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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2]반 고흐와 고갱, [3] 라파엘의 매력

수로보니게 여인 2009. 5. 21. 14:05

 

[김영나의 서양미술 산책] [2]반 고흐와 고갱


김영나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 2009.05.12 22:39 / 수정 : 2009.05.22 16:49


생애가 작품만큼 관심을 갖게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귀를 자른 것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동료화가 폴 고갱(1848~ 1903)이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남부 프랑스의 아를에서 1888년 10월부터 두달을 함께 지내던 반 고흐와 고갱이 격한 언쟁을 벌였고, 반 고흐가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자 고갱이 박차고 떠나버렸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반 고흐를 이렇게 격분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에 있던 반 고흐가 화상(畵商)을 하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로 온 것은 1886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곳에서 5세 연상인 고갱을 만났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었다. 얼마 후 반 고흐는 아를로 떠나면서 고갱을 초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질 차이도 있었지만 미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갱은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고, 반 고흐는 고갱이 싫어하는 농민 화가 밀레를 좋아했다. 고갱은 구상을 미리 하고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했지만, 반 고흐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물리적 세계와의 감정적 교류에서 영감을 받는 화가였다. 이런 차이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귓불을 자르는 반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했던 것이다.

고갱과 같이 지낼 때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쌍의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 자신의 의자에는 그가 늘 애용하던 서민적인 파이프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지성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책과 촛불이 있다. 자신의 의자는 거친 직선을 교차시켜 투박하게 묘사한 반면, 고갱의 의자는 장식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의자 주인의 존재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왼쪽) 와‘빈센트의 의자’.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 라파엘의 매력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 2009.05.19 23:09


     '그란두카의 성모', 1505 년경.

미국 유학 시절 르네상스 미술을 가르치던 교수가 라파엘(1483~1520)의 작품은 나이가 들어야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요즈음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뤘던 라파엘은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당시에는 그들과 동등하게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강렬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창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신과 같은 인체를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현대에 와서도 대중적 지명도를 누리고 있는 반면, 라파엘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주로 거론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대가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필요한 요소를 수용하고 종합했던 그의 탁월한 능력이 현대인에게는 높이 평가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504년, 미술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 온 젊은 라파엘은 성모자(聖母子)상을 많이 그렸다. 성모자상에서 라파엘이 기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내용은 종교적인 이야기보다는 인간 문화의 근본인 다정한 모성애의 표현이었다. 이것은 바로 르네상스 정신인 인본주의의 반영이기도 했다. 단순하고 평안하면서도 지적이었던 그의 작품은 1508년에 로마로 가면서 장대한 양식으로 변한다.

라파엘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서재에 '아테네 학당'을 그리는 작업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6세였다.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과학자·예술가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르네상스인의 '오마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려진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위엄 있고 설득력 있는 동작으로 각자의 믿음과 학설을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의 고전적 건축과 인물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미를 보여준다. 강렬하고 개성적인 작품보다는 지성적이고 균형과 조화를 이룬 미술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이제야 라파엘의 미술이 이해가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