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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大君)의 처신

수로보니게 여인 2008. 12. 11. 16:22

 

 

   

            

    대군(大君)의 처신


왕조국가에서 국왕의 형만큼 처신하기 어렵고 위험한 자리도 없다. 조선에는 뜻밖에도 왕의 형이 꽤 많았다. 태종의 형 정종과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 회안대군 이방간(李芳幹), 세종의 형 양녕대군 이제와 효령대군 이보(李補),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 선조의 형 하원군(河原君) 이정, 하릉군(河陵君) 이인, 광해군의 형 임해군(臨海君) 이진, 그리고 철종의 형 영평군(永平君) 이경응(李景應) 등이다.

이 중 왕위에 대한 야망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이방간은 패전 후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태종의 보호로 세종 3년(1421) 유배지인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고종명할 수 있었다. 광해군의 형 임해군은 임란 때 함경도 회령(會寧)에서 아전 출신 국경인(鞠景仁)에게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다. 석방 후인 선조 35년(1602) 7월 전 주부(主簿) 소충한(蘇忠漢)을 때려죽이는 등 행패가 자심했다. 광해군 즉위 후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됐는데, 명(明) 사신 엄일괴(嚴一魁) 등을 서강(西江)에서 만나는 등 정치적 야망을 버리지 않다가 광해군 1년(1609) 4월 교동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했다.

가장 억울한 왕의 형은 월산대군이다. 세조의 차자(次子) 예종은 즉위 1년 만에 의문사하는 데 아들 제안대군이 네 살이어서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덕종)의 아들이 즉위하게 되었다. 의경세자의 장남으로서 16세였던 월산대군은 세 살 아래의 동생 자을산군(성종)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자을산군의 장인 한명회와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윤씨가 결탁한 결과였다.

왕위를 도둑질당한 월산대군은 양화도(楊花渡) 북쪽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라는 시조를 읊으며 시름을 달랬다. '무심(無心)'과 '빈 배'의 철학을 체득한 그가 성종 19년(1488)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는 것은 그만큼 속이 쓰렸던 탓이리라. '유심(有心)'과 '만선(滿船)'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대군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입력 : 2008.12.10 21:57 / 수정 : 2008.12.10 23:09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용광로 a melting[smelting] furnace; a blast furn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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