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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도 짐...늘어난 '병마(病魔)의 굴레'

수로보니게 여인 2013. 11. 5. 18:23

자식에게도 짐...늘어난 '병마(病魔)의 굴레'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 우리 모두는 늙고 병들어 죽는다. 개인에게 병마가 닥치면 그 고통은 비단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배우자와 자녀 등 사랑하는 가족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역시 죽음의 연장 선상에 있다. 한 사회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관리하고 덜어주느냐에 따라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도, 죽음의 질도 갈린다. 그 고통이 더욱 커질 수도 있고 절반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일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올 1월 아버지(56)가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들은 경기도 포천 일대에 흩어져 사는 평범한 서민 가족이었다. 큰딸(29)은 전업주부, 둘째 딸(28)은 요양원 요양보호사, 막내아들(27)은 시화공단 비정규직이었다.

사는 게 동화처럼 밝지만은 않았지만 사회 고발 다큐처럼 어둡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말술에 다혈질이지만 두 딸이 일찍 결혼해 손주도 여럿이고 즐거운 추억도 적지 않았다. 어느 집에나 다 있는 고만고만한 우환(憂患)은 있어도 남들이 경악할 악행·범법은 없었다. 그런 집에서 지난 9월 8일 조간신문 사회면을 도배한 사건이 났다. 아들이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다.

존속 살인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지난 두 달간 이 사건을 추적한 취재팀을 혼란스럽게 한 건 엽기적인 범행 뒤에 숨은 3남매의 연약한 민낯이었다.

큰딸·작은딸과 주변 인물 22명을 인터뷰해 조각조각 재구성한 고인 가족의 '마지막 10년'은 병마(病魔)가 한국 서민 가정을 얼마나 가파른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지 명료하게 보여줬다. 암 환자 1인당 진료비는 1159만원(국립암센터 2009년 통계). 여기에 환자 가족이 환자를 돌보느라 일을 그만두면서 생기는 기회비용과 보험이 되지 않는 각종 비급여 비용까지 더하면 암으로 서민 가정이 떠안는 실제 부담은 두세 배로 껑충 뛴다. 오래 살고 오래 앓는 패턴이 굳어질수록 암 환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암 환자 때문에 벼랑에 선 서민 가정도 따라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윤영호 서울대 교수는 "이런 사건이 딱 한 건이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 예외적인 악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요즘 여기저기서 중병을 앓는 가족을 해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고현숙 국민대 교수는 "병을 앓는 노부모 때문에 위기에 처한 서민 가정에는 각종 복지제도가 '남에게만 돌아가는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고 했다.

◇"복지 혜택? 해당이 안 됐어요"

아버지는 평생 포천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집안이 어렵고 공부도 잘 못해서 남매는 고교만 졸업하거나 그마저도 중퇴했다. 그렇다고 학교 다니면서 사고 친 적은 없다.

아들은 고교 졸업 후 2007년 포천 모 병원에서 공익근무할 때 "군말 없이 환자들 병상을 정리하고 시트도 척척 간다"고 칭찬받았다. 제대 후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경기도 한 요양원에서 3년간 노인들을 돌봤다(당시 지켜본 간호사 A씨, 포천서 B형사).

올 1월 아버지가 포천 모 병원을 찾았을때, 의사가 5.5㎝짜리 종양 사진을 보여주며 "남은 시간은 8개월이고, 수술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가족은 고민 끝에 수술을 포기했다. 일반 병동에 계속 입원하자니 돈이 없었다. 암 환자는 입원비 5%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댄다. 그래도 간병비·식비 등은 개인 몫이다. 일당 8만원씩 들어가는 간병인을 안 쓰고 자식들이 직접 병시중을 들어도 최소한 월 30만~40만원이 꼬박꼬박 나갔다. MRI와 CT 검사를 하면 40만원이 추가로 훌쩍 들었다.

