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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치매 엄마, 내 대머리는 잊지 않아줘서

수로보니게 여인 2013. 12. 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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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어머니와 일상 따뜻하게 그린 만화책으로 화제… 일본 만화가 오카노

      치매 엄마 "죽은 아버지 매일 만나니 치매도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간병 고통, 유머로
      아들 머리 때리는 모습도, 마구 욕설 퍼붓는 모습도 가슴 뭉클한 장면으로 승화

      老老간병 이슈화, 만화 히트
      일본서만 20만부 팔리고 한국·대만서도 번역 출간…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

    오카노 유이치(岡野雄一·사진·63)의 어머니는 시집온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솔개가 하늘에 그려낸 동그라미 궤적 안에서 살아왔다. 원폭(原爆)으로 뒤틀린 나가사키 언덕배기의 작은 집, 술에 찌들어 폭력을 휘두르던 피폭자(被爆者) 남편, 밥벌이도 시원치 않은 주제에 기타 들고 노래만 부르는 아들이 그녀 인생의 전부였다. 남편이 죽었을 때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아버지는 솔개 동그라미 너머 저 위로 가버렸어." 그해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마당 화단의 부겐베리아 곁에 얌전히 놓아두고 반나절씩 사라지곤 했다.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을 못 떼던 어머니였다. 실종 신고도 했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어머니는 반드시 돌아와 똑같은 말을 했다. "네 아버지가 왔어야. 둘이 동네 구경하러 저 위에 갔다 왔어." 그는 지금도 솔개의 동그란 궤적 안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것일까. 비록 환상이지만. 아들은 이렇게 썼다.

     
    환갑 넘은 아들의 대머리는 치매 老母에 최후의 기억이자 운동기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 라이팅하우스
    "치매에 걸린 덕분에 어머니 마음속에 아버지가 살아났다면 치매에 걸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아버지의 존재를 내가 느낄 수도 있고."

    아들 오카노 유이치는 스무살 때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어머니를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도쿄에선 그렇고 그런 성인 만화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20년 전 이혼과 함께 고향 나가사키로 돌아와 밤거리에 뿌리는 정보지 편집장을 했다. 돈에 쪼들려 지면(紙面) 메우기가 벅차던 시절, 그는 직접 만화를 그려 한구석에 게재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코믹 에세이로 그렸다.

    그때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자연스럽게 만화에서 어머니 장면이 늘어갔다. "강단(剛斷) 있던 어머니가 황당한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만화로 그리면 화나는 일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어요. 나 자신, 또는 현실에 대한 위로랄까."

    일본에선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이라고 한다.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긴 증상이란 뜻이다. 2004년 정부가 공식 용어로 채택한 뒤 지금은 언론도, 일반인도 이 말을 쓴다.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란 말이 차별적이란 이유로 몰아낸 것이다. 어쩐지 '치매'란 말엔 경멸적이고 고통스러운 냄새가 풍긴다. 대신 '인지증'은 병을 객관화하는 뉘앙스가 있다. 동그랗고 따뜻한 오카노의 만화도 그런 마술을 부린다.

    그의 만화에서 치매는 때때로 어머니가 아름다운 기억과 만나는 통로로 그려진다. 아들의 머리를 두드려 패는 증상은 치매 어머니가 아들을 알아보는 유일한 증거로 묘사된다. 모든 게 좋게, 좋게 해석되는 것이다. 오물이 묻은 속옷을 옷장에 구겨 넣는 어머니의 모습도, 때때로 찾아오는 분노 증상 때문에 욕설을 퍼붓는 어머니의 모습도 만화 속에선 코믹하고 정겹다.

