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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 by 구스타프 클림트

수로보니게 여인 2008. 5. 16. 08:18

 

 

[그림한점] 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 by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 (1902년)

오스트리아 미술관,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의 시내 중심부에서 약간 남쪽,

오페라 극장에서 5분쯤 걸어간 곳에 황금빛 공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묘한 건물이 있다.

요제프 올브리히의 설계로 1898년에 세워진

‘분리파’(Secession) 전시관이다.

정면 벽면에는 이런 문장이 걸려 있다.

“시대에는 그 예술을, 예술에는 그 자유를.”

그 지하실에 꺼림칙한 커다란 원숭이가 있다.

사악한 것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1988년 11월,

처음 거기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큰 원숭이의

하얗고 탁한 시선에 사로잡혀 마비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분리파 전시관의 지하실 벽화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다. 「약한 자들의 고뇌」와

「적대하는 힘」과 「환희」로 이루어진

삼부작인데, 「적대하는 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괴물 티폰이다. 괴물 주위에는 그의

딸들인 ‘질병’, ‘광기’, ‘죽음’ 등의 고르곤과,

‘욕망’, ‘불순’, 그리고 축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가진 ‘무절제’가 유난히 추하게

묘사되어 있다.



티폰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포에우스다.

“신들이 티탄(거인족)을 정복하자, 분노한 가이아

(대지)는 타르타로스(저승)와 교접하여 킬리키아에서

인간과 짐승의 혼합체인 티포에우스를 낳았다.”

터무니없이 큰 이 괴물은, 넓적다리까지는 사람의

형상이고 그 아래는 몸뚱이를 사린 거대한 독사로

되어 있다. “온몸은 깃털로 덮이고, 머리와 아래턱에

돋아난 헝클어진 털은 바람에 휘날리고, 눈에서는

불을 내뿜고 있었다.”

티포에우스는 제우스 신과 싸우다가 벼락을 맞는다.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은 그때의 벼락이

지금까지 계속 불을 내뿜고 있는 거라고 한다.


클림트는 이 괴물을 큰 원숭이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왜 원숭이인지는 수수께끼다.


1897년, 당시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빈

미술계의 중심인물로 인정받고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는 8명의 동료와 함께 빈 미술가협회를

탈퇴했다. 빈 분리파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1902년의 제 14회 분리파 전시회는 베토벤이라는

‘예술의 신’에게 바쳐진 종합예술로 구상되었다.

전시장을 신전으로 꾸미는 작업은 호프만이 맡았고,

구스타프 말러가 편곡하고 지휘한 베토벤의

제 9교향곡 4악장이 전시실에 울려 퍼지고,

막스 클링거가 조각한 베토벤 상을 중심으로 하는

전시실의 세 벽면을 클림트가 벽화로 장식했다.

허약한 인간들이 사악한 괴물들과의 투쟁을 거쳐

뮤즈 여신의 안내로 이상적인 유토피아에 이른다.

고뇌를 통해 환희로, 벽화 삼부작은 제 9교향곡을

회화로 형상화하고 있다.


하지만 「베토벤 프리즈」는 혹평을 받았다.

특히, 「적대하는 힘」의 추악한 괴물들은 소수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 뿐 대다수의 반감을 샀고,

그 때문에 전시회는 적자로 끝났다고 한다.


클림트는 이 벽화를 일시적인 작품으로 제작했고,

전시회가 끝난 뒤에는 철거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철거하기 직전에 그의 친지인 카를

라이닝하우스가 사들여 벽을 통째로 떼어 패널로

만든 덕에 벽화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 이 벽화는 유대인 수집가에게 팔렸고,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뒤 국가에

몰수되는 등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미술관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다가 1985년의 대규모

세기말 전시회를 기회로 창고에서 꺼내져 83년 만에

복원되었다. 


나는 당시에 이 벽화가 혹평을 받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컨대 클림트는 「적대하는 힘」

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다.

발가벗은 남녀가 살풍경하게 포옹하는 「환희」보다

「적대하는 힘」의 불길함이 보는 이들을 훨씬

강한 힘으로 사로잡았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환희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파국에 대한 불안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불안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다.


지하실의 큰 원숭이는 한 세기 뒤의 사악한 세기말을

맞이한 지금도 인간세계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사악한 사건에 탁한 눈빛을 던지고 있다.


[청춘의 사신 / 서경식 지음 / 창작과비평사]


세기말 비엔나, 1900년 전후 당시 유럽의 강대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

비엔나에서는 '벨 에포크' - 좋았던 옛시절의 끝물로서

빈 분리파가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 대표주자로 손꼽히던 구스타프 클림트는

위의 그림 "베토벤 프리즈" 삼부작 벽화를 그렸으나

본래 의미는 온데간데 없이 세기말적 이미지로 각인되는

바람에 흥행도 실패하고 20세기 말엽에 와서야 다시금

주목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잠수함 토끼'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정밀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바다 속을 다니는 잠수함 내에 일산화탄소 량을 측정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지요.

그래서 잠수함에서는 토끼를 키웠습니다.

공기 함량에 인간보다 몇배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토끼가

일산화탄소 증가에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면 그걸 보고

인간들은 바다 위로 부상해 목숨을 건지는것이지요.


클림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그림은 '잠수함토끼'의 역할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클림트와 빈 분리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벽화가 야유와

조소 속에 쓸쓸히 사라진 후 10여년이 지나 유럽대륙은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시대로 돌입했고

문화와 예술이 영원할 것 같던 도시 비엔나는 20세기 전반

내내 전쟁과 파시즘이 뒤덮는 마도가 되었으니까요.


빈 분리파가 체험했던 세기말에서 한 세기가 훌쩍 지난 후에서야

이 기괴한 벽화는 주목받았고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프리즈에서 후대에 가장 주목된 것은 "적대하는 힘"

중 티포에우스 - 티폰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대한 거인 - 괴수에 속하는 이 티폰을

원숭이로 묘사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과연 원숭이는 원래 벽화의 의도대로 유토피아를 향해 출발한

인간들이 극복해야 할 타자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갖은 타락과 악마성의 체현인 것일까요.


이 그림은 한 세기 전의 대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괴작,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와 나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미술관 지하실에서 어둠 속에 금빛으로 빛나는

티폰의 흐릿한 눈동자와 대면할 때 동물원의 오랑우탄을 보는

것처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