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말 거는 것들
집에 혼자 있으면요 세간살이가 부스럭거려요 입도 없는 것이 말 걸어와요 잠시도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어디선가 소리가 나요 옷장에서 쩍 나무 갈라지는 소리 부엌 수도꼭지에서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온갖 소리 다 들려요 가만히 있으면서 조용히 소란스러워요 선반 위 손때 묻은 주전자가 좀 봐 달라고 칭얼대요 집안에서 나는 소리는 눈길 잡아끄는 힘이 있어요 귀찮아 안 보려 해도 안 볼 수 없어요 다가가면 아무 소리도 안 보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나요 비틀어도 잠가도 새어나오는 소리 시계 소리처럼 내 귀를 갉아먹는 소리 어느 구석에서 또 보이지 않는 소리가 나요 혼자 있으면요 자꾸 말 걸어와요
―박지영(1956~ )
사물에게서 나는 소리든 사람의 소리든 작은 소리는, 작고 낮은 소리는 고요한 혼자의 시간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 각 사물들의 제 타고난 소리, 순수한 목소리는 그때 비로소 들을 수 있다. 돌과 사과와 담장과 밥의 소리, 옷걸이의 소리. 생각해보면 소리가 없는 물건은 없다. 듣는 귀가 없을 뿐이다. 늦은 밤 부엌에 나가보면 못 보던 빛, 못 듣던 소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포개진 아이 밥그릇 모서리의 빛, 그리고 국그릇에서 나는 소리. 숟가락 통에서는 또 어떤 소리들이 들리던가. 그 그리움의, 겸허의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친족이다. 지금 집에 없는 사람의 밥 먹는 소리를 떠올려 본다.
-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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