    현실도 그럴까. "물론 위로일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카노 유이치
    오카노가 치매 어머니의 일상을 묶은 만화책을 출간한 건 4년 전이다.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비(自費)로 500부를 찍었다. 그 중 300부가 팔렸다. "대머리 아들이 늙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지루한 이야기인데, 소수이지만 읽은 분들의 반응이 괜찮았어요. 울었다, 웃었다, 읽어서 좋았다, 이런 반응이었지요." 책을 펴낸 그 해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시미즈 유키코란 일본의 유명 여배우가 아버지 무덤 앞에서 치매 어머니를 곁에 두고 자살한 것이다. 이른바 '간병 피로'로 인한 비극의 전형이었다. 오카노는 "유명인이라 화제가 됐을 뿐, 수많은 사람이 시미즈와 같은 곤경에 빠져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고령사회가 '간병사회'로 진입하면서 소문을 타고 오카노의 팬이 늘었다. 치매 부모를 둔 유명인들이 그를 폭넓게 지지했다. 치매 아버지를 둔 시인 이토 히로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치매 이야기가 지역 신문사에 의해 번듯한 책으로 재출간된 것은 작년 1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작은 양파'란 뜻의 페코로스는 오카노의 필명이다. "나의 대머리가 작은 양파를 닮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2년 전과 반응이 달랐다. 불과 300부 팔렸던 책이 이번엔 20만 부가 팔렸다. 한국과 대만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한국에선 출판사 10곳이 계약전에 뛰어들었다. 일본에선 영화로도 제작됐다. 85세 감독이 88세 여배우를 기용해 찍었다. 그녀는 '최고령 첫 주연 여배우'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나이 예순을 넘은 작가가 아흔살 치매 어머니 이야기로 유명해지는 것은 일본에선 이제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86세 와타나베 가즈코가 10년 전 출간한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가 2년 전 새로 발간돼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넘겼고, 90세에 데뷔한 102세 여류 시인 시바타 도요의 책 '약해지지 마'는 200만 부를 돌파했다. 간병사회, 늙음과 질병에 대한 위로가 일본 출판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근처의 작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건너편을 가리키며“네 아버지, 저기 서 있어”하고 중얼거린다. 물론 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벌써 십여 년 전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는데. / 라이팅하우스
    외곬으로 생각하면 안 돼

    일본 후쿠오카의 좁은 술집에서 만난 오카노 유이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반들반들한 대머리였다. 그의 대머리는 특별하다. 치매 어머니가 아들을 못 알아보면 그는 모자를 벗어 "엄마, 나" 하고 말한다. 그러면 "어라, 유이치 너였구나" 하고 비로소 아들을 알아본다. 그의 대머리는 치매 어머니의 운동기구 역할도 한다. "요양시설에서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한 운동으로 풍선 놀이를 해요. 풍선을 손으로 쳐서 서로 주고받는 방식이지요. 아들의 대머리를 풍선으로 생각하시는지." 어머니는 아들을 보면 대머리를 5분쯤 철썩철썩 두드린다. 아들은 순순히 머리를 들이민다. 그는 만화에서 "대머리라서 참 다행"이라고 썼다.

    ―만화를 보면 페이소스(연민)만이 아니라 유머도 있다.

    "여덟 컷짜리 만화를 주로 그리는데 마지막 칼럼에서 개그로 웃음을 유발하려고 애쓴다. 힘든 일, 화나는 일을 누그러뜨려서 끝내고 싶기 때문이다. 고통을 유머로 순화시킨다고 할까."

    ―실제로 그런 유머를 느낀 일이 있나.

    "늘 긴장하던 어머니가 한순간에 풀려버리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있게 여기고 싶었다. 아니, 슬프게 여기기 싫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만화로 그린 뒤부터 여유가 생긴 것이 확실하다. '이게 다 만화 소재려니' 하고 생각하니까."

    ―실제론 힘든 일이 많을 거 같다.

    "2005년 말부터 뇌경색이 함께 찾아오면서 어머니 증세가 악화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데 대한 초조감이 밀려온 듯하다. 낙상을 막기 위해 보호대가 달린 침대에 눕히니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가두느냐'고. 침대를 짐승을 가두는 우리로 생각했나 보다. 올 초에는 식사를 못해 체중이 34kg까지 내려갔다. 의사가 오연(誤嚥·잘못 삼켜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는 것) 우려가 있다고 해서 가슴에 구멍을 뚫고 음식을 넣는 수술도 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도 만화처럼 여유를 찾을 수 있나.

