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침묵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13.11.02 03:14
침묵
골바람 속에 내가 있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으므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골짜기 외딴집 툇마루에 앉아 한 아낙이 부쳐주는 파전과 호박전을 씹으며 산등성이 너머에서 십년 묵언에 들어가 있다는 한 사람을 생각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속에 내가 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승도(1960~ )
누군가에게 처음 사랑을 느낄 때 혹은 어떤 연민이 생길 때 그에 딱 맞는 말은 세상에 없다. 빛의 눈부신 파동 같은 것, 저무는 호수의 물기슭 같은 애잔함이 있을 뿐 이미 오염된 세계의 말로 그 신성한 감정은 붙잡히지 않는다.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 사랑에 대한 왈가왈부가 있을 수 없다. 사랑에 대한 답이 있던가? 사랑할 뿐이다.
바람 속에 있는 자, 그저 바람을 견딜 뿐 바람에 대하여 따져 묻지 않는다. 왜? 그 어떤 말도 그에 대한 정답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른바 '묵언정진'이란 말이 있다. 말이 삶의 큰 의미를 실을 수 없음을 알아 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대개 말이 독이다. 그래서 가장 귀한 말은 '침묵' 안에서 빛난다.
'바람 속에 내가' 있음을 알면 바람 전체가 나이므로 그 처음과 끝은 없는 셈. 그저 열심히 불어갈 뿐이다. 말을 내려놓고 침묵이 그리워 깊은 산골짜기 골바람 속에 든 한 사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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