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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과 사랑을 아는 文魚

수로보니게 여인 2014. 9. 4. 23:47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글월과 사랑을 아는 文魚

입력 : 2014.09.04 05:32   

迷路 풀고 도구 쓰는 지능 가져 인간처럼 의식 있는 존재로 인정
뇌內 기억 담당하는 조직 확인돼 뇌지도 국제 프로젝트 진행 중
4년 반 알 품은 母性愛만으로도 차례상에 오를 자격 충분해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사진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추석 차례상에는 늘 문어가 올라갔다. 경상도 지방에서만 문어를 차례상에 올린다는 사실은 고향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알았다.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징그럽게 생긴 문어를 제사상에 올리느냐고 핀잔을 줄 때면 예전 어른들이 "문어(文魚)는 이름에 '글월 문(文)'자가 들어가고, 선비가 늘 곁에 둬야 할 먹물도 몸에 갖고 있다"고 하신 말로 답을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문어가 선비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조선 후기에 이규경이 편찬한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사람의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문어라고 부른다'는 풀이가 나온다. 원래 민둥산, 민머리, 미끄럽다 등에 들어가는 '�'을 넣어 '�어'라 불렀는데, 나중에 같은 소리가 나는 한자인 '문어'로 옮겨 적었다는 것이다. 한문으로는 다리가 여덟 개라고 해서 '팔초어(八稍魚)'라고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어는 손만 흔들면 다가올 정도로 멍청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이 하고많은 '문'자 중에 '글월 문(文)'을 문어에 붙인 것은 실수였을까. 오늘날 과학자들은 문어를 선비와 연결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밝혀냈다. 2012년 7월 심리학·인지과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모여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로 볼 때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인간 외에 의식을 가진 존재로 여러 동물을 열거했는데, 무척추동물로는 문어를 꼽았다.

문어는 다양한 실험에서 상당한 지능을 보였다. 어느 동물학자가 줄을 당겨야만 작은 유리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살아있는 먹이가 나오는 장치를 문어 우리에 설치했다. 문어는 눈앞에 보이는 먹이에 팔이 닿지 않자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줄을 잡았는데 문이 열렸다.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줄을 당겨 유리문을 열고 먹이를 먹었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기억하는 능력을 보인 것이다. 미로(迷路) 실험에서도 생쥐 못지않은 탈출 솜씨를 보였다. 2009년에는 문어가 바다에 버려진 코코넛 껍데기 두 개를 짝을 맞춰 공처럼 만들고서 그 안에 몸을 숨겼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도구를 사용하는 최초의 무척추동물이 된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과학자들은 문어의 지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밝히기 위해 뇌를 조사했다. 60여년의 연구 끝에 문어는 개와 비슷한 5억개 정도의 신경세포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3억개는 여덟 개의 다리를 통제하는 데, 또 1억2000만~1억8000만개는 시각을 처리하는 데 쓰이지만 나머지 4000만~4500만개는 사람의 뇌처럼 보호막에 싸인 채 모여 있었다. 여기서 인간의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와 유사한 신경조직이 발견됐다. 다른 연체동물은 신경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사다리 신경계이지만 문어는 인간과 흡사한 중추신경계를 갖고 있었다. 우리 뇌에 있는 주름처럼 신경조직의 표면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접힌 구조도 밝혀졌다.

다음 단계는 기능 연구이다. 2009년 미국과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문어 커넥톰(connectom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억이나 감정 등 모든 뇌기능은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에 따라 좌우된다. 커넥톰은 '전체(ome) 신경세포들의 연결(connect)'을 뜻하는 말로 일종의 뇌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에는 텍사스 A&M대의 한국인 과학자 최윤석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뉴욕시립대의 제니퍼 바질(Basil) 교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었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24년 전 이탈리아 연구진은 원숭이가 가만히 있는데도 다른 동료나 사람의 행동을 보고 뇌에서 그들과 똑같은 신경세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신경세포에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모두가 거울 뉴런을 갖고 있어 동료의 고통을 제 것인 양 느끼는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문어도 거울 뉴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의식을 가진 존재로 확증을 받을 것이다.

지난 7월 말 온라인 국제학술지인 '플로스 원(PLoS onE)'에는 동물계 최고의 모성애(母性愛)를 보인 문어가 발표돼 화제가 됐다.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MBARI) 연구진은 바다 밑 1371m에서 심해문어가 53개월 동안 알을 품은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동물계 최고의 기록은 심해새우의 22개월이었다.

보통 문어 암컷은 알을 낳고는 6개월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본다. 쉴 새 없이 팔을 저어 산소가 풍부한 물을 알에 보낸다. 새끼 문어가 알에서 깨어날 때쯤 어미는 기력이 다해 죽는다. 그렇다면 논문에 나온 심해문어는 4년 반 동안 굶으면서 알을 품었다고 볼 수 있다. 문어는 자식을 아끼는 간절한 마음만으로도 조상을 기리는 차례상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