 

 

3남매는 각자 월 100만~150만원으로 빠듯하게 살아간다. 둘째 딸은 직업군인 남편과 지적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다가, 막내는 어머니가 예전에 아팠을 때 약값을 대다 빚을 지는 바람에 둘 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병원비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둘째 딸이 자기가 근무했던 요양원에 “혹시 우리 아버지를 이리로 옮기실 수 없느냐”고 물었다. 요양원에서 “딱하지만 노인장기보험에 해당하는 65세 이상도 아니고 치매·중풍 환자도 아니라서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켜보던 누군가가 “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부담이 줄어든다”고 했다. 사지 멀쩡한 자식이 셋이나 있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차라리 내 손목을 그어다오”

가족회의 끝에 아버지를 큰딸 집으로 모셔왔다. 35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전셋집인데, 사위가 사기당해 전세금을 날려서 지금은 같은 집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을 주고 산다. 맏사위 월급 150만원으로 월세 내고 장인 부부, 큰딸 부부, 초등학생 손녀, 이렇게 다섯 식구 생활비와 장인 약값까지 해결했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수시로 보탰다.

아버지는 6월까지 큰딸과 함께 가까운 산에도 슬슬 다니고 다세대주택 텃밭에 고추와 감자도 길렀다. 큰딸은 어죽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밤낚시를 다니며 메기도 잡아왔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큰딸과 점점 자주 다퉜다.
무엇보다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서 처방한 진통제가 안 듣는다며 약국에서 파는 게보린을 하루 서너 갑씩 삼키고 소주도 마셨다. 동네 내과에서 한 번에 1만원씩 내고 의료용 마약도 두 번쯤 맞았는데, 아버지와 영 안 맞았는지 “게보린만 못하다”고 욕하며 두 번 다시 안 맞겠다고 했다.

◇“무료 호스피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적극적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의료용 마약을 맞으면서 덜 고통스럽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 곳이 호스피스다. 가고 싶다고 자리가 늘 나는 게 아니다. 한 해 암으로 죽는 사람은 7만5000명인데, 호스피스 병상은 우리나라에 900개도 안 된다. 시설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무료~월 1000만원) 자기 눈높이에 맞는 곳에 때맞춰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장마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을 붙잡고 흰자위를 보이면서 “내 손목 좀 그어달라”고 헐떡이는 상황이 됐다. 자식들이 사방으로 호스피스를 알아봤다. 월 100만원 하는 곳에서 사정을 듣더니 “40만~50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낯선 곳에 혼자 가는 건 싫다”며 “아내도 함께 먹고 자게 해달라”고 청했다. 시설에서 “그건 힘들다”고 했다.

잘 찾아보면 종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호스피스도 있는데 그런 곳을 찾아볼 노력은 왜 안 했을까? 큰딸과 둘째 딸은 “하루하루 살기 힘들고 정보도 없어 그런 곳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몰랐다”고 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여름을 지나면서 3남매는 조금씩 지쳐갔다. 말하기도 힘겨운 아버지는 약을 피와 함께 토하고 똥오줌을 지렸다. 빨대로 물만 겨우 삼켰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아들은 날마다 퇴근 후 시화공단에서 큰누나네 집까지 100㎞를 달려왔다. 밤 11시 넘어 도착해 지친 누나와 어머니에게 “좀 쉬시라”고 말한 뒤 비쩍 마른 아버지를 간호했다.

범행 이틀 전(9월 6일) 아버지가 한 차례 혼수상태에 빠졌다. 온 가족이 모였다. 마음의 준비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튿날 기운을 차렸고 평소 좋아했던 수제비를 찾았다. 가족은 복잡한 심정이 됐다. 범행 당일 어머니와 큰딸과 아들만 집에 남았다. 큰딸이 아들에게 “이제 그만 아버지를 고통 없이 보내드리자”고 했다. 아들이 두 차례 완강하게 거절하다 결국 지그시 목을 눌렀다. 그전에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목이 메서 말했다. “아버지, 제가 편하게 보내드릴게요. 죄송해요.”

장례 끝나고 이틀 만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아들이 가책을 못 이겨 작은누나에게 범행을 털어놓았다. 둘째 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펄펄 뛰었다. 아들이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며 인근 저수지로 뛰쳐나갔다. 둘째 딸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아들은 “죗값을 받겠다”며 순순히 양손을 내밀었다. 아들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린다. 신현호 변호사는 “그가 죄책감에 울기도 한다”고 했다. 취재팀이 이런 얘기를 들은 큰딸네 집은 지금도 숨진 아버지의 옷가지와 가족사진이 식구들 살림살이 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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