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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

수로보니게 여인 2013. 9. 27. 14:38

입력 : 2013.09.26 04:00 | 수정 : 2013.09.26 10:04

 

폐허는 먹먹하다. 승려들 떠난 절집도 먹먹하다. 거돈사도 먹먹했다. 居-頓-寺, 잘난 척하지 말고 머리 조아리며 살라는 절인데, 그 사라진 절에 가을이 내려왔다.

 

 

천지만물이 휴식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왠지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헛헛해지고 싶다면 폐사지로 가야 한다. 허(虛)와 공(空)으로 돌아간 절터. 기왕이면 떠나는 날에는 바람이 불고, 날은 흐리고, 되도록 가랑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호승 시인이 말하듯,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게' 하는 폐사지가 품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겠다.

 

빈 절터에서 느낀 역사의 발자취

 

지금이야 한적한 산골 마을로 변했지만, 거돈사지가 있는 강원도 원주 부론면 일대는 교통 요지였다. 삼국시대에도, 후삼국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부론면은 중요했다. 여기만 장악하면 남한강 운수를 장악할 수 있었고 왕조가 바뀌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그 요지에 절들이 기러기 떼처럼 들어섰다. 한명회를 가르쳤던 유방선, 허균과 난설헌을 가르쳤던 이달 같은 당대 문인들이 부론에 와서 절집에서 공부를 했다. 조선에 쳐들어온 왜놈들에게도 부론면은 중요했다. 그래서 기러기 떼처럼 많았던 절집이 임진왜란 동안에 철저하게 파괴됐다. 원주 일대에 폐사지가 100군데가 넘는 이유다.

원주의 많은 절집들이 임진왜란 때 철저히 파괴돼 그 흔적만 남았다.

단풍도 섭섭하고 여름도 아직 꼬리가 문지방을 덜 넘은, 계절의 점이지대에 거돈사지가 있다. 흥법사지, 법천사지와 함께 여행가들 사이에서 '원주 3대 폐사지'로 꼽히는 절터다. 7500평 망망한 들판에 아무것도 없다.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들과 축대들, 그리고 누릇누릇 가을색으로 변신 중인 풀밭이 전부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천년 넘게 서 있는 신라시대 삼층석탑과 돌로 만든 불좌대(佛座臺)가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석물이다. 여기에서 공간 여행은 일단 멈춤.

대신 눈을 감는다. 풀이 눕는 소리,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어본다. 자연과 폐허가 만드는 거대한 풍경(風磬) 소리를 들어본다. 시인 말처럼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눈을 뜨고 천년 세월을 머금은 석물과 축대와 주춧돌 틈을 걸어본다. 굳이 먼 길 떠나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몸을 옮긴 이유를 알게 된다.

'원주 3대 폐사지 중 하나로 꼽히는 법천사 느티나무

원주시에서 만들어놓은 '역사문화순례길'이 산 너머 법천사지까지 연결돼 있다. 4.3㎞짜리 완만한 산길이다.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 절터 앞에는 수령이 1000년을 넘었다는 느티나무가 서 있다. 반드시 이 나무님을 알현해야 한다. 천년째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그 모습에서 뭉클하거니와, 뿌리부터 어른 키 높이까지는 속이 완전히 빈 채 여전히 푸른 잎을 피우는 경이로운 나무다. 폐허로 돌아간 절집 거돈사와 텅 빈 노거수(老巨樹) 앞에서 먹먹한 가을을 맞는다.

 

여행 수첩

서울 기준
①대중교통: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문막정류소까지 시외버스→건등사거리에서 55번 버스. 혹은 원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봉학로 사거리에서 55번 시내버스.
②손수운전: 내비게이션에 '거돈사지' 혹은 주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

절터 주변에는 딱히 먹을 곳이 없다. 대신 원주 시내 곳곳에 있는 '매운 갈비찜' 추천. 어마어마하게 매운 소·돼지 갈비찜을 낸다. 폐사지 여행을 마무리하는 조용한 공간, '갤러리 카페 나다(NADA)'도 추천. 원주KBS 근처에 있는 카페다. 클래식 실내악 공연, 문화 강연 등이 열리는 고급 공간. 차·맥주 등. (033)733-9300

북원문화관광투어버스:원주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버스투어. 부론면 코스는 2·3·4주 토요일 운행, 오전 10시 출발. 원주문화원(www.wjmunwha.or.kr, 033-764-3794/6796)

원주시청: 관광홈페이지 tourism.wonju.go.kr, (033)737-2111