    "현실의 고통은 그대로다. 웃는다고 현실이 달라지나. 그저 위로하고 위로받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항의도 들어온다. '현실은 당신 만화처럼 달콤하지 않다'고. 맞는 지적이다. 만화는 고통받는 간병인의 현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창작이다. 외곬으로 생각하면 안 돼, 힘들어도 웃음이 필요해, 이런 주술이다."

    오카노 유이치가 그린 만화
    오카노 유이치가 그린 이 만화의 제목은‘대머리활용법’이다. 치매에 걸려 가족도 잊어가는 어머니에게 아들의 대머리는 아들이란 존재를 떠올리는 통로로, 때론 손으로 때려 인지력을 향상시키는 재활기구로 기능한다. 아들은말했다.“ 대머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 라이팅하우스
    ―만화를 보면 '19금(禁)'에 해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게 때론 웃음을 준다. 성인만화 편집자 경력이 영향을 준 듯하다.

    "라이터가 아니라 에디터였지만, 15년 동안 그 일(성인만화)을 했으니까, 그런 측면이 있겠지. 하하."

    책 '페코로스…'엔 '나의 기도'란 여덟 컷짜리 만화가 나온다. 고교 시절 자위를 하다가 엄마에게 들키는 에피소드다. "유이치, 이게 무슨 꼴이래, 창피하지도 않아? 고추도 쪼끄만 게" 하고 핀잔하는 엄마를 보면서 유이치는 기도한다. "하느님, 부디 엄마가 얼른 나이를 먹어 치매가 되게 해주세요." 세월이 지나 어머니는 진짜 치매에 걸렸다. '그때 그 기억도 지워졌겠지' 이렇게 믿고 밥을 가져다주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핀잔한다. "너도 폭삭 늙어버렸구나. 어릴 때 너무 고추를 조몰락거려서 그래." 크-흑, 입에 있던 밥알이 튀어나오고, 그는 다시 기도를 올린다. 만화는 이렇게 적었다. "그 순간 내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그건 말 못 한다."

    ―만화가 2년 전부터 돌연 잘 팔린 이유는.

    "일본에선 내 세대를 '단카이세대'라고 한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압도적으로 수가 많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전쟁을 겪은 세대다. 사회적으로 그 세대에 대한 연민이 있다. 베이비붐 노인들이 전쟁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시대가 도래했으니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라고 본다."

    전쟁→부흥→풍요→고령화→치매

    오카노의 아버지는 조선소 재직 중 원폭을 맞았다. 단가(일본의 전통시) 쓰기를 즐겼지만 세상을 뜨기 10년 전까지 술을 마셨고, 환영을 봤고, 아내를 때렸다. 한창 음주에 빠져 폭력을 휘두를 당시 그가 쓴 단가 한 수. '형용키 어려운 슬픔 솟구치면, 해 질 녘 우연히 마주친 주점에 들어선다.'

    오카노의 만화는 밝지만은 않다. 치매 어머니의 환영 속엔 원폭을 맞고 죽은 어린 여동생이 나타난다. 그는 "자장자장" 하고 여동생을 재우면서 웅얼거린다. "기나긴 세월을 지나 하느님이 마침내 어머니에게 여동생을 돌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원히 전쟁 없는 시간 속에서."

    ―원폭과 아버지의 정신병엔 어떤 관계가 있나.

    "아버지는 피폭에 대해 말한 일이 별로 없다. 나가사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때 아버지는 여동생을 잃었다. 남동생은 폭심지(폭탄이 떨어진 지점) 근처에서 원폭을 맞았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나 딸 둘을 뒀다. 그런데 자신의 피폭 사실을 쉬쉬했다. 그걸 말하면 (유전병 의심을 받아) 딸들이 결혼하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피폭자들이 가진 공통적인 두려움이다."

    ―만화를 보면 아버지 폭력 장면이 심하게 묘사돼 있다. 식칼까지 들고 난동을 부리던데. 어머니는 어떻게 견뎠나.

