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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성지순례 탐방기

수로보니게 여인 2022. 11. 10. 16:39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에 위치한 ‘은이 성지’, '청년 김대건 길'로도 불리는 이곳을 찾게 된 이유는 근래 친구가 된 청년 OO 씨와 보내는 일상의 일환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탐방할 곳을 찾아다니는 중, 용인박물관(10월 27일),

용인농촌테마파크(1031), 은이 성지(118)를 탐방하던 날의 시간기록이다.

박물관이나 농촌테마파크의 아름다운 풍경은 저장하지 못했다.

자주 나가는 일상을 다 남기기에는 나의 일상이 그리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은이성지의 시간들을 그냥 흘러버리기에는 한 청년의 애달픈 역사가 綿綿히 흐르다 내 마음에까지 닿은 이유라는 을하며 적바림해보려 한다.

청년 김대건이란 이름의 최초의 신부, 그의 순교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을 둘러보는 걸음이 휴식이라기보다는 저며진 마음에 간기가 묻은 것 같은 시간을 보낸 다른 의미의 가을 여행이었다.

'은이'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시기에 숨어 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한적한 성지로 김대건신부와 관련된 기념관, 조각상 등이 있다.

「청년 김대건길」 은 용인 은이성지에서 안성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10.3km(4시간 소요) 산책 길로 시원하게 흐르는 은이계곡을 시작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걸으며 일상에 지친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길이다.

2020년 10월 중순부터 스탬프투어도 운영한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

세월이 흐를수록 아픈 역사는 더 아름답게 彩色되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청년 김대건 신부의 순교라는 주제는 아픔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니 그날 그 시간 그곳을 찾은 개신교인인 나의 뼛속까지 鮮血빛으로 스며들었다.

10.3km, 순례 길을 다 따라 걷지는 못해도
중국 상해의 김가향 성당의 기둥과 대들보로 지어졌다는 천주당과 기념관
은이 성지의 유래
나의 청년 친구 OO 씨와 함께하는 足跡도 彩色으로 물들어가기를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오롯한 기념관
교우들에게 성사를 베푸는 등, 사목활동을 하기위해 박해와 밀고 속에서도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셨다는 김대건 신부
사제 서품을 받고 상해항을 출발하여 항해하던 중 풍랑으로 서해바다에서 표류하다 제주도에 표착하게 되었다는 라파엘 호
성역화의 영상도 흐르고
1846년 봄 성교 길에 오르셨다 斬首致命 하셨다는 증언

참수치명 [斬首致命]: 목이 잘려 순교(殉敎)하는 일

한 몸(내 몸)같이: 주님도 이웃도
1846년 9월 16일 순교 그 후 시복과 시성과정
1846년 4월 13일(부활주일)의 마지막 미사 말씀

혹, 邂逅하지 못한다 해도 천국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천주님(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 할 수 있도록 용맹을 주시라는 마지막 말씀과, 홀로 남은 어머니를 교우들에게 부탁하는 애절한 효심의 말씀(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던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는)

하늘과 땅 사이를 붉게 물들인 오롯한 청년 김대건 신부
그의 정신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를
오늘날의 청년들의 뒷모습도 그의 찬란한 족적으로 물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청년 친구도 자박자박
기도의 숲으로 이어주는 개울
올라가보지 못한 기도의 숲
기도의 숲을 지나 김대건 길로 이어진다는 안내도

언젠가는 꼭 걸어보리라는 다짐을 기도의 숲 산자락에 뿌려놓고

세월이 흘러도 한 세대를 물들인 靑年의 足跡이 層層을 이루며 쌓여가기를
멀리 가지 않고도 마음을 여며볼 수 있는 곳을 찾았던 하루의 의미가 웅숭깊다.

대기번호 1번 당첨

하루 전 검색을 하여 찾아두었던 곳이 식객 허영만이 다녀간 곳이란다.

TV 프로그램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지만 꽤 유명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기다려야 테이블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번호표 1번을 운(은혜) 좋게 받아들고 얼마 기다리지 않고 석쇠돼지고기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석쇠구이’의 맛(향)이라 특별한지 나와 보니 대기 순번 20번이나 되는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 기다리는 걸 보고 저 정도 기다려야 한다면 나도 과연 기다렸을까?

 

자문해보는 마음에 나의 청년 친구가 맛있게 먹어주어서 고마움이 더해진 날이었고,

웅숭깊은 의미가 鮮血로 물든 마음사이를 졸졸거리며 흐르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