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문학의 수용과 창작(4)
피딴 문답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알[鴨卵] 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알이던가?"
"오리알이지. 비록 오리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있고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 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 외에 따로 가열(加熱)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오리 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아니야,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 째 오리 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 년 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 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 나는 한 번도 피딴 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 ㉠ )'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 "초심불망(初心不忘)이라지 않아……. 늙어죽도록 중학생일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야……. 이왕 글이라도 쓰려면, 하다못해 피딴 급수(級數)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 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에서 전별(餞別)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 속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 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더란 거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한 것이 가풍(家風)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제일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있는 얘기 같지 않아……?"
ⓔ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 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1. 글에 대한 관점이 이 글의 필자가 생각하는 글과 가장 가까운 입장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은?
①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런 글을 혼자 고요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일까.
② 글 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잘못의 하나는 현학의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다. 현학적 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스러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③ 글은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④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장래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엉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으로써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이기도 한다.
⑤ 일단 붓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리 알이 피딴이 되기 위해서 오랜 숙성의 과정을 거치듯이 인생의 연륜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랜 사색과 수련의 과정
을 거쳐야 한다.
2. 다음 중, 화자의 태도가 위 글의
①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연탄 한 장, 안도현 -
②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화살, 고은 -
③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귀천, 천상병 -
④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 옆에서’
⑤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
위 글의 글쓴이는 인생의 원숙미를 예찬하고 있다. ④ 역시 성숙한 누님의 모습을 통해 시련 뒤에 오는 인생의 원숙함을 추구하
고 있다.
3. 위 글을 읽고 학생들이 토의한 내용이다. 옳지 않은 것은?
① 대화체로 이루어져서 희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②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글쓴이는 역설적 발상을 하고 있어.
③ 독자들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깨달음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
④ 글의 전개 방식이 사소한 대상으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유추해 내고 있군.
⑤ 평범하게 보아 넘기기 쉬운 예화를 통하여 인생을 관조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
글쓴이는 예화를 통해 원숙한 인생이 보여 주는 멋과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중용과 절제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인생을 관 조하는 자세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4. ㉠에 들어갈 속담으로 알맞은 것은?
①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② 망건을 십 년 뜨면 문리가 난다.
③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④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⑤ 한 마리 고기 다 먹고 말(馬) 냄새 난다고 한다.
평생을 글을 쓰면서도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적 없이 글을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한다는 말로
보아 ㉠에는 ‘어떤 일이든지 오래도록 종사하면 그 일을 환히 꿰뚫어 알게 된다.’는 의미인 ②가 적당하다.
5. ⓐ - ⓔ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② ⓑ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③ ⓒ 잘 익은 피딴과 같이 독특한 풍미를 지닌 글을 써 보지 못했다는 표현이다.
④ ⓓ 자신의 글쓰기를 자탄하는 친구를 질책하면서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⑤ ⓔ 인간의 삶에서 중용의 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질책이 아니라 위로의 말이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평생 간직할 수 있다면 타성에 젖어 젊은 시
절의 호기심과 노력하는 자세를 잊는 사람보다 더 좋지 않으냐의 뜻이다.
정답 1. ③ 2. ④ 3. ⑤ 4. ② 5. ④
글의 구성: 화제에 따른 2단 구성
- 피딴의 독자적인 풍미와 작자의 창작 활동과의 대비
- 썩기 직전의 쇠고기 맛과 중용의 도를 지키는 인생의 원숙미의 대비
주제: 중용을 지키는 생활의 멋과 여유
갈래: 교훈적, 고백적
특징: 지문을 생략한 희곡처럼 대화만으로 글을 전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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