    "성격이 강했으니까.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면 어머니는 맞는 것도 '능숙하게' 맞았다. 하하."

    오카노의 아버지는 예순에 술을 딱 끊었다. 그 후 단가만 좋아하는 '호호 할배'가 됐다고 한다.

    ―어떻게 금방 끊었나.

    "몸이 무너졌으니까. 간장도, 심장도 망가졌다. 예순이 넘자 의사가 술을 계속 마시면 더는 진료를 못하겠다고 두손을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 좋아하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내가 고향에 돌아온 것도 그때였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0년은 우리 가정에, 그리고 어머니에게 인생에서 유일한 허니문 같은 기간이었다. 지금 어머니가 만나는 아버지도 그때 아버지의 호호할배 모습일 것이다." 오카노는 "어느 날 문득 날씨예보 화면에 푹 빠져 있는 부모의 뒷모습이 지구를 내려다보는 늙은 천사의 모습 같았다"고 만화에 썼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어머니에겐 생활 기반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긴장이 사라지고. 어느 순간 '내 역할은 뭐였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추억을 뺀 모든 기억이 지워진 게 아닐까. 좋은 추억만 남았다면 잊어버리는 것도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카노 유이치가 그린 만화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기 전 10년 동안 인생 처음으로 행복을 경험했다. 알코올중독에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이 술을 끊고‘호호 할배’로 변신한 뒤였다. 치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매일 환상 속에서 만난다. 어머니는말한다.“ 치매에걸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 라이팅하우스

    '간병 피로'에 빠지면 모두 무너진다

    오카노는 스무살 때 고향을 떠나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썼다. "환청과 환각 속에서 허덕이는 아버지를 버리고, 칼을 든 아버지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어머니를 버리고, 의식에 파고드는 촉수 같은 층층 계단의 동네를 버리고, 말 그대로 도망치듯 떠나 버렸다."

    ―도망치듯 도쿄로 갔다고 했는데, 왜 다시 고향에 돌아왔나.

    "도쿄로 상경한 40년 전, 만화가 야마가미 다쓰히코를 찾아갔더니 이렇게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도쿄에 있으면 똑같은 발상밖에 안 나온다. 앞으로 좋은 작품은 지방에서 나온다.' 당시엔 이 말의 뜻을 몰랐는데 지금 절실히 느껴진다. 고향 나가사키에 돌아와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도쿄에서 성인만화 편집을 하고 있겠지."

    ―버리고 떠났으니 어머니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겠다.

    "당연히 미안하다."

    그는 2006년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냈다. 치매와 뇌경색이 겹치면서 어머니를 집에서 돌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남긴 유족연금에 그의 월급을 쪼개 비용을 댔다.

    ―일본도 부모를 요양시설에 맡기는 데 대한 죄의식이 있나.

    "고향 나가사키 사람들은 부모는 일생 같이 사는 존재, 늙으면 돌봐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 요양시설에 맡긴다고 하니까 친척 중에는 '어떻게 그래' 하는 반응도 있었다. 죄의식은 있으면 있는 것으로 좋다. 그래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있어서 불행해지는 일도 있으니까. 자살한 여배우 시미즈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들어간 요양시설은 어머니의 고향 구마모토(熊本) 아마쿠사(天草)가 보이는 곳이다. 일부러 그런 곳을 골랐다. 어머니는 그곳 아마쿠사에서 농부의 딸로 컸고, 밭일을 하던 도중 나가사키에서 터진 원폭의 버섯구름을 목격했다.

    "어머니를 보내니 뒤가 켕기는 기분이 들었어요. 낮에도 가급적 요양시설을 오가면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입소시킨 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기고가가 됐다.

    그는 간병 가족들에게 "나라의 제도와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와 거리를 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권한다. "갑자기 어머니가 아프다는 전화가 왔을 때 곧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가 좋지 않을까요. 연인도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보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까. '간병 피로'에 빠지면 부모와 본인이 함께 무너집니다."

    책이 잘 팔려 달라진 게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고 말했다. "예순 넘어 이런 일이 생기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흔에 겪었으면 우쭐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