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조용헌 살롱

택풍대과(澤風大過)

수로보니게 여인 2008. 7. 26. 09:34

 

 

                                                                                                              

  택풍대과(澤風大過) 


주역(周易)에서 연못을 의미하는 택(澤)은 '소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녀'가 등장하는 괘는 그 의미가 심상치 않다. 우선 택화혁(澤火革)이 그렇다. 소녀와 불이 합해지면 혁명의 '혁'(革)이 나온다. 한문으로 혁명(革命)이라는 말의 어원을 소급해 올라가면 바로 이 '택화혁' 괘를 만나게 된다. 소녀가 앞장서면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녀'와 '바람'의 만남이다. 이렇게 되면 28번째의 택풍대과(澤風大過) 괘가 나온다. 대과(大過)는 큰 것이 지나감이다. 큰 것이 지나갈 때는 기둥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맨 아래쪽의 기둥도 흔들리고, 맨 위쪽에 있는 기둥도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세계적인 고유가에다, 미국의 금융위기 여파, 물가불안과 민심이반이 겹쳐진 한국의 현 상황은 위아래가 다 흔들리는 '택풍대과'의 형국이다. 옛날 사람들이 이 괘를 뽑으면 바짝 긴장하였다.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이 오겠구나'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어떤 각오를 하였는가? '
독립불구(獨立不懼)하고 돈세무민(遯世無悶)'하는 각오였다. '홀로 남겨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과 단절되더라도 근심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택풍대과의 핵심은 바로 '독립불구, 돈세무민'에 있다. 조선조 한문4대가 가운데 한 명인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은 이 택풍대과 괘를 유별나게 좋아하였던 것 같다. 그의 인생은 끊임없이 연못에 바람이 불어대는 상황이었다. 아래도 흔들리고, 위도 흔들려서 언제 집이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광해군 때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하였는가 하면, 인조반정 후에는 이조좌랑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척화파에 속하였기 때문에 김상헌과 함께 중국 심양에 포로로 잡혀갔다. 포로생활이 풀려서 의주까지 돌아왔는데, 일이 꼬여서 다시 잡아가려고 하니까 의주에서 탈출을 하는 결단을 내린다. 풍파가 가득한 인생을 살았던 그는 30대 중반에 경기도 양평군에다가 '택풍당'(澤風堂)이라는 당호의 집을 짓고 살았었다. 자신의 호도 택당(澤堂)이다. 모두 '택풍대과'에서 유래한 명칭인 것이다. 주역의 '독립불구'와 '돈세무민'을 생각한다.


                                                    2008.07.25 22:0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나도

       '獨立不懼'와 '遯世無憫'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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