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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잃어도 한글은 잃지 않았다

수로보니게 여인 2008. 8. 19. 15:52

 

나라는 잃어도 한글은 잃지 않았다
한글학회 100주년
1926년 한글날 제정… 1933년 맞춤법 통일안
100돌 맞아 전시회·추모전·국제학술대회도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 광복 이후 한글학회 소속 학자들이《큰사 전》원고를 집필하는 모습. /한글학회 제공
 

1908년(융희 2년) 8월 31일, 서대문 밖 봉원사에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평소 "말과 글을 잃으면 민족도 멸망한다"고 가르친 국어학자 한힌샘 주시경(周時經·1876~1914)이 운영했던 하기 국어강습소의 졸업생들과 국어 연구에 뜻을 둔 사람들이었다. 하기강습소(1907~1917)는 최현배·이병기·현상윤·김두봉 등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이날 봉원사에 모인 사람들은 김정진(金廷鎭)을 회장으로 한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했다. 이후 100년을 이어가게 될 한글학회의 모체였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움'으로, 1913년 3월 23일 '한글모'로 계승됐으며, 1921년 12월 3일에는 '조선어연구회', 1931년 1월 10일에는 '조선어학회', 그리고 1949년 9월 25일 '한글학회'로 바뀌었다.

한글학회는 엄혹한 일제하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며 "말과 글을 잃지 않는 한 민족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들은 1926년 '한글날'을 제정했고 1927년에는 학술지 《한글》을 창간했으며, 1933년에는 지금까지도 우리말 표기의 준거가 되고 있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1942년에는 최현배·이희승·이극로·이윤재 등 33명이 일제에 의해 검거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커다란 고초를 겪었다.

▲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천우신조로 찾아낸《조선말 큰사전》의 원고. 이 원 고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말 큰사전의

    출간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한글학회 제공

 

이로 인해 1929년에 시작된 《조선말 큰사전》 편찬 사업이 일시 중단됐으나,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에 빼앗겼던 원고지 2만6500장 분량의 사전 원고를 극적으로 찾아낸 뒤 마침내 1957년 전6권의 《큰사전》을 완간했다. 한글학회는 이후에도 《한국 땅이름 큰사전》(1991) 《우리말 사전》(2005)을 편찬했고, 기관지인 계간 《한글》을 발행하며 교육 사업을 펼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글학회(회장 김승곤)는 '창립 100돌'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오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서울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여는 《100돌 기념 전시회》는 학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헌과 도서, 서예 작품을 전시한다. 22일 오후 5시에는 서울 신문로1가 한글회관 얼말글교육관에서 《한글학회를 이끈 스승 추모전》을 시작한다.

29일부터 30일까지는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며, 스테판 크놉(영국 런던대), 홍종선(고려대), 리의도(춘천교대)씨 같은 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선다. 30일 오후 5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100돌 기념식이 열리며, 31일 오후 2시에는 봉원사에서 표지석 제막식이 열린다. 29일에는
우정사업본부가 기념우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02)738-2236~7

  • ▲ 1971년 11월 한글학회의 50주년 기념식 모습을 담은 대한뉴스 동영상.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한글학회의 기점을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의 창립으로 삼았다. 현재는 주시경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1908년 8월 31일의 국어연구학회를 기점으로 삼아 2008년 한글학회 100주년을 맞는다. /유석재 기자
입력 : 2008.08.19 04:10 / 수정 : 2008.08.19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