수로보니게 여인 2009. 1. 6. 23:46

 

추울 때 생각나는 이야기들

 


굉장히 춥지요?

그리고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눈물이 그대로 얼어 고드름이 돼 버릴 것 마냥 이렇게 추운 연말연시면 꼭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대개 어릴 때 읽은 이야기들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성냥팔이 소녀…

 

어릴 때 읽은 이 책에서 '섣달그믐'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습니다.

물론 '섣달그믐'이라는 말은 음력 12월 31일을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의 배경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가엾은 고아 성냥팔이 소녀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따뜻한 식사를 하는

불 켜진 유리창 밖에 오도카니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가슴이 미어졌었지요.

곱아오는 손과 발을 녹이기 위해 소녀는 하나씩 가지고 있던 성냥을 켜고 성냥불 속에서 맛있는 식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환영을 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성냥을 켰을 때 불빛 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소녀를 부르지요.

다음날 아침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밤새 눈 속에서 얼어 죽은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기 그지없는 안델센의 동화…

 

근데 저는 왜 항상 저 동화의 마지막을 떠올릴 때마다 전영택의 단편 '화수분'의 마지막 장면이 함께 떠오르는지…

그 소설에서도 주인공인 화수분 부부가 동사(凍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모의 체온으로 살아남은 어린 아이가 있다는 점이 '성냥팔이 소녀'와 다르긴 하지만요.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이야기, d0029094_07050681[1].jpg

                                                           

 
 

 TV 만화영화로 더 잘 알려진 '플란더스의 개'죠.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면서 사는 소년 네로와 개 파트라슈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저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한 '엄친아'가 이 이야기를 읽고 그렇게 슬피 울었다나요.

자신의 아들의 풍부한 감수성을 자랑하던 그의 어머니는 제게 "아람이도 읽었지? 넌 어땠니? 슬펐지" 하고 막 물어보셨는데…

당시 여덟 살 정도 됐던 저는 "아니요" 라고 답했답니다.

그랬더니 화들짝 놀라시던 그 분, 이어 "그럼 기뻤어?"라고 물어보시는데 대체 뭐라고 답해야할지…

세상에 기쁘고 슬픈 감정만 있는 게 아닌데…

당시 제게는 그 이야기가 그렇게 슬프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게 효과적일까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납니다.

 

……어이없게도 어린 시절 제가 읽고서 최초로 눈물을 흘렸던 책은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용으로 출판됐던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이었답니다.

장발장이 죽는 마지막 장면이 왜 그리 슬프던지.. 통곡을 하고 울었다니까요. 

 

여튼,

다시 플란더스의 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1972년 이 소설을 쓴 소설가 위다(Ouida)는 영국 사람입니다.

본명은 Maria Louise De La Ramée구요…

'위다'라는 필명은 혀가 잘 돌아가지 않던 어린 시절 서툴게 발음했던 자기 이름에서 따 온 거라고 합니다.

플란더스의 개를 비롯해 어린이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써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말년엔 이탈리아에서 가난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어른이 돼서 '플란더스의 개'를 다시 읽자 정말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 소설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Nello and Patrasche were left all alone in the world.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문장이지요.

 

가난한 소년 네로는 그림에 재능이 있고, 풍차방앗간집 딸 알로아는 그런 네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알로아의 아버지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네로와 딸을 놀지 못하게 하고…

뭐 그런 이야기인데…

 

어딜 가나 파트라슈와 함께였던 네로가

유일하게 파트라슈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들어가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앤트워프 대성당. (풍차 때문에 이야기의 배경이 네덜란드인 줄 아는 분들이 계시는데 벨기에랍니다.)

그 곳에는 네로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 하는, 그러나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루벤스의 그림이 있거든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최근에 이 이야기를 다시 읽고 성당에서 그림을 감춰놓고 돈을 받고 보여주다니 정말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을 달빛 아래에서 보고는 감동한 후, 그토록 자신이 아꼈던 개와 함께 동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소년이 개를 끌어안고 있는 팔 힘이 어찌나 센지 그 둘을 떼어놓기 위해서는 꽤나 힘이 들었고 그들은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혔다고요.

 

그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Rubens, Peter Paul

The Elevation of the Cross
c. 1610-11
Central panel of triptych altarpiece
462 x 341 cm
Cathedral, Antwerp  
  

 

Rubens, Peter Paul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1-14
Oil on panel
(Central panel of triptych altarpiece)
420 x 310 cm
Cathedral, Antwerp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숨진 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

 

이 서글프고, 어쩌면 참혹한 그림을 본 아이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나는 마침내 그것들을 보았어! 오, 하느님, 이제 충분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절규가 겹쳐지면서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혹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네로가 그림을 보는 장면의 원문을 올립니다.

 

Suddenly through the darkness a great white radiance streamed through the vastness of the aisles; the moon, that was at her height, had broken through the clouds; the snow had ceased to fall; the light reflected from the snow without was clear as the light of dawn. It fell through the arches full upon the two pictures above, from which the boy on his entrance had flung back the veil: the "Elevation" and the "Descent of the Cross" were for one instant visible.

Nello rose to his feet and stretched his arms to them; the tears of a passionate ecstasy glistened on the paleness of his face. "I have seen them at last!" he cried aloud. "O God, it is enough!"

 

2008년의 마지막 날인 어젯밤엔  세례 받은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동네 성당의 '송년 미사'라는 걸 갔습니다. (완전 사이비 신자임)

어제 처음 (멀리서나마) 얼굴을 뵌 저희 동네 성당 주임신부님은, 가끔 신도들에게 "오늘 하루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로

시작되는 문자를 보내시는데 그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 오전에도 역시 "한 해 동안 많이 힘드셨죠?"라는 말과 함께 밤 송년 미사에 오라는 문자가 왔는데, 평소 같으면 당연히 안 가고 집에서 TV 드라마를 시청했겠지만, 어제는 약간 괴로운 일이 있었는지라 기도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3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과거를 돌이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 모두 눈을 감고 올 한해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떠올려 봅시다.

 많이 힘들었던 나 자신, 많이 고생했던 나 자신을 안아주고 다독여 줍시다."

 

사람들과 함께 눈을 감고

한 해를 돌이켜보는데

순간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울고 있는 겁니다...

(물론 어린애들은 빼구요.)

 

1년 365일, 어찌 행복하고 좋은 날들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고통스러운 나날들은 심장에 유리조각처럼 아프게 박혀 날카롭게 빛나면서 도무지 빠져나오지 않겠지요.

원래 저는 종교행사든 뭐든 간에 집단적으로 모여서 뭘 하는 건 질색입니다만,

어제만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더군요.

 

여러분은 어떤 한 해를 보내셨습니까?

지난 한해 많이들 힘드셨지요?

새해에는 아무쪼록 지난해보다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입력 : 2009.01.02 00:37 곽아람  곽아람 님의 블로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